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새로운 기회
서울 드래곤즈가 가을 야구를 확정을 지은 다음 날이었다. 참고로 가을 야구 확정 경기에서 9회 마지막 아웃을 잡아낸 우리 형님은 야구장 바닥에 키스했다. 그 장면은 사진으로 남아 팬들의 놀림거리가 되고 있다.
[가을야구 처음 하는 선수의 세러머니], [대지와 사랑에 빠진 선수] 같은 제목으로 말이다. 자업자득이다. 기껏 멋진 사진 찍어놨더니 영구짤방감 장면을 스스로 연출해냈으니 말이다.아무튼, 이날 김형세 교수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강의를 맡게 될 사진작가가 개인 사정으로 못 오게 돼서 말이야. 나 역시 강의를 할 수 없는 사태고.”
“휴강이라는 최고의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학생에게 할 짓이 아니지 않은가.”
그 학생 중 많은 수가 휴강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다. 아니면 아예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지 말이지.
“제가 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왜 없나? 그냥 가서 사진 일화 정도 알려주고,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지, 좋은 사진이란 뭐라고 생각하는지만 말해주면 된다네.”
“··절대 간단해 보이지 않는데요.”
“이렇게 갑자기 부탁할 사람이 자네밖에 없어서 그래.”
“교수님 부탁이니까 할 수는 있는데··. 제가 누굴 가르칠 깜냥이 안 되잖아요. 교수한테 가르침을 받는 상태이기도 하고요.”
“강의하기에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자네만큼 현장에서 뛰고 있는 사람이 없어.”
결국 나는 김명세 교수님의 부탁을 허락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강의를 하기 위해 교단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사진가 길승우라고 합니다. 오늘 나오시기로 했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신 전명우 님은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못 나오시게 돼서 제가 대신 강의를 하게됐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1학년을 대상으로 한 강의라 큰 부담은 없다지만, 조금 떨리는 건 숨길 수 없다.
“혹시 러버걸스 기적의 사진을 찍으신 분인가요?”
“··기적까지는 아니고요.”
“주옥선 씨가 기적이지!”
“그건 메이크업이 훌륭해서··.”
“이번에 위시걸 커버 찍으셨죠?”
다행스럽게도 날 알아보는 학생들이 꽤 있다. 날 모르는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날 아는 학생들에게 물어보고 있다. 나 스무 명도 안 되는 학생들이라 발언권 없이 마음껏 질문하라고 한 뒤에 몸을 돌렸다.
“일단 오늘의 주제는 이겁니다.”
‘내 사진이란 무엇인가?’란 글자를 강의실 보드에 크게 적었다. 더는 여기에 적을 말은 없을 것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제일 많이 듣는 소리죠. 저도 학교 다닐 때 이 말 참 많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스타일대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 줄 모릅니다. 전 졸업하고 나서도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저도 학교 들어와서 줄기차게 듣고 있는데 이해를 하지 못하겠어요. 사진이란 게 현실을 재현하는 거잖아요. 이래저래 말은 많지만, 눈에 보이는 모습을 사진에 담을 뿐인데 말이에요.”
한 남학생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현실을 재현할 수도 있는 거죠. 현실을 재현하는 게 아닙니다. 사진은 현실 일부분만 보여줄 뿐이죠. 그것도 찍는 사람의 관점이나 의도에 의해 말이죠. 나만의 사진을 찍을 수 있으려면 현실을 재현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히려 개인성을 드러나는 최고의 도구라고 생각하세요.”
“어떤 식으로 개인성이 드러나게 되나요?”
“본인 자신에 의해서요. 사진가가 지금까지 경험하면서 얻은 것들이 사진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생각하면 쉬워요. 지금은 내 개인적면을 잘 나오게 하는 훈련이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저 역시 아직 제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 중이에요.”
그 말에 한 여학생이 놀란 눈을 하며 입을 열었다.
“길승우 사진작가님도요? 하지만 이미 많은 곳에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운도 따랐죠. 원래는 스포츠 오션에서 일하다가 우연히 러버걸스를 찍게 된 게 유명세를 치러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그리고 정만종 선생님 밑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고, 김형세 교수님도 학문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사진에 자기를 담는다는 게 가능하긴 한가요?”
“가능하죠, 실제로 많은 사진작가가 자신의 스타일로 사진을 찍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고 솔직해야 하겠죠.”
