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실망스러운 앨범 재킷 (1)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대표님이 집 주변으로 느닷없이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였다. 대표님은 누군지 알 수 없는 한 남자와 함께 근처로 찾아오셨다.
“제가 뭘 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우리 회사가 간당간당할 때 거진 망했다고 확신했던 러버걸스를 사진 한 장으로 희망의 빛을 쏘아주신 분이 바로 길승우 작가님이십니다.”
“아·· 그건 우연이 겹쳐서.”
“게다가 2집 성공에 회의적이었던 언루트를 단번에 S급으로 끌어올리신 것도 길승우 작가님이죠.”
“그건 저보다는 언루트 멤버들을 칭찬해줘야··.”
“거기다가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한 우리 기획사에 싱어송라이터 그룹을 데리고 오셨단 말이죠.”
“아니, 그 친구들은 제가 데리고 오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게다가 여자친구 분까지 저희 소속사 아닙니까.”
“그건, 도와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우리는 한 식구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대체 무슨 말을 꺼내려고 하는지 궁금하다.
“만약 제게 과년한 딸이 있고, 길승우 작가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면 정말로 한 가족이 되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만···. 아니 좀 어려도 딸만 있으면 미래를 약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아니, 정말로 그건 좀 피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저한테 아들만 둘이고 게다가 나이도 어립니다. 그래서 말인데 회사에 직책 하나 가지시지 않겠습니까?”
“직책이요?”
“그리고 주식도 좀 가지고 계시면 더욱 한 가족이라는 마음이 들 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게 큰돈을 받기에는 좀.”
“아, 저희 주식 가치 얼마 하지 않습니다. 그냥 지금까지 드리지 못했던 돈을 주식으로 환산해서 드릴 셈입니다.”
“회사에서 받는 돈으로 충분합니다.”
“제가 회사에 직책을 하나 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한 가족이 된다고 생각하십시오. 큰 부담은 없을 겁니다. 또, 지금까지 수많은 도움을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작업비 외에는 따로 받으신 돈도 없으시고요. 제가 고마워서 그럽니다, 고마워서요.”
이렇게까지 나오시는데 계속 거절하기도 좀 그렇다.
“우리 회사 주식이란 게 나중에 합병이나 기업공개를 하면 모를까 큰돈은 안될 겁니다. 그냥 가족이 된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죠. 많이도 안 드릴 겁니다. 하하하.”
“그런데 저만 직책을 받는 게 좀. 다른 식구들도 있지 않습니까.”
“아이고 그 친구들은 어찌 될 줄 모르는 애들입니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될지 누가 압니까. 큰 기획사에서 데려가려고 할 수도 있고, 자기들끼리 회사를 만드는 경우도 많죠. 일단 정산 지급은 남부럽지 않게 해주고 있습니다만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니까요. 그에 비교해서 길승우 작가님은 계속 사진을 찍으실 것 아닙니까. 맞죠?”
“그··렇죠?”
“회사가 망할 때까지 우리 회사의 새로운 구성원들도 가족 같은 마음으로 사진에 담아주시겠다는 약조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 정도는 그냥 부탁하셔도 될 텐데.”
“나중에 길승우 작가님이 크게 되시면 어려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입도선매라고 해주십시오, 하하하.”
나보다 내 성공을 더 확신하고 계신 거 같다. 이 정도로 말을 해주시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럼 그렇게 하죠. 혹시 나중에라도 취소하고 싶으시면··.”
“아이고, 제가 살아있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사진을 못 찍게 되셔도 취소할 일은 없을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자, 이건 그 사소한 회사 직책에 대한 계약서입니다. 주주총회를 통과해야 하지만 모두 제 지인이니 문제는 없을 거고요.”
난 가벼운 마음으로 서류를 넘기다가 한 단어를 발견했다.
이사? 이거 되게 높은 자리 아니야?
내가 당황하는 기색이 보이자 대표님은 고개를 저었다.
“아, 이건 그냥 사외이사라고 해서 회사 고문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고문 아시죠, 고문. 회사의 부적·· 아니 회사의 상징 같은 구성원에게 주는 겁니다. 별로 권한도 없어요.”
묵묵히 대표님 곁에서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큭, 대표님 사외이사 권한은 생각보다 막강.”
대표님이 그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주무르자,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매년 회사로부터 어느 정도의 돈을 받게 됩니다. 용돈 수준이죠.”
난 대표님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복잡한 서류에 사인했다. 곁에 있던 남자분이 서류에 적힌 내용을 말씀해주시는데 대표님이 계속 말을 걸어서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최소한 내가 불이익이 될만한 건 없다고 생각해서다.
··맞겠지?
***
정수민 대표는 홀가분한 얼굴로 회사로 돌아와 김훈철 팀장을 불러 서류를 내어주고 입을 열었다.
