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아우라
아우라라는 단어가 있다. 신체에서 발산되는 보이지 않는 기나 은은한 향기 같은 거, 사람이나 물건을 에워싸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를 말한다. 보통 타고난 연예인에게서 그런 게 풍긴다고 들었는데, 오늘 제대로 느끼는 중이다.
“승우야, 왜 그래?”
민세연 씨는 오자마자 내게 친근감을 표시했고, 촬영이 시작되고 얼마 뒤에 누나 동생으로 말을 튼 상태였다. 정확히는 5분 전.
이런 누나라면 열렬히 환영이지.
“죄송해요, 뭔가 담아내지 못하고 있어서, 어떻게 담아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얼마 전 그녀의 레전드 사진을 찍은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민세연 씨는 얼굴 예쁘고 연기 못 하는 배우라고 알려졌지만, 모델로서는 프로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내 앞에서 그런 재능을 펼치고 있는데 담아내지 못하니 가슴이 아프다.
“사진 잘 나온 거 같은데?”
“누나, 그게··.”
사진이 예쁘게 나왔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촬영 현장의 모습을 제대로 담았냐고 하면 단언컨대 못 담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결과물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가 문제라는 모르겠네. 잘 나왔는데?”
몇 분 전에 내가 본 장면을 내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감정의 공유라고 해야 하나? 이 순간 난 내 사진의 방향성에 대해서 조금은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일단은 다시 찍어볼게요.”
이쯤에서 난 카메라의 능력치를 살펴보았다.
[패션사진(인물) 2등급] [ 사용이 가능합니다] [현재 의 완성도는 57%입니다]내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능력치가 겨우 4% 올랐다. 쏟아지는 보너스 포인트로는 더는 올릴 수도 없고 말이다. 뭔가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단 내 강점은 모델과의 교감을 통해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괜찮은 사진을 찍어낸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 상태에서 조금은 발전하고 싶다는 건데·· 방법을 도무지 찾지 못하겠다. 뭔가 자세한 설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눈앞에 몇 개의 단어만 나열될 뿐이니 말이다.
각 능력치를 올리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으면 편할 것 같다.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각 능력치의 요구조건을 표시합니다]뭐, 임마? 미적 감각! 미적 감각!
[미적 감각 상승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학에 대한 정보 습득] [빛과 색의 조화에 대한 이해 습득] [사진의 색에 대한 이해 습득] [각 조건을 습득하게 되면 90까지 개방됩니다]··지금까지 나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냥 카메라에게 물어보면 되는 거였는데 혼자서 끙끙 앓고 있던 거야? 근데 카메라에게 뭔가 물어보는 상황이 일어나기 힘들긴 하지.
하아, 사진 연출은?
[사진 연출 상승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은 주제 의식 갖기] [구도에 대한 정보 습득] [각 조건을 습득하게 되면 90까지 개방됩니다]모델 파악은?
[90 이상의 능력치는 포인트로 상승할 수 없습니다]올리려면?
[사용자의 주관적인 능력치에 따라 적용됩니다. 피사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나 선천적인 미적 감각, 그리고 사진 연출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지급됩니다.]처음 알았다. 길승우의 눈이라는 건 정확히 뭘 말하는 거지?
[사진에 묻어나오는 사용자의 특성을 나타냅니다. 75% 이상이 되면 일반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되고 결과물에 추가 점수가 붙게 됩니다]뭔가 카메라가 더 똑똑해진 느낌이다. 최근 들어서 반칙이라는 생각 때문에 카메라에 신경을 쓰지 않았더니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구나. 해답지를 앞에 두고 고민한 꼴이야.
“다 됐어?”
민세연 씨는 눈부신 원피스 차림으로 나와 머리를 매만지며 내게 물었다. 나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상태에서 좋은 분위기에 최대로 자신을 꾸미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은 누가 찍어도 작품이 나올 것이다.
“지금 아주 좋아요. 얼굴 살짝만 돌려주세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네.”
“패션쇼에서 내 사진 왜 찍었어?”
난 셔터를 몇 번 누른 뒤에 입을 열었다.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 이유만으로?”
“아이고, 누나. 그렇게 꼭 너무 예뻐서요라는 말을 듣고 싶으세요.”
“나이가 드니까 그런 칭찬이 되게 고마운 거 있지.”
“향후 몇 년은 그런 소리 계속 듣고 사실 겁니다.”
재킷만 바꿔서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 조용했던 그녀는 막혔던 수다혈이 풀어졌는지 사진을 찍는 내내 입을 열었다.
“최근에 좀 잊힌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길 작가 덕분에 사람들이 다시 나를 찾고 있어.”