“사진학과 나온 게 도움이 됐나요?”
누군가의 물음에 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카메라를 얻지 못했다면 내가 뭘 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사진작가는 아닐 것이다.
“적어도 제가 배운 지식으로는 이렇게까지는 못 됐을 것 같네요. 그래도 여러분들은 김형세 교수님이 잘 이끌어주실 겁니다.”
“그럼, 1학년 때 뭘 배우는 게 가장 좋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저라면 일단 사진을 볼 줄 아는 시선을 키워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술작품을 많이 보고, 인문학적 지식을 쌓아서 왜 찍는지, 뭘 찍는지 스스로 깨닫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요?”
정작 나는 그리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어떤 사진작가님은 새로 어시가 들어오면 1년간은 카메라를 손에도 못 대게 하고 공부만 시킨다는 분이 계신다. 내가 말한 이유에서 말이다. 일반적인 교육과정을 마치고 온 인재에게 다시 공부를 시킨다는 방법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시도한다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러버걸스 실제로 보면 누가 제일 예쁜가요?”
자칫 심각하게 흘러갈 수 있는 분위기가 누군가의 질문으로 순식간에 누그러졌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질문을 한 학생에게 러버걸스의 사인이라도 받아줘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일단 질문에 대한 답부터 성실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겠지.
“가장 사진에 담기에 좋은 모델은 효미죠. 하지만 학생들이 알고 있어야 할 게, 화면이나 사진 속의 인물을 실제로 보게 되면 그 차이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실제로 연예인을 보면 실물하고 차이가 나는 사람이 꽤 있어요.”
“사진빨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소리죠?”
“사진학과 학생이잖아요. 왜 그런지 답을 알고 있을 텐데요?”
“··아, 렌즈.”
“주변 환경이나 사진의 목적에 따라서 가장 알맞게 찍어내는 게 우리가 하는 일이죠.”
그런 식으로 많은 학생이 질문을 해줘서 시간이 금세 갔다. 난 시계를 보고 학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학생 때 내 성적으로는 어림도 없었던 이곳에서 강의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
다음날, 백화점 화보 촬영을 하러 외부 스튜디오로 나왔더니 낯익은 얼굴이 눈에 보였다.
“어라? 길 작가가 여기 왜 있어? 아, 인물 쪽은 길 작가가 찍나 보네.”
한 달 전쯤 의 화보를 찍기 위해 만났던 중년의 사진작가 분이셨다. 아무래도 소품 쪽 촬영은 내가 모자라 잡지사에서 다른 사진가분을 불렀고, 그분이 지금 내 앞에 있는 전 작가님이시다.
“네, 오늘 인물 촬영 때문에 여기 왔죠. 전 작가님은 소품 촬영이십니까?”
“그렇지. 야, 길 작가하고 자주 만나네. 각자 잘 찍는 분야가 달라서 그런가 봐. 이대로 팀이라도 이루면 좋겠네.”
“전, 소품 쪽은 아직 멀었습니다. 전 작가님이 도와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하하, 또 이렇게 나오니 고민되네. 그 얘기는 나중에 하지. 아, 오늘 한성진 사진작가하고 술 마시기로 했는데, 함께 하겠어?”
그분이면 나도 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활약하시는 분이시다. 젊을 적에는 주로 광고 쪽에서 활동하셨지만, 나이를 먹고 개인 작업을 하면서 틈틈이 전시 활동을 하시는 분이시다.
전시를 주력으로 예술 활동에 가까운 활동을 하는 사진작가분은 처음 만나는 거라 기대가 됐다.
그리고 네 시간 뒤.
난 중견 작가 두 분이랑 조용한 술집 구석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시 경력을 제외하고 십 년이 훨씬 넘게 자기 이름을 걸고 이 세계에서 버틴 두 분이시다. 그런 분들과의 대화는 매우 유익했다.
우리는 한국 사진계에 대한 걱정과 전망, 그리고 사진술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소주병에 소주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 시간 정도였나? 그것보다 더 짧은 것 같기도 하고.
“한국에도 사진의 붐이 일어나려고 할 때가 있었다고! 사진집이 베스트셀러 1위를 찍고 그럴 때가 있었어!”
“있었지! 있었어! 우리나라 전체가 연예인의 새로운 사진집이 언제 뜨나하고 기다릴 때가 말이야! 으하하핫”
사진계의 두 선배분은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목소리가 높아지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계신다.
