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58
60화 겨울 왕국으로 (2)
가완이와 에브리아의 촬영이 끝나자 VJ가 다가와 내게 물었다.
“이번 화보 컨셉은 정확히 뭔가요?”
“그림 동화에 여섯 마리 백조라는 동화가 있어요. 알려지기는 안데르센이 그림 형제의 동화를 기초 삼아 다시 쓴 백조 왕자가 유명하죠. 음, 저는 이걸 참조해서 다섯 마리 백조 정도라는 동화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동화를 배경으로 화보집을 만드는 거군요.”
“네 처음에 제가 받은 화보 컨셉은 겨울 왕자라는 주제를 매력적으로 찍어 달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동화를 참조해 스토리텔링을 넣어서 화보를 구성하게 됐습니다. 몽환적이면서 로맨틱한 화보가 될 것 같아요.”
“저 여자분의 역할은 뭡니까?”
“동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여자분은 왕자들의 유일한 여동생이자 저주를 풀 유일한 사람이죠. 지금 찍는 장면은 왕자들이 차례차례 여동생을 위험에서 구하는 장면이에요.”
어째 인터뷰가 나한테 몰리는 기분이다. 난 간단히 대답하고 촬영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점점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난 다음 차례인 유군에게 입을 열었다.
“강대한 뭔가가 오고 있지만 혼자서 막겠다는 의지가 섞인 얼굴로. 포즈는 약속한 대로.”
“눈은 카메라로. 입 벌리지 말고. 표정 좋다. 비장한 표정 좋아. 이번에는 약간 거만한 표정으로 가자. 평소에 네가 재민이에게 보여주는 눈빛 정도면 좋겠어.”
난 카메라를 든 채로 유군의 옆에 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달려!”
난 유군과 나란히 뛰며 숲을 배경으로 강아지처럼 뛰는 유군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이고, 힘들다.”
정적인 모습만 찍으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중간중간 역동적인 포즈를 넣었는데 내 욕심인 것 같다. 오늘 촬영 중 가장 고생할 사람은 재민이. 재민이는 스텝들이 만든 물웅덩이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왜 나만 이런 걸 시키는 거야··.”
왜 시키긴, 가위바위보에서 졌으니까 네가 하고 있는 거지. 투덜투덜 불만 섞인 말을 하던 재민이는 큐 사인과 동시에 물웅덩이를 밟고 앞으로 뛰었다. 물이 튀면서 앞으로 뛰는 모습을 찍는 것이 목표. 첫 촬영은 실패로 돌아갔다. 난 재민이를 불러 입을 열었다.
“뭔지는 알겠지? 내가 잘 찍어볼 테니까, 표정에 신경 좀 쓰자. 그리고 멀리뛰기 한다고 생각해. 제자리에서 점프하지 말고.”
네 번째 만에 겨우 한 컷을 건져냈다. 난 됐다는 사인을 보냈고 물 범벅이 된 재민이는 몸을 오들오들 떨며 차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가장 난항이 예고됐던 사진 촬영을 마쳐서 이제 좀 안심이 된다.
“신호야 손에서 벽이 나온다고 생각해. 웃긴 왜 웃냐·· 너희들이 생각한 능력이잖아. 그렇지. 판토마임 하듯이 벽이 있다고 생각하고 여유롭게 웃고. 시선 빗나간다. 여기 봐 줘.”
곧이어 신호의 사진을 찍고 드디어 마지막 차혁이의 차례가 왔다. 다행히 촬영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있다.
“차혁아 가슴 좀 풀어헤치고 나무에 기대있어. 여유로운 표정으로. 왼손에 들고 있는 수정구는 살짝 앞으로 내밀고”
마침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난 차혁이에게 다가가 셔터를 눌렀다.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바라봐. 좋다. 이번에는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카메라 렌즈를 향해서.”
개인 컷이 끝나자 오늘 촬영의 하이라이트를 찍기 위해 소품팀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VJ가 내게로 또 다가와 물었다.
“이제 뭐 찍는 거죠?”
“둥지에 누워있는 컨셉의 사진을 찍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언루트 멤버들이 소품으로 만든 둥지에 누워있는 사진을 찍을 예정이에요.”
곧 커다란 크기의 새 둥지 같은 모형이 만들어졌다. 난 이동식 사다리를 이용해 위로 올라가 카메라를 들었다. 언루트 멤버들도 옷을 갈아입은 뒤에 약속한 대로 자리를 잡고 눕기 시작했다.
