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29
31화 적당한 자극
다음날, 오전 언루트의 멤버들은 사전 협의대로 오전에 정스튜디오를 방문했다. 그들을 가장 반긴 건 다름 아닌 미선 선배였다. 선배는 원래 언루트의 팬이었다며 그들이 오자마자 격하게 환대하며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전 오늘 촬영 보조를 맡을 정미선이라고 해요. 어머, 실제로 보니까 훨씬 잘생겼다. 이런 남동생 있다면 업고 다녔을 텐데.”
“누나 남동생 있잖아요.”
“하아, 승우야. 그만하자. 그 금수 놈하고 그 이 친구들하고 비교는 차마 못하겠어.”
내 얘기에 미선 누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오늘 촬영 시간은 짧은 편이다. 선생님은 기획사의 컨셉 얘기를 듣더니 이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다며 얘기를 마쳤는데 확정된 시간이라는 게 내가 내일 촬영할 시간의 반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언루트와 함께 온 스타일리스트와 매니저 분들이 분주하게 촬영 준비를 하고 계셨다.
“자, 촬영 준비 시작합니다.”
난 오늘 촬영 현장에 설치한 컴퓨터에 앉아있었다. 촬영 보조는 당연히 미선 선배의 몫. 난 오늘 촬영 현장을 눈에 담아 내일 찍을 촬영을 최대한 잘 이끄는 것이 목표다. 선생님은 카메라를 들고 그들 앞에 섰다. 실내가 좀 따뜻한 터라 반 팔티를 입으셨는데 팔뚝의 근육이 눈에 보일 정도다. 운동을 어마어마하게 한 느낌의 근육이다.
“좋아, 유군 눈에 힘 빼고. 가완이는 왼쪽으로 너무 기울어졌다. 전체적으로 너무 잘하려는 것이 보여,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갔어. 동영상 촬영하듯 자연스럽게 행동해.”
몇 번의 화보 촬영을 진행했던 경험이 있어 언루트 멤버들은 컨셉대로 포즈를 잘 취하고 있다.
“좋아, 시선은 그대로. 차혁이는 허리 조금 펴고. 재민이는 기완이 어깨에 올린 손 더 잘 보이게 앞으로. 움직이지 말고.”
모두가 숨죽이는 가운데 셔터 소리만 스튜디오를 울리고 있다. 난 정신 없이 선생님의 결과물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 중이다. 미선 선배와는 달리 찍는 컷 수가 적은 편인데 한 컷, 한 컷 다 A컷으로 놔도 될 만큼의 수준이시다.
“저 가완이 옷 손보면 좀 더 길게 보일까? 스타일리스트 분 손 좀 봐주세요.”
마침내, 첫 번째 컨셉 촬영이 끝난 후 멤버들은 결과물을 확인하기 위해 내게 모여들었다.
“이것보다 더 멋진 컷 많아. 어때?”
내 말에 언루트의 멤버들은 혀를 내두르며 사진을 감상했다.
“와, 정말 사진 멋지게 나왔네요. 원하는 모습 그대로 나왔어요. 이거 차혁이 눈빛 멋있다.”
“형, 이 사진 형 인생 사진인 듯. 간지 폭풍!”
“사진만 본 사람들은 우릴 짐승돌로 알거야.”
다음 촬영이 시작되기 전, 선생님은 멤버들을 모아놓고 입을 열었다.
“이 포즈를 취하기 전에 앞에 꺼림칙한 무언가가 아른거린다고 생각해. 그게 뭐가 됐건 좋아. 그리고 시선은 내 지시가 있을 때까지 카메라를 향하고.”
두 번째 촬영이 시작됐다.
“리플렉터 내려서 재민이 쪽으로. 조명 좋아··”
“신호! 유군에게 붙어. 지금 느낌 좋으니까 연속으로 간다. 미선아, 스타일리스트 불러서 가완이 머리 좀 정리해.”
그리고 세 번째 촬영.
“불쾌한 경험을 했는데 웃고 넘길 수 있을 정도의 일이란 생각으로 미소를 지어. 포즈 좋다. 그대로, 그대로 몸은 움직이지 말고 차혁이는 시선을 왼쪽으로.”
