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71
71화 후폭풍
광고회사 애드 코인즈의 대표 장현호는 광고 동향을 살펴보다가 시계를 보고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회의의 내용을 알고 있는 장현호는 저절로 지어지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번 주부터 나간 JR 자동차 광고의 평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회의실에 도착하자 부하직원이 일어나려고 했다.
“야, 내가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했지. 수직적인 분위기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가 없다고 말한 거로 기억하는데. 능력만 보여줘.”
그는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한국에 들어온 지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이렇게 수직적인 분위기로 몰고 가는 직원들에게는 아직도 불만이 많았다.
“서울경제신문에서 우리 광고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압축해서 말씀드리면 이번 JB 자동차 광고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하는 JR 자동차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국내 광고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였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다만 뭐?”
“브랜드 광고에 비해서 자동차 영상 광고는 자동차의 재창조를 통한 감동 전달을 시도했는데 재창조로 인한 이질감 때문에 진정성에서 아쉽다고 평가했습니다.”
그 말에 장현호는 아쉬움을 표하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브랜드 광고 말고 세 개의 자동차별 광고도 함께 찍었다. 세 개의 차종은 모두 역사가 짧고 인지도가 낮아 일단 차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인지도를 높이는데 중점을 둔 터라 어쩔 수가 없었다.
“브랜드 광고는 호평입니다. 국내광고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의미 있는 광고라고 평했습니다. 지면 광고 또한 영상에 나온 흥미, 공감, 감동 코드를 잘 버무려 소비자가 JR 자동차를 원하게 되었다는 평을 내렸습니다.”
“말을 바로 해야지. 솔직히 사진 때문에 브랜드 광고 새로 찍은 거잖아. 너희들은 모두 부끄러운 줄 알아야 돼. 나도 그렇고. 우리는 사진작가의 창조력에 기대서 이번 광고를 만들었다는 걸 잊지 마.”
그는 아쉬움을 표하며 스크린에 떠 있는 지면 광고를 보며 다시 입맛을 다졌다. 발표를 하던 직원이 입을 열었다.
“저, 그리고 광고가 나오면서 SNS 게시판에 우리 광고를 흉내 낸 사진들이 돌고 있습니다.”
“어떤 건데? 보여줄 수 있어?”
장현호가 흥미를 가지며 묻자 직원이 하나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장현호는 웃으면서도 얼굴을 찡그렸다.
“뭐야 이건? 지면 광고에 쓰인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문구 때문에 이런 사진이 나오는 거야? 참나 이해를 할 수가 없네.”
사진에는 한 여자가 엉덩이를 내밀고 있고, 사진 위에는 ‘진실’이라는 문구가 박혀있었다.
“남성 버전도 당연히 있고요, 강아지 버전, 고양이 버전 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막으라고 하면 막을 수나 있어?”
“그건 아닌데··.”
“부정적인 이미지도 아니고 굳이 막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이런 이미지가 어떻게 나왔나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홍보도 될 것 같고. 놔둬.”
그는 SNS 이미지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정말 사람들의 생각은 그조차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들어가지 않고 쭈뼛대는 직원을 보며 입을 열었다.
“뭐 할 말 있어?”
“저기 그분이 삼 일째 찾아오고 계십니다. 어떻게 할까요?”
장현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뭐가 그렇게 억울하다고 우리한테 계속 찾아오는 거야? 날 만나서 뭘 어쩌겠데? 알겠으니까, 나가면서 그 사람 여기로 데리고 와라.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이해를 못 하겠네.”
그가 투덜거리며 말하자 부하직원이 잽싸게 밖으로 나갔다. 그는 지면 광고를 다시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사진 덕분에 광고 카피가 더 빛날 수 있었다고 생각됐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회색 정장을 입은 노인 한 분이 천천히 걸어왔다.
“거 만나기 되게 힘들구만, 나 하형민이요.”
“거기 앉으시죠.”
