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어려운 여자 (1)
최근 남초 사이트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 중 하나는 에브리아 마디나 씨다. 이번 TV 광고 덕분에 많은 네티즌들이 에브리아에 대해 궁금해했고, 결국은 쇼핑몰 사진을 찾아내서 이곳저곳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승우, 이것 봐봐 나보고 여신이래.”
덕분에 에브리아의 한글 읽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소속사에 따르자면 몇몇 군데에서 그녀에게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반짝인기에 편승해서 수위 높은 화보를 찍으려고 드는 이들도 있는 반면에 한국어 구사 능력이 뛰어남을 알고 예능 프로 요청도 있다. 물론 나는 후자를 추천했다.
“이것 좀 보라니까!”
내가 별 관심이 없어보였는지, 핸드폰을 내 앞에 가져다 대며 소리친다. 난 그녀의 핸드폰에 보이는 댓글을 소리내서 읽기 시작했다.
.“사랑합니다, 여신님, 존예 인정합니다, 진짜 엘프, 완전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아서 별 감흥이 없네요, 예쁜데다가 선해보여서 딱 내 취향, 이쁨, 진짜 어떻게 저렇게 생겼냐, 저런 여자랑 같이 손잡고 걸으면 어떤 기분일까요?”
가지각색의 찬사로 이뤄진 댓글을 읽자, 에브리아가 핸드폰을 뺏으며 입을 열었다.
“다 승우 덕분이야.”
“그런 점도 있지.”
그 말에 에브리아가 눈을 흘겼다.
“얄미워.”
“그런 말을 또 어디서 배웠데?”
“내일은 뭐 할 거야? 나 쉬는데.”
“나, 내일 촬영 있어요. 그래도 저녁 전까지는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같이 식사나 할까?”
“그럼 나 현장에 따라가도 돼?”
“응? 나야 좋지.”
그렇게 에브리아와의 동행이 이뤄졌다.
다음날 촬영 현장, 오늘도 역시 잡지 와 관계된 촬영이었다. 이번 촬영은 뷰티 촬영, 즉 화장품 쪽과 관계된 촬영이었다. 얼굴을 클로즈업 사진 위주로 찍어야 했다. 저번처럼 미스코리아가 오려나 했지만, 이번 촬영은 그냥, 뷰티 촬영 경험이 있는 모델이 섭외됐다.
“자, 시선을 이쪽으로 표정 좋아요.”
일단 현장으로 경력 모델들은 카메라 앞에서 웃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모델에게 아무리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해도 어색함을 던져버리기 위해 그녀들은 웃는다.
“이 작업 전에 어떤 작업을 하셨어요? 아, 백화점 카탈로그 작업 하셨구나. 사진은 어떻게 나왔어요? 그럭저럭 이라니 어떻게 그렇게 나올 수가 있죠? 사진가가 이상했나 봐요, 발로 찍어도 예쁘게 나올 마스크를 가지셨는데.”
“에이, 아니에요.”
어색한 벽이 사라지는 신호가 온다. 이런 칭찬이면 대부분 모델은 자연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셔터를 누르면 꽤 괜찮은 사진이 나올 확률이 높다.
“얼굴 살짝 왼쪽으로 돌려주세요. 살짝만 미소. 뭐랄까 카페에 앉아서 좀 쉬고 있는데, 예고도 없이 짝사랑하던 사람이 들어온다고 상상해보세요. 에이, 너무 웃으신다. 그렇게 좋아하는 티를 내는 조건이 아니시잖아요.”
특히나 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모델과 관계를 차근차근 쌓아 결과물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두어 시간 정도 모델과 촬영을 마치고 인사를 한 뒤 구석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에브리아에게 갔다.
“··왜 그래? 무슨 나쁜 일 있었어?”
그녀의 기분이 나빠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만이 아닐 것이다.
“승우는 양아치야? 촬영 때마다 모든 여자에게 이렇게 행동해?”
음, 어디서 말을 잘못 배운 것 같다. 이럴 때는 양아치가 아니라 바람둥이 같은 말을 써야 한다고 지적하면 더 화를 내겠지. 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건 내 촬영이니까. 일이잖아, 적어도 현장에서만큼은 모델과 사랑에 빠져야지. 그래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조금 이해를 했는지, 아니면 그냥 넘어갈 심산인지 그녀는 심통 맞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이제 승우 촬영 현장은 가지 않을래. 이런 모습은 보기 싫어.”
“하하, 그게 질투라는 거지.”