“소속사에서 웃음꽃이 피겠어요.”
“모르고 있구나. 나 소속사 없어. 연기 실패하고 받아주는 소속사도 없어서 1인 기획사 차려서 하고 있지.”
“정말이요? 와, 정말 그 세계는 냉정하구나.”
“정확하게 말하면, 평범한 조건을 내걸고 날 받아줄 소속사가 없었다는 소리지. 다행히, 모델 쪽 일은 꾸준하게 들어와서 굶어 죽지는 않고 있어.”
저렇게 말을 하면서도 알아서 포즈를 바꿔주고 계신다. 확실히 경험 많은 모델과 일을 하는 게 편하긴 하다.
“최근 일주일간 온 연락이 지난 몇 년 동안 온 연락보다 많은 거 알고 있어? 기획사들도 그렇고, 심지어는 캐스팅 제의도 엄청나. 연기력보다는 인지도라는 거지.”
“정말이요?”
“덕분이야. 네 사진 한 장으로 다시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거지. 오늘 내가 여기 온 건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서야. 뭐라도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뭔가 막중한 책임감 같은 게 올라오는 기분이다. 사실 민세연 씨를 찍은 건 내가 선택했기보다는 그 순간, 그 장소에서 그녀가 가장 빛났기 때문이다.
난 그냥 셔터를 눌렀을 뿐이다.
“덕분에 이 잡지사에서 절 자르지는 않겠네요.”
“후후, 지금 널 놓치면 누가 손해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아직은 괜찮다, 내 사진으로 인해 좋은 방향으로 인생이 바뀐 사람들이 대다수이니 말이다.
중압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아직 어려서 그런지 좀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제 마지막이네. 앞으로 내가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라도 기회가 오면 또 작업하자.”
“좀 있으면 제가 누나보다 더 윗선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농담이에요, 농담. 뭘 또 그리 다큐도 받아들이시면 어떻게 합니까.”
민세연 씨가 의상과 메이크업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난 오랜만에 아이템을 쓸지 말지 고민했다. 사진은 괜찮게 나왔지만, 이거다 싶은 임팩트 있는 사진이 없었다. 나를 위해 온 사람인데 뭔가 선물 비슷한 거 하나는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몇몇 사람들이 내 사진을 지적할 때 색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말이 많다. 사실이기도 하지만, 그런 생각을 뒤엎을만한 사진을 한 장 찍고 싶다.
정만종 선생님은 사진의 색은 결코 색 자체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빛 자체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빛이 가교 역할을 하고, 색깔끼리 궁합이 맞아야 제대로 색감이 나온다고 말이다.
“통 모르겠네.”
내가 찍은 사진을 살펴봐도 그런 점은 잘 모르겠다. 아이템만 믿고 사진을 찍기에는 조금이나마 선생님의 기대치에 다가서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
“이 의상은 정말 예쁘네, 이번 겨울에 사람들이 많이 입고 다니겠어. 나도 하나 사야겠다.”
민세연 씨가 나오면서 의상이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짓고 있다. 민세연 씨는 블루 컬러에 오렌지색 줄무늬가 포인트로 들어간 원피스를 입고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있다. 옷을 전체적으로 시스루로 만들어서 안에 입은 검정색 슬립이 보여 살짝 야한 느낌도 있다.
“스승의 눈.”
난 카메라를 들고 정만종 선생님의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 여태까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벽지가 유난히 눈에 띈다.
“누나, 좀 더 뒤로. 카펫 색이 좀 거슬려요. 거기 놓인 탁자에 살짝 기댄다는 느낌으로··. 아, 좋아요.”
난 셔터를 눌렀다.
문구가 뜨지 않는다, 그저 그런 사진인가? 어디가 문제지? 난 실눈을 뜨고 몇 초 가량 그녀를 지켜봤다.
“누나, 소파로 자리 옮겨요. 앉지는 말고 그쯤에서 몸은 나 말고 저기 있는 의자를 향해서. 좀 차분한 느낌으로 갈 생각이에요.”
내 말에 그녀는 살짝 머금었던 미소를 감추었다.
거실풍의 세트장을 따뜻하게 비춰주는 조명과 민세연 씨 자체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잘 어우러지고 있다. 색에서 나온다는 향기가 이런 거인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눈은 의상과 배경, 그리고 조명과 피사체까지 한 프레임에 묶을 수 있는 최적의 위치를 찾고 있다.
나였다면 참지 못하고 셔터를 눌렀을 테지만 선생님의 시선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내게 알려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카메라의 스크린에서 은은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 내 손가락이 드디어 움직였다.
