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화보 작업
사진 작업을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사진은 실재를 묘사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니냐고 말을 하곤 한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조명과 같은 카메라를 쥐여주어도 결과는 판이하다.
“신민석 씨 오셨습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도 모두 다른 성격을 가진 것처럼, 사진의 결과물 역시 피사체를 렌즈에 담아낸 사람의 개성에 따라 다르다.
“승우 씨, 준비 다 됐나요?”
사진이 다른 이유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난 사람마다 관찰력에 차이가 있다는데 손을 들어주고 싶다. 사진가의 관찰력에 따라 피사체가 드러내지 않은 것을 더 정확히 묘사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조명, 준비됐죠?”
이 관찰력이란 단어 자체가 좀 애매한데, 피사체를 보는 사진가의 독특한 관점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신민석 씨 10분 뒤에 나오십니다.”
이 독특한 관점을 가지기 위해서는 관찰력이 뛰어나 작은 변화를 감지해 낼 만큼 섬세해야 하며, 무엇보다 올바른 통찰을 지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결국, 이 말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겠지. 수많은 지식과 경험이 쌓여야 가능하다는 소리다.
“시작할게요.”
신민석 씨는 확실히 좋은 마스크에 패션모델로서의 몸을 지니고 있었다. 패션모델의 몸이라는 건 매우 마른 체격을 가졌다는 소리다. 남성 정장은 안감이 많아 디자이너의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마른 몸을 가진 모델을 선호한다고 한다.
“처음부터 너무 센 거 아닌가요?”
약간의 어색함을 풀 듯 민석 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는 추리닝 바지에 러닝셔츠를 걸치고 부스스해 보이는 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되게 추레해 보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여성 스탭들의 빛나는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듣자 하니, 영화 촬영 때문에 멋진 식스팩을 가지게 되었다면서요. 이 기회에 모두에게 자랑한다는 느낌으로 가볼까요? 막 일어나서 햇살 때문에 기분이 조금 상해있는 상태입니다.”
“잘됐네요, 오늘 아침이 딱 그랬거든요. 여름이라서 해가 너무 일찍 떠요.”
그러면서 포즈를 취하는데 난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모델로서 정점을 찍고 연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점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뭐, 할 말이 없네요. 몸의 각도하며 표정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아주 좋아요.”
이번 것은 뭐 문제가 없다. 주위의 여직원들도 난리가 났다. 난 어떤 점에서 민석 씨의 장점이 나타나는지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했다.
“지금 그 포즈를 취하는 각도 말인데요, 빛 때문에 스스로 생각한 거 맞으시죠?”
“그랬나? 하하.”
주위의 상황에 맞춰서 자기를 내보일 줄 안다. 어떻게 보면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보통의 패션모델이 자아를 죽이면서 옷과 조화롭게 찍히는 것과는 다르다. 그의 이런 면이 모델을 그만두고 배우로 나간 게 아닐까 생각된다.
“이번에는 침대에 앉아서 ‘어쩌라고’ 하는 표정으로 정면을 봐주시면 됩니다. 잘못은 했지만 좀 뻔뻔스럽게 나가고 있다는 가정이에요.”
“에이, 그런 거 싫어하는데.”
“평범한 남자가 이랬다가는 뺨을 맞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민석 씨는 앞에 있는 여자가 너무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그래도 됩니다.”
“허락해주시는 건가요?”
“여러분, 괜찮죠?”
모여 있던 여성 스탭들이 ‘네!’ 하며 크게 외친다. 그 외침을 들은 민석 씨는 낄낄거리며 웃다가 이내 포즈를 잡고 나를 노려 봤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카메라를 노려본 것이다.
“손이 발에 있으니까 몸 선이 조금 평범하네요. 발보다 아래로 내려주세요. 눈이 너무 매서워요. 그것보다는 좀 더 많은 것을 담아주셔야 하는데·· 지금 아주 좋아요.”
민석 씨는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현장에서의 이해력이 뛰어나다. 마치 내 속을 들여다보듯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잡아내서 표현을 하고 있다.
“야, 이건 너무하네요. 이쑤시개를 물어요? 이건 10년 전도 아니고 80년대 유행한 홍콩 영화에서나 나오는 건데.”
“원래 컨셉은 담배였는데, 아시다시피 이건 청소년들도 많이 보는 잡지 잖아요. 그래서 이쑤시개로 바꾸게 된겁니다. 저기 보이시는 에디터 분들이 뭐라도 물려야 한다며 엄청 주장했어요.”
그 말에 앉아 있던 에디터 한 분이 발끈하며 입을 열었다.
“길승우 작가님도 제 말에 찬성하셨잖아요.”
