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85
85화 4인 4색 (1)
신화일보의 주말 섹션에는 매주 직업을 소개하고 그 직종으로 막 뛰어든 20대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이라는 고정기획기사가 존재한다. 지난 몇 개월간 수많은 직업을 다뤘고 이번에 다룰 직업은 사진사였다.
“난 다 모르는 사람들이네. 사진작가 쪽은 그래도 좀 알려진 사람들 많지 않나? 연예계 쪽 하고 연계되니까 스타 사진작가들도 있을 만한데.”
“그쪽은 고인물이 자리를 단단히 차지하고 있어서 20대는 수가 적습니다.”
오전마다 있는 이 회의는 편집국장의 주재로 각 부장들이 모여 신문에 실릴 기사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편집국장은 사회부 부장의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사회부 부장은 행여나 준비한 기사가 엎어질까 입을 열었다.
“사진작가 쪽이 도제식 교육이라 어느 정도 경력을 쌓아야 독립하는 구조입니다. 정 마음에 안 드시면 그들이 어시스턴트 신분으로 함께 일한 작업물을 늘어놓죠. 독자들에게 익숙한 연예인들 화보나 광고 쪽에 참여했다고 하면 수긍할 거로 생각합니다.”
“인터뷰만 진행할 거야?”
편집국장의 말에 사회부 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사진사의 역량에 따라 같은 모델로도 다른 느낌이 난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인터뷰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테마로 사진 작업을 하고 그 결과물을 덧붙여 인터뷰 기사를 실을 예정입니다.”
“야, 근데 에이스가 빠졌네.”
문화부 부장이 넌지시 말했다. 사회부 부장은 눈을 부라리며 입을 열었다.
“무슨 에이스가 빠져? 지금 후보로 오른 사람들 다 유명 작가 밑에서 일하는 제자들이야.”
“방송 나와서 화제가 된 사진사는 안 보여서 하는 말이야. 러버걸스 뮤직비디오 찍고, 주옥선 씨 사진 찍은 그 사람 말이야. 몰라? 하! 얼굴 보니까 고려조차도 안 했구먼.”
“··그게 아니라.”
“돈 좀 작작 처먹어라. 다 고만고만하고 이름 없는 사람들 끼워 넣느라 수고는 했네.”
“내가 무슨 뒤로 돈이나 받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아?”
“그럼 유일하게 대중들에게 얼굴 알려진 20대 사진작가를 뺀 이유가 뭔데?”
그 말에 편집국장도 사회부 부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건 나도 알고 싶군.”
편집국장의 말에 사회부 부장은 당황한 얼굴로 변명을 생각해야 했다.
“그게, 아는 사람만 아는 거지. 독자들이 보기에는 다 똑같습니다.”
“지랄한다, 사진 한 장으로 무명 걸그룹을 1위로 올린 사진사야. 넌 어떻게 그런 사진사를 아는 사람만 안다고 얘기를 할 수가 있냐? 그리고 멍청한 놈아, 그 사진사 관련해서 우리 신문사에서도 연예란에 특별 기사까지 냈어. 국장님 이 새끼 수상하지 않습니까?”
편집국장은 문화부 부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넨, 부장 쯤 됐으면 말투 좀 고칠 수 없나. 신입 때부터 사이좋지 않은 건 알겠는데 말투 좀 고쳐.”
“아니, 이 새끼가 지 욕심 때문에 헛짓거리하고 있어서·· 아, 죄송합니다. 말투 고치겠습니다.”
문화부 부장은 편집국장의 눈빛에 꼬리를 말며 사과했다. 편집국장은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회부 부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넌 그 사진사 섭외해. 당장. 다음번에도 오늘하고 비슷한 일 있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받은 돈도 좀 돌려주고.”
사회부 부장은 끝까지 빈정대는 문화부 부장의 말에 아무소리도 할 수 없었다.
***
청담동. 의 대표 신문호는 격양된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니! 말씀이 다르지 않습니까. 이미 모두 소식을 전한 상태인데 이러시면 안 되죠.”
–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와서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에이, 그러기에 내가 좀 이름 있는 애들로 부탁한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 길승우인지 뭔지 보다 우리 애들 실력이 더 낫다니까요.”