[등급을 초과한 사진이 찍혀 보너스 포인트가 지급됩니다]“··된 건가?”
“네.”
판타지에서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다. 한 프레임에 불과했지만 난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을 구현하고, 찍어낼 수 있었다.
***
– 이 누나, 또 리즈 갱신했네. 이렇게 예뻤나?
– 회춘도 아니고, 매일매일 새로 태어나는 듯
– 이쯤되면 나이가 아니고 인종을 의심해야 한다.
┖ 뱀파이어야.
– 사람 맞냐?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이는 어디로 가는 거야
– 내 와이프는 이분보다 10살이나 어린데··
┖ 용기 있으면 계속 써 봐라
– 예쁘긴 진짜 예쁘네. 드라마나 좀 찍으면 좋겠다
– 누나, 이제 결혼 좀 해요! 저랑.
┖ 그럴 바엔 혼자 살겠지.
┖ 나쁜 놈아! ㅠ.ㅠ
– 실물 영접했으면 좋겠다.
– 세상 혼자 살지마요 언니
– 그만 이쁘고, 결혼 좀 해요. 미련 좀 버리게
– 나이 빼고 다 가진 세연이.
┖ 나이도 많아. 다 가진 거지. 다 가졌어
– 패션쇼에서 동료 연예인들 압살하더니, 이번에는 화보로 압살이냐. 살인자!
– 이 잡지 산다, 꼭 산다.
– 세연씨도 세연씨지만 사진도 훌륭하네.
편집장은 선공개한 민세연 사진의 반응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내가 복덩이를 물고 온 거 맞지?”
“길승우 작가님 사진은 점점 대단해지는 거 같아요. 예정에 없는 화보를 찍느라 고생한 보람이 있네요.”
“민세연 씨가 우리 잡지에 뭘 부탁했는 줄 알아?”
“뭘 부탁했어요?”
“이 사진, 원본 좀 주실 수 없냐고 하더라. 직원이 뭐에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집에 걸어놓고 싶다고 하네. 저번에 연수 씨도 그랬고 말이야. 이게 뭘 뜻하는 줄 알아?”
“뭘 뜻하고 있어요?”
“길승우 씨는 모델의 장점을 최대한 뽑아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 거지. 점점 승우 씨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야. 이미 얘들도 접촉 시도했다며.”
“네, 거절하셨다고 해요.”
“아마도, 우리가 계속 잡아놓을 수는 없을 거야. 이 사진으로 이제 완연한 스타급 작가가 된 거라고.”
***
그 시각 난, 김형세 교수님과 약속을 잡고 만나고 있었다.
“갑자기 웬 미학이냐? 물론 다른 교수가 하는 수업이 있긴 해.”
“사진에 부족한 점을 채워보려고요.”
“이런 사진을 찍은 녀석이 뭘 하겠다고?”
교수님은 오늘 공개된 민세연 씨 사진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이건 정만종 선생님에게 기댄 사진이에요. 결과물은 괜찮지만 온전한 제 사진이라고 볼 수 없죠.”
“참나, 스승이란 놈은 학생 때 재능으로 내 자신감을 박살 내더니, 제자란 놈은 입이 벌어질 사진을 찍어놓고서는 만족을 못 하겠다고 하네. 승우야.”
“네?”
“미학이란 건, 미적인 것에 대한 사상을 탐구 대상으로 다루는 철학이야. 쉽게 말해서 인류가 아름다움을 어떻게 발견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인식했으며 어떠한 마음으로 추구하여 발전시켰는가의 과정을 밝히고 학문이지. 이걸 배우고 싶다고? 왜?”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 미적 감각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허허, 이제 스스로 커리큘럼을 짜서 공부하려고 하는구나.”
“이상한가요? 제 사진을 보면 색을 다루는 점이 모자라는데, 이건 기술 문제가 아니라 미적 감각의 문제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좀 키워보고 싶어요.”
“뭐가 이상해. 내 제자들에게 좀 본받으라고 하고 싶다. 근데 승우야, 미적 감각이라는 건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 미학으로 깨우치기에는 힘들지도 모른다는 점을 미리 알아야 해.”
“그·· 교수님이 생각하기엔 쓸데없는 짓인가요?”
“난 있잖니, 천재들을 이해하는 소질이 없어. 만종이도 자기가 부족한 게 있다 싶으면 여행을 떠나거나, 그림을 그렸지. 당시 난 도피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결국에는 원하는 바를 찾더라고. 천재들은 필요한 게 있으면 본능적으로 찾아다니는 거야. 너처럼 말이지.”
난 김형세 교수님의 말을 듣고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웃었다.
# 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