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검은 속내 (2)
“어? 신채연 씨?”
신채연 씨는 완벽하게 변신을 하고 촬영장으로 나섰다. 얼굴 형태가 숏컷에 정말 잘 어울렸다. 그리고 순둥이처럼 보이던 얼굴도 눈의 아이라인을 강조하니 이에 다른 사람이 온 것처럼 느껴진다. 일반인에서 전문모델로 바뀐 느낌이 든다.
“괜찮아요? 전 생각보다 되게 마음에 들어요.”
“그럼요,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네요.”
모습이 바뀐 채로 걸어오는 채연 씨를 보며 백유경 씨도 당황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는지 다시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채연이가 처음이니까 제가 보조를 해주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보통 이런 촬영이 처음인 사람을 뒤로 돌리는 것이 보통이다. 훨씬 부담이 덜 되는 보조 촬영을 하면서 촬영에 익숙해지니까 말이다.
그래, 확실히 후반이 유리하지. 난 채연 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채연 씨는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전 상관없어요.”
외모가 바뀌니까 자신감도 상승한 것처럼 보인다. 난 자리로 돌아가 카메라를 들었고, 둘은 포즈를 잡고 나를 봤다.
“유경 씨가 보조하는 건데 너무 표정이 과해요.”
“에이, 뭐가요. 이 정도면 참 약하게 한 건데요.”
약하게 하긴 눈에 너무 힘이 들어가서 빠지려고 하는 것이 느껴진다. 어떻게 해서든 이 촬영에서 우위를 점하고 싶은 모습이 눈에 빤히 보인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이면 내 입장에서는 좀 우습기까지 하다.
“자, 채연 씨 얼굴 방향을 바꿔보죠, 오른쪽보다 왼쪽이 예쁘게 나와요.”
“유경 씨, 잘 나오게 노력하는 모습은 좋은데 어디까지나 보조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유경 씨는 아까 단독촬영을 할 때보다 훨씬 표정이 돋보인다. 단독 촬영 때 저렇게 악을 쓰고 했으면 결과물이 훨씬 좋았을 텐데 아쉽다.
“유경 씨는 그대로 있고, 채연 씨는 왼쪽으로 좀 이동해주실래요?”
난 아까 간간히 유경 씨를 단독으로 찍으면서 아까 찍지 못한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곧 촬영이 끝났다고 신호하자, 유경 씨가 빠른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어지간히 결과물이 궁금한 모양이다.
“··이게 뭐예요. 제가 이상하게 나왔잖아요.”
“서브모델로서 훌륭했어요. 뭐가 이상하게 나왔다는 거죠?”
“꼭 제가 채연이를 시샘하는 것 같이 보이잖아요!”
“죄송한데, 그게 컨셉 아니었나요?”
내 말에 유경 씨는 입을 다물었다. 서브모델은 메인모델을 시샘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컨셉인 걸 지금에서야 알아차린 것 같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져서 좋은 사진을 찍었구나. 표정이 너무 적나라하게 나온 게 그녀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것 같다.
그녀는 화난 표정으로 사진을 보다가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사진이 굉장히 불안정해요. 채연 씨 힘을 좀 빼셔도 됩니다. 그리고 유경 씨는··”
화장을 지우고 크림을 바른 탓인지 유경 씨의 얼굴에서는 독기가 빠져 있었다. 클로즈업 사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눈인데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아 아쉬운 점이 크다. 해맑은 느낌 정도만 느껴지니 그걸 강조해서 찍을 수밖에 없다.
유경 씨는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해맑은 느낌을 지워버리며 자기가 돋보이고 싶은 마음이 표정과 포즈에서 보여지고 있다.
“메인은 메인답게 서브는 서브답게 찍었으면 좋겠어요. 유경 씨, 채연 씨 투명인간 취급하고 혼자서 드러내려고 하고 있잖아요. 경험 많으신데 좀 이끌어주며 노력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까도 진심이 담긴 표정이 아니었으면 그저 그런 사진이었을 텐데 운이 좋았지. 아마도 배우로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사진모델로서도 성공하지 못할 것 같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에디터인 미정 씨의 기준을 통과한 사진을 아슬아슬하게 담아낼 수는 있었다. 유경 씨는 사진을 보더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사진 잘나왔잖아.”