“앞으로 길승우 작가님이 아니야. 길승우 이사님이라고 불러라.”
그 날 김훈철 홍보팀장의 비명이 제이필터 뮤직에 울려 퍼졌다.
***
세상일이란 건 어찌 될 줄 모르는 일이다. 팬들에게 아웃 오브 안중이었던 는 내가 찍은 사진을 기점으로 시청률이 수직 상승했다.
··수직이라고 하기에는 각도가 조금 낮긴 하지만 내가 오기 전보다는 분명히 올랐다고. 인기를 얻게 된 경위의 시작은 내 사진으로부터였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진을 보고 ‘와, 이게 누구야?’라는 호기심이 생기고 실제 방송을 찾아보게 되고, 팬이 되는 선순환이었다.
“다, 길승우 작가님 덕분입니다. 이거 프로 끝나면 어디 산간벽지로 끌려가서 처박힐 줄 알았는데··.”
전 PD님은 그렁그렁한 얼굴로 내 손을 꼭 잡으며 말을 하고 있다. 알겠으니까, 이 손 좀 놔주셨으면 좋겠다. 축축해서 좀 그래.
“원래 떴을 프로에요. 뭐 저 때문인가요.”
“아아, 길승우 작가님 덕분이죠. 정말 큰 빚을 졌습니다. 혹시나 제게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십시오. 아니 저뿐만 아니라, 방송 쪽에 뭔가 원하시는 게 있으면 최대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우선 이 손 좀.
프로그램이 잘되고 있는 덕분에 마지막 남은 참가자들은 기쁨에 넘쳐있다고 들었다. 길거리로 나가면 알아봐 주는 사람들도 많고 SNS 반응은 무척이나 뜨겁다고 한다.
오늘은 최종 선출된 일곱 소녀의 앨범 재킷에 대해 회의를 하는 날이다. 공중파에서 성공한 최초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만큼 꽤 괜찮은 푸쉬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정말, 이 컨셉대로 찍어요? 아니, 이거 누가 생각한 겁니까?”
개성이라고는 없는 평범하지 못한 옛날 컨셉을 읽고 난 어이가 없어서 작가에게 물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데뷔곡을 들은 터라 더욱 컨셉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노래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할 줄 모르지만, 최소한 한 곡에 다양한 색채가 녹아 있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노래의 컨셉대로라면 각 멤버들의 개성을 담아 옷을 입힌 뒤에 단체 컷을 찍는 것이 당연해 보였지만, 이들이 내게 내어준 컨셉은 모두 같은, 심지어는 머리까지 통일한 교복 스타일이었다.
작가는 내 질문에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음반 재킷디자이너에게 외주 작업으로 맡겼어요?”
“왜요? 이상한가요?”
“··네. 노래랑 앨범 재킷이랑 하나도 안 어울려요.”
“그럼 어떻게 하죠?”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안 될 것 같아요. 이렇게 앨범 내면 분명히 말이 나오긴 할 겁니다.”
“PD님?”
전 PD는 우리의 대화를 듣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 디자인, 윗선에서 외주 맡긴 거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로비를 했거나 친인척 관계인 곳에서 일을 맡은 모양이네요. 저도 컨셉 받고 좀 갸우뚱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도 고작 앨범 재킷이니까 그냥 넘어가려고 했죠.”
“전 PD님, 그 고작이라고 말씀하시는 앨범 재킷을 찍는 게 제가 하는 일입니다.”
정만종 선생님은 앨범 재킷 작업을 가장 즐겨 하셨다. 내가 어시로 있는 와중에도 앨범 재킷에 대한 일이 들어오면 다른 일보다 우선으로 하시고, 평소 음악감상이 취미 시라 이름 없는 음악가들에게는 직접 손을 내밀기도 하셨다.
“다 내가 구시대적인 사람이라서지. 옛날 LP 시절에는 앨범 재킷이 정말 중요했어. 재킷에 어떤 사진이 있느냐, 어떤 디자인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일부 판매량을 가늠했던 시절이 있었지. 지금 같은 시대에는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최소한 껍데기가 부실해서 사람들 눈을 돌리는 일은 없어야지.”
하지만 그런 말씀과는 다르게, 정만종 선생님의 앨범 재킷에는 음악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지 몇 장에 이 앨범에 어떤 음악이 있겠는지 유추할 수 있고, 만약 못하더래도 음악을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사진을 찍어주셨다.
“난, 앨범 한 장이 나오려면 얼마나 큰 노력이 들어가는 줄 알고 있어. 내 앨범 사진은 그들의 노력에 대한 찬가라고 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을 하는 선생님 밑에서 사진을 배워온 터라 나 또한 앨범 재킷은 제대로 찍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컨셉이라니,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다.
