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74
173화 대가의 향기 (2)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사진들이 있다. 여기서 손을 본다는 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사진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다큐 계열에서 일하는 사진가들은 이를 철저하게 금기시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진을 조작한다는 건, 사진의 생명력을 죽이는 거라고 들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내 쪽은 오히려 추후 보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다. 실력은 그저 그런데 추후 보정 능력이 좋아 그거 하나로 스타가 된 사진가가 있을 정도니 말 다 했지.
“어떻게 하시게요?”
“주위 배경이나 이런 것 좀 손봐도 되죠?”
“네, 사진은 길 작가님께 모두 맡길 겁니다.”
“좀 과하게요.”
“제 의상만 돋보일 수 있다면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나 역시도 과도한 보정보다는 순간적인 모습을 끄집어내서 찍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의상이 이 정도면 그런 생각을 좀 바꿔야 할 것 같다. 의상 자체가 현실에서 나올 법한 것이 아닌데 뭐.
***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고?”
현호 형이 어이없이 나를 바라보고 물었다.
“도와달라고요.”
“난 CF 감독이지 이런··.”
“의상이요. 아방가르드.”
“사람을 잘못 찾아온 거 아닐까? 난 좋은 물건을 소비자들이 더 좋아하도록 하는 사람이란 말이지. 근데 이건··”
“의상이요. 아방가르드.”
“그래 이 이상한 건 내가 어떻게 팔 수 없을 것 같은데. 내 범위 밖에 있어.
확실하게 인지를 시켜줘야겠다. 내가 보기엔 현호 형이 이걸 의상으로 봐야 하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어.
“결론적으로 말하자. 그래, 이 천 쪼가리는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는지 감도 못 잡겠어. 가지고 가.”
“프로로서 자격을 의심할 수밖에 없네요.”
“대부분 사람은 상식선에서 일을 시킨단 말이지. 이런 불가능한 일은 애초에 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 그리고 하나 충고하자면 너도 이런 건 못 하겠다고 해.”
“상식 밖의 일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재미있는 일이라고 해주시면 안 될까요?”
“돈만 많이 준다면야 재미있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는데··, 얼마 받아?”
난 현호 형의 귀에다가 이번 출연료를 말했다. 감독은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할게. 이건 확실하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무슨 이런 일을 하고 그러냐. 너 정도면 편한 일 받지 왜 이런 사서 고생할 일을 만들어. 일 없어? 내가 이거보다 천 배는 쉽고 돈 많이 받는 일 수십 개는 얻어와 줄 수 있어.”
“현호 형 정말 방법 없겠어요?”
현호 형은 머리를 긁으며 의상을 바라보았다. 뭔가 얻어가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뭘 어떻게 만들고 싶은 건데?”
“그냥 의상이 튀지 않고 묻어가게 만들고 싶은데요.”
“그게 쉽냐? 하긴, 그게 쉽다고 생각했으면 날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어려우니까 찾아왔죠. 뭔가 떠오르는 건 있는데 그게 괜찮은지 확신할 수가 없어서요.”
“일단 떠오르는 것 좀 들어보자.”
난 내 머릿속에 떠오른 모습을 현호 형에게 말했다.
패션 사진은 현실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의 바깥쪽 그 어딘가에 있지. 내가 생각하는 패션 사진은 환상이며 그런 패션 사진을 통해 꿈을 만드는 게 내가 할 일이다.
“그냥 다른 쪽으로 접근해봐.”
“어떤 식으로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생각 대신에 뭘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해. 미술작품처럼 말이지.”
“어떤 식으로요?”
“그게 네가 생각할 일이지.”
그래, 더 생각해보자. 일단 컨셉 자체가 리얼리티를 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것들을 현실로 끄집어내어 생생한 실체로 만들어내고 싶은 것이다. 패션 사진이란 건 아직도 날개 달린 천사를 생각하고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서 비눗방울을 불고 있는 모습을 나타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런 형, 사람 하나 소개 좀 해줘요.”
“어떤 사람?”
***
다음날 현호 형의 소개를 받아 찾아간 사무실에서 난 한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내 설명을 듣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단순한 TV 포스터 사진을 찍는 작업을 했는데. 마음에 드는 컨셉을 찾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셨다는 거죠?”
그는 날 채근하듯 말을 했다.
“그렇겠죠?”
“일단 뭣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는지 들어보기나 하죠.”
