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대가의 향기 (1)
흔히들 그런 말을 한다. 시야가 트이면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고 말이다. 특히 내게는 그 경계선이 분명했다. 어느 순간 느낄 수 있던 것이 아니라, 도전 과제를 모두 마친 후에 찾아오는 보상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잘은 모르겠네.”
능력을 얻은 첫날, 나는 일을 하러 가면서 주위를 자세하게 살펴봤지만 크게 변한 것은 없어 보였다. 뭔가 처럼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조금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뭘 하고 싶은 거야?”
사무실에 날 도와주러 온 미선 선배가 소품을 찍고 그걸 유심히 바라보는 날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물었다. 난 사진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제 사진 좀 변하지 않았어요?”
“어떤 점이?”
“더 대단해졌다거나··.”
미선 선배는 피식 웃으며 사진을 바라봤다. 오늘 선배가 온 이유는 소품 촬영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부끄럽지만 인물 사진을 제외하고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이었다. 특히 인물 없이 의상이나 소품만을 분위기 있게 찍는 실력은 아직 별로다. 미선 선배는 그쪽 분야의 장인이고.
“그러니까 어떤 점이?”
“계속 그렇게 되물으시면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워지라고 되묻는 거야. 저 가방 가장자리 초점 나간 거 안 보여? 인물 사진은 기가 막히게 찍는 애가 왜 물건은 이렇게 찍고 있어.”
“글쎄요, 영혼이 없어서?”
“웃기는 소리 하고 있다. 그럼 없는 영혼을 만들어내 봐. 너 이런 식이면 평생 반쪽짜리 사진가 된다. 인물 사진 반 정도만 찍어봐. 이런 식이면 너 클라이언트가 화내. RW측이면 꽤 큰 곳인데 왜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너한테 맡긴 거니? 그걸 대책 없이 받아들인 건 뭐고.”
미선 선배가 과거 큰 누나 모드로 돌아가 잔소리를 작열 중이시다. 어쩐지 예전이 생각이나 웃음을 지었더니 미선 선배는 얼굴이 붉어지며 입을 열었다.
“승우야! 지금 나 장난치는 거 아니야.”
“에구, 죄송해요. 그래서 미선 선배한테 부탁했잖아요.”
“내가 무슨 만능 상자니. 일단 다시 한번 찍어보자. 어떻게 소품 찍는 건 예전보다 실력이 더 준 거 같아. 웃지 마! 정들어.”
난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다시 카메라를 잡았다. 사람과는 다르게 물건을 찍는 건 아직 서툴다. 풍경 사진보다 훨씬 수준이 떨어지는 게 이거다. 풍경 사진은 그래도 뭔가 느껴지는 게 있는데 핸드백이나 구두 같은 건 찍기가 어렵다.
“넌 말이야, 물건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 그래.”
“기술적인 면을 고쳐주기를 바랐는데, 정신적인 면을 건드리시네요. 그것도 되게 어려운.”
“넌 가방이나 구두에 대한 애정 자체가 없어. 뭐 너만 없는 게 아니지. 영효 오라버니도 없고, 생각해보면 선생님도 몇몇 특별한 경우를 빼놓고는 촬영 자체를 꺼리시지. 왜 드라마 보면 가방이나 구두 보면서 ‘내 새끼들’하는 사람들 있잖아. 그런 사람들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어?”
어떤 생각이 들기는.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구나하는 생각이랄까. 난 저렇게 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랄까.
“왜 남자들도 그런 물건들 있잖아. 자동차라던지, 낚싯대 같은 거. 니 예를 들자면 카메라 정도겠네. 너 지금 네가 들고 있는 카메라에 애정 없어?”
“무지하게 있죠.”
“그런 마음으로 저런 패션 소품을 대해야 좋은 사진이 나오는 거야. 지금 저기 있는 구두 얼마나 예쁘니.”
··일단은 공감 능력부터 대폭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설명은 이해가 간다. 확실히 감정을 지니고 대하는 피사체를 찍으면 사진의 때깔부터 달라진다.
“야! 나 오늘 너 대신 찍지는 않을 거야. 아까랑 달라진 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잖아.”
문제는 내가 저 물건에 감정을 집어넣기에는 너무 낯설고 무지하다는 점에 있다.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이런 일거리를 받아와서는 이 고생을 하고 있냐.
