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86
86화 4인 4색 (2)
가까이서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이 모델의 얼굴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계산이 서기 시작한다. 헤어스타일을 조금 바꾸고 각도 조절만 잘 하면 원래 이미지와는 다른 느낌의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일리스트님. 머리말인데요, 옷에 맞게 조금 수정했으면 하는데.”
“어떻게요?”
난 내가 원하는 머리 스타일에 관해서 설명했다. 스타일리스트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좀 귀찮은 작업이긴 하네요. 머리 만지는데 시간 좀 걸리겠어요.”
“에고, 꼭 좀 부탁드려요. 저녁은 제가 쏘겠습니다.”
“하하, 신입 사진사분 수익 뻔히 아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어요. 말로만으로도 고맙네요.”
“어어? 진짜예요. 저 믿음직한 소속사 있어서 오늘 카드 긁어도 됩니다. 여기 혹시 초밥 배달되는 데 있나요?”
스탭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생각보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먼저 찍고 나간 사진사들 때문에 정말 최소한의 인물만 남아있는 정도. 이렇게 되면 오늘 일은 적자가 되겠지만 정답이 뻔히 보이는데 안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와 여기 자연광 정말 좋네요. 세아 씨, 창가 앞에 높은 의자에 앉아주세요.”
카메라의 렌즈로 세아 씨를 보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스타일리스트님이 특별 공수해 준 베이지색 원피스가 벽돌로 만든 벽과 잘 어울린다.
“꽃은 빼고 가기로 할게요.”
“어? 왜요? 봄 테마에 꽃이 빠지면 이상하지 않을까요?”
“세아 씨가 그 역할을 해주시면 되죠.”
그 말에 세아 씨가 잠깐 생각하다가 ‘까르르’ 웃더니 입을 열었다.
“사진사님 무슨 말을 그렇게 오글거리게 하세요.”
“말은 오글거릴지 몰라도 꽃은 정말 치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근데 이러면 너무 썰렁해 보이는데··. 스타일리스트님 예쁜 향수병 같은 것 좀 가져다주세요. 그리고 여기 커튼 좀 끌어다 쓸게요.”
스타일리스트 분이 내 말을 듣고는 입을 열었다.
“감각 있으시다. 원래 소품 연출하는데 관심 많으세요?”
“그냥 찍다가 이것저것 공부하고 있어요. 아직 멀었죠.”
곧 준비가 다 끝났다. 난 카메라를 들고 세아 씨에게 외쳤다.
“포즈는 아주 좋아요. 그 상태로 고개를 약간만 아래로 내려주세요. 아주 살짝만 오른쪽으로·· 왼팔이 따로 놀고 있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무릎에 얹어놓아 주세요.”
[등급을 초과한 사진이 찍혀 보너스 포인트가 지급됩니다]“다 그대로 계시고 윗니로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다는 느낌으로요. 지금 아주 좋습니다.”
모델부터 배경, 소품까지 괜찮으니까 그냥 찍어도 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 몇 달 전만 해도 몇십장은 찍어야 이런 문구가 나왔는데 지금은 열 장도 셔터를 누르지 않은 것 같다.
“벌써 끝이에요?”
“네 세아 씨. 다음 촬영 준비해주시면 돼요.”
“맛있는 것도 주시고 촬영 전에 요구사항도 좀 있어서 밤샐 각오 했는데.”
“하하, 그렇게 해드려요?”
“아니죠, 이렇게 빨리 끝내주시면 고맙죠.”
그리고 세아 씨가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스탭들은 결과물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와·· 이건 미쳤는데요? 세아 씨 너무 예쁘게 나왔다. 이게 원본이라는 거잖아요.”
“감성 돋는데요. 전체분위기가 후··.”
스타일리스트님이 사진을 보고서 내게 말했다.
“어머, 길승우 사진작가님 배경하고 빛을 너무 잘 쓰신다. 세아 씨 하고 궁합이 잘 맞는 거 같아요. 세아 씨 단점이 턱인데 각도하고 헤어스타일로 커버를 하니까 얼굴에서 빛이 나네.”
너무 과찬들을 하시니까 내가 더 민망스럽다. 난 손사래를 치며 별거 아니라고 했다가 거만하다며 한소리를 들었다. 다음 컷은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2인 테이블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장면이었다. 테이블 위에 꽃이라든지 식기류를 잘 세팅한 후 빠르게 촬영을 끝냈다.