“일단 제가 멋대로 생각해봐도 될까요? 만약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다른 사진작가님을 불러서 작업해도 상관없습니다.”
이런 생각하지도 못한 사태가 왔지만, 현재의 나는 분하게도 아직 음악과 어울리는 사진을 제대로 찍지는 못한다. 을 통해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이틀간 해보는 데까지 해보고 싶다.
“그러면 프로그램의 책임자로서 이 컨셉을 폐기하고 길승우 작가님께 모든 걸 맡기고 싶습니다. 뭐 필요하신 거 있으십니까?”
“음악을 만드신 분 연락처와 전에 같이 일했던 스타일리스트 민 실장님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음악을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게 먼저다. 최소한 난 그렇게 배웠다.
***
– 전 상업작곡가죠. 대중의 취향에 철저하게 맞춘 음악을 만드는 게 우선인 사람이에요. 사진가님이 무슨 이유로 연락을 한 건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그 이유에 대한 답변을 내드릴 수가 없네요.
“어떤 마음으로 곡을 만드셨는지 알고 싶어서 전화했습니다만.”
– 그냥 무난히 잘 팔릴 것 같은 음악을 만든 것뿐입니다. 그냥 그런 음악을 제 시기에 제대로 된 걸 내서 먹고 살고 있죠. 이번 곡은 원래 있던 곡을 일곱 명이 부를 수 있도록 무난하게 편집을 한 것밖에 기억에 안 남네요. 뭐, 그런 겁니다.
“네. 정말 죄송한데, 어떤 음악을 기본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 음악적인 면을 말씀드리면 여러 장르의 음악을 혼합했습니다. 요즘 장르의 혼합이 유행하는 흐름이거든요. 옛날 같으면 결합할 생각조차 못 할 종류의 장르를 섞어서 듣기 무난한 곡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음악을 만든 분은 만나기를 꺼리셔서 겨우 통화만 했다. 어떤 감성에 의해서 음악을 만드셨다면 큰 도움이 됐을 텐데, 그렇지는 않아서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음악을 나름대로 해석하는 건 내 몫으로 남겨진 것 같다.
“기다리셨어요? 죄송합니다, 일이 있었어요.”
이연수 아트디렉터님은 카페로 들어왔다. 내가 연수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는 내 설명을 듣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음, 교복은 아니죠. 정말 아니죠. 교복 스타일을 하고 싶으면 각 멤버에 맞게 차별점을 두던지해야지. 근데 길승우 이사님,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제 일이라서 신경이 쓰여서요.”
“제대로 컨셉 잡으려면 저도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냥 이 자리에서 몇 가지 충고만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여기 노트북에 방송 있으니까 보시고··.”
“저도 이 방송 좀 봤어요. 개인적인 흥미라기보다는 요새 트렌드니까 말이에요. 제가 어떻게 해볼 수는 있겠네요. 근데 저도 자세하게 짜드리지는 못해요. 다른 일도 있고. 저번에 제가 조금 빚을 져서 도와드리는 겁니다.”
“오늘 여기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여기 데뷔곡이에요. 한번 들어보세요.”
이연수 아트디렉터님은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노래는 뭐, 그냥 그렇네요. 적당히 무난하고 들을 만한 곡이네요. 뭐랄까, 멤버들이 자기가 이렇다고 어필하는 느낌도 들고. 데뷔곡으로는 괜찮아요.”
“컨셉 생각나신 거 있나요?”
“이웃집 소녀들 정도로 잡죠. 제가 생각하기엔 얘네들은 아직 데뷔하기에는 모자라요. 케이블TV에서 뽑은 멤버들보다 몇 수는 밑이네. 이 바닥에서 비벼보려면 방송 출연으로 얻은 팬덤을 중심으로 해서 친숙함을 무기로 나가는 수밖에 없어요. 실력이 없으니까, 하나의 그룹으로 잡을 이미지가 없다는 소리죠.”
“그럼 어떻게 하죠?”
“캐릭터 잡으세요. 각 멤버들 캐릭터. 프로판에서 친근함과 유명세로만 버티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어요. 이미 방송 출연으로 어느 정도 확정된 캐릭터가 있을 거예요. 그 소스 얻어서 하나의 사진으로 녹여내어 보세요.”
“휴우, 무척이나 어려운 작업이 되겠네요.”
“후후, 굳이 이런 길을 택한 건 길승우 이사님이잖아요.”
“··그 이사님 소리 좀 빼주시면 안 될까요?”
“소식 못 들으셨구나, 앞으로 우리 회사 직원은 무조건 길승우 작가님 대신에 길승우 이사님이라고 불러야 해요.”
난 한숨을 짓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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