장현호는 자리에 앉은 채 반대편 의자를 가리키며 말하자 그는 불쾌한 듯 입을 열었다.
“소문대로 예의가 없어. 일어나서 악수라도 해야 하지 않나?”
“다리도 아프고 별로 하고 싶지도 않네요. 뭐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온 겁니까?”
하형민은 ‘크흠’하며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 건너건너 들었소. 당신이 이제부터 지면 광고를 담당한다고 말이오.”
“네, 그렇습니다만.”
“난 JR 자동차 광고 사진을 20년 찍은 사람이오. 아직 손을 놓고 싶진 않아. 나이를 걱정할 필요는 없소. 사진은 나이만큼 성숙해지기 마련이니까. 그쪽하고 내가 접점이 없어서 이번 일을 함께 못한 거로 생각 돼서 말이오. 다시 나한테 광고를 맡겨줄 수는 없겠소?”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본다는 말도 없이 나오는 즉답에 하형민은 얼굴이 급격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장현호는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미 함께 손을 맞추고 있는 사진작가가 있습니다.”
“그게 대체 어떤 놈이오! 이름도 없는 녀석이라고 들었는데 JR 그룹의 이미지를 생각해야지.”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저 사진사님 광고사진 봤습니다. 많이 봤어요. 돌려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 사진들 형편없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하형민이 격분하며 소리치자 장현호가 그 모습을 한심하게 보며 말했다.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네요. 아니 이번 사진 보면서 느끼는 점 없었습니까?”
“봤어! 보고 나서 여기로 온 거야. 그딴 사진 하나도 대단하지 않잖아!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이었어. 기술적으로 보면 하자가 많은 사진이라고.”
어처구니없는 그의 말에 장현호는 조금 화가 났다.
“제가 보기엔 당신은 나이가 들수록 사진이 성숙해진 것이 아니라 고집이 세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지면 광고를 제 회사로 가지고 오려고 인맥을 통해서 아는 사람 데리고 온 건 맞아요. 그런데 왜 데리고 온 줄 아십니까?”
장현호가 눈빛을 바꾸며 하형민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의 손에는 신문이 들려있었다. 하형민은 그가 다가오자 조금 긴장했다. 장현호는 그의 앞에 신문을 펼쳤다. 신문에는 길승우가 찍은 JR 자동차의 전면 광고가 실려 있었다. 하형민이 겨우 입을 열었다.
“뭐··뭐야?”
“사진을 보고 수준 차이를 느껴보라고 데리고 온 거야. 위에서도 사진만 보고 교체를 허락해 줄 정도로 대단한 사진이라고 이게. 대체 뭘 믿고 여기까지 와서 행패를 부리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사진들을 못 알아볼 정도면 당신 안목은 끝장났다고 생각해.”
장현호는 하형민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살아있는 한 당신에게 기회가 갈 일은 없을 겁니다.”
“내··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야!”
“여긴 일개 사진작가의 협박에 무너질 정도로 약한 곳이 아닙니다.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하형민은 그의 말에 짐을 챙기고 이를 악문 채 밖으로 나갔다. 장현호는 혀를 차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스튜디오 일이 끝나고 나는 에브리아가 촬영하고 있는 곳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걸어가고 있는데 장현호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현호 감독··, 아 현호 형.”
– 그래, 기억하고 있구만. 다름이 아니라 다음 JR 자동차 광고 일정 나왔어.
“에? 계속 제가 찍어요?”
– 당연하지. 이번에 좋은 사진 찍어줘서 내가 살았다. 광고 못 봤어?
“보긴 했어요. 며칠 전에 아버지가 신문 보시는데 전면 광고로 저한테 보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잠에 취해서 커피를 마시는데, 내 사진이 보여서 뿜을 뻔 했었다.
