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75
75화 매직포머 (1)
영화 포스터 작업은 내 기준으로 꽤 성공적으로 끝났다. 초반 천동선 배우의 일격에 휘청거렸던 명화 씨도 최종 결과물을 보면서 이런 사진으로 제대로 된 포스터 못 만들면 이 일 접어야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배우들 역시 마지막 단체 컷을 찍고는 결과물을 보며 만족감을 표했다.
이틀 만에 티저 포스터가 공개됐다. 난 스튜디오의 점심시간 때 기사를 보다 내가 찍은 영화 포스터에 대한 기사를 발견했다.
[한 장의 영화 포스터는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 산업이 시작되면서부터 영화 포스터는 가장 효과적인 홍보수단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최근에는 그 영향력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영화 포스터의 사진은 흡입력과 전달력으로 영화 성공을 좌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여기 한 영화가 있다. 이란 영화는 시사회를 통해 오랜만에 나온 웰메이드 스릴러 영화라는 평을 받았지만, 포스터 표절 사건으로 영화 자체도 의심을 받으면서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늘 공개한 한 장의 티저 포스터는 이 모든 상황을 반전시키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독이 든 성배라고 말해도 될 만큼 커다란 위험을 내포한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람은 길승우 사진작가였다. 이 사진작가는 아이돌과 함께 작업하며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지만 영화 포스터 시장에서는 신인이다. 영화 관계자가 이 작가의 어떤 점에서 재능을 발견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식탁에 앉은 배우들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지만, 테이블에 반사된 그들의 모습은 각자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다. 사진작가는 영화 속에서 일어난 배우들의 명연기를 한 장의 컨셉 사진으로 압축하는 데 성공했다.
불과 이틀 만에 영화 본질을 꿰뚫어 배우들이 연기한 상반된 페르소나를 포착한 그에게 찬사를 보낸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티저 포스터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배우들의 모습을 찍었고 결과도 좋게 나와서 개인적으로는 커다란 영광이었다. 최선을 다한 일에 결과까지 따라와 줘서 너무 기뻤다.
그렇게 기쁨에 취해 여러 기사를 검색하며 보고 있을 때 익숙한 이름이 핸드폰에 떴다.
“네, 현호 형.”
– 이제 영화 포스터까지 성공하네. 너 이러다가 가장 일하고 싶은 포토그래퍼로 거듭나겠어. 다름이 아니라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지 않을래?
오늘 뜬 기사를 본 모양이다. 게다가 또 일이라니, 무슨 박 씨를 물어다 주는 제비가 생각이 났다.
“CF인가요? 저야 좋죠.”
– 역시 인맥이 최고야. 주가가 치솟는 포토그래퍼를 이렇게 전화 한 통으로 섭외할 수 있다니 말이야. 일단 오늘 일 끝나면 전에 만났던 바에서 좀 볼 수 있을까? 작업이 좀 재미있다고 해야 하나? 좀 그런 거야.
CF 관련 일은 가장 재미를 느끼는 일 중의 하나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쇄 광고 쪽은 가장 상업화된 예술작업을 하는 기분이다. 미술 쪽으로 치자면 팝아트 작업이겠지.
“또, 그런 거예요?”
현호 형이 있는 곳으로 가서 이번 일에 대한 얘기를 나눈 지 몇 분 만에 난 탄식을 내뱉었다. 그는 멋쩍은 듯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경우는 광고업계에서 아주 흔해. 경쟁 PT라고 해서 광고사들끼리 경합이 붙는 거지. 이번에는 광고주가 무려 LK전자 쪽이라 규모가 커. CF하고 연동된 인쇄 광고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서 우리 쪽에서는 널 선택하기로 결정한 거야.”
“전자제품을 찍는 건가요?”
“대형 가전제품이 아니라 소형 가전제품을 모아서 멋진 그림을 만들고 싶은 모양이야. 다리미, 전자레인지, 커피메이커같이 중저가의 가격대를 지닌 제품들 말이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쪽도 같은 광고를 내보낸다고 하면서 꽤 많은 보수도 보장하고 있어. 그래서 여러 업체가 득달같이 달려들고 있는 실정이야.”
