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34
36화 아티스트
난 녹화 전 화장대에 앉아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다. 기획사 소속 분이 해주셨는데 연신 ‘피부 관리 좀 하세요’, ‘지금 좋은 편이긴 한데 나빠지고 있는 게 눈에 보여요’, ‘얼굴이 건조하니까 수분크림 발라 주시고요’ 라고 말을 하고 있다. 난 이 또한 끝나리라 생각하며 눈을 감고 아티스트의 손길에 온몸을 맡겼다.
실질적인 녹화는 내일이다. 오늘은 나만 방송사에 와서 본방송에 사용될 녹화분을 찍기 위해 이곳으로 와있다. 전에 사전 미팅 때 말했던 ‘MC 사진 찍어보기’란 아이디어를 좀 더 구체화 시켜 제대로 된 장소에서 제대로 된 분장을 하고 변한 모습을 찍는 컨셉으로 바뀐 것이다. 이 사실을 마실장님이 내게 전했고, 난 준비된 상태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해 제안을 받아들였다.
“주옥선 씨도 준비됐답니다.”
오늘 분량은 보조 MC 두 분의 사진 촬영이다. 두 분 다 코미디언으로 한 분은 여성 코미디언 주옥선 씨, 한 분은 남성 코미디언 고경진 씨다. 두 분 다 미남미녀는 아니다. 여성분은 살집이 좀 있으시고 동네 아줌마 같은 스타일이시다.
“반갑습니다.”
발음이 좀 이상한 데다가 얼굴 형태가 변했다. 대체 이건 뭘 어떻게 했기에··
“어머, 말씀하시면 안 돼요. 얼굴 변한단 말이에요.”
내가 멍한 표정으로 옥선 씨의 얼굴을 바라보자 아티스트 분이 웃으면서 말했다.
“테이프로 얼굴을 좀 당겼어요. 감쪽같죠?”
메이크업 아티스트 분이 별거 아니라는 듯 내게 말했다. 아니 지금 테이프가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얼굴이 그 분이 아니야. 사람의 얼굴에 무슨 짓을 한 거냐!
이대로 방송에 나가도 화제가 만발할 것 같다. 괜히 아티스트란 말이 붙는 게 아니다 이 정도면 장인급이시지. 화장 여자는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예시가 눈앞에 있다. 난 옥선 씨의 매니저분이 컨셉에 대해 설명하신 것을 듣고 대답했다.
“음, 찍고 싶은 사진 컨셉은 샤워실에서 나와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는 거네요.”
“네, 옥선 씨가 평소 생활하는 모습 속에서 섹시함을 찾고 싶다고 하셔서.”
옥선 씨도 자신의 변장이 만족스러운지 의욕이 넘쳐있는 상태다. 소파에서 자신감 있게 포즈를 취하고 계신다. 난 카메라를 들고 렌즈로 보이는 옥선 씨의 눈과 시선을 맞춘 뒤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몇 장 찍어보니 문제점이 나타났다.
“저기 다리 좀 가릴 수 있겠어요?”
“이런 식으로요?”
“음, 안 되겠네요. 이렇게 수평으로 찍기에는 종아리 부분이 너무 튀어서 이상한 사진이 나올 것 같아요. 그리고 샤워 가운도 좀 어색한데.”
뭔가 더 좋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은 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옥선 씨의 매니저분이 내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좀 이상한가요? 하긴 몇 년을 같이 있던 저도 어색하네요. 쟤는 샤워하고 나온 컨셉이면 옷 좀 내리지 뭘 저렇게 싸매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제가 말해봤는데 살쪄서 부끄럽다고 하시네요. 굵은 목이 콤플렉스라고··”
아티스트 분이 매니저 분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난 입을 열었다.
“음, 목이 콤플렉스면 목이 나오지 않는 각도로 찍어볼게요. 대신 그 뭐지? 쇄골 쪽에 메이크업 좀 해주세요. 하이앵글로 찍을 생각이에요. 저 촬영용 사다리 같은 거 가져다주실 수 있나요?”
또 한 번 메이크업이 끝나고 난 사다리 위로 올라가 카메라를 들었다.
“옥선 씨, 시선 카메라를 향하세요. 고개 너무 높게 들지 마시고. 고개를 오른쪽은 약간·· 좋아요. 움직이지 마세요. 손이 조금 어색해요. 하하, 그렇다고 그렇게 펴면 더 이상해요. 안 되겠다. 손에 뭐 쥐여주실 것 좀 가져다주세요.”
