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2
3화 황금 왕좌
카메라가 날 이곳으로 인도한 이유에 대해서는 머리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 같다. 저어기 응원석에서 멋진 춤사위를 보여주고 있는 처자들을 찍으라는 소리지.
“Ready Go! 지금 여기서 숨이 멎어도 후회하지 않아! Ready Go!”
마침 노래에 맞춰 치어리더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난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밝게 빛나는 의자로 향했다. 그런데·· 위치가 좀 이상하다. 치어리들 뒷태만 아래쪽에서 보이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들자 치마 및 속바지가 그대로 나타나 내가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이게 뭐야, 내 수준으로 가장 멋진 사진이 나올 확률이 높은 자리는 치어리더 엉덩이나 찍으라는 소리인 것 같다.
난 한숨을 쉬고 카메라를 들었다. 일단은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는데 카메라를 내려놓자마자 이런 생각이 든다.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냐.
내가 제일 잘 찍는 사진을 찍기 위해 이렇게 다 큰 처자들 엉덩이만 쫓아다녀도 되는 거냔 말이다.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몰래 찍어대는 사진과 다를 바가 뭐가 있느냔 말이다.
[8등급 1단계 조건 카운트 : 32/100]설상가상으로 좋은 사진은 하나도 건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엄청나게 끓어올랐던 좋은 기분이 순식간에 심층 지하까지 가라앉는 기분이다.
그 때였다.
“언니, 저 물 좀 마실께요.”
가장 어려보이는 치어리더 한 명이 자리에 앉기 전 내 쪽을 향해 몸을 돌려 생수병을 들었다. 그 순간 난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었다. 렌즈는 그녀를 향했다.
힘든 얼굴로 물을 마시는 사진 한 컷.
볼을 두드리며 힘을 내자고 말하는 사진 한 컷.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진 한 컷.
정확히 세 장. 딱 세 장을 찍었다.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서 찍은 느낌이다.
[등급을 초과한 사진이 찍혀 카운트가 초과 집계됩니다.] [8등급 1단계 조건 카운트 : 59/100] [등급을 초과한 사진이 기준치를 넘겨 아이템이 랜덤 지급됩니다.]문구가 떠오르기 전에도 알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찍은 사진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이거 예감이 좋다. 이 사진도 꽤 괜찮은 포트폴리오가 될 것 같아.
제목 : 치어리더의 미소
– 와 서울 드래곤스에 저런 인재가 있었나? 역대급인데?
– 뭔가 순진하면서도 예쁘게 생겼다. 웃을 때 치아가 예쁘네.
– 이거 하은선인데? 와, 실제로 이렇지 않아요. 사진이 역대급인 듯.
– 사진빨이든 뭐든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쁘네.
– 오오오!!!!
– 예쁘다. 이번 시즌 끝나기 전에 한 번 가봐야겠네요.
처음에 올린 사진보다는 반응이 적지만 호평 일색이다. 이 사진은 아까 전 시구녀를 찍은 것과는 달리 내 실력도 들어가 있어서 내심 뿌듯했다.
그러고보니 야구 경기는 어떻게 됐나? 야구 장면을 찍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정작 경기는 하나도 못 본 느낌이다. 형은 잘하고 있나? 전광판을 보니 야구는 벌써 4회를 달려가고 있고 스코어는·· 어이쿠.
서울 드래곤스 1 : 9 인천 돌핀스
이거 완전 졌네. 우리 형은 좀 잘했나 몰라. 남은 시간이라도 경기 장면 좀 찍어봐야겠다. 난 경기 막바지에 이르러야 카메라를 경기장 안으로 돌릴 정신머리가 생겼다. 형은 나름대로 2루타 하나를 치면서 밥값은 한 모양이지만 팀은 처참하게 지고 있었다.
[아이템 효과가 사라집니다.]아 맞다. 1시간 지속인 아이템이라고 했지. 생각보다 괜찮은 사진을 건졌으니 아이템빨은 세운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아까 사진 올리기 전에 추가 아이템이 주어졌다고 본 것 같은데 어떻게 봐야 하지?
“아이템 확인.”
난 누구에게 들릴세라 조용하게 속삭이듯 외쳤다. 그러자 문구가 떠올랐다.
이건 또 무슨 아이템이야? 사신이냐? 아이템을 쓰면 피사체가 죽어버리는 거야? 아니면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찍으면 영혼이라도 찍히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아이템이다.
“투수 교체. 투수 김경일.”
장내 아나운서의 말이 들리자 응원석에 있던 몇몇이 짐을 싸기 시작한다.
“패자조 나오네요. 뭐 오늘 이기긴 어려워 보여요.”
“차 밀리기 전에 전 갑니다.”
