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24
25화 정상에서
“어휴, 형! 좀 천천히 가!”
난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고 이대로 조금만 더 갔다가는 쓰러질 것 같았다. 분명 오늘은 소중한 내 휴일이었다. 해가 뜨기 전에 산을 올라갈 계획 비슷한 것은 세우지도 않았다. 그러는 내가 해가 뜨기 전 새벽부터 산을 오르는 이유는 형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야! 이러다가는 일출 못 봐. 빨리 와!”
“형, 일출 보기 전에 내 숨이 넘어가는 걸 먼저 보고 싶어? 지금 6시 반이야. 일출 시간까지 1시간 남았어. 그리고 거의 다 왔잖아! 천천히 가도 30분이면 도착하겠구만”
새벽에 저 인간이 날 깨워서 어디 좀 같이 가자고 할 때부터 고행길이 예상됐지만 이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길이다. 난 초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흘러내리는 땀을 손으로 훔치며 열심히 위로 올라갔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점점 숨이 차오르고 있다.
“운동 좀 해라. 너 매일 일터에서 늦게 오고 집에서는 잠만 잔다며.”
“일이 바빠서 그래. 나도 시간 있으면 운동 하고 싶지.”
“너 그러다가 한방에 훅 간다.”
“형, 걱정하지 마. 형 때문에 옛날에 쌓아놓은 운동량이 어마어마하니까.”
재능과 근성이 적절하게 혼합된 형이란 이름의 괴물은 어릴 때부터 운동할 때는 날 끌고 가곤 했다. 덕분에 난 남들보다 좀 더 괜찮은 체력을 지닐 수 있게 됐다. 덕분에 군대에 있을 때 도움이 많이 되기는 했다.
정상이 눈에 보여서 그런지 형은 뜀박질에 가까운 속도를 늦추고 내게 말을 걸었다.
“너 언론사 일은 관둔 거냐? 왜 스포츠 오션에서 일 도와준다고 하지 않았어?”
“응, 관뒀어. 지금은 스튜디오에서 일해.”
그리고 학교도 다시 들어가서 공부하고 있지. 뒷말은 하려다가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관뒀다.
“우리 구단 치어리더 분들 슬퍼하겠네.”
“어? 왜?”
“너 덕분에 치어리더 분들 몸 값 많이 올라갔어. 그 중 한 분은 네가 내 동생인 거 알고 요즘은 왜 안 오시냐고 묻기까지 했다니까.”
“그런 일이 있었어?!”
“내가 말해주지 않았나?”
“말해주지 않았지! 그런 일 있으면 말해주지. 난 이상한 사진 찍어서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 마음 졸였는데. 싫어하지는 않았고?”
“싫어하기는커녕 기사 때문에 인기가 오르니까 좋아하는 눈치던데.”
“그나저나 누가 날 보고 싶어 했어? 형 구단네 치어리더를 예쁘잖아. 번호는 알려줬어? 알려줬지? 알려줬다고 말해.”
“미안, 번호까지는 물어보지를 않아서. 그리고 그런 사진을 찍어놓고 뻔뻔하게 만나서 뭐하게. 사진들은 나도 봤다. 굉장히 낯 뜨겁더라. 원래 음흉한 놈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진 보니까 이건 뭐··”
“그 때는 그렇게 밖에 찍을 수 없는 사정이 있었어.”
“도촬범도 변명은 가득하겠지. 사진 각도나 신체 강조한 거나·· 어릴 때부터 이상한 잡지 잔뜩 보더니만 그런 쪽으로 기술만 늘어서는.”
“그 잡지 형이 가지고 온 거였잖아!”
형은 내 억울한 반문에 답은 하지 않고 발걸음 속도만 빨라졌다. 아니 야한 걸 봐도 자기가 나보다 몇 배는 더 봤으면서 사람을 변태로 몰아가다니 억울하다.
“아, 그리고 경일 선배가 너 한번 꼭 만나고 싶다고 했어.”
기억난다. 카메라를 잡은 지 초반에 이라는 아이템을 써서 그 선수를 찍었었다. 불 꺼진 경기장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하는 모습을 찍었었지.
“만나서 할 얘기도 없는데.”
“마지막 모습 사람들에게 기억되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시더라.”
뭔가 울컥하는 기분이 든다. 내가 제대로 실력 갖추고 그 선수에 대한 정보를 안 채 내 감정으로 사진을 찍었으면 더 좋은 사진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 때는 단지 아이템이 나와서 찍었던 것뿐이었는데.
마침내 정상에 닿았다. 나와 형은 바위 위에 걸터앉은 채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난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내 감성에 뭔가 문제가 생겼거나 아직 잠이 덜 깬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장면을 놓치기 싫었기에 챙겨온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좋냐? 하고 싶은 일 해서?”
한창 사진을 찍고 있는데 뒤에서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카메라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좋기는 한데 하면 할수록 힘드네.”
“모든 일이 다 그렇다. 나도 야구 좋아하지만 힘들어. 하면 할수록 어렵고.”