소형 가전제품에 대해서 특별하게 생각한 적이 없어서 걱정이 됐다. 내가 뭔가 생각하며 침묵하자 현호 형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번에는 같이 하는 거야. 우리 쪽 인원들도 모여서 아이디어 회의를 할 생각이야. 넌 광고 사진 쪽에 실력 있잖아. 얼마 전 자동차 광고 때도 우리 도움 없이 순전히 네 생각만으로 찍은 사진들 대단했다고.”
난 그때를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컨셉 생각하느라고 힘들었죠. 노이로제 걸릴 것 같았어요. 에브리아가 아니었다면 정말··.”
“그건 또 누구야? 저번에 사진 찍었던 외국 아가씨?”
아차 하며 입을 닫았지만. 그는 다 이해한다는 듯 입을 열었다.
“뭐 네 나이 때 연애도 하고 그러는 거지. 난 지금도··.”
현호 형은 연애 경험담 몇 개를 털어놓았다. 난 그 얘기를 듣고 다른 의미에서 충격을 받았다. 아니! 그 연예인이, 모태 솔로라며 제발 남자 있으면 좋겠다며 썰을 늘어놓던 그 가수분과 어른의 연애를 했다니.
난 그의 말에 손을 내저으며 변명하듯 말했다.
“뭐 연애까지는 아니고 그 중간 단계라고 할까··. 그런 사람이에요. 형처럼 갈 데까지 간 사이는 아니에요. 뭔가 그 애를 보면 영감이 떠오르고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아껴주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경쟁 PT에 대해서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마. 우리에게 있어서는 하고 싶지 않지만, 현재 위치를 확인하고 점검받는 좋은 기회거든. 안정적인 작업만 하다가는 살아남지 못하는 곳이 이 세계야.”
난 현호 형과 헤어지고 에브리아가 수업을 받고 있는 모델 에이전시로 향했다. 선시연 씨가 소개해 준 곳으로 저번에 한 미팅 결과가 좋았다. 이미 계약이 되어있는 상태가 걱정했지만 제이필터 뮤직의 유수민 대표는 당연하다는 듯 아무런 조건 없이 계약을 해지해 주고 통역사의 비용까지 부담해주겠다고 했다.
점점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다. 소속사 일 정말 열심히 해야지.
난 그녀와 함께 있는 통역사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그녀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근처 커피숍에서 아이디어를 구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전자제품 보러 가자.”
그녀가 나온 시간은 밤늦은 10시. 난 시간을 확인하고 아직까지 영업을 하는 근처 대형마트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아이디어 회의가 내일인데 아직까지 뭔가 딱하고 나오는 게 없다.
“배고파··.”
“저녁 안 먹었어? 뭐야, 먹었으면서 또 먹고 싶은 거야? 소속사에 이른다?”
그녀는 울상을 지으면서 먹지 않겠다고 얘기를 했다. 대형 마트로 가서 살 안 찌고 맛있는 음식이나 사줘야겠다. 난 대형마트의 소형 전자제품을 파는 곳에 서서 물건들을 살펴봤다. 현호 형이 한 말이 생각났다. 고급스러워 보이고 환상적이어야 하며 소비자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 그런 컨셉을 생각해 내야 했다.
“에브리아, 그걸로 뭐해?”
에브리아는 무선 다리미를 들고 줄이 없는 거에 대해서 신기해하고 있었다. 푸른색 코트를 입은 그녀의 모습과 희색과 푸른색 다리미의 모습이 순간 겹쳐 보인다. 그리고는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거 사가지고 갈까? 집에 있는 다리미 구형이니까, 하나 사자.”
내가 생각하기에는 멋진 아이디어인데 광고 쪽 종사자들이 들으면 어떤 식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며칠 뒤 광고회사의 아이디어 회의에서 난 떠오른 아이디어를 정리해 그들에게 말했다. 다 말을 하고 나자 회의실은 떠들썩해졌다. 전에 같이 일을 했던 현지 씨가 입을 열었다.
“저번에도 말을 한 것 같은데 의인화 되게 좋아하시네요.”