“하아, 그냥 가자. 괜히 찍었어. 다음부터 여기서 오는 의뢰는 받지 마.”
유경 씨는 마지막까지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하지만 말소리가 너무 컸다. 왜냐하면 그 말에 미정 씨가 얼굴빛이 바뀌는 게 보였거든. 그녀는 앞으로 나서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 말씀을 대놓고 하시는 건 실례죠. 우리도 최선을 다했는데 수고했다는 말을 하지 못할망정 그런 말을 꺼내시면 섭섭합니다.”
매니저는 화가 난 미정 씨의 눈치를 보다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유경이가 촬영에 지쳐서 신경이 좀 날카로워졌나 보네요. 하하.”
“2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나마도 반 이상은 촬영장에 계시지도 않았고요. 매니저님, 신인 배우 얼굴 알리는데 우리보다 좋은 매개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도 알죠, 유경아 뭐해. 사과드려.”
그녀는 사과 대신 미정 씨를 쏘아보더니 그냥 밖으로 나가버렸다. 매니저는 그 모습에 당황하여 자기가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열심히 쫓아갔다. 미정 씨는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승우 씨, 여기 연예계 쪽에는 거지 같은 인성을 가진 사람들이 천지에요. 하나하나 각을 지고 대하다가는 힘들어져요. 그래도 저 정도로 까불면 한 번쯤은 세게 나가도 돼요. 좋은 소속사에 들어간 신인 배우 정도잖아요.”
난 히죽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촬영 분 어떻게 할까요? 뺄까요? 채연 씨가 찍은 게 있어서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데.”
“속 많이 상하셨군요. 그래도 소속사하고의 관계도 있으니까 빼지는 말아요. 대신에 사진 사이즈 좀 줄여서 내보내죠.”
화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은 신채연 씨가 나오더니 내게 인사를 했다.
“오늘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머리도 잘라보고 화보도 찍었고··. 그런데 유경 언니는요?”
“바쁜지 먼저 가셨네요.”
“정말요? 유경 언니가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아 보이긴 했어요.”
“혹시 다음번에도 같이 작업할 수 있을까요?”
“네? 저랑요?”
“제가 머리카락도 자르게 했잖아요. 이대로 끝내면 제가 미안하죠.”
난 그녀의 연락처를 얻고 인사를 했다. 나중에라도 새로운 얼굴 찾는 의뢰가 들어오면 함께 일을 해야겠다.
***
촬영을 마치고 편집장과의 미팅을 위해 본사로 향했다. 슬슬 다음 달 메인화보에 대한 회의가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메인화보의 모델을 알려주는 자리였다.
에디토리얼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잡지의 꽃인 화보를 말하는 것이다. 사진가로서 이런 작업을 맡게 된다는 것은 성공의 끈을 잡은 거나 다름없다. 화보가 어떤가에 따라서 그건 고스란히 다음 일거리로 이어지기도 한다.
보통 의류광고 카탈로그나 광고주로부터 일감이 들어온다. 잘 찍은 화보사진은 그 자체가 광고 시안이 되기도 하고 다른 패션화보로 재활용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이번 화보부터 내 모든 노력을 다할 생각이다.
“다음번 촬영할 모델은, 배우 신민석으로 확정되었습니다.”
회의실엔 여자 직원들의 환호성이 울려 펴졌다. 신민석 씨는 패션모델 출신으로 재작년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배우였다. 패션모델다운 기럭지는 물론이고 얼굴이 조막만하고 고운 미소년상의 얼굴을 지녀 여성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알다시피 거의 모든 컨셉을 다 소화할 수 있는 배우야. 어떻게 찍으면 좋을까?”
“신비한 남자 어때요?”
“전 옴므파탈! 순수한 이미지를 벗겨버려요!”
