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84
84화 프로필 촬영 (2)
프로필 촬영은 생각보다 제법 순조롭게 진행됐다. 난 운동으로 먹고살 정도면 대부분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재능? 프로야구 선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특출한 재능이 아닌 이상에야 입단 프로야구 선수는 모두 재능을 지니고 있다. 운동선수로 성공하려면 재능은 물론이고 노력이나 적응력 그리고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턱을 들고! 눈하고 입이 따로 놀고 있어.”
형만 해도 머리가 좋다. 공부 머리야 나보다 좋은 건 당연하고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를 얼마나 해대는지 모른다. 그 와중에 야구 재능까지 있어서 난 어렸을 때 언제나 형의 비교 대상이 되곤 했다. 아마 부모님마저 그랬다면 엇나갔을지도 모른다.
“좋아, 표정은 딱 좋아. 고개 좀 오른쪽으로 돌려볼 수 있을까?”
아무런 재주가 없던 나를 형은 어지간히 챙겨줬다. 저 인간이 프로 입단 전까지 난 매일 새벽 운동에 끌려다녔고,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형이 부모님보다 날 더 혼냈다. 중학교 땐가 일진 놀이 시작하려던 꿈나무 한 명이 날 괴롭혔을 때 형은 야구부원을 모두 데리고 와서 그 녀석을 무릎 꿇렸다. 그 뒤에 그 녀석은 나만 보면 경기를 일으켰다.
“여기 보고! 눈은 여기에.”
그 일 직후에 집에서 형에게 더 세게 얻어맞긴 했다. 그리고 새벽 운동의 강도가 그 날 기점으로 세졌던 거로 기억된다. 덕분에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최소한 그런 녀석들에게 얕보이지는 않았던 거 같다.
“선생님, 내야수 조입니다.”
“음, 내가 찍은 거 봤지?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선생님은 내게 현장을 넘기고 스탭과 함께 결과물을 확인했다. 대기하고 있던 형의 눈에서 왜 내가 나오는지 불안해하고 있는 기운이 느껴진다. 왜긴 왜겠어. 첫 날 내가 내야수 조를 찍기로 선생님과 협의했으니까 이렇게 된 거지.
“강호 형님, 오랜만입니다!”
“잘 부탁해 승호 동생. 일 시작해서 그런 가 좀 더 듬직해진 것 같네.”
난 서울 드래곤스의 1루수 신강호 선수와 인사를 했다. 가끔 형이 술자리에 나를 불러서 몇몇 선수와는 안면이 있었다. 특별히 우애가 있어서 불렀다기보다는 술자리가 끝나고 고참 선수를 집까지 데려다주기 위한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강호 형님, 턱 좀 내려주십시오. 요즘 비밀 연애하느라 기분 좋으신 건 아는데 표정은 강인하게 부탁드립니다.”
강호 형이 형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저 입 싼 놈이 그것도 말하더나. 누군지도 아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저 시키, 비밀이라 캤는데. 집에만 가면 수다쟁이가 되는 모양이네. 빨리 찍어라.”
“아이고, 표정 아주 좋습니다. 그대로 가도 되겠어요.”
난 내야수 선수를 한 명씩 찍은 뒤 마지막으로 모델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형이 마지막이네.”
“넌·· 진짜 집에 가면·· 아오.”
형은 정신적인 충격으로 말도 똑바로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난 그런 형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형, 강인한 표정 부탁해. 절망스럽다 못해 울기 직전인 표정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어? 뭐 나야 나쁠 건 없고. 형 시범 경기 들어가야 집으로 올 수 있으니까·· 어이고, 한 달도 넘게 남았네. 자, 장난은 그만 치겠습니다. 몸을 오른쪽으로 조금 돌려.”
형은 ‘이렇게?’라는 물음이 담긴 눈으로 날 바라봤다.
“조금만 더. 거기 까지. 얼굴은 여기보고. 턱은 조금 내려야겠다. 좋아.”
오늘 촬영이 끝나면 부모님께 이 사진을 뽑아서 가져다드려야겠다. 집 나가서 운동하는 아들 여전히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말이지. 분명 기뻐하실 거다.