“형, 바닥이 말 그대로 얼음장이니까 빨리 부탁해요.”
“무대에서 고생하는 게 낫지. 추워·· 너무 추워.”
난 동생들의 투정에 입을 열었다.
“빨리 찍고 쉬자. 나도 힘들다. 빛 좀 잘 받게 포즈 좀 수정할게.”
난 조명을 손본 뒤에 포즈도 수정한 다음 사다리로 올라갔다. 혹시나 흔들릴까 봐 신 실장님과 스텝들이 사다리를 붙잡고 계셨다. 둥지 안에 자연스럽게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언루트의 사진을 찍으며 입을 열었다.
“가완아 얼굴이 너무 안 보인다. 조금 돌리고, 신호는 너무 정면이야. 추운 건 알겠는데 너무 추위를 참는 얼굴이다. 조금 풀면 안 될까? 오, 좋다. 지금 다들 좋으니까 그대로 있어 줘.”
이제 마지막 포즈다. 무릎을 꿇은 채 하늘을 응시하는 사진. 언루트 동생들의 요청으로 들어가는 사진이다. 솔직히 이 포즈는 멋지다기보다는 유치함에 가까운데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사진을 몇 장 찍고는 난 스텝에게 말을 했다.
“바람 부는 방향으로 뜨거운 물 좀 부어주세요. 네, 안개 효과 좀 만들어 보게요.”
겨우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졌다. 그렇게 사진을 성공적으로 찍은 뒤에 난 크게 외쳤다.
“끝났다! 가서 쉬자!”
“예에에에에!”
모두의 환호 속에 첫 번째 촬영은 마무리됐다. 카메라를 챙기고 차로 돌아가는데 VJ분이 말을 걸었다.
“오늘 찍은 결과에 만족하세요?”
“뭐 사진사들이 다들 그렇겠지만 아쉬움은 좀 남죠. 그래도 제한되고 낯선 상황 속에서 좋은 사진을 많이 건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아쉬움이 남아요?”
“제가 생각한 것만큼 포즈가 나오지 않아서 힘들었어요. 충분히 준비했는데도 겨우 기준선을 넘은 것 같아서 아쉽네요. 제가 아직 배우는 중이라 그렇습니다. 언루트 팬 여러분 동생들은 정말 잘해줬어요.”
“아, 너무 팬들을 의식한 발언 아닌가요?”
난 인터뷰를 마치고 차에 올라탔다. 여기는 4시만 되면 일몰이 온다는 말이 맞는 듯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신 실장님이 언루트 멤버들과 통화를 하더니 내게 물었다.
“일단 우리는 근처 시장에 가서 좀 돌아보고 거기서 뭘 먹을 생각입니다. 길 작가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서요. 여기 야경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해서 한번 찍어보고 싶네요.”
“그럼, 이 친구 데리고 가십시오. 교통도 불편할텐데.”
신 실장은 운전을 하고 있는 스텝을 가리키며 말을 했다. 하지만 난 봤다. 스텝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지는 모습을 말이다.
“그냥, 여행 기분도 느낄 겸 지하철 타고 갈게요. 숙소 위치하고 크게 떨어져 있지 않으니까 괜찮을 겁니다.”
에브리아가 이제 어디로 가냐고 내게 물었다.
“일부는 근처 시장으로 가서 촬영할 거고, 나머지 스텝들은 일찍 숙소로 돌아갈 예정인가 봐. 나? 나는 근처에 있는 산 위에서 야경 좀 찍으려고. 어? 따라온다고? 오늘 힘든데 숙소에서 쉬는 게 낫지 않아?”
촬영이 힘들었으니 쉬라는 내 말에도 에브리아는 요지부동이다. 따라와서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어서 난 에브리아와 함께 모이와야마 전망대로 가기로 했다.
사실상 언어의 압박이 크게 없는 내게 있어서 전망대는 찾아가기 어려운 곳은 아니었다. 가는 길에 에브리아는 자신의 컷이 너무 적다며 투정을 부렸다.
“에이 이해해줘. 언루트 화보인데 거기에 네 사진 많이 들어가면 뭐에 쓰겠어. 한국에 가면 나랑 같이 작업하자.”
