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28
30화 겨울, 너
첫 번째로 보이그룹 언루트(UnRoot)의 화보촬영을 맡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우선 내가 잠시나마 소속된 소속사의 식구들이었다. 게다가 마실장님으로부터 만약 화보 촬영에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을 경우 재촬영을 해도 된다고 허락받았다. 게다가 스튜디오 촬영이라 정만종 선생님도 도와주신다는 말도 들었으니 이건 꼭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화보 촬영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상대방이 원하는 모습을 최대한 살려주는 촬영, 또 하나는 사진사가 피사체에게서 다른 모습을 끌어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주는 작업. 저번 슬비 씨 촬영 때 내가했던 것이 첫 번째고 네가 하려고 했던 것이 두 번째라고 설명하면 알아듣기 쉽겠지? 일단 화보 촬영은 전적으로 네게 맡긴다는 말이 나왔는데 어떻게 찍을 생각이지?”
“지금 생각 중입니다. 기왕이면 이번에 나오는 노래 분위기에 맞게 촬영을 하고 싶은데 아직 이렇다 할 컨셉이 떠오르지 않아요.”
“내가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피사체에 대해 좀 더 연구하라는 거다. 공부하라는 말이 아니야. 피사체와의 교감에 따라 사진은 달려져. 너 같은 경우는 경험이 일천해서 촬영 대상과 친해지는 것이 중요해. 경험이 많은 사진작가들은 촬영장에서 그 인물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파악의 정도가 틀리건 맞건 간에 자신의 철학에 인물의 이미지를 얹기 때문에 당일 촬영이 가능하지. 그런데 넌 아직 그 정도 수준에 다다르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게 지금 내가 제이필터 뮤직 기획사에 있는 이유다. 주어진 기간은 삼일, 오늘은 일단 보이그룹 언루트의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고 최대한 따라다닐 예정이다. 내일은 선생님의 주도로 촬영이 있고 모레는 내 주도로 촬영을 할 계획을 잡았다.
제이필터 뮤직의 홍보 팀장이신 김훈철 팀장이 내게 커피를 건네 준 뒤 입을 열었다.
“작가님 덕분에 정만종 선생님께서 직접 촬영도 해주신다고 했다면서요. 덕분에 이번 앨범 표지 걱정은 없을 것 같네요.”
“일단 제가 배우는 입장이라 선생님께서 무리를 하시게 만들었어요.”
“뭐 작가님도 만만찮은 실력이시던데요. 우리 러버걸스 애들 찍으신 거 보면 정말 감탄밖에 안 나옵니다.”
“그냥 우연찮게 찍힌 사진이에요. 선생님하고 저하고 비교라니··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건 그렇고 촬영 진행할 언루트 멤버들은 언제 볼 수 있나요?”
“지금 한창 연습 중입니다. 컴백이 미뤄진 김에 투타이틀로 가기로 결정했거든요. 이거 애들이 작가님이 찍는다는 소식 들으면 좋아하겠네요, 하하.”
순간, 머리가 반짝였다. 이건 좋은 소식이다.
“그럼 아직 제가 찍는다는 걸 모르고 있나요?”
“네, 어제 늦게 결정된 터라 아직 말을 못했습니다. 작가님 소개하면서 얘기해야줘.”
“죄송한데 그럼 절 그냥 정만종 선생님 어시라고 소개해주세요.”
“네? 왜요?”
“그래야 편하게 대할 거 같아서요. 나이 차도 얼마 나지 않으니까 촬영 전에 원하는 컨셉 같은 것도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걸 같고.”
“음, 그게 편하시면 그렇게 하세요.”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시간이 되자 땀에 전 다섯 명의 소년들과 난 기획사에 있는 회의실에서 만났다. 이들은 언루트라는 보이그룹으로 이 소속사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그러니까 대부분의 수익을 책임지고 있는 그룹이란다. 나도 이 그룹 노래는 알고 있을 정도니 꽤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내일 촬영은 정만종 선생님께서 직접 곡 컨셉에 맞게 촬영을 진행해주실 겁니다. 이별에 대한 아픔, 반항아 같은 컨셉이겠죠.”
난 내심 정만종 선생님의 이름이 나올 때 이들의 반응을 살폈지만 이 얘들은 선생님이 누군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이들의 나이는 나보다 3살에서 5살 어린 친구들로 직업 작사 작곡한 노래로 작년에 데뷔해서 신인상까지 거머쥘 정도로 실력파 그룹이었다.