“그랬죠, 이 장면에서는 뭘 물리는 게 나아 보이니까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
에디터 분이 내 대답에 말문이 막혀버리자 민석 씨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이 너무 고루했나 보네요.”
“아니에요! 전 신민석 님을 불편하게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아휴, 좀 불편하더라도 힘내보세요. 사진은 좋게 나올 겁니다.”
난 무언가 말하려던 에디터 분의 말을 막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다시 나를 찌릿 노려보았다.
“저기 스타일리스트님, 옷 좀 세팅해주세요. 파인 옷을 입힌 이유가 없어지고 있어요. 민석 씨는 창가 옆에 서 계실 거니까, 거기에 맞춰서요. 네, 좋습니다.”
난 카메라를 들었다. 목에 새겨진 특이한 모양의 타투가 그를 강인해 보이도록 돕고 있다.
“좀 과장된 컨셉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사실 그리 과장되지 않아요. 그냥 편안하게 서서 잔소리하는 여자친구에게 ‘그래서, 뭐’라고 말하는 느낌으로··.”
연기자라서 그런지 상황 설명을 해주니까 너무 잘 알아듣고 있다. 저 정도의 모델로 좋은 사진을 뽑아내지 못하면 그게 이상한 거다.
“잠깐 와주실래요?”
이번 촬영을 마친 신민석 씨가 다시 옷을 갈아입기 위해 드레스룸으로 향할 때 난 그를 불렀다. 난 방금 전 찍은 사진을 그에게 보여줬다.
“아, 사진작가님 말대로네요. 되게 촌스럽게 찍힐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뭐랄까 그냥 저를 돋보이게 하는 소품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어요.”
“그죠? 이거 눈빛 연기 좋았어요. 사진 속에 긴장감도 느껴지고 말이에요.”
“작가님, 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요?”
“보통 이런 식으로 지시 내리세요?”
“이런 식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네요. 전 그냥 사진을 찍으면서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불편하세요?”
“에이,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전 알아듣기 편한데 다른 모델들도 그런가 싶어서요.”
“아아, 말하는 방식 말이군요. 음, 사진 찍을 때 지시하는 건 모델에 따라서 다르게 하고 있어요. 숙련도하고 성격의 차이 때문이랄까. 예를 들면 빈아 씨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같이 작업을 했었는데, 좀 놀리면서 하면 좋은 표정이 많이 나와요.”
“하하, 놀려요? 대단하시네.”
“제법 그런 일 많아요. 생각해보니까 사진을 찍을 때만큼은 제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찍고 있나 봐요.”
“무슨 말인 줄 알겠어요. 그럼 다음 작업도 노력하겠습니다.”
무슨 호구조사 당하고 있는 것 같네. 좋게 생각하면 나와 작업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 것 같고, 나쁘게 생각하면 내 방식이 독특해서 물어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 이거는 좀.”
민석 씨는 쓰러진 의자에 몸을 묶으면서 투덜대고 있었다.
“사심 가득한 에디터들의 빛나는 아이디어입니다. 같은 남자로서 빨리 끝내드릴게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좀 삐딱하게 들고, ‘이렇게 해서 날 어쩌겠다는 건데’ 느낌으로 갑시다.”
“하하, 그거 괜찮네요.”
“팔 각도가 어색해요. 눌린 팔은 좀 펴주시고, 손목 잡아주세요. 좋습니다. 오케이.”
그 말에 한 에디터가 일어나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소품이 좀 어색하지 않아요? 조정하고 다시 찍어보죠.”
“스톱, 소진 씨. 하나도 안 어색하니까 가서 줄이나 풀어드리세요.”
“아, 너무해. 다른 컨셉 찍는 시간의 반의반도 안 되잖아요.”
“그만큼 민석 씨가 필사적으로 찍었습니다.”
촬영장의 분위기는 좋았다. 민석 씨도 촬영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스탭들도 하나가 되어 좋은 작업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그렇게 촬영은 끝이 났다.
***
“형, 오늘 나 어땠어?”
집으로 가는 길에 신민석은 매니저에게 물었다.
“컨셉이 좀 과한 면도 있나 싶은데, 그런 점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보통 촬영 한 번 하고 나면 힘이 쫙 빠지는데 오늘은 어쩐지 그냥 놀고 온 느낌이야.”
“왜 그런 느낌이 든 거야?”
“모르겠네. 그 사진가분이 편히 대해줘서 그런가 싶어. 난 처음 보는 사람인데 메인화보 찍을 정도면 꽤 유명한가 봐.”
“이쪽에서는 꽤 유명한 사람이라고 들었어. 러버걸스 역주행 사진으로 잘 알려졌지. 그 뒤로도 대기업 광고 촬영도 몇 개 있고 말이야. 근데 소문으로는 거만하다고 들어서 좀 걱정을 했어.”
