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77
176화 그의 일상 (2)
잡지의 사진, 특히 오늘 촬영과 같은 상업적인 잡지의 인물 사진은 나 하나의 힘으로 어떻게 되지는 않는다. 오롯이 내 시선으로 사진을 담는 것보다는 이 잡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시선을 빌려서 조정하는 게 훨씬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다.
“슬쩍 고개 돌려줘요. 더 돌려도 되고요. 괜찮다!”
“나희 좋아, 잘하고 있어.”
“팔을 너무 몸에 붙이지 말고요.”
사진을 확인하고 신 실장이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거 사진이 좀 심심하지 않을까요?”
“나희 씨는 비율 좀 문제가 있어서요··. 일단은 밑에서 찍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렌즈 때문에 이것보다 더 역동적인 포즈를 취하면 왜곡이 되니까··.”
“음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저 친구가 비율이 좀 그렇긴 하죠. 얼굴도 큰 편이고. 그냥 옷차림을 바꾸는 편이 낫겠네요.”
확실히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사진을 찍다 보니 제한이 너무 많았다. 딱히 모델다운 얼굴도 없고 말이다. 좋은 모델은 다른 사람의 얼굴이라면 그냥 사진으로 보일 것도 그냥 화보가 되는 일도 있다.
“어? 왜 울어요?”
느닷없이 한 참가자가 촬영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 울기 시작했다. 난 짐작 가는 바가 있어 그녀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후회돼요?”
말없이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하지 못했으면 미안해요. 저도 지호 씨랑 처음 만나서 그런 결과가 나왔나 봐요. 처음 만났는데 어떻게 100% 만족시키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겠어요. 촬영 끝나면 우리 다시 한 번 노력해 봐요. 그동안 표정하고 포즈를 생각해봐요. 척 봐도 나라는 느낌이 들게. 할 수 있죠?”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하고는 눈물을 닦아냈다. 다시 촬영 장소로 돌아오자 신 실장이 입을 열었다. 언제나 현장에서 모델과 호흡하는 일은 까다롭다. 더군다나 프로가 아닌 이상에야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말이다.
“친절하시네요, 지호 쟤는 왜 저러는 줄 모르겠네. 사진 잘 나왔는데 말입니다. 일부러 달래주실 필요 없어요.”
신 실장은 내게 다가와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주변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해도 지호 씨가 보기에는 모자란 점이 있던 거죠. 실장님 촬영을 제 위주로 가면 곤란합니다. 모델 본인이 만족할만한 사진을 찍지 못하면 촬영은 실패라고 생각해요.”
특히 이런 서바이벌 부류의 사진은 더욱 그렇다. 최소한 참가자가 만족할만한 사진이 나와야 떨어져도 그리 속상하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제가 생각한 길승우 작가님하고는 다르네요.”
“뭐가요?”
“뭐랄까, 촬영에 있어서는 천재라서 머뭇거리지 않고 착착 찍어내는 느낌인 줄 알았는데, 뭔가 주변을 맞추어나간다는 느낌이랄까.”
“제 고집대로 찍는다고 사진이 잘 나오는 건 아니에요. 모델하고의 교감도 중요하고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모두가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오는 거잖아요.”
“좋은 말씀이네요.”
신 실장은 미소를 지으면서 준비가 끝난 모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준비 끝났으면 촬영 들어갑니다.”
이번에 나온 친구는 저번 미션 때 꼴찌를 해서 주눅이 든 참가자였다. 문제점은 명확했다. 별 특징이 없는 얼굴, 못생기지는 않았지만, 모델로 활동하기에는 부족했다. 다행히 몸매가 나쁘지는 않아 지금까지 살아남은 듯 보였다.
이럴 때는··
“작은 과일 같은 것 좀 준비해주세요. 색감 강렬한 거로요.”
신 실장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소품은 왜요?”
“그걸로 입술 쪽에 포인트 좀 주려고요. 조금만 얼굴을 이용하면 입술이 아주 매력적인데 좀 부각시키려고요.”
사진을 본 신 실장이 입을 열었다.
“너무 선정적이지 않아요? 옛날에 그 에로 영화 같기도 하고.”
“에이, 그 잡지에 이것보다 더 나가는 사진 많잖아요. 게다가 저 친구는 얼굴이 현대적이라 그런 느낌 묻어나오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너무 옛날 사진 같은 느낌은 있네요. 자, 다시 찍어봐요. 포즈는 그대로, 눈으로 좀 웃어볼 수 있어요?”