웅성대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몇 빠지기 시작한다. 아니 뭐 벌써 빠져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명언도 모르는 건가. 난 경기 중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카메라를 경기장으로 향하는 순간 다시 문구가 떴다.
[‘마지막 순간’ 아이템 적합도 98%. 아이템이 자동 사용됩니다.]뭐야 이건? 내 카메라는 교체된 투수를 향해 있었다. 뭐야 저 사람은? 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옆에 있는 팬에게 물어야했다.
“저, 죄송한데 방금 교체된 투수에 대해서 아시나요?”
“네? 김경일 선수요? 아, 최근에 팬이 되신 분인가? 옛날엔 굉장한 투수였어요. 한 3년 차까지는 차세대 에이스라는 수식어를 단 선수였죠. 그런데 어깨를 좀 심하게 다쳐서 몇 년 부진하다가 수술 3번인가 받고 이번 후반기부터 경기에 나오기 시작하고 있어요. 근데 뭐 구속도 그렇고 변화구 각도 떨어져서 1군에 있기 힘들 것 같아요.”
“아··.”
“아쉬운 선수죠. 26살의 젊은 에이스가 크게 다치고 33살이 돼서야 1군에 올라오다니.”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난 찜찜한 마음으로 김경일 선수를 사진기를 통해 바라봤다. 공을 하나하나 던질 때마다 이를 막무는 모습이 렌즈를 통해 보였다. 그렇게 10개 쯤 던졌을까, 그 투수는 어깨를 부여잡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난 마지막 순간의 투구를 몇 십 컷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카메라를 내려놓자 노장 투수는 슬픈 표정으로 마운드를 몇 번이고 바라보며 덕아웃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중구 태평로 스포츠 오션 본사.
이미 평범한 직장인들은 야근까지 마치고 퇴사할 시간인데도 건물 안은 환했다. 저녁 늦게 끝난 스포츠 경기의 결과를 심층 분석하고 알리기 위한 키보드 타자 소리가 가득했다. 어느 한 자리에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중년 사내가 입을 열었다.
“윤기자, 일로 와서 이것 좀 봐봐.”
중년 사내는 모니터에 비친 화면을 가리켰다. 윤기자라 불린 남자는 모니터를 보더니 한동안 응시했다.
“부장님 뭐 때문에? 아, 좋은 사진이네요. 누구죠?”
“오늘 서울 경기에서 화제가 된 시구녀.”
“호오? 이렇게 매력 있었나? 화면으로 볼 때는 얼굴은 그저 그런데 개념 있다라는 생각 정도였는데.”
“우리 애들이 찍은 사진 중에 이것보다 괜찮은 거 없지?”
“그러게요. 상대가 안 되네요. 사진 이거로 가시려고요? 누가 찍은 겁니까?”
“나도 잘 몰라. 사이트 돌아다니다가 발견했어.”
“네? 어디보자. 음, 처음 보는 아이디네요.”
“다른 것도 한 번 볼래? 사진이 괜찮아. 이 친구가 찍은 다른 사진도 이 사이트에서 화제야.”
“어? 그러게요. 오늘 화제가 된 시구녀도 잘 잡아냈고 치어리더 사진도 좋네요.”
“그 두 개도 좋지만 난 이게 최고군.”
“어? 누굽니까?”
“김경일 선수. 아마도 오늘 날짜로 은퇴하게 될 선수야. 또 어깨가 다친 것 같아.”
“아아, 김경일 선수. 와아, 그런데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었죠?”
“연락 좀 넣어봐.”
“뭐하시게요?”
“언론사 사진기자가 찍는 사진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사진은 뭘 거 같나.”
“글쎄요. 화제성?”
“화제성도 중요하지. 하지만 내 생각에 언론사에 있어서 좋은 사진은 저절로 기삿거리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사진이야. 이 친구가 찍은 사진 같은 사진. 사진 각도 보니까 프레스석에서 찍은 사진 같은데 프리랜서 사진 기사인가 봐. 이번 사진 저작권도 포함해서 얘기 좀 해봐.”
부하가 자리로 돌아가자 부장은 김경일 선수의 사진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김경일은 불이 꺼진 경기장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난 카메라를 책상에 놓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이 카메라는 어디서 어떻게 내게 온 걸까. 윤호도 모르는 것 같고. 폐기장에 있었다니 누가 버리려고 놔둔 거겠지. 일단은 나쁜 건 아니야, 절대 나쁘지는 않지. 오늘만 해도 내 인생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으니까. 그 때 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아, 오션의 임언진이라고 합니다.]“저 보험 안 듭니다.”
[네? 하하, 그런 거 아니고요··]“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이런 전화를 합니까. 이거 불법 아니에요?”
[저기 전, 스포츠 오션의 인사팀입니다.]“··네?”
뭔가 내 삶이 차차 변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