난 그에게 내가 가진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어렵지는 않은데, 돈이 좀 필요해요.”
“급한데 빨리할 수 있을까요? 돈은 꽤 있습니다.”
“그럼, 일단 해 보죠.”
다행스럽게도 이 분은 내 설명을 듣고도 큰 어려움 없이 작업을 허락했다.
***
정해연 씨는 갑작스러운 나의 요청에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내 얼굴을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내 프로그램의 포스터에서 나를 빼달라고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빠지는 건 아니에요.”
“이 시안대로라면 밑에 디자이너분과 작게 자리를 잡겠네요. 대체 왜죠?”
“일단은 옷이 너무 이상합니다.”
설단우 씨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게 사실이기도 하잖아요. 솔직히 의상만 만들어놓고 나 몰라라 하는 거 제가 이러길 바래서잖아요.
“옷이 어떻길래요?”
난 스탭에게 부탁해서 만들어진 의상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검은 바탕에 화려한 꽃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조형물에 가까운 의상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확실히 특별해 보이긴 하네요.”
우리를 잠자코 보고 있던 PD가 입을 열었다.
“설단우 씨께서 처음으로 할 패션 관련 얘기를 아방가르드로 하자길래 그러자고 했어요. 아무래도 논란거리가 많은 주제이기도 하고, 볼거리도 많아서 그러자고 했죠.”
“메인 MC인 제 의견은 고려도 하지 않고 말이죠?”
지금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기에 마련이지, 그렇지 않으면 상스러운 말이라도 나올 기세다. 촬영 전 조금 문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내 말에 신나서 달려온 PD의 아이디어였다.
“아무래도 저런 옷은 일반인이 소화하기엔 무리가 있어요. 물론 정해연 씨가 연예인인 건 알고 있지만 이런 옷은 전문 패션모델도 소화하기 힘든 옷이에요.”
냉랭한 정해연 씨에게 겨우 말을 걸었다.
“전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에요. 이 프로를 런칭하는데 나도 얼마나 힘을 썼는 줄 알아요?”
“물론 스타일 좋기로 유명세를 치른 가수였던 건 잘 알고 있어요. 패션 센스 또한 뛰어나시고 말이죠.”
하지만 패션모델로서의 자질이 있냐고 물으면 부족하다고 말을 하고 싶다. 일단 키도 작고, 비율도 그리 좋지 않다.
패션모델이란 특별하다. 어디선가 볼 수 있는 평범한 이들 대신 패션모델은 그 자체로 신비감에 가까운 기이함을 풍긴다. 그래서 그들이 그들인 것이다. 핏기없이 하얀 피부, 남자보다 더 큰 키를 가진 모델들의 기이한 느낌, 길을 걷다가 늘 마주치는 그런 얼굴이 아니라 태어나기를 잘못 태어난 것 같은, 다른 행성에서 온 것 같은.
애초에 패션모델을 상상하면 생각나는 모습. 비적 마른 몸에 그런 얼굴.
문제는 정해연 씨는의 체형은 평범한데 옷은 기이한 옷이라는 점이었다.
난 다시 입을 열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정해연 씨가 이 의상을 착용한다면 부정적인 의견이 많을 거로 생각해요. 보다시피 의상이 좀 특별해야 말이죠. 정말로 이 의상을 입은 모습을 12주 동안 내밀고 싶으신 건가요?”
“그럼 의상을 다시 만들면 되잖아. 애초에 아방가르드라는 주제를 계속 다룰 건 아니지 않아?”
그 말에 PD가 끼어들었다.
“첫 녹화 시간까지 시간도 없고, 의상을 만드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요.”
정해연 씨가 그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입을 열었다.
“뭐 그럼, 이미 결정은 난 거네. 표 PD님 이런 식으로 사람 뒤통수를 치시면 안 되죠. 뭐 내가 여기서 저 의상 입겠다고 고집 피워봤자 저기 계신 사진가 분이 반대할 건 뻔하고, 억지로 입어봤자 시청자들의 웃음거리만 되겠네요. 맘대로 하세요!”
그 말을 남기고 정해연 씨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난 슬쩍 표 PD님의 얼굴을 봤다. 이대로 프로그램이 제대로 만들어질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는데 그는 웃고 있었다.