갸름해진 얼굴에 비해 통통한 손이 눈에 띄었다. 아티스트 분이 센스 있게 어디선가 와인 잔을 가져다주셨다. 와인 잔 덕분에 손이 좀 가려졌다. 지금이 셔터를 누를 때다.
[과 두 개의 특성이 순간 융합되어 커다란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등급을 초과한 사진이 찍혀 카운트가 초과 집계됩니다.]등급을 초과한 사진만 나와도 감지덕지할 텐데 엄청 좋은 사진이 찍혔나 보다. 난 즉시 카메라를 확인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느낀 점은 절대로 사진을 믿고 사람의 외모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
다음날, 난 또다시 아티스트 분에게 피부 관리의 소중함을 배우며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다.
“러버걸스 도착했습니다!”
문 밖에서 스탭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도 스케줄 때문에 늦게 되면 어쩔지 고민하더니 다행히 녹화시간을 충분히 남겨놓고 도착한 모양이다. 갑자기 문이 덜컥 열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왔다.
“와, 오빠 연예인 같아요. 그럴듯하다.”
“근데 배우 쪽은 아닌 듯··”
“어머, 얘는 말을 그렇게 하니. 배우도 여러 유형이 있는 거 몰라?”
어디선가 메이크업을 다 마친 멤버들이 우르르 내가 있는 곳으로 몰려오며 한마디씩 한다. 내가 알기로는 대기실이 따로 있는 거로 아는데 왜 여기서 이러고들 있는지 모르겠다.
“오빠, 우리 녹화 나가기 전에 잘될 거라고 한마디만 해줘요.”
“공중파 예능 처음인데 떨려요.”
“준비는 많이 했는데 왜 이렇게 불안한지 모르겠어요.”
나 역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난 방송 자체가 처음이란다. 내 기분은 어떻겠니.”
보모가 된 기분이 이런 거구나. 마실장님 뭐 하고 있습니까. 도움 좀 주세요.
“저기, 우리 애들이 많이 불안해하고 있으니까 뭐라도 한마디··”
결국 내가 ‘다 잘 될 거야’라고 녹화 시간 전까지 몇 번이나 말해야 했다. 토크쇼 은 5년 째 하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었다. 메인 MC 두 분과 보조 MC 두 분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인데 1부는 알파벳 순서대로 MC가 질문하면 게스트가 대답을 하고 2부에서는 게임이나 상황극을 펼치는 컨셉이었다.
시작은 무난했다. A는 매력(attraction)이었다. 몇몇 멤버들에게 각자의 매력이 뭐냐고 물어보면 매력 어필을 하는 행동을 취하거나 얘기를 하는 식이었다. B는 여자들이 나오면 늘 그렇듯 남자친구(boy friend)에 관해 물었다. 내 차례가 온 것은 H에 와서였다. 메인 MC 최일한 씨가 입을 열었다.
“자, H. 러버걸스가 이 자리에 오르게 해준 많은 Helper 분들이 계셨죠. 그중 가장 도움을 준 분으로 길승우 사진작가님을 뽑으셨는데 이유가 있나요?”
모두의 시선이 방청석에 있는 내게 모였다.
“이번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싱글 앨범을 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불러주는 곳도 없고, 음원 순위에도 못 들고 해서 우리는 지난날들처럼 이번에도 실패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때 우리를 구원해주신 게 길승우 작가님의 사진 한 장이었어요.”
효미가 마이크를 잡더니 청아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했다.
“그 사진이 이거죠?”
보조 MC 고경진이 크게 인쇄된 한 장의 사진을 손에 들며 말했다. 음악뱅크 리허설 때 내가 찍은 사진이 보였다. 스쿨룩을 입고 웃으면서 손을 내민 사진이었다.
“이런 말씀하긴 그런데 사진이 실물보다 너무 잘 나왔네요.”
“옥선 씨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좀 있다가 모두의 반발이 있을 것 같은데.”
주옥선의 말에 고경진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메인 MC 두 분과 러버걸스 멤버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눈만 껌뻑이고 계신다. 효미도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 사진 덕분에 팬들이 늘어나고 불러주는 곳도 생겨서 스케줄을 이어나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노래 자체는 뜨지 못해서 다음을 기약하려고 할 때 길승우 작가님이 또 사진을 찍어주셨어요.”
“그 사진은 자료 화면으로 보도록 하죠.”
스튜디오에 있는 대형 화면엔 러버걸스의 뮤직비디오가 나왔다. 비디오를 보는 러버걸스 멤버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뭐가 생각나는지 울먹이는 멤버도 있고 살며시 미소를 짓는 멤버가 있는가 하면 안도의 한숨을 쉬는 멤버도 있었다.