***
다음 날 아침, 스튜디오 앞으로 선수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난 형을 맞이하기 위해 달려나갔다.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진 형이 차에서 내리자 난 형에게 다가갔다.
“형! 좋은 아침이야.”
“좋은 말 할 때 꺼져라.”
“이거 엄마가 형한테 주래.”
형은 엄마란 소리에 겨우 얼굴이 풀렸다. 어머니는 어제 사진을 보더니 좀 말랐다고 하면서 형이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잔뜩 싸주셨다. 그걸 본 형의 얼굴은 순식간에 풀렸다.
“아버지가 무리하다가 몸 상하지 말래.”
“내가 너냐. 조심하고 있다고 말씀드려.”
고등학교 때쯤 새벽마다 형을 따라다니던 난 식욕감퇴를 시작으로 체중감소, 근력 저하, 구토증, 심지어 안정된 상태에서 혈압이나 심박 수가 상승하는 등의 징후가 발생했다. 결국, 병원으로 간 나는 오버 트레이닝으로 인한 후유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일반인이, 그것도 일반 학생이 걸리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고 하셨다.
“형이 끌고 다녔었잖아. 내가 힘들다고 했는데도.”
“맨날 꾀병 부린 건 생각 안 하냐?”
오냐, 오늘도 시작이라 이거지.
오늘 촬영은 스윙, 수비, 투구 자세 같은 다양한 모션을 찍는 작업이었다. 촬영이 이뤄지는 스튜디오가 좁아 직접 공을 던지지 못하는 대신 좀 더 다이나믹한 자세를 취하기 위해 특별한 촬영장이 준비 중이었다.
“수비조랑 공격조를 나누겠습니다.”
어제 선생님과 나는 구단에서 제공한 이들의 편집된 동영상을 살피면서 선수 별로 어떤 모습이 어울리는지 토의했다. 그렇게 나온 결과에 대해서 선수들에게 통보했더니 모두 표정에 불만이 가득해 보인다.
“난 수비는 젬병인데 왜 수비하는 장면이여?”
“빠따 하나로 버텨왔는데 내가 왜 수비지? 저어기 수비요정은 왜 빠따고?”
“난 포수데 왜 공격조야?”
모두 나한테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던 정만종 선생님은 가볍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냥 내가 보기에 제일 멋진 장면을 고른 겁니다. 내가 찍었을 때 멋있게 나올만한 포즈니까 일단 결과물 보고 말합시다.”
정만종 선생님이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셔서 선수들이 뭐라고 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촬영은 나와 미선 선배가 담당했다. 미선 선배는 짧은 영상을 찍을 예정이고 난 촬영을 담당했다. 한번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내가 원하는 포즈를 잘 구현해주고 있다.
“확실히 비싼 곳이라 그런지 사진 때깔부터 틀리네. 딱 좋소.”
난 모두가 만족해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많이 본 터라 포즈를 지시할 때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자! 공이 땅볼로 날아옵니다. 9회말 2아웃 만루에요. 서두르지 말고 공을 잡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빈볼이 날아와서 투수를 노려본다고 생각하세요. 방망이는 그대로 들고 계시고요.”
“팀 분위기는 아주 좋습니다. 시합 전에 캐치볼 하는 느낌으로 여유 있게 송구하는 모습이요.”
그리고 대망의 상의 탈의 장면을 찍을 차례인데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예상보다 야구선수들의 몸매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선생님 제 아이디어였지만 이건 아닌 것 같네요. 아무래도 몇 명은 제외해야겠어요.”
“나도 그 의견에는 찬성해야 할 것 같구나.”
상의 탈의를 한 선수들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젊은 선수, 특히 야수들은 전반적으로 몸이 좋지만 평범한 일반인 수준을 뛰어넘는 몸매들도 많은 편이다. 보정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그런 몸들이 많아 눈물을 머금고 몇몇은 촬영을 접어야 했다.
미선 선배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승우야, 난 오늘 다른 의미에서 충격이다.”
“저도 알아요. 직접 보면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안 되겠네요.”
“저 뱃살 출렁이는 아저씨는 뭐하시는 분이니?”