“아, 길 작가님. 연락 주셔서 감사해요. 뭔가 사람들 시선을 끌 만한 영상이 필요했는데 하나 건졌네. 알아요, 지금 내가 좀 미친놈처럼 보인다는 거. 하지만 중소 케이블 방송에 인지도 없는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이런 갈등 요소가 엄청 소중하거든. 솔직히 우리 같은 프로그램 몇 현재 몇 개나 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군요.”
미쳤다기보다는 좀 교활한 느낌이 듭니다만.
“이제 길 작가님만 괜찮은 사진 찍어오면 초반 이슈 용으로는 더는 바랄 게 없겠어. 어때요, 준비는 잘되고 있죠?”
난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많은 시간 동안 카메라를 들고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지만 생각하면 내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얻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내가 그랬듯, 한동안 사진을 찍다 보면 더는 주위에 찍을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굳이 시선을 카메라로 향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 시청자들은 그런 시선에 익숙지 않거든요.”
그다음 단계는 남들이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나 시간대에 고생을 마다 않고 찾아가 사진을 찍는 방법이 있다. 내 주위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영효 선배가 있다.
“지금 몸의 느낌 좋아요, 경력이 짧다고 들었는데 센스가 좋네요.”
이때야말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할 때라고 정만종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난 현재 이 시가에 있으므로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중이고 말이지.
지금 내 앞에는 모델 에이전시를 통해 구인한 검은색 피부를 가진 패션모델이 자리하고 있다. 그 옆에는 두 명의 남자가 있고 말이다.
“확실히 영화랑은 다르네요. 영상이 아니라 한 장의 사진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니 이렇게 저예산으로도 가능하네요.”
내 옆에는 현호 형의 인맥으로 소개해 준 영화 연출 관련자가 앉아있었다. 초현실적인 의상을 초현실적인 인물이 입은 채 초현실적인 배경에서 찍어내는 것이 이번 목표였다.
흑인 여자 패션모델에게는 설단우 씨가 만든 의상을 입히고 남자 모델들에게는 SF영화 소품 의상을 입히고 곁에 서도록 했다.
“새로운 영화 포스터 만드는 건가요? 이런 대작이면 내가 못 들어볼 리가 없는데.”
“아, 그냥 TV프로 포스터예요.”
“아 무슨 SF 드라마 하나 하나봐요.”
“예능인데요.”
“네?”
“패션 관련 예능 프로 포스터입니다.”
연출 관련하시는 분은 나를 쳐다보고 사진을 보더니 ‘이게?’라고 묻는 듯한 무언의 눈빛을 내게 보냈다.
“의상이 좀 독특하잖아요. 뭔가 의상이 튀지 않고 어우러지게 찍으려고 생각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어요.”
“프로그램에 돈 많이 쓰나 봐요. 포스터 하나에도 이렇게 공을 들이는 거 보면.”
“아, 그냥 제가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서 사비를 좀 썼어요. 완전 적자네요, 하하.”
연출가의 얼굴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보였다.
***
프로그램 런칭을 이틀 놔두고 표 PD는 자신의 메일로 온 몇 장의 사진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의 곁에 있던 보조 PD가 입을 열었다.
“새로 개봉하는 영화인가 봐요.”
“야, 이거 우리 포스터에 쓸 거야.”
“··선배, 우리 패션 프로잖아요.”
“이 의상을 단 디자이너가 만들었어.”
“이게 앞으로 유행할 의상이라면 차라리 넝마를 입겠어요.”
“아방가르드잖아. 설 다지아너가 사비 들여서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의상이란다. 좀 좋게 봐줘.”
“그리고 사진은 더 가관이네요. 확실히 눈길은 가겠어요. 그건 그렇고 우리 프로 예산 많이 받았나 봐요. 이런 사진도 찍고 말이에요.”
“아, 이건 길 작가가 사비 들여서 만든 거야.”
“프로그램 날로 먹으시는군요. 사비로 만든 의상에 사비로 만든 포스터라.”
“그만큼 잘 굴러가고 있다는 증거지. 핫하다고 하고 설 디자이너 추천도 있고 해서 길승우 작가 써봤는데 괜찮네.”
“이 정도면 괜찮은 정도가 아니죠, 사비 들여서 최상급 결과물 뽑아냈는데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야 할 판 같은데요.”
“흐흐, 듣자니 요새 독립해서 일거리 찾고 있다는데 몇 군데 연락해서 추천이나 해줘야겠어. 아무튼, 이거 가지고 포스터 멋지게 좀 뽑아봐.”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패션프로그램으로는 드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