“그래도 이번 시즌에 형 주전 자리 굳힌 거 아니야?”
“굳히기는 내 타율 몰라서 묻고 있냐. 기우 선배 부상 회복하면 다시 경쟁이야. 그래도 전처럼 주저앉고 2군으로 가지는 않을 거다. 이번 오프 시즌에 어떻게 해서든 약점 보완해서 당당하게 주전자리 차지하고 말겠어.”
그렇게 말하는 형의 눈은 저어 먼 곳을 향해 있었다. 형은 한 동안 먼 곳을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도전해야지, 일단은 골든글러브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유격수가 되겠어! 길승호라는 이름 석 자를 똑똑하게 각인시켜 주마!”
“형, 조용히 좀 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느닷없이 소리를 꽥 지르는 형 탓에 조용히 경치를 즐기던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향했다. 난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이 운동바보도 조금은 진정됐는지 조용히 일출 장면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난 그 모습이 괜찮게 보여 카메라를 꺼내 찍기 시작했다. 형은 내가 찍고 있다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고 조용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읊조렸다.
“내년에 두고 보자, 이대로 주저앉지는 않을 거야.”
[등급을 초과한 사진이 찍혀 보너스 포인트가 지급됩니다.]기분 좋은 문구가 떴다. 난 사진을 살펴봤다. 산 위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세상을 노려보면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모습이 그냥 형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인간은 매일이 도전의 연속이다. 그 어렵다는 프로 세계에 뛰어들어 반주전자리를 차지하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카메라를 얻기 전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동안 저런 사람들은 각오를 굳히며 살아가고 있을 테지.
그건 그렇고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보이는 풍경이 달리보이는 줄 모르겠다. 이곳에 자주 왔을 텐데 처음 온 장소처럼 느껴진다. 저 햇살이 비춰지는 바위하며 산의 능선하며 모든 것이 달리 보인다. 난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이곳저곳을 향해 카메라를 찍어댔다.
“재미있냐?”
내 모습을 지켜보던 형이 말한다.
“응, 힘든데 재미있어.”
“힘든 만큼 더 재미있어질 거다. 언제 인간되나 했더니 이제 조금 싹수가 보이네. 나중에 내 연봉 뜯어서 장사나 할 줄 알았는데 전공도 살려서 일도 하고, 실력도 있어 보이고. 잘 크고 있네.”
“누가 보면 형이 나 키운 줄 알겠어.”
난 피식 웃으며 다시 한 번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봤다. 그리고 마침내 난 풍경이 왜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넓어졌어? 또렷해진 건가?”
그랬다. 내 눈은 어느 새 좋아진 거 같다. 멀리 있는 풍경을 보니까 그 사실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걸 다르게 말하자면 난 남들과 다른 시야를 갖출 조건 중 하나를 갖췄다는 소리겠지. 난 고흐도 좋은 눈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풍경 작품을 보면 다른 화가들 작품에서 볼 수 없는 광대한 시야를 담아내고 있다. 뭐랄까, 마치 카메라의 줌을 당겨 광각으로 묘사한 풍경과 흡사해서 인상적이었지. 이제 나도 그런 풍경을 눈으로 볼 수 있단 말이지. 이거 엄청난데.
“야, 몸 식기 전에 내려가자.”
형과의 산행이 끝나고 난 야구 사이트에 하나의 게시물을 올렸다.
“내년에 두고 보자!”
“이대로 주저앉지는 않을 거야!”
라고 말하는 중.
– 우리팀 일본에서 마무리 훈련 끝났나요?
– 어제 끝났음. 새벽부터 산행이라, 내년엔 길승호 선수 기대!
– 수비는 되는데 공격이 멘도사 라인이야. .209 아무리 유격수가 수비 중심으로 주전을 결정한다지만 너무 타율이 낮은 거 아니야?
– 이게 옛날 생각 못하네. 우리팀 3루수가 도지한이야. 길승호 빼면 내야 완전 망가진다. 솔직히 25살짜리 중고 신인이 이 정도 수비 해주면 고마운 일 아니냐?
– 고맙긴 젠장, 2할 극초반 대 타자한테 고마울 것도 쌨다.
– 유격수는 공격 되는 애 집어넣고 수비 키우는 것보다 수비 되는 애 넣고 공격 키우는 게 답이다.
– 그래도 어느 정도 공격이 되는 애를 써야지 시즌 내내 찬스 말아먹은 거 생각하면··
– 길승호 때문에 실점 막아낸 걸로 위안삼아. 신기우 부상당하고 막막할 때 갑툭튀해서 수비 공백을 메꿔준 걸 고맙게 생각해야지. 내년에 두고 보자고 하잖아.
– 일단 근성은 있어 보이네. 믿어 보자!
– 북한산인가 보네. 경치 죽이고 길승호 선수 파이팅도 넘쳐 보이네. 컴퓨터 배경 화면으로 쓰고 틀 때마다 내년에 두고 보자고 외쳐야겠다.
– 좋은 생각이네. 그래! 내년에 두고 보자! 아자!
– 나도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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