“드래곤스 선발 투수세요. 작년 성적 두 번째로 좋으시답니다. 야구 선수는 몸 가지고 평가하면 안 돼요. 몇 명은 일부러 살찌우는 경우도 있다고들 하니까.”
선생님과 탈의를 하지 않은 선수는 포즈를 바꿔 한 장을 찍기로 하고 탈의를 한 선수는 근육이 돋보이는 자세로 찍기로 합의했다.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선수들은 망설이기 시작했다. 난 그들 앞으로 가 말했다.
“저 분이 한국 최고 사진작가세요, 걱정하지 말고 포즈를 취해 주세요. 혹시라도 결과물이 걸리면 제가 최선을 다해 티 나지 않게 보정해드리겠습니다.”
“이거 잘못 찍으면 일 년 내내 홈페이지에 흉한 몸 보일 텐데.”
“저 길승호 동생입니다. 형한테 말씀하시면 제가 사진 구단에 건네기 전에 보정한 작업물 보여드리겠습니다. 일단 저 믿고 찍어보세요.”
처음 한 명이 힘들지 점차 탈의 촬영은 탄력을 받았다. 앞서 찍은 동료들의 사진을 보고 선수들은 더 이상 탈의를 망설이지 않았다. 심지어 다음 차례 선수들은 촬영 시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에 돌입했다.
“미끄러지면서 공을 잡는 거야.”
선생님은 엎드린 채 선수에게 말했다. 정만종 선생님의 몸을 던진 모습을 보고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난 상의 탈의 장면을 찍는 것을 나중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상의 탈의, 그것도 남자의 몸을 아름답게 찍기에는 아직 기술이 부족했다.
“도루하기 직전 투수와 눈을 마주친 모습을 담고 싶은데. 눈빛 좋다.”
난 선생님의 결과물을 확인하며 어느 모습을 사진에 담아야 하는지 눈으로 익히고 또 익혔다.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겨우 고개를 끄덕거리며 뒤를 돌아보니 형이 서 있었다.
“언제 왔어?”
“한참 전에 왔다, 몇 번을 불렀는데 아주 형 말을 씹고 사진에만 집중하고 있더라.”
형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내 사진 좀 봐봐.”
“어? 여기.”
“참나, 어제도 그렇고 나 같지가 않아 보이네.”
촬영을 마친 선수들 역시 모두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의 사진을 확인하고는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 모습만 눈에 보인다. 형은 날 툭 치더니 입을 열었다.
“네 선생님 멋지더라. 아주 몸을 던져서 열정적으로 사진 찍으시던데.”
“내가 존경하는 분이시지.”
“너도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는 모습 좋더라. 열심히 해 임마.”
“··어? 알겠어.”
“1월에 부모님 종합검진 있는 거 알지? 구단에서 제공해주는 거니까 날짜 맞춰서 꼭 챙겨드리고.”
“내 머리가 돌도 아니고 기억하고 있어.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나 간다, 원수 덩어리야. 너 때문에 합숙 내내 시달림당하게 생겼잖아.”
형은 선수단과 갈 준비를 하며 내게 작별인사를 했다. 뭐야, 왜 저렇게 멋지게 가려고 해. 정말 이렇게 끝나면 나만 이상한 동생이 되는데.
“형.”
“왜?”
“계속 괴롭히면 소개팅 해준다고 해.”
“야, 선배들 눈이 얼마나 높은데 됐어.”
“에브리아가 새로 사귄 친구들 소개시켜 준다고 하더라. 지금 걔 모델 에이전시로 수업받으러 가는 거 알지?”
“··나도 가도 되는 거지?”
“당연하지. 한국에 오면 내가 자리 마련해볼 테니까 그걸 미끼로 버텨봐.”
형은 내게 괴롭힘당한 건 모두 잊었는지 신이 난 얼굴로 스튜디오를 떠났다. 난 그 모습을 보고 머리를 긁적이고는 보정 작업을 하러 자리로 향했다. 뭔가 통쾌하고도 찝찝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기분은 좋았다.
[특성 획득 조건 카운트 : 5/10]이제 딱 절반이다. 조금만 더 하면 선생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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