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3
4화 황혼의 직업
시청역에서 내려 스포츠 오션 건물로 향하며 난 생각했다. 면접, 그러니까 면접 같은 거겠지? 군대를 다녀오고 학교에 복학에 이번 해 8월 코스모스 졸업을 한 참이라 내게 있어서는 첫 면접인 자리였다. 사진학과과 신설되고 처음으로 들어간 터라 빽도 없었고, 무엇보다 내 능력이 별로인지라 서류를 넣은 곳마다 떨어졌었다. 결론적으로 내게 있어서는 첫면접인 셈이다. 아는 동기들 중엔 작은 스튜디오에 들어간 녀석들도 있긴 하지만 언론사에 간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안내를 받아 회의실로 들어가니 두 명의 남자가 자리에 앉아 나를 맞이했다. 한 명은 30대로 보이고 금테 안경을 쓴 차가운 인상의 남자였고 한 명은 온 몸에 털이 가득 한 40대 후반 정도의 남자였다.
“아, 소개부터 해야겠군요. 전 스포츠 오션 스포츠부 윤성호 기자, 이 분은 우리 스포츠부 우상진 부장님.”
소개를 마치자 우상진 부장이 말했다.
“아, 급하게 불러서 미안하네.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말이야.”
“아, 괜찮습니다.”
“우선 자리에 앉지.”
난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넓은 회의실엔 우리 세 명 뿐이었다.
“우선 사진 얘기부터 하고 싶군. 이거, 자네가 찍은 사진 맞나?”
우상진 부장은 가지고 있던 노트북을 내게 보여줬다. 화면에는 어제 내가 찍은 시구녀 사진이었다.
“네, 어제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혹시 몰라서 저도 원본을 가지고 왔습니다.”
난 주머니에 넣어 놓은 USB를 꺼냈다.
“사진 보니까 프레스석이던데, 프리랜서 기자신가?”
“네? 아니요. 얼마 전에 학교 졸업하고 아직 별 다른 일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데 프레스석엔 어떻게?”
“아, 형이 관계자여서 얻었습니다. 막판 경기라 자리 몇 개 빈다며 가져다 줬어요.”
“흐음, 요즘은 그래?”
우상진 부장이 옆에 있는 윤성호 기자에게 말했다.
“야구 쪽은 아직도 접근이 어렵긴 한데 시즌 말 경기 쯤 돼서는 프레스증이 좀 남으니까 관계자들 통해서 들어올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뭐 아무튼 할 말은 그게 아니고 자네가 찍은 이 사진 말인데, 우리가 좀 써도 되나 해서 말이지. 어딜 봐도 이것보다 더 좋은 사진은 찾을 수가 없더군. 그래도 인터넷 쪽에 기사 올리려면 잘 나온 사진이 필요해서 말이야. 인터뷰를 할 생각인데 자네 사진도 덧붙이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화보가 아니고서야 연예인 사진은 저한테 초상권이 없지 않나요? 본인한테 있는 걸로 아는데.”
“응, 그렇지. 그래도 자네 사진이 워낙 화제가 되니까 막 가져다 쓰면 욕먹기 딱 좋거든. 섭섭지 않게 사진료도 주지.”
“전 괜찮습니다.”
“자네가 괜찮다면 다른 사진도 우리가 쓰고 싶네.”
“아, 여기 오면서 인터넷 기사 보니까 다른 데도 제 사진 쓴 곳이 있던데 상관없나요?”
“자네 사진을 무단으로 가져다 쓴 인터넷 언론이 좀 있는 건 알아. 겸사겸사 그 녀석들 엿 좀 먹이고 사진 내리게 해야지. 자 이건 어제 자네가 찍은 사진들 값이네. 확인하게나.”
봉투를 확인해 보니 수많은 신사임당님이 춤을 추고 계셨다. 생각보다 많다!
“생각보다 많네요?!”
“뭐 값어치 있는 사진이니까. 내 마음에 들기도 했고. 사진 문제는 이쯤하고 자네 지금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럼 앞으로 뭐할 생각인가?”
뭐랄까 친척 어른신이 자주 물어보는 말 같다.
“지금은 스포츠 사진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부장은 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쪽 분야에서 오래있던 사람으로서 나쁜 얘기와 좋은 얘기를 하나씩 해주고 싶군. 우선 자네가 되고 싶어 하는 스포츠 사진기자라는 직업은 얼마 뒤 없어질 게 분명하네. 자네도 알겠지만 스포츠 잡지는 거의 다 폐간 수순이고 그나마 인터넷 쪽이 버티고 있긴 한데 무너질 것이 뻔해. 특히 활동적인 분야가 이쪽인데 사람들은 사진보다는 생생한 영상을 더 원하고 있거든. 인터넷 발달로 사진 대신 영상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그리 멀지 않는 일이 될 거야. 자네가 내 조카라면 난 이 길엔 얼씬도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네.”