“선생님이 쓰시던 방법 써볼래?”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서 답답한지 미선 선배가 귀가 확 뜨일만한 제안을 한다.
“어떤 방법인데요?”
미선 선배는 좀 고민스러운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입을 열었다.
“뭐 선생님이 따로 가르쳐주신 방법은 아니고, 그 방법도 내가 추측한 거에 불과하긴 하지만.”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선생님도 소품만 찍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일을 받아주는 경우가 있었어. 그때마다 선생님이 사진을 찍으면서 계속 중얼거리시더라고.”
“어떻게요?”
“그냥 마치 사람 대하듯이 얘기를 하더라. ‘라인이 참 좋으니까 각도 바꿔서 찍어볼게’, ‘표정 좀 바꿔볼까?’ 뭐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그거 듣고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니까. 인정하긴 싫지만, 선생님하고 너하고 동류라는 느낌이 들어서 하는 말이야. 어때? 촬영이 쉬워질 거 같아?”
쉽게 말을 하자면 물건을 사람으로 보고 의인화를 시킨 거구나. 하하, 뭐 그런 거라면··.
“하나도 쉽지 않아요! 애초에 그런 걸 할 수 있으면 더 일찍 했죠.”
도저히 그런 감정 이입이 되지를 않는다. 애초에 그런 상상력이 있으면 소설을 쓰고 있을 거다.
“그냥 말해본 거야. 그럼 좀 잘 좀 하던가.”
일단은 오후 스케줄 전까지 최선을 다해 찍어봤다. 하지만 까탈스러운 미선 선배의 눈에는 전부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한숨을 쉬며 미선 선배가 입을 열었다.
“일단, 일주일 남았으니까 한 번 더 해보자. 이걸로는 안 될 것 같아.”
“신발같이 생긴 여자를 못 떠올리겠어요.”
내가 살살 웃으며 말했더니 미선 선배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난 얼른 표정에서 웃음을 지웠다. 미선 선배로 가르침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진지하단 말이지.
“웃고 넘길 일 아니야, 승우야. 스튜디오까지 차렸으면 이 정도 일은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해.”
“노력해볼게요.”
“사진이 며칠 만에 노력해서 되는 건 아니라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알잖니. 남은 시간 동안 잘 찍은 사진 보면서 연구 좀 해봐. 조금이라도 나아진 모습 안 보여주면 나 그냥 갈 거다.”
미선 선배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면서 스튜디오를 떠났고 난 홀로 남은 시간 동안 홀로 사진을 찍어봤지만 크게 변한 건 없었다.
***
“반갑습니다.”
오늘은 요즘 떠오르는 패션 디자이너와 함께 화보 촬영을 하기 위해 방송국으로 가는 중이었다. 케이블의 패션 관련 채널에서 새로 프로그램을 런칭하는데 그 일환으로 화보집 촬영이 있기 때문이었다. 촬영에 앞서 디자이너 분인 설단우 씨와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시각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먼저 자리에 나와 인사를 나누었다.
“반갑습니다, 사진 찍는 길승우라고 합니다.”
“우리 초면은 아닌데 기억하시나요?”
그가 웃으며 말을 했고, 난 표정을 무너트리지 않으면서 앞에 선 남자를 언제 봤는지 머릿속을 굴려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내가 언제 이 남자를 봤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옛날에 디자이너 대상으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오신 적 있으시죠?”
“아! 그때 계셨던 분이셨군요.”
“네, 그 프로그램 우승자가 저에요. 생각보다 많이 이슈가 되지 않았죠. 아이러니하게도 길승우 씨와 작업했던 그 여자분이 가장 인기가 있었어요.”
“아, 그분이요?”
아직도 기억난다. 처음부터 내 속을 긁어놔서 촬영 내내 날카로운 말을 주고받던 이상한 여자였지. 이름이 황연희던가? 아마 이름이 그랬을 거다. 내 속을 답답하다 못해 열불 터지게 한 사람이었지.
“상대적으로 캐릭터가 뛰어난 사람이 시청률을 견인하는 법이니까요. 상대적으로 전 조용한 캐릭터라 인기가 없었죠.”