최소한의 디렉션만 주고 있지만, 그것조차 소화하기 어려워 보였다. 난 쓴 웃음을 짓고 카메라에 손을 떼고 입을 열었다.
“자, 지금 너무 한 가지 표정만 하고 있으니까 지겹죠. 앞으로 몇 번 더 찍을 겁니다. 목선이나 어깨선 좀 다르게 가봐요.”
겨우 촬영이 끝나서 아까 울던 지호 씨를 불러왔다. 난 그녀와 눈을 맞추고는 입을 열었다.
“어떤 식으로 찍어주기를 원해요? 뭔가 마음 속으로 생각한 이미지가 있는데 맞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요. 저한테 말을 해주지 않으면 제가 찍어드릴 수가 없어요.”
“뭐랄까, 좀 여성스러웠으면 좋겠어요.”
“사진이 남성스러웠어?”
“그런 건 아닌데··.”
“일단 해보자.”
난 그녀를 풀밭에 옆으로 누인 채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손, 손 그렇게 놀리지 말고. 손에도 감정이 있어야 합니다. 카메라 노려보지 마세요! 좀 더 부드러운 시선으로. 좋습니다. 다리, 다리 방금 좋았는데 그대로.”
그녀가 원하는 사진은 유혹보다는 차분한 부드러움에 가까웠다. 아마도 경쟁에서는 이기지는 못하겠지만 사진을 보고 너무 만족해하는 그녀를 보고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지호 씨의 추가 촬영을 마치고나자 진이 빠졌다. 네 명이나 되는 서바이벌 인물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었다. 내 사진으로 이 친구들의 인생이 좌우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니 확실히 조금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
“반가워요, 여기저기서 말 많이 들었습니다. 에디터님 한번 더 말씀드리는데 이거 반칙 아닙니까? 이렇게 네임밸류가 있는 작가를 섭외하면 제가 뭐가 됩니까.”
머리를 금발로 염색한 반대편 사진작가 전승진 씨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항의했다. 나도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는데, 제가 가장 많이 본 사진이 작가님 사진입니다.”
“하하, 정말요?”
“군대에 있을 때 아주 사진을 원없이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팬이에요.”
“다들 들었지, 길승우 작가가 나한테 팬이라고 한 거. 이거 그대로 방송 내보내야 해.”
그가 과장된 말투로 주위를 향해 말을 하자 모두 웃었다. 일일 사회자로 나선 신 실장도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사진을 좀 보죠.”
결과적으로 봤을 때 4명 중 2명을 승리시켰다. 변명일 수 있는데 반대편에 프로 모델에 가까운 두 명의 여인이 있어서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떨어진 두 명 중 지호 씨는 그래도 자신의 사진에 만족해해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다.
방송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려는데 전승진 씨가 내게 다가왔다.
“역시, 실력 엄청나. 솔직히 쟤들 내가 예선전 때부터 봐왔거든. 밥도 몇 번이나 먹었어. 내가 원하는 대로 컨트롤하고 이끌어낼 수 있단 말이지. 그런데 반칙 두 명 빼고는 내가 졌잖아. 지금 진 친구들 울고 난리 났어.”
아까 인사를 할 때 말씀 편하게 하시라고 말을 했더니 동네 형처럼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내 군 생활 전부터 활동하시는 분이시니 한참 선배분이라 나도 이게 마음이 편했다.
“에이, 운이 좋은 거죠. 솔직히 전패할까 봐 조마조마했습니다. 목표는 한 명이라도 이겨보자였어요.”
“나중에 방송 챙겨봐야겠어. 자신감 바닥까지 떨어진 애들 끌어올린 것도 그렇고, 지현이 입술에 과일 물려준 건 정말 좋은 생각이었어.”
“바둥대다 보니 어떻게 얻어걸리더라고요.”
“근데, 자네는 어떻게 사진을 그렇게 과감하게 찍을 수 있는 거야?”
“네?”
“아니 내가 찍은 사진의 반의반도 안 찍었더라고. 사진이라는 게 그렇잖아, 셔터를 누를 때 그 순간의 정지화면을 못 보는 입장 아니야. 미러가 닫히니까 항상 예상해서 찍고, 모니터링을 하고 다시 찍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런 과정 자체가 없는 것처럼 보여서 말이야.”