난 한국에 돌아가서 어떤 사진을 찍을 건지 에브리아에게 말해줬고 그제야 조금 기분이 풀린 그녀는 내 곁에 붙어 이국의 풍경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일본의 신3대 야경이라고 하는데 대체 어떤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질지 두근댔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으로 출발했다. 그녀는 케이블카가 처음이라며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작게 꺄악거리고 있다. 같이 케이블카를 탄 노부부가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여기 야경이 멋지다고 해서 구경 왔어요. 아, 연인은 아니에요. 이분은 모델이고 전 사진사입니다.”
정상에 오르자 삿포로의 야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계획도시답게 나란히 세워진 건물들이 빛을 내며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도시의 빛에 밤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의 하얀 구름이 눈에 보였다. 산 정상이라 바람이 꽤 불었지만, 오히려 그 소리가 불빛과 조화된 느낌이다. 난 가지고 온 삼각대를 세우고 야경을 촬영했다.
“맞아, 정말 멋지다. 근데 난 얼마 전에 선배랑 갔던 전망대에서 본 서울 풍경이 더 좋아.”
에브리아는 촬영하는 날 보고 있다가 전망대에 세워진 종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종을 울리자 청아한 종소리가 전망대에 울려 퍼졌다. 그곳으로 다가가자 걸려있는 자물쇠가 눈에 보여 웃고 말았다. 진짜 이런 건 어디를 가나 있는 거 같아.
좋은 풍경 사진을 찍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에브리아가 피곤한지 내 어깨에 기대 졸고 있었다. 내일도 오늘처럼 좋은 사진을 찍길 기대하며 난 숙소로 향했다.
***
“배신자.”
다음 날 아침에 날 본 재민이가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왜 그래?”
“어떻게 우릴 놔두고 다른 곳에 가서 놀 수 있어요! 그것도 모델만 데리고. 와, 난 형이 이럴 줄은 정말 몰랐어.”
“놀기는 야경 찍으러 전망대 간 건데 에브리아가 따라서 온 거야.”
“아, 몰라 몰라. 우리는 이렇게 고생하는데 형은 연애나 하고. 어제 시장에서 갑자기 저녁 식사 놓고 게임을 하자고 해서 저 굶은 거 알아요? 형이 실장님한테 한 마디만 해줬으면 거기서 굶지는 않는 건데.”
아침부터 재민이가 시비를 걸고 있다. 듣자 하니 어제 방송사의 제안으로 저녁을 놓고 게임을 한 모양이다. 얘들 휴식 차 보낸다고 했는데 방송사가 끼어드니까 좀 어그러진 느낌이 든다.
“알겠어. 오늘부터는 꼭 식사는 챙겨달라고 말할게. 촬영이 중요하지 방송이 중요하냐.”
“제발 실장님한테 좀 말해줘요.”
난 호텔 로비에서 징징거리는 재민이를 달랬다. 오늘은 운하로 유명한 오타루로 갈 예정이었다. 일본 영화의 레전드인 의 촬영이 이뤄진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실외 촬영과 실내 촬영을 마치면 일단 화보에 관련된 촬영은 끝이다.
로비에서 머물고 있는데 VJ가 다가와 물었다.
“어제 언루트의 말로는 겨울왕자 컨셉을 생각하신 게 작가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죠?”
“아, 노래를 듣고 컨셉이 떠올랐어요. 란 노래를 듣고 어떤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다 보니까 나오더라고요.”
“멤버들의 반응은요?”
“유치하다, 이상하다, 오글거린다며 부정적이었죠. 다행히 동생들이 착해서 제 의지대로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촬영 컨셉은 뭔가요?”
“운하를 배경으로 동생들의 멋진 모습을 찍을 예정이고요. 지역 협조하에 이국적인 풍경이 물씬 풍기는 실내 촬영을 할 예정입니다.”
“어제 모델분과 몰래 데이트를 했다는 증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크으, 그냥 야경 찍으러 간 겁니다.”
난 인터뷰를 마치고 차에 몸을 실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오타루에 있는 거대한 저택이었다. 화보 촬영을 위해 빌린 곳으로 정원도 크고 외형도 독특했다. 일본 저택에 서양색이 스며든 느낌이랄까. 언루트의 옷과 저택의 비균형적인 면이 독특하게 다가올 거라고 담당자분이 말씀은 하셨는데 일단 찍어봐야 할 것 같다.
“자, 촬영 시작합니다.”
오늘만 제대로 찍으면 끝난다는 생각에 난 모두를 향해 힘차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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