척 보기에 겉모습은 평범한 캐릭터는 아닌데. 남자로서는 흔치 않은 장발에 핑크색 염색까지 했으니 머리카락만으로도 시선을 붙잡을 것 같다. 그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너무 평범하다는 얘기들이 있어서 외형만이라도 조금 바꿔봤어요. 확실히 반응이 다르더라고요.”
저런 차림으로 나가면 확실하게 눈에 뜨일 것 같긴 하다. 뭔가 힘든 작업이 될 것 같은 예감을 덜치기 위해 앞에 놓인 차를 마시고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우승까지 하셨잖아요.”
“덕분에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어요. 서바이벌 끝나고 나온 우승상금은 브랜드 런칭하느라 다 날리고·· 이게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르겠네요.”
어둡다, 되게 어두워 이 사람. 처음부터 부담을 미친 듯이 주는구나. 케이블 방송이고 디자이너와 함께 하는 작업이라서 좀 가볍게 생각하고 왔는데 사진을 제대로 못 찍으면 평생 원망 듣게 생겼다. 이번 주 일은 완전히 고난의 연속이구나.
속으로 잔뜩 고민하고 있는데 지헌 씨가 입을 열었다.
“그 방송 중에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화가 바로 길승우 씨가 나왔던 화였어요. 그때처럼 뛰어난 활약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일 얘기해야지요, 일 얘기. 이게 이번에 작가님이 찍을 의상이에요.”
그는 부담에 정점을 찍고는 그는 디자인한 옷을 내게 보여주었다. 솔직히 옷은 잘은 모르겠다. 보는 눈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옷이 멋진지,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그런 점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을 내기가 힘들다.
“어때 보여요?”
음, 옷은 한마디로 과해 보였다. 뭐라고 할까, 이걸 입고 거리를 걷기 힘들다고 할까. 그래도 반년 가까이 패션 쪽 관계자들과 일을 한 터라 이런 류의 옷을 뭐라고 하는지 알기는 한다.
“아방가르드 패션인가요?”
일반적인 옷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디자인의 옷을 아방가르드 패션이라고 말한다. 일반인들은 입지 못할, 혁신적인 의상을 보통 그렇게 말한다. 설단우 씨의 옷은 마치 그림으로 그린 상상의 나라의 옷 같아 보였다. 하나의 조각 같다고 할까.
“잘 아시는구나. 아무래도 시청자들에게 제 스타일을 알려주고 싶어서요. 욕심을 한번 부려봤어요.”
설단우 씨는 의상과 조형물 사이에 놓인 물체를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욕심을 너무 부리신 거 같다. 애초에 아방가르드라는 게 새로운 혁신과 예술이라고 말을 할 수 있긴 하다. 그래도 찍는 처지에서는 좀 괜찮게 나오면 좋겠는데··.
“이 의상 누가 입나요?”
“이번에 같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정해연 씨가 입을 예정이에요. 멋지겠죠?”
“아··.”
그분이 누군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과거에 가수였던 분으로 지금은 이쪽 방면 MC를 하고 계신 분이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수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서바이벌 프로에서 1위까지 할 정도면 이 정도를 모를 수가 없는데.
“좀 이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이 의상은 모델이 중요하지 않아요.”
“그래도 과감한 실루엣을 살리기 위해서는 전문 모델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탁 알아보시는구나. 사실 프로그램에서는 별다른 워킹 필요 없이 자료 화면으로만 나갈 거예요. 조금이라도 제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 만든 의상입니다. 그래서 작가님 도움이 아주 많이 필요해요. 음, 뭐랄까 사진 보고 ‘헉’ 소리가 나면 좋겠어요.”
난 말 없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의상을 떠올리며 어떻게 찍으면 잘 나올 건지 머릿속으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파격적인 색상은 물론이고 파격적인 모양의 의상을 어떤 식으로 소화를 시켜야 하는지 말이다. 솔직히 이건 디자이너의 몫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분 하는 걸 보니 힘들 것 같다.
“어?”
난 눈을 뜨고 다시 한번 의상을 바라봤다. 방금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뭐지 이건?
“왜 그러세요?”
난 침을 꼴깍 삼키고 입을 열었다.
“남은 예산이 얼마나 되나요?”
내 생각대로라면 굉장히 괜찮은 장면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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