“아··”
“사진 쪽은 시장자체가 작고 활용할 수 있는 분야도 제한적인데다가 전문적으로 배우려면 대학교가 아니라 전문사진작가 밑에서 인턴이나 어시스턴트로 일해야 된다는 건 기본이야. 더욱이 사진기술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인터넷에서 다 배울 수 있지. 사진 산업 자체가 인원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도 않은 탓이 커. 대부분의 경우 사진 찍는 사람은 단 한명만 필요한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렇··죠.”
“스포츠 사진기자라는 직업군은 사라질 거야. 지금도 줄어드는 추세지. 스포츠 사진기자 뿐만 아니라 모든 사진기자가 위험하지. 지금 회사가 원하는 인재는 사진에다가 영상 및 디자인도 할 수 있는 인재야. 자네 사진 말고 다른 기술은 있나?”
“없는 것 같네요··”
“좋은 얘기를 하자면 자네 사진은 좀 특별해. 미래엔 쓸 일이 없을지 몰라도 어제 찍은 사진 같은 건 우리가 지금 충분히 써먹을 수 있지. 그래서 말인데 일단 자네 우리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지 않겠나?”
“네? 프리랜서요?“
“몇 장 되지 않지만 난 자네 사진 괜찮다고 생각하네. 그래서 내 개인적으로 지원을 좀 하는 거야. 경기장 프레스증이라던지 사진 초상권 보호는 얼마든지 해주겠네. 일단 쓸 만한 사진을 좀 가지고 와.”
“그럼 이곳에 채용 되는 건가요?”
“글쎄, 난 자네 사진이 좋은 거지 기자로서의 미래를 본 건 아니야. 공채 기간도 끝났고 더 이상 충원 인력은 없는 걸로 아네. 단지 자네가 사진을 더 찍기 편한 환경을 제공해주겠다는 거지.”
준비해 온 자기소개서는 내지도 못하게 생겼다. 아니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살면서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적도 없다. 단지 유일하게 배운 기술이 사진 찍는 법인데 이걸로 입에 풀칠은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희망 같은 것만 있는 거지. 난 아쉬움을 좀 지니고 회의실을 떠나려고 했다. 그 때 우상진 부장이 말했다.
“정 기자 끝자락이라도 잡고 싶으면 일단 자네가 찍은 사진엔 직접 문구를 써 넣어보는 것부터 시작해.”
***
길승우가 떠난 회의실엔 여전히 두 사람이 남아 있었다.
“저 친구 부장님이 엄청난 편의를 봐주신 거 알까 모르겠습니다. 주신 사진료는 좀 과했습니다.”
“하하, 좀 과했지. 그건 그렇고 저 친구는 편의 봐준 걸 모르는 거 같아. 뭐 상관 없지. 만약 내가 본 잠재력이 맞는다면 저 친구는 스포츠 사진 찍다가 다른 사진으로 넘어 갈 거야. 사진 보면 차라리 인물 쪽이야. 우리가 예술가 키울 것도 아니고 딱 이 정도 선만 해주자고. 혹시 알아? 나중에 크게 되면 도움 받을 일이 생길지. 솔직히 말해서 어제 저 친구가 찍은 사진 난 올해 들어서 가장 좋아보였어. 오늘 같은 사진을 더 가져다주면 더 바랄 게 없겠군.”
***
500만원. 많은지 적은지 모르겠지만 보통 내 20대 직장인 2~3달 월급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쳐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카메라를 믿고 사진을 찍어보는 수밖에는 없어 보인다.
[8등급 2단계 카운트가 5배 이상 초과 집계 되어 보너스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현재 남은 포인트는 67입니다.]어라, 언제 포인트가 이렇게 쌓였지? 이거 어떻게 분배를 좀 해보자.
[스포츠 사진 9등급] [축하드립니다. 능력치 상승으로 미션과 상관없이 7등급으로 2단계 상승합니다.] [축하드립니다. 7등급 달성으로 특성 상점이 열립니다. 각 특성은 포인트로 구입이 가능하며 등급에 따라 가질 수 있는 특성수가 달라집니다. 사용자님은 현재 1개의 특성을 착용하실 수 있으며 2개의 특성을 보유할 수 있습니다. 각 특성은 하루에 한 번 변경 가능합니다.]좋은 특성이 한 가득이다. 만약 모든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 그 적다는 사진기자로 성공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특성의 포인트는 50부터 200까지 다양했다. 별로 쓸모 없어보이는 보다 고르지 않은 특성이 훨씬 좋아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일단은 포인트도 없고 당장 쓸 일도 없으니 사진을 찍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골라야겠다. 내일 역시 야구장으로 출근이다. 좋은 사진을 찍어서 치킨값이라도 벌어봐야겠다.
그 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핸드폰엔 ‘정아연’이란 이름이 떠있었다. 이 애가 무슨 일이지?
“선배, 바빠요?”
“아니. 왜?”
“지금 포털 메인에 뜬 사진 혹시 선배에요? 아니 사진이 길승우로 되어 있어서요. 선배 이름 흔한 이름은 아니잖아요.”
“어? 잠깐만.”
[8등급 2단계 카운트가 10배 이상 초과 집계 되어 보너스 포인트가 주어집니다.]확인은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포털 메인에 뜬 사진은 내 것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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