– 이봐요, 신문호 씨. 이미 결정된 일입니다. 네 명 중의 한 명은 섭외가 안 된다고 생각하세요. 대신에 모델 촬영 때 내가 그 녀석 제일 뒤로 돌려놓을 테니 이 정도로 끝냅시다.
“제 꼴은 뭐가 됩니까.”
– 내 꼴이 더 우스워졌소. 문화부 쪽에서 얼마나 태클이 들어왔는지 정말. 그 푼돈으로 결정한 게 후회될 정도라니까. 끊습니다.
신문호는 짜증 섞인 얼굴로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씨발놈이 돈은 돈 대로 받아 처먹고 작은 기사 하나 혼자서 처리 못 해.”
그의 어시스턴트인 윤영진이 조르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하아, 영진아 이번 신화일보 섹션에 학규는 빠져야 할 것 같다.”
“네? 왜요?”
“신문사 윗선에서 ‘그놈’ 집어넣으라고 압력이 들어왔단다. 아무래도 동년배 중에 제일 얼굴 팔린 녀석이니까.”
“아·· 학규 벌써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다니던데. 다른 애 빼면 안 됩니까?”
“내가 물어오는 조건으로 우리 스튜디오서 2명 뽑은 건데, 아무래도 힘들지. 다른 대표한테 빠지라고 했다가는 더 큰 일이 날 것 같구나.”
윤영진은 한숨을 내쉬며 후배인 심학규에게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심했다.
***
그 시각 나는 마 실장님으로부터 신화일보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신문이요?”
“네, 신화일보에서 작년부터 진행한 기획기사입니다. 직업 소개를 하고, 현재 그 직업에 막 들어선 초년생의 인터뷰를 담는 건데 구독자도 많고 작가님께 하등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하다. 나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사진작가를 꿈꾸는 학생들도 많을 텐데 조금이라도 이 세계로 데리고 오고 싶다.
“그죠, 신화일보면 뭐 아무리 신문이 죽었다고 해도 보는 사람이 많으니까 말이에요. 게다가 사진사란 직업을 알릴 수 있다니 나쁠 건 없네요.”
“단독은 아닙니다. 원래부터 3~4명의 초년생의 다양한 얘기를 담는 식이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불쾌해하지 말아 주세요.”
“에이, 뭘 불쾌해합니까. 제가 뭐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테마로 사진 작업도 하는 모양입니다. 패션잡지하고 연계가 되어있어서 그 쪽 관련 작업실에서 촬영을 하고 인터뷰를 할 예정입니다.”
신화일보는 우리 집에서도 구독하고 있는 신문이다. 이건 부모님께 얘기하지 말고 저절로 알게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촬영장에 도착해서 내 즐거운 기분은 무너지고 있었다. 뭔가 저번 모임 때와 분위기가 겹치고 있다. 저 중 한 명은 모임 때 느지막이 싸움 말리러 온 사람이다. 눈썰미가 없어서 그런지 나머지 두 명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지금 일부러 나한테 말도 안 걸고 있는 걸 보면 그 재수 없는 모임에 나왔을 게 분명하다.
“손을 한번 뻗어 봐요. 오른손 말고 왼손이요. 그쪽으로 말고·· 아니, 그렇게 말고요.”
모델과 사진사가 따로 노는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뭔가 정확한 시안 없이 대충 잡은 이미지로 찍으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내가 맡은 계절은 봄이었다. 최근 찍은 패션화보 쪽이 다 봄을 대상으로 찍어서 컨셉을 정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두 개의 컨셉을 찍을 수 있고 그중 하나가 실린다고 한다. 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촬영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스타일리스트 분에게 인사를 하고 물었다.
“수고하시네요. 혹시 바쁘지 않으시면 시안 좀 봐주실 수 있나요? 의상이나 소품 관련해서 논의하고 싶은데요.”
아마도 여성잡지 쪽과 연계되신 스타일리스트 분이신 거 같은데 이런 분을 놔두고 내 시안을 고집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사진에 나를 담기 위해서는 얼마나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느냐에 따라 그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게 짜온 시안인가요? 봄이라는 이미지에 맞아 보이는데··.”
“괜찮습니다. 저 아직 초보에요.”