큰일 났다, 아직 화났어. 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는 에브리아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내 손을 빼지 않은 채 자리에 멈췄다. 어제 읽었던 댓글이 하나 생각났다. 이런 여자와 손을 잡으면 어떤 기분인지 묻는 내용 말이다. 뭐, 지금 내가 느끼는 이런 기분이겠지.
난 웃으며 그녀를 달래줬다.
***
백희서 씨와 작업한 화보 촬영 이후 들어온 수많은 제의 중에 제일 내 흥미를 끌었던 건 영화 의 스틸 작업이었다. 이 영화는 좌절 속에서 희망을 찾는 가족애를 그린 영화였다.
그리고 톱스타 서채연 씨의 복귀작이기도 했다. 그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화려하고도 도도한 이미지를 지닌 싱글 여성의 대표주자였다.
과거형인 이유는 재작년 갑작스럽게 결혼발표를 하고, 지금은 유부녀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결혼 이후 복귀작이다. 문제는 그녀의 연기력은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공한 영화 몇 편이 있지만, 연기력으로 성공했다기보다는 그녀의 이미지 파워에 기댄 성공이었다.
“잘 오셨습니다.”
가을 하루의 촬영장으로 나선 나를 스탭들이 반겨주었다. 그리고 홍보팀에서 나온 직원이 내어준 커피를 마시며 자리에 앉았다.
“지금 영화가 위기입니다. 서채연 씨가 복귀작으로 이 작품을 고른 건 이제 다른 모습으로 대중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이유에서였죠. 하아, 그런데 지금 상황이 좀 그렇습니다.”
“상황이 어떻죠?”
“원래 서 배우가 지닌 화려한 이미지 때문입니다. 영화 자체는 잔잔하고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벌써부터 미스 캐스팅이니 뭐니 하는 말이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서 배우의 주도로 배우들과 감독이 모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장외에서 그녀를 흔들면 영화 자체가 어그러져요.”
“제가 뭘 하면 좋을까요?”
“영화를 찍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솔직담백하게 찍어주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와는 다른 이미지를 덧씌워서 말이죠. 길승우 씨가 찍은 백희서 씨의 사진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이분이라면 서채연 씨가 덮고 있는 껍질을 벗겨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이죠.”
뭐, 이렇게 내게 금칠을 해봤자, 결과물이 나와봐야 아는 일이다. 아직 난 그녀의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 아직 촬영 현장에서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감독님이 한가하게 서성이고 있어, 난 얼른 그곳으로 다가갔다.
“반갑습니다, 사진 찍는 길승우라고 합니다.”
아무리 배우의 파워가 높아도 현장의 왕은 대부분 감독님이시다. 오늘 촬영이 순조롭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협조가 필수다. 다행히 그분은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어, 홍보팀에서 들었어. 이재현이라고 하네. 스틸 촬영한다고? 그래, 경험은 있고?”
“네, 세 편 정도 참여했습니다. 포스터도 찍었구요.”
그 말에 이 감독님이 관심을 표했다.
“그래? 어떤 포스터?”
“이라는 영화 포스터입니다.”
“아! 그거 알아. 그 포스터 꽤 화제가 됐었잖아. 표절 시비 걸려서 신인 사진가를 대타로 썼는데 그게 대박이 나서··. 자네가 그 신인 사진가?”
난 대답 대신에 머리만 긁적였다. 여기서 ‘네! 그게 접니다!’라고 크게 말할 것도 아니고 말이다.
“에잉, 이럴 줄 알았으면 포스터 작업에도 같이하면 좋았을걸. 아, 혹시 스틸 사진을 계속 맡기로 했나?”
“아니요, 오늘 하루만입니다.”
“아쉽네, 나중에 꼭 좀 다시 일해보자고. 그 포스터 나도 좋아하거든. 오늘은 서채연 배우 중점으로 찍을 예정이지?”
“그렇습니다.”
“지금, 애는 쓰고 있긴 한데. 원하는 사진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어. 오랜만의 복귀작이라 그런지 감도 못 잡는 경우도 종종 있고 말이야.”
“일단 촬영 때, 저는 방해되지 않게 사진만 찍겠습니다.”
“그래, 잘 부탁하네.”
난 눈이 부신 햇살을 손으로 가리며 카메라를 들었다. 지금 찍을 씬은 집에서 남녀가 헤어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난 그곳에서 처음으로 배우 서채연 씨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녀를 처음 보고 느낀 감정은 ‘큰일났구나’였다. 2년이라는 공백이 무색하게 그녀는 여전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바꿔말하면 변한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변명조차 생각이 안 나니?”
