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비범한 한 장
어렸을 적 거울 앞에서 어떤 포즈를 취했냐는 내 질문에 백희서 씨는 나를 보며 히죽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주저했다.
“왜요?”
“너무 철없을 때 했던 모습들이라 하기가 부끄러워서요.”
“전 말이죠, 어렸을 적에는 형보다 운동을 잘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는 형보다 유명해지고 싶었고요. 항상 비교를 당하면서 살다 보니까 형보다 앞서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죠.”
“형제가 있으면 다 그렇죠. 그래도 작가님은 꿈을 이뤘겠네요.”
“하하, 어림도 없습니다. 형은 지금 프로야구 선수로 아주 잘나가고 있어요. 그 인간은 매일 TV에 나온다고요. 잘난 척을 할 수가 없어요.”
“다들 사는 게 비슷하네요. 비교하고, 비교당하고 사는 게.”
“그래도 지금은 행복해요. 적어도 지금은 제 길을 가고 있으니까 말이에요. 희서 씨도 자기 길을 가고 있잖아요.”
“··그렇죠. 시작은 황금길이었는데 지금은 황무지여서 문제지만.”
백희서 씨의 얼굴에서는 별별 표정이 다 나오고 있다. 지금 저 배우는 내 앞에서 조금은 무장해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이런 포즈였어요. 당시 제 롤모델이었던 성지민 선배님의 포즈였는데, 거울 앞에서 몇백 번이나 연습했죠. 당시의 나는 얼굴에 자신이 있었거든요.”
지금도 괜찮다고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희서 씨는 스스로 자기 얼굴에 대한 열등감이 심하니 말이다. 어차피 나중에 결과물로 보여주면 될 일이다.
“좀 쉬었다 할까요?”
난 커피를 희서 씨에게 건네주었다. 인터뷰 화보에 실릴만한 몇 장의 사진을 건져냈지만 좀 더 괜찮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오니까 다시 신인이 된 기분이에요. 참 이상하죠? 몇 년 전만 해도 전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할 정도로 바빴어요. 근데 대중들은 너무 잔인하더라고요. 제가 부족한 배우라는 인식이 박혀버리자 환호해줬던 이들은 모두 떠나갔어요.”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굳이 대답을 원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난 묵묵히 커피를 마셨다.
“해외에서 활동은 재앙이었죠. 소속사의 욕심으로 난 입만 뻐끔거리는 인형이 되어버렸어요.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이를 악물고 버텼죠. 다행히 국제적인 분쟁이 일어나서 중국에서 활동을 못 하게 되니까, 그쪽에서 먼저 계약해지를 요구하더라고요.”
“홀가분 해 보여요.”
“네! 너무 좋아요. 한국에 와서 거리를 돌아다녀도 다가오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뒤에서 수군거리는 거 보면 알아보는 사람은 있는데 말이죠.”
“얼마 전에 TV를 보니까 이상한 셀카를 찍어서 화제가 되는 배우 인터뷰가 나오더라고요. 대답이 웃겼어요.”
“뭐라고 했는데요?”
“그냥 낭비 좀 하는 거라고.”
“하하, 누구신지 알겠어요.”
“희서 씨 옛날 사진 보면 어떻게 해서든 몸매를 돋보이게 찍은 사진이 많아요. 그래서 포즈도 한정되어 있고, 같은 모습을 매번 보니까”
“어떻게요?”
“그냥 막 찍어보는 거죠.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사진 찍어보겠어요. 하고 싶은 행동 다 해보고.”
“저 춤 못 추는데요.”
“다행히 이건 영상이 아니라 사진이라서 멋진 부분만 나갈 겁니다.”
“그럼 믿고 해볼게요.”
그녀는 얇은 원피스만을 입고 촬영장을 헤집듯 돌아다니며 별별 포즈를 다 취하고, 심지어는 춤으로 보이는 이상한 율동까지 선보였다. 음악도 없이 말이다.
그 모습이 뭔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억눌러져 있던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 같아··, 난 좋았다.
***
“판매량이 미쳤어요!”
의 8월호는 평균 부수보다 약 1.2배가량 더 찍었다. 신민석이라는 호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였기 때문에 만 부 이상 더 찍어낸 것이다.
“다 매진이에요, 해외 주문도 어마어마하고요. 증쇄 요구가 빗발치고 있어요.”
“신민석 씨 화보가 꽤 잘 나오긴 했어.”
