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7
8화 좀 빌리자
귓가에서 여자 들이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 굉장히 피곤한데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침대 위에 놓여 있을 듯 한 리모컨을 찾는데 이불의 감촉이 낯설었다. 그리고 뭔가 냄새가 난다. 우리 집 이불이 아닌데. 난 그제야 이곳이 성태의 집인 것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뜨자 TV에서 잘가꾼 아주머니들이 깔깔대면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TV앞에는 라면을 후루룩 거리며 흐뭇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내 친구 성태가 앉아 있었다. 성태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 친구여. 지금 일어났는가.”
“몇 시냐?”
“8시.”
“아씨, 어제 밤늦게까지 일했는데 좀 더 자면 안 되냐?”
“오늘 8시가 지나면 이 프로를 볼 수가 없어서. 시청률 보아하니 더 이상의 재방은 없을 것 같아.”
“무슨 프로그램인데?”
“리메리지 카페라는 프로그램이야. 아, 정말 좋은 프로그램인데 이번 달 내로 폐지된다고 한다.”
보아하니 이혼한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단체 소개팅을 하는 프로그램 같았다. 연상을 좋아하는 성태의 취향에 딱 맞아 보였다.
“아, 맞아. 오늘 눈이 일찍 떠져서 작업을 마쳤지. 음, 본래 연하에는 취미는 없지만 그 처자들은 내게 또 다른 영감을 주더군.”
난 엉기적엉기적 그 녀석의 노트북으로 기어가 기사라고 작성한 그 녀석의 글과 내 사진을 훑어봤다. 이것도 센데. 하아, 너무 좀 그렇다.
“그리고 어제 너와 내가 합작한 기사는 지금 포털 랭킹 3위를 달리고 있더군.”
“아, 정말?! 그렇게 높아?”
“어제 새벽엔 1위까지 했어. 내가 스샷을 찍었지. 뭐 워낙 특이한 사건이었으니 화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는 생각했는데 1위까지 할 줄은 몰랐어.”
나 역시 그랬다. 어제 편집부에 완성한 기사를 전송하면서도 제목부터 내용까지 모두 다 올라갈 줄은 몰랐었다. 솔직히 항의 전화라도 올 줄 알았는데 기우였다. 전화가 오긴 왔는데 오히려 윤기자님은 ‘크하하학, 이거 뭐냐? 야 너 진짜 골 때리는 놈이구나!’라는 말씀을 남겨주셨다. 나의 편집 방향과는 정말로 다르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강조해야 할까? 지금 이 기사도 변태스럽기 짝이 없다. 어제는 경기 해프닝을 재미있게 표현했다는 핑계라도 있는데 이 기사는 빼박 변태 확정 기사다.
“야, 근데 이거 너무 변태처럼 보이지 않을까?”
“네가 준 사진을 봤더니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던데.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너 사진 좀 찍더라. 모처럼 내 창작 욕구를 자극시키는 좋은 사진들이었어. 이거 말고도 몇 개 더 쓰고 싶은 게 많은데 아쉬워.”
“네 창작 욕구를 건드렸다면 내 사진이 제대로 변태적이라는 소리구나. 하아, 이거 신문사에 보내면 욕먹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너 어제 사진 찍을 때 집중력 굉장하긴 하더라. 라운드 걸 애들이 ‘아래에서 찍지 마세요.’라고 말하는데도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 마구 찍어대던데?‘
“으악, 그런 말을 했어? 난 못 들었지.”
그래 난 어제 사진을 찍을 때 6등급이 됐다. 그래서 등급 상승으로 얻은 아이템 을 썼었다.
내가 찝찝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자 성태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야, 욕먹는 걸로 걱정하자면 어제 올린 게 더 이상했어. 그런데 오히려 칭찬하면서 올려줬잖아. 이번에도 괜찮을 거야.”
“그래도 그건 경기 모습이었잖아. 이건 경기도 아니고 그냥 라운드 걸 모습인데. 차라리 다른 경기 장면 편집해서 올리는 게 어때?”
“불가! 누군지도 모르는 남정네가 피떡이 되어가는 모습을 누가 보고 싶어 하냐? 남자들이 원하는 건 바로 이런 거야!”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나한테 기사 전체를 완성하라고 한 신문사를 욕해야지 왜 날 욕을 하겠냐. 난 일한지 한 달도 안 된 프리랜서 사진기사인데. 난 그렇게 편하게 마음을 먹고 몇 글자를 더 추가한 뒤 기사를 전송했다.
1. 어제 저녁 서울 강남구민회관에서 펼쳐진 ‘Battle FC’ 대회를 더욱 빛나게 만든 팔등신 미녀들이 있습니다.
2. 이번 주인공들은 이날 라운드걸로 활동한 김은서(왼쪽)양과 권정아(오른쪽)양입니다.
3. 카메라가 위치한 건 링 아래편, 그래서 ‘불가피하게’ 로우 앵글로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링 위에서 아름다운 몸매를 뽐낸 김은서양.
4. 링을 빠져 나와야 하는 데, 로우 앵글로 찍고 있는 절 경계하는지 줄을 잡고 머뭇거립니다. 하지만 링 위에 언제까지 머물 수는 없는 법.
5. 결국…
6. 부끄러운 듯 절 쏘아보는 김은서양. 오른손으로 중요부위를 가리며 링을 내려왔지만 김은서양의 손은 작았습니다.