“저기 촬영 몇 시에 끝나죠?”
“네? 아, 오전에 찍고 끝날 예정이에요.”
처음부터 퇴근 시간을 물어오다니 좋지 않은 징조다. 이들은 촬영에 대한 생각은 없어 보였다.
“와, 다행이다. 내일도 연습할 시간은 있겠네.”
“그러게 말이야. 투타이틀이라니 대표님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저기 형. 형 맞죠. 형이 듣기에 이번 우리 노래 어땠어요?”
갑자기 날아오는 음악 관련 질문에 난 몇 번이고 들은 정규 앨범 타이틀곡을 생각했다.
“ 말하는 거죠?”
난 그 음악을 떠올렸다. 뭐랄까 좋긴 한데 이 친구들한테는 좀 과한 느낌의 곡 이었다. 다섯 동생들의 반짝이는 눈이 나를 향해 반짝였다. 그냥 솔직하게 내가 느낀 바를 얘기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뭐랄까 변하려고 하는 간절함이 느껴졌어요.”
“네? 그게 무슨?”
“아니 제가 뭐 평론가는 아닌데 전에 인기 있었던 곡들은 다 알거든요. 운동할 때 듣기도 했고. 그러니까 원래 이미지가 순정만화에 나오는 귀여운 동생 같은 이미지고 노래도 그랬는데, 갑자기 난 이제 남자라고 외치는 것 같다고 할까?”
좀 더 자세한 감상을 덧붙이자 무슨 말인지 몰라 답답해하는 한 멤버가 입을 열었다.
“그게 좋다는 뜻이에요? 나쁘다는 뜻이에요?”
“그건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여기 전문가 분들도 많고 이런저런 분석을 해서 결정한 거니까 제가 뭐라고 말할 자격은 없을 것 같은데.”
“저기 음악 많이 들어요?”
“그냥 인기곡 중심으로 듣고 있어요.”
“그럼 형이 딱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에요. 개인적으로 어느 쪽이세요? 좋은 쪽? 나쁜 쪽?”
말하지 말걸 그랬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이 멤버들 다 나를 싫어해서 좋은 사진 나오지 않는 거 아니야? 하지만 답을 재촉하는 소년들의 눈망울에 뭐라도 말을 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 굳이 말하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요?”
“변한 모습도 멋지겠지만 예전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좀 아쉬울 거 같아요. 언제까지 내 귀여운 남동생으로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이렇게 컸구나, 이제 보내줘야겠다 정도의 느낌?”
내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의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안 돼! 그러면 안 되는데. 누나팬 다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그래서 이번에 대표님이 투 타이틀 얘기를 꺼낸 건가봐.”
“그런 거지. 대표님도 우리가 고집 부리니까 타이틀로 해주긴 했는데 불안하신 거지.”
“난 그냥 우리 더 굴리려고 한 줄 알았는데 저 형 말 들으니까 납득이 가.”
난 이들이 뭔가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뭔가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저기,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두 번째 타이틀곡도 아는데 느낌이 비슷하잖아요.”
내 말에 소년들의 표정이 변했다. 뭔가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나보다.
“완전 달라요. 좀 더 리드미컬 하고 그루브도 풍부하고·· 완전 달라요.”
“귀가 막귀 아니에요? 둘이 완전 달라요.”
나는 이들의 감정이 더 격해지기 전에 뭔가 말을 해야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전 음악평론가가 아니라 사진작가의 시선으로 곡을 평가했어요. 제 기준에서 두 곡은 떠오르는 느낌이 비슷해요. 슬픈 반항아 느낌인데 두 곡에서 그려지는 느낌이 겹쳐진다고 생각했거든요.”
내 말을 듣고 오렌지색 머리를 한 멤버 한 명이 일어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사진작가님이 듣기에 좋은 컨셉이 떠오르는 노래는 뭐였어요?”
“네? 자꾸 저한테 물어보시면··”
“아니아니, 그냥 말해주세요. 형 말 들으니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요.”
난 앨범의 곡들을 떠올렸다. 머리가 좋아진 덕분에 이들의 곡 전부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란 곡이요”.
“네?!”
“에에?”