그녀가 연기하는 대상은 아픈 과거를 지닌 여인이었다. 처음엔 모든 것을 감싸줄 거라고 장담했던 연하의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흔들리면서 그녀의 과거를 핑계로 삼아 헤어지려고 하는 장면이다.
“너만 힘들어? 너만 괴롭고, 너만 불행해? 후회하지 않냐고? 후회해. 후회하고 후회하는데·· 빛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
“컷! 채연 씨, 너무 강해. 너무 강하다고.”
감독이 촬영을 중단하고 그녀에게 말했다. 눈빛이 바뀐 그녀가 감독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약해야 하죠? 죽을 만큼 힘든데 이 정도의 에너지는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영화는 실패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녀가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던 건 화려한 열정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이국적인 외모에 강렬한 눈빛은 그녀를 상징하고 있고, 지금도 여전해 보였다.
“어이, 거기 사진가분 어때? 이미지가 변했어?”
갑자기 화살이 내게 돌려졌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모였다. 내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자 감독이 웃으면서 내게 물었다.
“예전하고 똑같지? 어떻게 생각해.”
일단 내가 느낀 바를 얘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이 일이 엎어져도 굶어 죽을 것도 아니고, 일이 줄어들지도 않을 거고 말이다.
“네, 여전하신 거 같아요. 그냥 연기를 위한 연기를 한다는 게 저에게도 느껴질 정도랄까?”
“하하, 그것 봐.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이건 욕심이라고. 지금이라도 시나리오 수정해보는 게 어때?”
감독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게 다가왔다.
“당신 누구죠? 누군데, 그런 말을 하는 거죠?”
“오늘 서채연 씨 촬영 맡은 길승우라고 합니다.”
“응? 아·· 그 이상한 사진 찍으신 분.”
이상한 사진이라니, 그냥 특별한 사진 정도로 해주시지. 그녀는 화가 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사진가란 인종이 얼마나 사람 자체를 잘 보는 줄 알아? 진짜배기들은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렌즈로 파고든다고. 그리고 저 친구는 진짜배기야.”
“감독님, 이 사람에 대해서 아세요?”
서채연 씨가 감독에게 되물었다.
“잘 모르지. 대신 저 사람 사진을 알아. 기가 막힌 포스터 찍었더라고. 이봐, 자네 작업 먼저 해볼 텐가?”
“네? 촬영이 우선 아닌가요?”
감독의 말에 나는 놀라서 되물어야 했다.
“봤잖아. 지금 이대로 찍으면 영화 망해. 아무리 돈이 좋아도 영화가 낭떠러지로 향하고 있는데 촬영을 계속할 정도로 내 마음이 야물지 못해서 말이지.”
“제가 찍는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나야 모르지. 근데 그런 작자들도 있어. 내면을 찍는다면서 사람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면을 끄집어내는 작자들 말이야. 뭐 감독 중에도 그런 사람이 종종 있지만 아쉽게도 난 그 정도 수준까지는 안 돼서 말이야. 대신 그런 면을 발견하게 되면 내가 끄집어낼 수는 있을지도 몰라.”
서채연 씨는 그 말에 감독을 향해 말했다.
“감독님, 농담이죠? 지금 이 영화의 향방을 이 친구에게 맡긴다는 소리를 한 건가요?”
“맡기기는 누가 맡겨. 그냥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자는 거야. 채연 씨도 답답하잖아.”
“하아, 아무리 생각해도 헛수고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그런 헛짓거리를 반복해야 제대로 된 연기가 나오는 경우도 많아. 일단 한번 해봐. 뭔가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어이, 우리는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이재현 감독은 정말로 촬영을 접을 생각이었는지 스탭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게 다가오더니 입을 열었다.
“두 시간. 아니, 최대 세 시간까지 시간 비워줄 수 있어. 그동안 한번 애써 봐. 채연 씨 성질머리 여전하니까 감안해야 할 거야.”
“감독님!”
그렇게 난 떠나가는 스탭과 섞이지 못한 채, 서채연 씨와 일부 스탭들과 현장에 남아야 했다. 저 감독님은 대체 뭘 믿고 내게 이런 일을 맡겼는지 모르겠다.
“그럼, 촬영해볼까요?”
내 말에 어처구니없어하는 채연 씨를 향해 난 웃었다. 일단은 기회를 억지로 만들어 줬으니 최선을 다해보자는 심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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