“길승우 씨, 인터뷰룸으로 가도 될까요?”
스탭들과 함께 뒤풀이 겸해서 초밥을 다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있으려니 그제야 사진사 세 명과 함께 자리를 떴던 기자가 날 데리러 왔다. 스타일리스트와 모델 분은 연락처까지 주시며 나중에 꼭 같이 일하면 좋겠다며 바로 약속을 잡길 원했다. 난 소속사가 있어서 의논해야 한다며 겨우 그 요청을 넘겼다.
“기자님이 인터뷰하시는 건가요?”
“네, 간단한 인터뷰인데다 질문도 몇 개 없으니 금세 끝날 겁니다.”
남자는 앞으로 걸어가며 얘기했다. 자기소개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 없다. 화가 난 것 같지는 않고 좀 나를 껄끄럽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아 이유가 궁금했다.
“기자님, 혹시 저랑 안면 있으신가요?”
“아니요. 오늘 처음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절 경계하고 계시죠?”
“제가 언제··.”
“그 세 명한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다 거짓말입니다. 그 사람들 절 싫어해요.”
보아하니 뻔하다. 그 되먹지 않는 놈들이 있지도 않은 사실로 나에 대해 몇 마디를 던진 것 같다. 기자가 말을 꺼내려다가 삼키는 걸 보니 아마 내 예상이 맞는 것 같다.
“신화일보 독자 여러분께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네, 저는 에서 일하고 있는 길승우라고 합니다. 현재는 스튜디오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있고요, 간간히 개인적으로 의뢰가 들어오면 제가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네 분 중에 가장 어리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모그래피를 보면 가장 화려합니다.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사진을 찍게 되셨나요?”
마 실장님이 내게 당부하신 게 있다. 인터뷰를 할 때는 모두 녹음을 할 것. 왜냐하면 평범한 말 한마디를 빌미삼아 악의적인 기사가 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평범한 인터뷰니까 크게 걱정은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녹음 정도는 해 놓으라고 말씀하셨다.
***
그리고 며칠 후 신화일보 섹션에 기사가 나가게 되었다. 살짝 걱정했던 악의적인 기사는 없었다. 그냥 평범한 질문에 평범한 답변을 한 게 그대로 지면에 실렸다. 괜한 걱정을 했다고 안심하고 있을 때 다른 곳에서 일이 터지기 시작했다. 한 네티즌의 글이 화제에 오른 것이다.
[이번에 젊은 사진작가 네 분이 계절 테마로 찍은 사진들.인물 자체가 달라 보여서 뽀샵이 강력하게 의심되었지만 첨부된 기사 말미에 보시면 한 날 모두 촬영하고 보정은 신문사에서 이뤄졌다고 나옵니다.
진사에 따라서 이렇게 차이가 날 수도 있군요.]
– 같은 모델에 같은 공간에서 찍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 보정 아닌가요? 봄 테마만 보정 엄청한 것 같은데
– 동일 인물인가요? 정말 다른 사람 같네요
– 뽀샵의 달인…ㅎ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 눈 없어요? 후 보정은 모두 동일하게 이뤄졌다고 하잖아요
– 붕어를 찍어서 여신을 만들어놓네..
– 아니 근데 아무리 봐도 봄만 완전 딴 사람인데.
┖ 봄 테마 찍은 사진가가 만렙
– 화장도 좀 틀린 거 같고 저 ㅊㅈ 단점?이 턱선인 거 같은데 봄 테마는 헤어스타일로 커버를 한 거 같고
– 봄 테마 보고 와 현실에 이런 여자가 있었나 했다가 다른 테마를 보니 그제야 현실적이고 뭔가 안도가 되네요
┖ 다른 테마를 보니 봄을 찍은 사진사의 능력이 더 빛나 보이네요
– 사진의 포즈를 보세요. 진사의 수준이 보입니다.
┖ 진사가 뭐죠?
┖ 사진사요.
– 이 사진이 잘 찍은 사진으로 보이는 건 구도, 배경과 소품 연출 등인데 보정 타령하는 사람들 보면 안타까움
┖ 맞음 가장 기본적인 구도와 연출을 기가 막히게 하심
– 세상은 넓고 미인은 많다.
– 봄 테마는 러버걸스 사진 찍으신 분임. 길승우 님.