현호 형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아·· 그런데 잘못 만들면 되게 유치할 것 같은데. 사진이나 영상이나 위험부담이 너무 커.”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는 이랬다. LK사의 소형 가전제품들을 살펴본 결과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제품마다 가진 색깔이 있었다. 예를 들면 다리미는 푸른색 계열이 많았고, 커피포트는 붉은색, 전자레인지는 검은색 계열이 많았다. 난 제품들이 색을 통해 개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해서 각 제품들에 맞는 이미지의 인물 모델들이 제품으로 변한다는 컨셉을 내놓았다.
“싸구려 티 나지 않게 하려면 CG 가격이 좀 나올 것 같네요. 그냥 앞에 나온 의견대로 회화적인 톤이 느껴지는 배경으로 제품에 집중하는 방법이 낫지 않을까요?”
현지 씨의 말에 현호 형이 대답했다.
“너무 안전한 컨셉이라 그것도 부담이야. 우리 말고도 다들 그런 식으로 작업할 확률이 높아. 다 비슷비슷하다면 우리를 선택할 이유가 없잖아. 레드 오션으로 뛰어들어봤자 제 살 깎아 먹는 경우가 될 거란 말이지. 그런데 승우 씨 빼놓고는 다 안전한 선택을 했네. 정말 쪽팔려서··, 나쁘다는 건 아닌데 좀 튀는 생각은 못 하냐.”
회의는 길어지고 있었다. 직원들이 내놓은 여러 가지 아이디어는 점차 좁혀지기 시작했고 최종 두 개만이 남았는데 그중 하나가 내 거였다. 현호 형은 생수를 벌컥벌컥 마신 뒤에 내게 물었다.
“승우야 근데 왜 이런 생각을 한 거야?”
난 현호 형의 물음에 대답했다.
“가전제품 피사체를 통해서 뭔가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실력이 아직 제게는 없어요. 하지만 인물을 통해서 무언가를 느끼게 해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인물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야. 인물 쪽이 메인이 되면 광고주가 외면할 거라고. 각 제품에 어울리는 인물 섭외하고 촬영하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비용도 만만치 않고 말이야.”
“제가 인물 사진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번 일에서 인물이 메인이 되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리고 유명인을 섭외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무조건 거기에만 집중하게 될 테니까요.”
“그럼 누구를 섭외할 생각인데.”
“당연히 모델이죠. 그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자기를 죽이고 피사체를 돋보이게 하는 데 전문화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인물 섭외는 제가 잘 고를 수 있습니다. 시간도 길게 걸리지 않을 거예요. 유명한 모델도 필요 없습니다. 제품에 맞는 무명 모델을 쓰면 비용도 절약될 수 있을 거예요.”
현호 형은 의아하다는 얼굴로 날 바라보며 물었다.
“인물 섭외를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거지?”
‘아이템’이라고 대답할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내가 이 컨셉을 짠 이유 중 하나는 이 컨셉을 위해서 탄생했다고 생각할 만큼 딱 맞는 아이템이 있어서였다.
결국, 회의의 결과는 두 개를 다 해보자고 결정이 났다. 각 시안에 따른 사진 작업을 진행해보고 결과가 나오면 그 때 최종 결정을 하자는 결론이 난 것이다. 광고 회사는 1팀과 2팀으로 나뉘어 일을 진행하기로 했고 난 졸지에 2팀의 주요 인물이 되어버렸다. 내가 인물 섭외와 촬영을 주도하기로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
“애인 받아주길 잘했네. 대기업 CF를 다 물어오고.”
난 선시연 씨와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난 그녀의 말에 당황해서 대답했다.
“결정된 거 아니에요. 광고 회사 쪽에서도 결과보고 결정이 날 것 같고. 광고주로 올라가면 더 많은 경쟁자가 기다리고 있어요.”
“뭐 그래도 우리 애들이 이런저런 경험을 해보는 건 좋은 일이지. 우리 애들 페이는 제대로 지급해 줄 거지? 열정 페이는 사양이야.”
“광고 회사 쪽에서 지급해 줄 예정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어. 그럼 어떻게 준비해줄까? 우리가 추려줘?”
난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여건이 되면 모두 보고 싶습니다. 배우고 있는 모델까지 다요.”
“욕심도 많구나. 얘기해둘 테니까 좀 있다가 같이 가볼까?”
난 고개를 끄덕이며 컨셉 시안을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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