직원의 호들갑에 편집장 구희양은 침착하게 말을 했다. 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직원은 계속 입을 열었다.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난리가 났어요. 따로 화보집을 내달라는 요구도 있고, 우리 잡지랑 신민석 씨랑 결혼하라는 유머 섞인 요구도 있고 말이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기대치를 넘어섰네.”
“또 백희서 씨 화보도 엄청나게 화제가 되고 있어요.”
“정말? 너무 파격적이라 걱정했는데.”
구희양은 몇 주 전 길승우가 찍은 백희서 씨 사진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 사진을 보고 떠오른 단어는 ‘파격’이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백희서라고 하는 인물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화려함이었다. 하지만 길승우가 내준 사진은 화려함을 벗어버린 채 어떻게 보면 극도로 촌스러워 보이는 사진이었다.
“그냥요. 더 매력 있어 보이지 않아요?”
대체 왜 이런 사진을 찍었냐는 그녀의 물음에 길승우는 가볍게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화보 이외의 사진은 마음대로 찍어도 좋다고 말했지만, 이 정도 사진이라면 망설일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희서 씨는 영상에서도 사진에서도 한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전 제가 희서 씨를 보는 방식 그대로 사진을 찍으려고 했어요. 다행히 희서 씨도 그 의견에 찬성했고요. 그래서 이런 사진이 나온 거예요.”
길승우의 말을 듣고 다시 사진을 보니 뭔가 좀 달라 보이기는 했다. 촌스러웠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었다. 사진 속의 그녀는 지극히 개인적인 장소에서 편안한 사람과 있는 것 같아, 마치 비밀을 들춰보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이런 분위기를 연출했냐는 그녀의 물음에 길승우는 이렇게 말을 했다.
“그냥 희서 씨가 원래 자기의 방식대로 있게 하려고 애썼어요. 그 와중에 희서 씨의 미묘한 구석을 볼 수 있었고요.”
결국, 그녀는 이 사진을 잡지에 넣는 것을 허락했다. 만약 메인화보였다면 어떻게 해서든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썼겠지만, 겨우 2페이지. 그것도 인터뷰에 덧붙여지는 작은 사진이라는 게 그녀의 기준을 누그러트렸다.
그녀는 생각을 멈추고 직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
“백희서 씨 사진 반응은 어때?”
“어떻게 보면 신민석 씨 화보보다 SNS에서는 더 화제가 되고 있어요. 성별 관계없이 커뮤니티에서 큰 이슈가 됐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사진을 찍었냐는 소수의 악플도 있지만, 대체로 호의적인 의견이 많아요.”
“어떤 의견들이야?”
“가장 많게는 백희서라는 배우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의견이 많아요. 좀 더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뻔한 모델에게서 이런 사진을 끄집어냈다고 놀라워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촬영장에서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다며 영상을 달라는 의견까지 가지각색이에요. 근데 편집장님, 이 사진이 왜 그렇게 화제가 되는 거죠?”
그녀는 읽고 있던 잡지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잖아. 여기에 찍힌 사람을 알고 있다면 얼마나 쇼킹한 장면이겠어. 누가 백희서 씨를 이런 식으로 찍을 생각을 했겠냔 말이야. 거칠고 날 것으로 보이면서도 사람을 부드럽고 아름다워 보이게 해. 어떻게 보면 그냥 친구가 찍은 사진 같아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또 이렇게 찍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없겠다 싶은 거지. 결국, 이 사진이 너무 신기해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은 거야.”
“길승우 작가님 대단하시네요.”
“확실히 대단하지.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나보다 독자들을 더 잘 아는 것 같아. 근데 이제 승우 씨 큰일 났네.”
“왜요?”
“이쪽 세계에서 이 사진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꽤 많을 거야. 특히 연예인들은 지금쯤 눈이 뒤집혔을 거다. 고정된 이미지를 부수고 싶은 가장 쉬운 방법이 눈앞에 있으니 말이야.”
편집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백희서의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진 속의 그녀는 가식이라고는 없는 미소를 지으며 신나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
그 시각 제이필터 뮤직의 홍보팀에서는 어제부터 계속 걸려오는 전화로 인해 고생하고 있었다.
“네, 일단 연락처하고 기획서 주시면 저희가 길승우 작가님께 전달해드리겠습니다. 네? 우리가 양아치도 아니고 왜 중간에서 장난을 치겠습니까. 어떻게든 빨리 전해달라고 말씀하셔도, 지금 비슷한 연락이 수십 건은 쌓여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전해드리겠습니다.”