난 머리를 긁적이며 그의 질문을 다시금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면 선생님도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타고난 감각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애들답지 않게 찍을 사진을 잘 그려낸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아마도 카메라 때문일 겁니다.”
“자네가 가지고 있는 거 좀 된 모델이잖아. 나도 성능 대충 아는데 그 카메라에 그렇게 믿음을 준다고?”
특별한 카메라이기 때문이지. 이걸 말할 수도 없고.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역시 전방위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의 뇌 구조를 난 이해할 수가 없네. 뭐 나도 사진이 장비빨이 아닌 건 알지만 자네처럼 무조건적인 믿음은 주기 힘들어. 솔직히 이건 이게 문제고, 저건 저게 문제니까 그걸 생각하고 찍게 되거든. 그래서 내가 이 정도인가보다.”
“에이 잘 찍으시잖아요.”
“그 친구들하고 네 모델하고 비교가 된다고 생각하냐? 그 친구들은 폰카로 찍어도 내가 자네 이겨. 그건 그렇고 너무 갑작스러운 섭외라서 좀 아쉽기는 해.”
“네? 뭐가요?”
“자네, 패션 잡지 보면 피사체 기가 막히게 잡아내잖아. 나도 화제가 된 사진은 챙겨보거든. 근데 이번 사진은 좀 아쉽단 말이지. 뭐 환경이 열악하긴 했으니까. 개인적으로 가장 괜찮다고 생각한 건 지호 사진? 좀 어울리지 않기는 했지만.”
“하하, 저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 모델 분이 그렇게 찍히기를 원하더라고요. 뭐랄까 오늘 찍은 사진은 수요층이 다르잖아요. 일단은 신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게 목표니까요. 이것저것 생각해놓긴 했는데 막상 현장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보니··. 그나저나 선배님은 꾸준하시네요. 거의 십 년 넘게 이 잡지 메인 포토그래퍼로 활동 중이시지 않아요?”
“다른 분야도 찍어봤는데 여기보다 내 사진을 잘 뽑히는 곳이 없더라고. 점점 시장은 줄어드니까 갈만한 곳도 줄어들고 말이야. 내 나이 되도록 사진으로 밥 벌어먹는 동기들이 한 손으로 꼽을 만큼 적어.”
전승진 작가님의 사진은 야릇하다. 먼 나라 화보처럼 이상한 작가주의 때문에 이상하게 찍는 구석이 전혀 없다. 그건 이 잡지를 보는 수요층과도 정확하게 맞닿아 있다. 독자들은 모델의 예쁜 사진을 보고 싶은 거지, 작가들 욕심 채운 걸 보고 싶은 게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 작업을 오랜 세월 아무런 잡음 없이 해왔다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이다.
“자네는 무슨 사진을 찍고 싶어? 넌 꿈이 뭐냐 같은 흔한 질문일 수 있는데 그래도 같은 사진가까지는 이런 것이 제일 궁금하거든.”
“뭐랄까 이런 사진을 찍고 싶다라는 생각보다는 피사체에서 저만 볼 수 있는 그런 눈을 가지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사진이라는 게 창조가 아니라 현실 세계를 카메라로 복사한 거잖아요. 그런데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발견하는 재미가 있단 말이죠.”
“뭔지 알지, 눈으로는 볼 수 없는데 렌즈로는 볼 수 있는 거. 참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네. 근데 그거 발견하는 거 아니라고 생각해 난.”
“네? 그럼요.”
“남의 시선이 닿지 않거나 만들어내지 못하는 앵글을 만들어내는 게 일류 사진가의 역량이거든. 자네도 그런 거 좀 보여줬고 말이야. 브레송 선생님도 말했잖아. 사진을 찍는 건 세계의 구조를 발견하고 형체의 순수한 기쁨은 탐닉하는 거라고 말이야. 자네가 가고 있는 길은 특이하지 않아. 오히려 왕도지.”
“어휴, 그런 의미까지는 아닌데요.”
“한 사람의 관객으로 지켜보고 있을게. 나중에 전시회 같은 거 하면 문자라도 보내줘. 여자친구 데리고 이 녀석하고 같이 일한 적 있다고 자랑이나 하게.”
그와 나는 동시에 웃음을 지었다. 저분 말대로 언젠가 그런 날이 오면, 내 사진을 남들이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날이 온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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