순식간에 촬영이 끝나버렸다. 선생님께서 이번 촬영은 기획사 측에서 요구한 대로 찍을 거라고 내게 미리 얘기하셨다. 이번처럼 소속사에서 원하는 컨셉이 확고하다면 사진사는 시안대로 찍어서 넘기면 된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이런 건 일종의 메이킹 포토지. 인물을 가지고 시안대로 만들어야 하는 거야. 광고 쪽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찍지. 대략 현장 분위기는 알겠지? 미선이가 손수 나서서 도와준다고 했으니까 찍는 데 큰 불편은 없을 거다.”
“저기, 근데 선생님. 내일 찍을 컨셉은 확고하지는 않은데요. 넓은 범위에서는 합의 했는데 아직 세부적인 조율은 필요해요.”
“음·· 오늘처럼 명확한 가이드가 없다면 주어진 정보를 기반으로 상상해. 화보 촬영은 창조의 영역이다. 그것까지 내가 조언해줄 수는 없구나.”
난 언루트의 멤버들과 스튜디오에 있는 회의실로 들어가 내일 있을 컨셉에 대해 의논하기로 했다. 어제 의 컨섭에 맞게 겨울을 주제로 한 밝은 모습을 찍겠다는 큰 틀에 대해서는 합의한 상태다. 그리고 난 집으로 돌아가 내일 이들에게 어울린 만한 컨셉을 밤새 찾았다.
난 나름 자신이 있는 게, 아이템을 써서 이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컨셉을 찾아봤기 때문이다. 아이템의 이름은 인물에 맞게 배경에 점수를 부여해주는, 내일 촬영에 있어서 너무나 쓸모 있던 아이템이었다. 솔직히 지금 쓰기는 아깝지 만 내일 촬영이 첫걸음이고 하니 과감하게 써봤다.
그렇게 눈이 충혈 되도록 수천 장의 배경을 검색했고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세 개의 배경이 언루트의 멤버 앞에 소개됐다.
“아 형, 이건 아니죠. 우리가 무슨 겨울 왕자에요?”
“아니 오글거리는 사진 많이 찍어봤는데 이건 손에 꼽을만한 오글거림이네요.”
반응이 너무 좋지 않다. 내가 고른 컨셉은 쏟아지는 눈 사이로 하얀 정장을 입은 다섯 명의 왕자·· 그래 겨울 왕자란 말이 맞겠네. 무려 97점짜리 배경이다.
“아니 그래도 찍으면 괜찮을 거야. 내가 엄청나게 고민해서 찾아낸 컨셉이야. 팬들의 환상을 실체화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건데 괜찮지 않냐?
“전혀요!”
“네버!”
“이건 아니죠!”
즉각적이고도 부정적인 반응이다. 제일 높은 점수를 지닌 컨셉이 이 정도면 다른 것도 마찬가지 아닌지 걱정부터 된다.
“그럼 다음 컨셉부터 설명해줄게. 이건 뭐냐면.”
“앨범 화보에 파자마룩이라니··”
“게다가 난 분홍색이야.”
91점짜리 배경에도 멤버들은 심드렁하다.
“이거 멋지지 않냐? 하얀 페인트칠이 덜된 나무 바닥에 은색 침구를 깔고 누워서 위를 쳐다보는 컨셉·· 나 어제 이거 찾고 얼마나 기뻐했는데. 하아, 다음으로 넘어가자.”
90점짜리 배경은 벽난로가 있는 거실, 선물 꾸러미 위에서 앉은 소년들의 모습이었다.
“그나마 세 번째 컨셉이 나아 보이네요. 그나마, 그나마.”
“와, 정말 이거 우리 생각하고 잡은 컨셉 맞아요?”
이거, 생각보다 회의가 길어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기미가 보이자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스타일리스트였다.
“저기 뭐라도 좋으니까 빨리 결정해주시면 안 돼요? 이러다가는 내일까지 의상이나 소품 준비 못 마쳐요.”
스타일리스트의 채근에 난 더 당황했다. 이거 어떻게 해서든 멤버들을 설득시켜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저기, 이 컨셉 길승우 작가님이 직접 고르신 거 맞죠?”
조용히 있던 언루트의 매니저 중 가장 나이가 많이 보이시는 분이 말했다.
“네, 제가 직접 골랐습니다.”