“네, 바로 저 사진이 너무 좋아서 대표님이 작년에 녹음했던 곡에 사진만 넣어서 뮤직비디오하고 음원을 공개했어요. 그런데 그 곡을 생각보다 많은 분이 사랑해주셔서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됐죠.”
“자, 그럼 이 사진을 찍은 화제의 사진작가 길승우 씨를 소개합니다.”
난 박수소리와 함께 방청석에서 나와 MC 분들과 러버걸스 멤버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았다. 내가 소개를 간단히 마치자 하미연 MC가 입을 열었다.
“지금 나이가 24살이세요. 보통 이 나이면 학교에 다니거나 군대를 다닐 나인데 일찍 자리를 잡으셨네요.”
“아직 자리를 잡은 건 아닙니다. 지금은 정만종 선생님 어시스턴트를 하면서 많이 배우는 중입니다.”
“어떻게 러버걸스의 사진을 찍게 됐나요?”
“처음에 언론사에서 일했거든요. 거기서 일감을 받아서 가게 됐는데 생각보다 좋은 사진이 나온 거죠. 나중에 찍은 뮤직비디오 사진은 러버걸스 팬인 아는 형 덕분에 찍게 됐습니다.”
“러버걸스 분들은 길승우 작가님을 소개해 주신, 그분에게도 감사해야겠어요.”
MC의 말에 막내 라인 서애가 입을 열었다.
“샤이보이님! 정말 고마워요. 이번 크리스마스 때 선물 보내드릴게요.”
상우 형의 닉네임이 전 국민에게 소개되는 역사적인 날이다. 그때 가만히 있던 주옥선 씨가 입을 열었다.
“자, 그래서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사진은 얼마나 위대한가!”
“응? 처음 듣는데 그건 뭔가요?”
“에, 경진 씨하고 제가 메이크업을 하고 평소 가장 찍고 싶은 컨셉으로 사진을 찍어봤어요. 어제저녁 늦게 우리의 부탁을 길승우 작가님이 특별히 들어주셨는데 어서 빨리 그 결과물을 보여드리고 싶네요.”
“참고로 전 1시간 이내로 메이크업을 끝냈고요. 옥선 씨는 거의 두 시간 넘게 메이크업, 아니 분장을 했습니다.”
“야! 그건 비밀로 하자고 했잖아.”
주옥선의 고함에 모두가 웃었다. 최일한 MC가 낄낄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원판 불변의 법칙이라는 게 있는데 큰 기대는 못 하겠네요.”
“어머, 아직도 일한 씨는 여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네요. 공들인 메이크업은 사람을 바꿀 수 있답니다.”
최일한 MC의 말에 하미연 MC가 대답했다.
“자, 그럼 주옥선 씨의 사진 보겠습니다.”
최일한 MC의 말에 대형화면 가득 주옥선의 사진이 나오고 녹화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으와와!!! 말도 안 돼.”
“어머머! 이게 웬일이야!”
“꺄악!”
비명이 한바탕 지나가자 녹화장은 정적에 빠졌다. 최일한 MC가 겨우 정신을 차리며 입을 열었다. 화면에는 흘러내린 샤워 가운을 입고 고혹적인 시선으로 위를 올려다보는 주옥선 씨의 모습이 보였다.
“아, 저 지금 온몸에 소름이 돋아서 뭐라고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는데요. 모두가 궁금해할 질문 하나만 해봅시다. 본인 맞아요?”
“그럼요. 증인이 수두룩하잖아요.”
“아니 근데 얼굴도 그렇고, 몸도 그렇고 보정을 얼마나 한 겁니까?”
내가 한마디 해야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분의 공이 크다는 것을 알려줘야겠다 싶었다.
“저, 사진은 원본 그대로입니다. 조명 때문에 영향이 있긴 하겠지만··”
“네? 이게 원본이라고요?”
최일한 MC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진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 얼굴은 어떻게 된 겁니까? 볼살 다 어디로 갔어요? 그리고 옥선 씨가 이런 몸매를 가지고 있다고?”
“히히, 얼굴은 테이프로 좀 잡아당겼어요. 그리고 자세히 보면 살찐 부분은 다 가리거나 보이지 않게 찍으셔서 그렇게 보이는 거죠.”
주옥선의 말에 다시 한번 녹화장은 정적에 빠졌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천천히 나를 향했다. 그들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어떻게 한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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