“전혀 그런 느낌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그냥 소문만 들은 거야. 뭐 이 세계 소문 태반이 거짓인 건 잘 알잖아. 그리고 또 모르지 넌 스타니까 알아서 잘 대해줬을 가능성도 있고 말이야.”
“글쎄, 그런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던데.”
“근데 왜 그 사진가에 대해서 궁금해해?”
“나중에 작업할 때 같이 찍고 싶어서. 이왕이면 작업할 때 스트레스 안 받고 즐겁게 일하는 게 좋거든.”
“이번 화보 나오는 거 봐서 결정하자. 얘기 들으면 유난히 궁합이 잘 맞는 포토그래퍼가 있다고 하더라고.”
매니저의 말에 신민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
며칠 뒤 의 SNS에 몇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 난 원래 잡지 안 사는데 이번 꺼는 사야겠다
– 숨멎숨멎 숨멎숨멎
– 쎄다! 컴퓨터가 거실에 있는데 이건 스크랩하고 방에서 따로봐야겠어.
– 으어어어어어어어어엉어ㅠㅠㅠㅠㅠㅠㅠㅠ
– 하하하하 눈정화하고 갑니다
– 코피날 것 같아요
– 진짜 요망하다!! 헠헠커허컿커허헠허헛
– 울애긔 너무 하얘서 옷이랑 살이랑 구분안됨
– 아니, 왜 이렇게 멋있는 거죠?
– 이번 거는 미모 레전드 갱신한 듯
– 컨셉 너무 좋다ㅠㅠㅠㅠ
– 크리미는 신민석을 잘 쓰는 거 같다. 사랑해요
– 아… 세상에나…
– 그렇게 내 맘 속에 쏙 들어와 그대로
– 제가 가지겟습니다 핰
– 이제 내 꿈은 저 옷의 한조각 천이 되는거임ㅠㅠㅠㅠㅠㅠㅠㅠ
편집자는 반응을 보고는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그것 봐! 내가 뭐라고 했어. 길승우 씨 사진 잘 찍는다고 했잖아. 그분이 메인화보를 맡아주면 그게 우리 잡지의 경쟁력이 될 거라고 했지.”
그 말에 한 직원이 입을 열었다.
“반응이 아주 폭발적이에요. 우리 잡지를 향해 화보장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말이죠. 다른 아이돌이나 배우들 소속사에서도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다른 직원이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편집장 구희양을 바라봤다.
“이번 촬영 결과물은 그냥 신민석 씨의 힘이 아닐까요? 우리가 정한 컨셉이 어떻게 보면 독자들이 원하는 방향성을 따른 거잖아요. 신민석 씨가 잘 소화해주셔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길승우 씨 사진이야 좋지만, 특별한 건 없잖아요.”
“그래서 네 안목이 별로라고 항상 말하는 거야. 사진작가의 실력 여부는 아트디렉터의 의도를 120% 맞춰주는 능력이 중요해. 왜 120%일 것 같아?”
“··글쎄요.”
“왜 120%냐면 사진작가의 개성과 의견도 반영하기 때문이야. 나 같은 아트디렉터가 사진 전문은 아니니까 말이지. 길승우 씨의 사진에서 그 20%가 안 보인다면 네가 문제가 있는 거야. 그리고 내가 길승우 씨를 왜 데리고 오려고 했는지 알아?”
“잘 모릅니다.”
“모델하고 교감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들어서야. 아무리 잘 찍어도 멋대로 찍으면 그건 예술사진하는 사람이지. 무엇보다 우리 잡지의 메인모델은 일반 모델이 아니잖아. 저번 촬영 현장에서 뭘 느낀 거야?”
“저도 촬영 현장에 있었지만, 교감이 그렇게 뛰어났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던데요.”
“오늘 길승우 씨한테 연락이 왔는데 신민석 씨 소속사한테서 연락이 왔다고 하더라. 신민석 씨가 또 같이 일을 하자고 하는데 카탈로그 작업이면 허용이 되냐고 말이야. 알겠니? 얼마나 네 안목이 후진지?”
여직원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뭐 확실히 사진 자체를 놓고 보면 외국 작가처럼 자기 색이 크게 묻어 나오지는 않아. 하지만 그건 우리 문제도 있어. 이번 컨셉도 대놓고 이렇게 찍어달라는 요구에 가까웠으니까, 그 안에서 창의적인 사진이 나올 턱이 없지.”
편집장은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런 시건방진 소리는 내 앞에서만 해. 만약 길승우 씨한테 이딴 얘기 했다가는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풀이 잔뜩 죽은 여직원은 눈물이 고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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