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특별한 시선
“거절할게요.”
사진 찍는 법을 가르쳐달라는 그녀의 요청에 나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왜죠?”
“뭘 알려드리기엔 제가 너무 아는 것이 없어요. 누굴 가르친 적도 없고 말이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여유가 없습니다.”
누군가를 제자로 들인다는 건 큰 결심이 서야 가능한 거로 알고 있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는 그렇다. 난 카메라 덕분에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누굴 가르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제가 어떻게 하면 승우 씨에게 사진을 배울 수 있을까요?”
사진 같은 경우 독학도 가능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철저한 도제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었다고 들었다. 적게는 수년, 많게는 십 년 넘게 악조건 속에서 가르침을 받기 위해 대가의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버텼다.
“제게 배울 생각하지 마시고, 스스로 길을 찾아보세요. 요즘은 옛날과는 달리 좋은 사진을 보고, 사진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인터넷상으로 가능한 세상이니까요.”
인터넷이 생기고 카메라가 발전해도 사진계 일부에는 아직도 이런 시스템이 남아 있다. 그만큼 사진이란 게 체계적인 교육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녀는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
내 생각에는 자기만족을 위한 작업은 일반적으로 순수사진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커다란 목적 없이, 무슨 대가를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닌 그냥 하는 작업.
“특별한 시선.”
선생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특성을 얻었지만, 어찌 된 셈인지 작동하지 않아서 한동안 좌절에 빠졌었다. 요즘 통 오르지 않는 사진등급을 보며 난 깨달았다. 자격이 있어야 주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친구, 갑자기 무슨 전시회냐?”
뜨거운 여름날임에도 불구하고 검은 정장을 입은 성태가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안 덥냐?”
“이게 멋있잖아. 뭐랄까 이 옷은 날 나타내주는 아이덴티티이자 갑옷 같은 거야.”
“여자 친구가 뭐라고 안 하셔?”
“난 양복 입은 모습이 가장 멋있다고 하던데?”
누굴 좋아하게 되는 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좋아해 주는 거겠지. 참, 잘 만났다 싶다.
우리가 온 곳은 외국의 유명 패션작가의 전시회였다. 이 전시회에 굳이 성태를 데리고 온 것은 이 작가의 사진이 ‘외설’이나 ‘예술’의 경계선에 절묘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 사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전문적인 해설보다는 외설에 통달한 네 식견을 듣고 싶어서 말이야.”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네.”
난 투덜대는 성태를 이끌고 전시관 안으로 들어섰다.
수많은 사진이 우리를 맞이했다. 성태는 들어오자마자 눈에 보이는 사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워워, 이게 뭐냐. 변태의 전당이냐?”
처음 들어가자 보이는 나이든 여성이 새빨간 립스틱과 윤기 나는 노랑머리로 요부처럼 소파에 앉은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모델의 벌거벗은 몸을 기괴하고 불편하게 찍은 사진이 여기저기에 걸려있다.
“네 생각에는 이 사진들이 왜 가치 있어 보이냐?”
“야 무슨 내가 문화평론가도 아니고··.”
“사진 몇 개 보니까 난 느끼는 점이 좀 있다.”
“뭔데?”
“이 사람 모델들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 사진 보면 모두 모델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이고 싶어 하잖아.”
성태는 사진을 몇 개 보더니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게 거장의 사진이라고? 나도 찍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이 사진작가의 특징이야. 요즘 트렌드이기도 하고 말이지.”
“도통 사진은 알 수가 없다니까, 그래도 내가 너한테 몇 개 말해줄 게 보이긴 한다.”
“오오!! 뭔데?”
난 기대감에 고개를 돌리고 그 녀석을 바라봤다.
“여기 다리 벌리고 카메라 쳐다보는 거, 여기 이 모델이 하는 손짓 같은 거 보이냐?”
“나도 눈이 있으니까 보이겠지?”
“이거 관능 영화 보면 많이 나오는 장면들이야. 벗고 난리 치지 않아도 은은하게 풍기는 그런 것이 있거든. 나 같은 마니아들에게만 확연하게 보이는 몸짓이나 표현.”
“그런 게 있냐?”