7. (중략)
– 우웃 이런 각도는 너무 감사합니다.
– 요즘 스포츠오션 열 일 하네요. 이런 시도 좋습니다!~
– 이 경기 맨 앞자리 VIP석에서 봤는데, 라운드걸을 미친듯이 아래에서 찍으니까 참다못한 라운드걸이 “아래에서 찍지마세요”라고 했었는데 그 기자가 이 분이구나.
– 이 성님은 죽어서 천국갈겁니다.
– 처음엔 뭐 이런 정신나간 놈이 있나 했는데 기사를 다 내린 지금은.. 와..
– 이거 고소 안당함? 나야 좋지만 ㅎㅎ
– 스튜디오도 아니고, 스냅을 이 정도로 찍어내는데 모델들도 만족하고,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할거 같은데?
– 여자가 벗는다면 어디든 달려가 사진기 들이대는 이런 게 기자냐.
– 사진 달랑 한장 올리고 제목으로 낚는 기자들이나 욕해. 이 분의 기사는 장인정신이 살아 있는 작품이다.
난 집에 도착하고 기사를 살펴보았다. 걱정한 것보다는 악플이 많이 달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를 응원해주는 댓글들이 대부분이었다. 난 그 반응을 보면서 세상의 판단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욕을 먹어도 싸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훈훈한 반응이라니 눈물이 나려고 한다.
[스포츠 사진 6등급] [축하드립니다. 능력치 상승으로 미션과 상관없이 5등급으로 1단계 상승합니다.] [축하드립니다. 5등급 획득으로 시스템이 1차 업그레이드 됩니다. 업그레이드 된 시스템에서는 다른 사진을 선택할 수 있으며, 사진 판독 시스템, 전수 시스템 등이 언락됩니다. 업그레이드 시간은 24시간이며 그동안은 카메라의 사용이 중단됩니다.]“뭐지 이게?”
카메라는 다시 한 번 나를 놀라게 하고 있었다.
***
스포츠 오션 본사의 우상진 부장은 Battle FC의 대표라는 작자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 너무 하지 않소. 지금 사람들한테 우리 단체의 경기가 어떻게 인식되는 줄 아시오? 코메디요! 우리가 쌓아올릴 이미지가 엉망이 됐단 말이오. 내가 이런 꼴을 보자고 새로 단체를 신설한 게 아니오!”
“그, 저기.”
“그 경기 말고 다른 경기는 관중에게 어필할 수 있게 충분히 훌륭했소. 그런데 그 경기. 고작 그 단 한 경기의 해프닝을 당신네가 써제끼는 바람에 우리 단체의 이미지는 완전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소. 이번 일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겠소. 변호사를 써서 정식으로 고소할 거요!”
“참나.”
“지··지금 뭐라고 했소.”
“어이가 없어서 말이죠. 맘대로 하시죠. 그런데 그쪽 단체 홍보팀과 얘기는 하고 이렇게 전화하신 건가요?”
“누가 봐도 이건 분개할 일이오! 아침에 내가 이 기사를 보고 얼마나 분노했는지 당신은 몰라!”
“쯧쯧, 일단 홍보팀하고 얘기를 좀 하시고 전화를 하시지. 우리가 쓴 기사 때문에 당신네 단체가 얼마나 커다란 이득을 얻었는지 그 치들은 알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한국에서 최고라고 하는 격투기단체 Cage Fights에서 2주 전 경기를 가졌습니다. 그 경기 기사 중에 포털 스포츠 란에서 가장 높은 랭킹이 39위입니다. 라운드걸 사진이었죠. 그 다음이 45위, 예쁘장하게 생겨서 조금 인지도 있는 여자 선수가 경기에 져서 울먹거리는 사진이었습니다. 알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걔네들 홍보 엄청 열심히 하거든요. 어떻게든 미디어에 노출 시키려고 일부러 선수들이 막말하고 사건 일으키고 그럽니다. 라운드걸들도 유명 모델만 씁니다. 그런데도 대중들은 크게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당신네 단체들은 그런 노력 하나도 하지 않고 포털 사이트 1위하고 3위를 먹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기사마다 당신네 단체 언급해줬죠.”
“그래서 뭐!”
“이봐요,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 줄 모르면 당신은 당장 그 단체 접고 다른 일이나 알아보는 게 좋을 겁니다. 고소? 하려면 하세요.”
우상진 부장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동시에 누군가 캔커피를 하나 그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문화연예부 부장인 장광호였다.
“무슨 일이냐?”
“뭐 내가 꼭 일이 있어야 오냐?”
“응, 넌 아쉬운 소리할 때나 나한테 오지. 그래서 뭐야?”
“니네 요즘 잘나가더라? 우리 부서가 페이뷰를 책임져야 하는데 요사이 니네가 더 높다고 위에서 그러더라고.”
“또 오버하기는. 야 신경 쓸 거 없어. 다 한 때다.”
“아니야, 내가 그래서 포털에서 순위권에 있는 스포츠 쪽 기사 다 봤거든. 우연이 아니더라고. 특이한 애가 하나 들어온 것 같아서 말이야. 우리 직원이냐?”
“다 알면서 찔러보지 마. 대학교 갓 졸업한 프리랜서야.”
장광호는 만면에 미소를 띄면서 입을 열었다.
“좀 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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