“그럼 제대로 가죠.”
“네?”
갑작스러운 허락에 내가 더 당황했다.
“어? 종훈이 형. 정말요?”
“그래도 저건 좀 아니지 않나요? 아니, 정말 이상한데.”
언루트 멤버들의 외침에 그는 두 번째 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가져다댔다.
“대표님의 엄명이다. 길승우 작가님이 하는 작업에 적극 협조할 것. 너희들이 원하는 사진은 오늘 찍었잖아. 작가님 실력은 알 거 아니야. 사진은 저 분이 프로야.”
매니저의 말에 멤버들 입이 튀어나오는 게 보인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저기, 일단 찍어보자. 그리고 사진 봐서 마음에 안 들면 쓰지 않아도 돼.”
“아이구, 무슨 말씀이세요. 그렇게 했다가는 대표님이 노발대발 하십니다.”
일단 이 매니저님부터 처리를 해야겠다.
“저기, 이런 사진은 피사체와의 교감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렇게 윽박질러서 찍는다고 좋은 사진이 나오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얘들아 내 말 좀 들어봐. 지금 내가 보여준 컨셉이 성에 차지 않는다는 건 알겠어. 근데 직접 찍어보면 괜찮은 사진이 나올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
일단 자신감이라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흔들리면 아무것도 안 되니까.
“이건 내가 너희들 노래를 듣고 찾아낸 컨셉이야. 내가 설명이 부족해서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어.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라. 내가 왜 너희들한테 이상한 컨셉을 추천하겠어. 이건 나한테도 중요한 일이야. 이 스튜디오에서 처음으로 진행하는 일이란 말이지. 난 이 작업을 그 누구보다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 우리 즐거운 마음으로 같이 작업해보자.”
내가 차분하게 그들을 설득하자 하나둘씩 얼굴이 풀리고 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지. 난 너희들과 함께 하는 이 작업이 내 단독 스튜디오 촬영으로서는 처음이야. 일단 기회를 줘. 그 다음, 결과에 대해서 너희들이 뭐라고 하건 다 받아줄게.”
리더 차혁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 저희가 죄송해요. 다시 보니까 그렇게 이상한 컨셉은 아니에요. 저런 컨셉으로 다른 친구들도 많이 찍고 있는데 유난스럽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오늘 너무 멋진 사진을 찍다보니까 대조적이어서 저희가 심한 말을 했어요. 죄송해요.”
“생각해보니까 우리 원래 이미지를 잘 살려주실 것 같아요.”
그래, 괜찮은 애들이다. 괜찮은 애들이어서 정말 다행이야.
***
정미선과 정만종은 촬영을 마치고 정만종의 방에서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미선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괜찮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승우 걱정되는데. 선생님 사진 찍는 거 보고 다음 날 바로 촬영이면 어휴, 전 힘들 것 같아요. 게다가 오늘 촬영 사진 거의 완벽하던데요. 다른 때보다 기합도 더 들어가 계신 것 같고.”
“지금은 자극이 좀 필요하니까. 너희들처럼 천천히 알려주고 싶었는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채근 질을 해야지.”
“내일 사진을 찍으면 선생님 사진하고 비교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걸 승우도 알 거에요.”
“난 말이지 승우가 날 이기려는 자세가 나와도 좋고, 좌절해도 좋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어찌되었건 발전 속도는 빨라질 거야.”
“지금도 승우 발전 속도는 빨라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요. 그래서 더 옆에서 지켜보고 싶어요. 저도 자극이 필요할 때거든요. 근데 딱 그 정도의 자극이면 돼요. 더한 자극이 오면 어휴.”
정만종은 미선의 말에 희미한 웃음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더한 자극이라·· 라벨토트라는 브랜드 알고 있니?”
“네? 그럼요. 요즘 크게 떠오르는 여성 브랜드잖아요.”
“며칠 전 그곳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 쪽에서 내년 봄 화보 촬영을 맡아주길 바라는 것 같더구나. 그래서 내가 너를 추천했고 어제 그곳에서 답변이 왔는데 내 관전 하에 너에게 기회를 줘보고 싶다고 하더구나.”
“정말요?!”
“메이저 화보를 단독으로 진행하는 건 처음이지? 축하한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정만종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기뻐하는 미선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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