“그거 많이 이상한데. 앨범에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뒤에 넣은 곡인데, 그거요?”
설명을 해주는 게 좋겠지.
“전 그 노래가 좋아요. 여기서 제일 어린 분이 작사했죠? 그냥 그 나이 대에서 느낄 만한 풋풋하지만 가슴 아픈 얘기를 잘 풀어내서 좋았어요. 겨울에 빗대어서 감정을 설명하는 것도 마음에 들어요. 개인적으로 겨울이 되면 생각날 것 같네요.”
“아, 나 저 비슷한 말 친구한테 들었어.”
“나도 누나한테 들었어. 누나 정말 음악 모른다고 한 마디하고 왔는데.”
“아니 왜 이 곡이 좋지? 정말이죠? 정말이죠? 우리 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니죠?”
원래 이런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닌데 정리 좀 해야겠다.
“아니 장난은 아니고, 그것보다 저희 컨셉 얘기부터 좀 했으면 싶은데요.”
“나중에 얘기해요. 지금 우리가 너무 생각할 게 많아요. 아! 바쁘지 않으면 우리랑 같이 의견 좀 나눠요.”
“지금 형 때문에 자신감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그렇지 않아도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얼음이 깨져서 차가운 물에 빠진 기분이에요.”
일단 이들의 성격은 알겠다. 모두 자신의 꿈을 잇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생각보다 굉장히 진지한 성격들이다. TV에서 볼 때는 철없는 애들 같았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까 다르네.
“그럼, 저도 부탁이 있는데 지금부터 촬영 좀 할게요.”
“네? 무슨 촬영이요?”
“원래 생각하던 이미지랑 달라서 미리 좀 찍어 보려고요.”
이런 게 사람을 조금씩 알아간다는 거겠지. 확실히 촬영장에서 만났으면 이런 면은 알기 힘들었을 거야. 난 카메라를 들고 어이없어하는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
그날 저녁 퇴근시간이 다되어 갈 때쯤 제이필터 뮤직의 대표 유수민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있었다.
“아니! 왜? 왜? 두 번째 타이틀곡을 왜 바꾸고 싶어 하는데? 이거 며칠 전에 모두가 동의해서 결정된 거 아니었어?”
흥분하는 유수민 대표에게 홍보팀장 김훈철은 자신도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사건의 발단은 길승우 작가님하고 회의였습니다. 회의실에서 작가님하고 언루트 얘들하고 무슨 얘기가 오고 갔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겠는데 몇 시간이 되어도 나오지 않더니만 갑자기 타이틀곡을 바꾸고 싶다고 저한테 말하더라고요.”
“말려야지. 지금에 와서 바꾸면 손해가 얼마나 큰데. 러버걸스가 잘해주고 있어서 돈이 좀 들어오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바꾸고 싶은 곡이 랍니다.”
“거참, 그건 또 무슨 곡이야? 난 기억도 안 나는데. 아니 너도 내가 고른 곡 괜찮다고 했잖아. 하나는 파워풀한 댄스곡, 하나는 힙합적인 댄스곡. 딱 좋은데 대체 왜!”
“얘들 설명을 들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두 곡 전부 팬들이 생각하는 언루트의 이미지와는 다르니까 한 곡 정도는 원래의 색깔을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요.”
김훈철의 말에 유수민 대표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혹시 길승우 작가님이 점지해주셨나?”
‘점지’라는 익숙치않은 단어에 김훈철은 당황했다.
“네? 말씀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데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회의실에 들어간 이후에 그런 말을 했으니까요.”
“음, 그럼 바꿔.”
순식간에 바뀌는 대표의 태도에 김훈철은 물었다.
“그·· 괜찮으시겠습니까?”
“길승우 작가님은 우리한테 있어서 행운의 여신이나 마찬가지야. 바닥에 있던 걸그룹 띄워줘, 노래 1위 만들어 줘. 내게 있어서 이보다 더한 복은 없지. 길승우 작가님이 말씀하신 거면 바꾸자. 왠지 잘 될 것 같아. 이 바닥에서 정확한 분석보다 더 중요한 건 운이야. 지금 그 운이 길승우 작가님을 감싸고 있어. 바꾸도록 하자.”
유수민 대표는 주먹을 꽉 지며 자신의 선택이 잘될 거라고 굳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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