┖ 아, 그분이시구나. 진사님이 금손이 맞네요.
– 봄 사진사가 찍은 주옥선 사진 보셨나요?
┖ 지금 봤음. 디지털 의느님…
– 얼굴 구도 진짜 잘 잡음.ㄷㄷㄷㄷㄷ 러버걸스 뮤직비디오도 그렇고 언제 봐도 범상치 않음ㄷㄷㄷㄷㄷ
– 보정도 중요하겠지만, 같은 모델을 두고 다른 느낌으로 표현하는 건 전적으로 찍는 사람의 몫이죠. 여튼 대단한 작가
┖ 이렇게 인물 뽑아내시는 분들 보면 너무 부럽네요
의 대표 신문호는 기사를 보고 이를 악물었다. 그의 앞에는 죄인처럼 윤영진이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너 뭐 하고 있는 거냐? 사진 보긴 했지? 야, 왜 이따위로 찍어서 문제가 되게 만들어.”
“그 녀석이 사기를 친 겁니다. 보정을 했어요. 그것도 엄청나게 말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사진이 나올 수가 없어요.”
윤영진은 고개를 들어 항의했다.
“내가 확인했다. 후처리는 동일하게 진행됐고 원본 사진까지 보여줬어. 자 이거 봐.”
윤영진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길승우의 원본사진을 바라봤다.
“이게·· 원본이라고요?”
“조금 크롭을 이용하긴 했는데 그마저도 아주 일부만 잘랐어. 색 보정도 거의 들어가지 않았어. 됐다, 한동안 너한테 개인적으로 일이 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 민규랑 캄보디아 쪽 봉사 촬영이나 하러 갔다 와.”
에서는 봉사의 일환으로 가난한 타국에서 사진을 찍기 원하는 아이들을 찍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 봉사활동은 몇 번이나 방송에 나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윤영진의 입장에서 그 일은 충격이었다.
“선생님?!”
신문호의 어시스턴트 중에 가장 나은 자질을 보이며 중용됐던 윤영진은 이 사태가 믿기지 않았다. 그는 이번 기사가 나간 후, 이곳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에서 개인 이름을 건 촬영을 맡게 될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봉사 활동이라도 우습게 보지 마. 돈이 남아돌아서 너희들 보내는 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거기서도 형편없으면 알아서 해라.”
신문호의 냉정한 말에 윤영진은 인사를 한 후 터덜터덜 밖으로 나갔다.
신문호는 한숨을 쉬며 신문에 프린트된 길승우의 사진을 본 후 신문을 구겨버렸다. 그냥 독자가 봐도 이 사진과 다른 사진의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의 제자인 윤영진의 사진도 나쁘지 않았다. 다른 두 명과 비교하면 한 단계는 더 수준이 높은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길승우와 윤영진의 사진 차이가 너무 났기 때문에 묻혀버렸다
“좀 불안불안 하더라니. 그냥 우리 애들 빼는 거였는데 내가 너무 과욕을 부렸어.”
신문호는 자리에 앉아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길승우의 사진을 몇 장을 본 기억이 있었다. 특히 아이돌을 찍은 사진은 퀄리티가 좋아서 감탄했었다. 하지만 그의 패션화보 쪽의 사진을 본 적이 없어서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다.
“젠장, 정만종이는 어디서 괴물을 하나 물어왔네.”
신문호는 곧 자신의 시대가 올 거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정만종의 실력은 줄지 않았지만, 그의 나이 탓에 일은 점점 줄고 있었고 스튜디오의 규모도 작았다. 그리고 작년까지만 해도 그의 제자들은 사진계에서 그리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다.
“양승환이나 조경희 같은 실력 있던 애들은 독립했고.”
과거, 실력 있는 그의 제자들은 그의 밑에 있기보다는 독립하여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었다. 실력 있는 사진작가들을 끌어 모아 덩치를 불리는 자신의 성향과는 달랐다. 그는 상업사진작가들을 모아 협회를 만들고 그 정점에 서고 싶었다.
문제는 이 바닥은 실력만 있다면 무슨 방해를 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라는 거다. 특히 최근 들어 그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족보도 없는 사진가가 성황리에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소수의 일류 연예인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실력 있는 사진가를 찾아 함께 작업을 하는 그런 세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힘을 키워야 해. 어서 영향력을 키워서 내가 사장되는 사진계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고.”
그는 구겨진 신문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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