“피부가 새하야니까 뱀파이어도 어울리지 않을까요?”
“반항아 컨셉은 어떨까요?”
순식간에 직원들이 너도나도 나서며 아이디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아, 이런 분위기인가. 난 신민석 씨의 사진을 보고 하나라도 말하기 위해 애썼지만 딱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직접 얼굴을 봐야 뭐가 나와도 나올 것 같은데··.
“사전 미팅은 안 해요?”
내가 궁금해하는 점을 누군가 딱 물어봐 줬다. 편집장은 아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쉽게도 너무 바빠서 시간을 못 낼 것 같아. 대신 하루 통으로 준다고 했으니까 꽤 퀄리티 있게 찍을 수 있을 거야. 대신 촬영 준비는 완벽해야겠지? 삼 일 뒤에 아이디어 정리해서 내게 보내주면 될 것 같아. 길승우 씨도 부탁드려요.”
“네, 알겠습니다.”
여직원들은 너도나도 흥분한 얼굴로 얘기를 나누며 자리를 떴다. 편집장은 날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랑 하는 첫 화보 촬영이네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녀는 부담이 되는 말을 남기며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
다음날, 나는 대표님의 호출에 회사로 향했다. 몇 달 뒤부터는 우리 소속사의 기둥인 그 그룹이 컴백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이 잡힐 것 같다. 앨범 재킷부터 화보까지 말이다. 난 그런 스케줄에 대한 얘기를 할 줄 알았는데, 대표님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아트팀이요?”
“그래요, 대형 기획사에서는 아트디렉터를 중심으로 스타일리스트, 포토그래퍼, 영상팀까지 붙어서 앨범마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죠. 우리 회사의 기둥이 되는 두 그룹을 제대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컨셉 팀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정확히 뭘 하는 거죠?”
“요즘은 그룹의 정체성과 맞물려서 앨범의 의도에 따라 통으로 컨셉이 정해집니다. 대형 기획사는 멤버 구성부터 이렇게 한다지만 사실 우리 같은 중소 기획사가 처음부터 하기는 어려운 작업이죠.”
“아, 저도 뭔지는 알겠네요.”
“이번에 홍보팀하고 음반 디자인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아트팀을 만들기로 한 겁니다. 음반디자인은 단순히 음반을 예쁘게 치장하는 작업이라기보다 뮤지션이나 제작자의 의도나 해석이 수반되어야 하는 복잡한 작업이에요.”
“그럼 아트팀은 음반디자인을 우선시해서 작업할 예정인가요?”
“좀 더 나가야지요. 전체적인 컨셉을 잡고, 비주얼 작업을 진행해 나가는 겁니다. 무대 의상은 물론이고 음반디자인이나, 뮤직 비디오까지 통일된 컨셉을 만들어나가는 거예요.”
본격적으로 패션잡지 소속이 되면 하고 싶었던 것이 있다. 패션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잘 찍는 것보다 컨셉을 잘 잡는 거에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패션사진작가들은 나름대로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방면, 특히 미술 쪽의 조예가 깊어야 가능하다.
··현재의 내 능력으로는 힘들다는 소리다. 어제도 여실히 느꼈지.
“그럼 아트디렉터로 어떤 분이 오실 예정인가요?”
“혹시 이연수 씨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아니요.”
“회사 소속은 아니고 프리로 일하시면서 아이돌인 슈가라인하고 탑페이퍼를 맡았던 분이죠. 이번에 우리 직원이 스카우트 제의를 했습니다. 예술 활동도 같이하고 계신 분이라고 하더군요.”
“전 뭘 하면 되죠?”
“길 작가님이야 당연히 아트팀의 포토그래퍼로 자리를 잡아주셔야지요.”
나쁜 제안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지금의 내게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패션사진에 예술을 접목시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현재의 난 그쪽 감각이 현저하게 부족하니까 말이다. 다행히 지금 일하고 있는 잡지는 본격적인 패션 잡지는 아니라서 다행이긴 하다.
그렇게 나는 새롭게 만들어질 아트팀의 일원이 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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