– 밑에 포토그래퍼 길승우라고 박아줬어야 하는데 위에서 말이 나와서 그러지는 못했다. 대신에 보수 두둑하게 입금했으니까 확인해봐. 다음부터는 이름 넣을 수 있을 거야.
“아직 제가 명성이 부족하죠.”
– 실력은 충분하니까 상관없어. 다음번부터는 우리하고 컨셉 같이 짜자. 이번처럼 급하게 모든 걸 맡길 일은 없을 거야. 느긋하게 작업하자고. 소속사에 제안서 보냈어. 스케줄 확인하고 나중에 보자.
“고맙습니다. 큰일 맡겨주셔서 감사해요.”
– 하하, 내가 더 고맙지.
와, 이제 정식으로 JR 자동차 광고를 찍게 되는 건가? 난 살짝 주먹을 쥐며 나만의 세레머니를 취했다. 연초부터 좋은 일이 찾아오는 걸 보니 올해도 잘 풀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건물을 겨우 찾아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잡으려고 걸어가는데 멀리서 에브리아와 같이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여, 에브리아.”
그녀가 내게 빠르게 달려와서 안겼다. 기쁘기는 한데 이래도 되나 모르겠다. 곧 한 여자가 뒤를 따라왔다.
“저기, 누구세요? 애인?”
“네? 아니, 전 길승우라고 합니다.”
“아!!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전 단기로 채용된 통역사 임미수에요.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촬영 벌써 끝난 건가요?”
“일찍 끝난 거 아니에요. 정말 몇 시간을 찍었는지 몰라요. 그래도 잘 끝나서 다행이에요. 오늘 일정은 여기서 끝인 걸로 아는데 전 이만 가 봐도 될까요?”
난 그렇게 하라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또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난 양해를 구하고 핸드폰을 꺼냈다. 어머니인가 싶어 화면을 봤더니 가완이의 이름이 떠 있다.
“여보세요? 가완이니?”
– 형! 형, 지금 바빠요? 에브리아 옆에 있어요?
“응? 바쁘지 않아. 지금 퇴근길이고 마침 에브리아도 옆에 있어. 왜 그래?”
– 잘됐다! 지금 저희 라이브 방송 준비 중인데요. 팬들이 에브리아랑 형 꼭 데리고 오기를 원하고 있어요.
“뭐? 나 지금 몰골이 엉망인데.”
– 에이, 언제부터 외모에 신경을 썼다고 그래요. 에브리아도 그래요?
“아니, 얘는 지금 촬영 막 끝나서 풀메이크업 상태야.”
– 그럼 그냥 소속사로 오시기만 하면 돼요. 우리 오늘 연습실에서 녹화 예정인데 SNS에서 얼마나 형하고 공주님을 찾는지 몰라요. 오랜만에 얼굴 좀 봐요.
“일단, 알겠어.”
난 에브리아와 통역사에게 의사를 물었다. 그녀들은 다행히 가겠다고 말을 했다. 예전 뮤지컬 때 가완이 도움을 크게 받은 적이 있어서 도움을 줘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오늘이 될 것 같다.
2시간 뒤.
떠들썩하던 방송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에브리아를 제외한 우리 모두가 얼굴이 굳어진 채 미친 듯이 올라오는 채팅창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에브리아 18살 아닌가요! 와 사진작가님 도둑놈!
– 동거라니! 동거라니!
– 대체 언제부터 동거에 들어간 거죠?
– 우리 공주님이 동거라니!!
재민이가 채팅창에 올라오는 질문을 에브리아에게 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남성 팬들도 많이 들어왔는지 에브리아의 신상에 대해 많은 것을 물었는데 그 중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지금 에브리아는 어디에 살아요?”
난 문제가 되겠다 싶어 대신 대답을 하려고 했더니 장난기가 발동한 유군이 내 입을 막았고 통역사는 에브리아에게 질문을 했다. 그리고 에브리아는 나와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같이.”
정확한 발음에 나는 눈을 감았고 분위기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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