“그때는 정말 사진작가의 전성시대가 올 줄 알았는데. 음란물이 아니라 작품을 찍었어야 했다고.”
둘이 신나서 얘기를 하는데 끼어들 수가 없다. 난 결국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 선배님들, 저 진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전승진 작가님은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때는 2000년도 초반,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의 얘기란다. 인터넷의 발달과 돈이 어우러져 한국에서 여자 연예인의 사진집이 유행처럼 번졌다는 얘기를 꺼냈다.
“그럴 때가 있었어요?”
이웃 나라와는 다르게 한국에서 사진집은 위상은 형편없다. 잘 나가는 연예인, 그것도 코어 팬층이 많아야만 어느 정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이다.
옆 나라에서 2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지닌 사진집도 나오지만, 한국에서는 사진집의 판매량도 그리 높지 않고, 기획사에서 크게 투자하지도 않아 나 같은 상업사진작가도 일 년에 한 두번 정도밖에 제의를 받지 못할 정도다.
“문제는 거의 다 누드 사진집이었다는 거야.”
“··네? 지금 한국 얘기하는 거 맞죠?”
“응. 믿기지 않지? S급까지는 아니더래도, 몇몇 A급 연예인들까지 누드 사진 시장에 뛰어들었어. 처음에는 정말로 음란물 수준이었는데, 나중에는 정말로 작품으로 생각하고 여기에 뛰어든 기획사들도 있었어. 당연히 여기 계신 한성진 작가님한테 연락이 왔었지. 이름을 밝히지는 못하지만 대단한 여배우 측에서 연락이 왔어.”
“우와, 어떻게 하셨어요?”
난 한성진 작가님을 보며 물었다. 그분은 아쉬운 듯 입을 열었다.
“사진을 찍을 연예인과 얘기를 해보고는 거절했어. 자기 몸에 대한 이해도 없고 사진을 찍을 용기도 부족하더라고. 그런 친구를 찍기는 좀 그렇잖아. 게다가 알고 보니 기획사에서 계약을 문제 삼아 강요했다고 하더라고. 관둬야지 그런 일은.”
“아, 그리고 형님, 아까웠어요. 결국, 그 연예인 사진집 엄청 팔렸잖아요. 만약 그때 형님이 찍겠다고 말만 했으면 큰돈을 만질 수 있었잖아요. 뭔가 사진계의 호황기 때 한 몫 거들었다는 느낌도 들고 말입니다. 아아, 난 왜 인물사진을 못 찍어서.”
그런 시절이 있었다니 좀 우습기도 하고 그렇다. 지금은 그런 프로젝트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특히나 누드 사진 쪽은 말이다.
“그 얘기는 나중에 또 하기로 하고, 혹시 길승우 씨 요즘에 바쁜가?”
내가 대답을 하려고 하는데 전승진 씨가 입을 열었다.
“요즘, 상업사진계의 떠오르는 샛별 아닙니까. 아니다, 길 작가는 이미 샛별 단계를 넘어서서 기존 판을 흔들 정도로 영향력이 있습니다. 참나, 신은 불공평하기도 하지. 내가 살아생전 20대에 이렇게 성공하는 사진가는 처음 봐요. 전 길 작가 나이에 초점 맞추는 것도 힘겨웠는데 말입니다.”
“그래? 요즘 상업사진계 쪽은 잘 몰라서 말이야. 와, 그럼 얘기 꺼내기가 좀 부담스러운데.”
두 분의 말에 난 손을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유, 그렇게 바쁘지도 않습니다. 이래저래 묶인 곳이 많아서 그쪽 위주로 하다 보니까, 시간도 많이 남고요.”
그 말에 한성진 작가님이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전시회를 하는데 길 작가처럼 젊은 작가하고 몇 가지 작업을 같이하고 싶어서 말이야. 다음 달에 전시회를 하기로 했는데 공간이 좀 비거든.”
“어떤 작업을 하실 건데요?”
“한 인물이 세대가 다른 사진작가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작업이랄까? 아직 확실하게 정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인물 피사체라도 해석 방법에 따라서 얼마나 다르게 나올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서 말이야. 아까 길 작가가 보여준 사진 보니까, 이거다 싶더라고.”
전시회라··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뜻밖에 기회가 찾아온 거 같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 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