“색감이 좀 어색해요. 꽃도 한 군데 놓지 말고 치마하고 웃옷에 맞추어서 배치하는 게 어떨까요?”
“괜찮네요. 대신 빛이 문제긴 한데. 여기 스튜디오에 자연광 잘 들어오는 곳 있죠? 모델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창문을 통해서 빛이 들어오는 느낌을 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럼요. 야외 촬영장도 있긴 한데, 지금은 추워서 좀 그렇고 저쪽으로 가시면 자연광 들어오는 곳이 있어요.”
난 촬영할 곳을 선택한 뒤, 스타일리스트와 스탭들에게 간단히 먹을 군것질거리를 찔러줬다. 그녀들은 좋아하며 내게 인사를 했다. 난 지금 촬영 중인 모델에 대해서 그녀들에게 물었고 스탭들은 모델에게 어떤 옷과 헤어스타일이 어울리는지 얘기를 해줬다.
“아, 저는 모델하고 눈을 맞추는 거 좋아하는데 그건 피해야겠네요.”
“네, 피하세요. 세아 씨 정면 샷은 찍지 마세요. 고개 살짝 돌리고 오른쪽 부분을 찍으셔야 예쁘게 나와요.”
“난 왼쪽 옆모습도 좋던데.”
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준비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고, 이건 혼자서 생각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영감을 준다.
“조명 담당은 따로 없나요? 빛이 이상한데.”
두 번째 촬영 중인 남자가 주위를 돌며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래도 조명 담당은 없는 것 같았다. 마치 얼마 전의 나를 보는 것 같다. 최소한 지금의 난 이런 간단한 촬영은 혼자 힘으로 조명을 손볼 수 있게 됐다.
“이건 비장의 옷인데·· 패션화보 촬영 때 쓰려고 아껴놨던 건데 길승우 작가님께 드릴게요. 옷이 정말 예쁘고 고급스럽게 잘 나왔어요.”
“와, 굉장하네요.”
마지막 촬영이라 얻는 이점이 많다. 저들은 기다림의 시간이 길수록 내가 불쾌해하고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을 한 걸까?
“좀 밝게 웃어주세요.”
사진을 찍는 남자의 말에 모델이 미소를 지었다. 최근에 정만종 선생님이 되도록 모델에게 웃으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왜냐고 물었더니 누군가에게 웃으라고 말하는 건 뭔가 거짓되고 부정적인 것을 하라고 요청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셨다.
“좀 더 스마일~!”
선생님은 가짜 웃음은 숨기기 힘드니 그 시간에 차라리 피사체와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게 낫다고 말씀하시며 그렇다고 무표정한 사진을 찍으라는 것이 아니라 진실 된 표정을 찍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세 사람의 촬영이 끝났다. 난 카메라를 들고 촬영 준비를 하려는데 유일하게 안면이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 먼저 인터뷰하면 안 되겠습니까? 시간도 절약하고 말이죠, 하하하.”
시간 절약 좋아한다. 이건 대놓고 우린 일 마쳤으니 나 혼자서 알아서 하라는 말이다. 그들의 요구에 기자는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하세요.”
뭐 저들이 있다고 아무런 도움 될 것은 없다. 오히려 눈앞에서 사라져 주는 게 고마울 정도다. 그들은 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는 기자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난 모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 좀 쉬었다가 할래요?”
그렇지 않아도 촬영 전에 모델과 얘기를 좀 나누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모델은 스탭이 준 코트를 걸치고 내게 다가왔다. 난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힘들죠? 이것 좀 드세요.”
난 준비해 온 간식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귤을 한 조각 집어먹고는 입을 열었다.
“사실 힘들어요. 생각보다 요구하시는 게 많으시네요.”
“패션모델이세요?”
“네, 루안 에이전시 소속이에요. 아직 신인이라서 많이 부족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저도 신인 사진사입니다. 촬영 현장 보니까 분위기가 굉장히 좋으세요. 앞으로 잘될 것 같으셔서 미리 눈도장 찍어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에이, 무슨 말이에요. 그런 말 처음 듣네.”
“아아 정말이에요, 각도와 스타일에 따라 한중일 매력을 모두 가지고 계셔요.”
그녀가 겨우 진실 된 미소를 지으며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겨우 촬영 전에 모델과 약간의 소통이 이뤄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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