“관능 영화 명작들을 보면 하나같이 나타나는 장면이야. 명작들을 보면 대부분은 대놓고 성적 표현을 찍기보다는, 이런 식으로 관객들의 기대를 높인 다음에 터트리는 것들이 많지. 신기하긴 하네,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코드가 숨어 있다는 게 말이야.”
성태 덕분에 한가지 지식이 늘었다. 이 작가의 사진은 예기치 않은 상황을 의도치 않게 담아낸 듯 보인다. 하지만 사진을 골똘히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훨씬 세심한 배려와 구성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보물이라는 느낌이랄까.
“야, 이런 건 일부로 그런 거야?”
뿌연 사진을 보고는 성태가 내게 물었다.
“그편이 훨씬 주제를 돋보이게 하네.”
나라면 저런 시도를 할 용기조차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패션사진이고 유명 모델을 쓰면서 저런 사진을 찍을 시도를 한 것도 놀랍고, 저 사진의 가치를 알고 잡지에 쓴 것도 놀랍다. 국내였다면 저런 사진은 즉석에서 사라질 것이다.
“볼만은 했는데 남는 건 없어.”
전시를 다 보고 성태가 툴툴거렸다. 하지만 난 그와 다르게 몸이 근질근질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들은 유명한 모델이나 배우들에게서 평범한 매력을 끌어낸다는 점이었다.
이 작가는 많은 셀럽이 서로 사진을 찍기 위해 대기 중이란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왜일까 생각했던 부분은 사진을 보면서 의문이 풀렸다. 고정된 이미지와는 달리 진정한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찍어내기 때문이다.
[축하드립니다, 미적 감각에 대한 단서를 획득했습니다. 미적 감각의 최대 수치가 70으로 상향 조정됩니다.]좋은 사진은 렌즈로 보이는 사물의 외관 뒤에 숨어 있는 의미에 대해서, 본성에 대해서 아름답게 표현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탐색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어두운지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되었고 말이다.
***
다음날 나는 급하게 잡지사로 달려갔다. 한때 CF 퀸으로 이름을 날렸던 백희서 씨의 인터뷰 약속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인터뷰 후 찍을 화보가 내 임무였다.
난,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에디터로부터 그녀에 대해 들었다.
백희서 씨는 3년 전 한 드라마의 조연으로 전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다. ‘내 남자는 내가 키운다’라는 컨셉으로 당당한 여성상과 동시에 동양인 같지 않은 몸매가 부각 되면서 CF 퀸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의 성공은 거기까지였다. CF로 빠르게 이미지를 소비하고 다시 연기를 시작했지만, 조연 여배우에게 화제성과 연기력 면에서 처참하게 밀리게 되고, 결국 작년에는 중국으로 진출을 선언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성공했다는 얘기가 없는 거로 봐서 잘 되지 않은 듯하다.
“몸매 쪽에 자신이 있고, 여름 끝자락이니 노출 있는 화보를 찍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컨셉을 준비해봤는데 어떠세요?”
“백희서 씨 측에서 원하는 컨셉인가요?”
“아니요, 우리 쪽에 맡긴다고 했어요. 참 세상 돌아가는 거 보면 우습죠. 2년 전에 우리 표지모델까지 했었어요. 그때 몇 달을 고생해서 겨우 스케줄을 잡은 거로 알아요. 근데 인터뷰 화보라도 좋다며 스스로 요청을 하는 상황까지 왔으니··.”
“그래도 아직은 화제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받아준 거 아닌가요?”
“그렇죠, 중국 진출 이후에 대중들에게서 멀어졌으니까, 어떻게 지냈고 현재 모습은 어떤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거로 생각했어요.”
난 조명을 준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예계 바닥의 성공과 추락은 롤러코스터처럼 변화가 심하다. 이 배우도 그 한가운데 놓여 있는 거겠지.
“잘 부탁드립니다.”
곧 백희서 씨가 촬영장으로 들어왔다. 과거에 TV에서 그녀의 모습을 많이 본 덕분인지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루 만에 촬영이 잡혔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늘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도 될만큼 시간적인 여유는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촬영을 맡을 길승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백희서입니다.”