홍보팀장 김훈철은 전화를 끊고 의자에 몸을 뉘었다. 직원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저기 길승우 씨 친한 지인이랍니다. 길승우 작가님 번호가 바뀌었다면서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할까요?”
“지랄하지 말고 연락 기다리라고 해. 아, 지랄은 빼고. 지인 정도면 귀엽네, 난 길승우 작가님한테 그렇게 많은 친지분이 있는 줄 몰랐어.”
“왜들 갑자기 이렇게 난리인 거예요?”
“넌 홍보팀 직원이라는 놈이 그 이유도 모르고 전화를 받고 앉아있냐? 인터넷 실시간 검색에 순위만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걸 상사인 나한테 물어보는 이유가 뭐냐?”
직원은 심상치 않은 팀장의 대답에 재빨리 자리를 떴다. 김훈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표실로 향했다.
“대표님! 어떻게 좀 해주세요. 지금 러버걸스 컴백 일정 홍보해야 하는데, 일을 못 하겠습니다.”
“넌 노크도 모르냐? 왜? 오늘도 그 난리야?”
“어제보다 더해요. 어제는 준비 안 된 사람들이 연락했다면, 오늘은 준비를 좀 하고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무슨 포토그래퍼 에이전시도 아니고··.”
“쉿, 너 지금 선을 넘으려고 하고 있어. 조금만 더 나아가다가는 우리 회사를 구렁텅이에서 끄집어낸 길승우 작가님도 욕하겠다? 그러면 내가 너 못 지켜주지.”
유승민 대표의 날이 선 말에 김훈철 홍보팀장은 금세 웃는 얼굴을 하며 입을 열었다.
“아유, 대표님 그런 말이 아니라. 다른 회사 일도 중요하니까 신경 좀 써달라는 거죠. 하하.”
“가장 중요한 일이 길승우 작가님 일이니까, 일단은 거기에나 신경 써.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화제가 된 적이 얼마 만이냐. 이제 좀 작가님다운 사진이 나오고 있네. 암, 그분 실력이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이상하지 않지. 사진 봤냐?”
“봤죠. 궁금해서라도 찾아봤습니다.”
“감상은?”
“미쳤죠. 모르긴 몰라도 백희서란 배우는 계 탔더라고요.”
“그런 사진을 찍은 사람이 우리 회사 전속 작가님이시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회사 차원에서 이런 느낌으로 우리 애들 홍보할 방법은 생각했고?”
대표의 말에 김훈철은 아차 싶었다. 그 표정을 본 유승민 대표는 혀를 쯧쯧 차며 입을 열었다.
“홍보팀장이라는 놈이 남보다 한발 앞서서 행동해야지, 뒷수습하기에 바빠서 회사가 잘 돌아가겠어?”
유승민 대표는 책상에 펴놓은 잡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는데, 길승우 작가님 사진은 점점 발전하고 있어. 이제는 사진에서 소울까지 느껴진다고. 내가 뭐라고 했어, 작가님하고 같이 가면 회사에 어마어마한 득이 된다고 말했지. 저번에도 내가 오랜만에 작가님하고 점심 먹고 나서 회사 주가가 어마어마하게 올랐잖아.”
“··그건 언루트 중국진출이 국제정서에 영향받지 않고 성공적으로 진행돼서 그런 거죠.”
“점심 식사하고도 관계가 있을 거야.”
좀 닥치라고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김훈철 팀장은 부하라는 직위 때문에 입을 닫아야만 했다.
“그건 그렇고 작가님은 오늘 일 잘하고 계시나?”
“네, 아까 마 실장하고 같이 가셨습니다.”
“내가 작가님 여자친구를 괜히 받은 게 아니라니까. 뭐라도 될 줄 알았단 말이지. 너도 회의적이었잖아.”
“누구나 회의적이었겠죠. 한국말도 할 줄 모르는 무명의 모델을 아이돌 회사에서 받아들인다는 일은요.”
“하지만, 결과는 어떻냐? 공중파 고정에, 이제는 대기업 광고를 단독으로 찍고 있어.”
“놀랍긴 합니다. 거의 기적이죠.”
“길승우 작가님 잘 돌봐드려. 더 많은 기적이 찾아올 거라고.”
유승민 대표는 창가로 다가가 지금 어딘가에서 광고 촬영을 하고 있을 길승우를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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