그녀는 부담이 될 만큼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난 그녀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어떤 컨셉 원하세요?”
“잡지사에서 정해준 대로 촬영하려고요.”
“음··, 그래도 생각한 거 없나요? 아무래도 카메라 앞에 수없이 섰던 분이시잖아요. 그런 분들은 어떤 곳에서 어떻게 찍어야 자신의 모습이 아름답게 나오는지 알고 있더라고요.”
백희서 씨는 그 말에 쓸쓸하게 웃었다.
“··질렸다고 그래요.”
“네?”
“다들 과거에 그렇게 나왔던 제 모습이 지겹고 보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사진가님도 예전에 제 광고 본 적 있죠? 광고를 보고 어떤 분이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직업이 엉덩이냐고.”
아무래도 대화가 좀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의도치 않게 상처를 건드렸나 보다. 옛날 광고를 생각해보면 유난히 가슴과 엉덩이를 두드러지게 표현하긴 했다.
백희서 씨는 힘없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전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모습이 없어요. 있었지만 없어졌죠.”
“어제 전시회를 다녀왔어요.”
난데없는 내 말에 그녀는 날 빤히 쳐다봤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는 표정으로 말이다.
“어느 유명한 사진작가의 전시회였는데, 사진들을 보면서 느꼈어요. 아무리 유명한 모델이나 배우더라도 자신은 인지하지 못하는 숨겨진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이죠.”
난 자리에서 일어나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그걸 사진가들은 제법 잘 찾아내요.”
일단 이 배우의 자신감부터 찾아줘야겠다 싶다.
“백희서 씨는 매력적인 얼굴을 가졌어요.”
“거짓말 마세요. 전 얼굴이 몸매의 반만 따라갔어도 크게 성공했을 거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몇백 번이나.”
“데뷔하고 얼굴 위주로 찍은 사진 하나도 없죠?”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말씀하시는 거 들어보니까 많은 걸 내려놓으신 거 같아 보여요. 그래서 말인데 일단은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찍어볼 겁니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그건 제가 판단할 문제죠.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사진을 찍기는 싫으시잖아요. 이럴 때 한 번 정도 외도를 해보는 것도 좋아요.”
그녀는 겨우 결심이 섰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녀에게 간단한 원피스만을 입으라고 지시했다. 화장은 최대한 얇게,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하고 말이다.
“못난이가 따로 없네.”
다시 촬영장으로 나온 백희서 씨가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난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 그녀 바로 앞에 앉았다. 얼굴을 찍을 건데 굳이 떨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녀 역시 내 지시대로 의자에 앉았다.
“오랜만에 한국에 왔는데, 어때요?”
“또 인터뷰 하는 건가요?”
“그냥 개인적인 궁금증이에요.”
“너무 좋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좀 무섭기도 해요.”
“제가 군 제대했을 때랑 똑같은 기분이네요.”
“하하, 비교가 좀 이상하다.”
“그죠, 제가 더 심각했을 거예요. 사회 복귀에 대한 기대감과 미래에 대해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상상도 못 할 겁니다. 어? 그 표정은 뭐죠? 겨우 그거랑 내 상황과 비교할 수 있냐는 표정인데?”
“됐어요, 말 안 할래.”
중간중간 난 셔터를 누르며 그녀와 얘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얼굴을 찍는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던 그녀도 이내 카메라보다는 대화 내용에 정신이 팔렸다.
“첫 복귀로 우리 잡지로 온 이유가 뭐죠?”
“전 이 잡지를 보면서 컸어요. 잡지의 표지모델이 되는 순간을 꿈꾸면서 말이에요. 그래서 마침내 표지모델이 됐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에는 좋은 기억만이 가득했거든요.”
“그게 몇 살 때였어요?”
“초등학교 때였죠.”
“그럼 그때로 돌아가서 사진을 몇 장 찍어볼까요?”
사연 많은 모델 덕분에 예상보다 재미있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아니, 그 덕분에 사람의 본질에 조금이나마 다가가서 촬영할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든다.
“거울 앞에 서서 어떤 포즈를 취했어요?”
어떻게 보면 처음으로 색다른 시선으로 그녀를 촬영하는 날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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