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88
88화 소녀들의 시간여행
마 실장님이 내게 특별한 부탁을 하셨다.
“비수기 동안 화제가 될 사진을 찍어달라고요?”
“네, 아무래도 몇 개월간은 러버걸스가 활동을 못 하게 되니까요.”
“제가 사진을 찍는다고 해도 힘들지 않을까요?”
작년만 해도 데뷔한 걸그룹 숫자만 삼십 팀이 넘는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보이그룹과 솔로를 뺀 수치다. 거기다가 작년 이전 데뷔한 사람들까지 합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가 될 것이다. 대부분이 SNS 활동을 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 틈을 뚫고 화제가 되는 사진을 찍는다는 건 내가 생각하기에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저희는 길승우 작가님을 믿습니다.”
마 실장님이 흔들림 없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계신다. 대체 어디서 저런 믿음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 일을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소속사에서 내게 많은 것을 챙겨줬으니 뭐라도 빨리해줘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최선을 다해 찍어보긴 할게요. 결과는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근데 언제쯤 러버걸스 멤버들을 만날 수 있죠?”
“그제부터 휴일을 줘서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한 이주 정도 아무 스케줄도 없어요. 작가님이 개개인별로 불러서 작업을 하셔도 되고, 모두 모아서 작업을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러버걸스 SNS는 회사에서 관리하는 거죠?”
“네, 그룹 SNS는 회사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작업을 다 하시면 저에게 주시면 됩니다.”
난 마 실장님과 헤어지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최근 화제가 된 SNS 사진을 검색을 해봤다. 한참을 검색하고 난 뒤 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망했다.”
검색 결과 사진만으로 화제가 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SNS에 생각 없이 쓴 문구가 화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으로 화제가 되기 위해서는 평소에 보지 못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도발적이거나 의외의 친분을 과시하거나 엽기적인 그런 모습 말이다. 의외로 평범한 사진들이 순위에 오른 경우는 소속사의 힘인 경우가 많거나 많은 팬을 가진 그룹이 대부분이었다.
결국엔 최선을 다해서 찍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이나 한잔 마시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뭐 하세요?”
“그냥 옛날 사진 정리 좀 하고 있단다.”
“어? 저 좀 봐도 될까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셨고 난 냉큼 방으로 들어가 선생님이 보고 계신 사진을 바라봤다.
“선생님 젊으실 때 사진이네요. 옆에 이분은·· 전우진 님이시네요. 그리고 이분은 그 연출가 선생님이시군요.”
“너도 지금처럼 한 창 젊을 때 누군가에게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해라. 특히 인생의 멋진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건 대단한 특권이지. 사진이 담고 있는 상황에 대한 기억들은 사진을 뛰어넘어 더욱 강화되고 반복해서 회상된단다.”
“그러고 보니까 최근에 제 사진을 찍은 적이 없네요.”
“사진으로 기록되지 않은 체험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하게 사라지지. 자신을 기록에 남겨. 훗날 나처럼 나이를 먹으면 젊을 때 모습을 바라보고 웃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거란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난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마 의도대로 된다면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은 화제가 될 것 같은 사진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난 핸드폰으로 러버걸스 멤버들에게 단체로 메시지를 보냈다.
[가장 귀엽다고 생각되는 10살 이전의 파일로 된 독사진을 보내주세요. 한 세 장 정도? 모레 촬영 예정이니까, 정 스튜디오로 12시까지 오세요.]이내 한 대화방으로 모인 러버걸스 멤버들에게서 답장이 오기 시작한다.
– 왜요? 뭐 하시게요? (연서)
– 갑자기 옛날 사진은 왜 찾으라고 하시나요? 저 어릴 때 못생겼는데 (하연)
– 너 지금도 되게 못생겼어 (다정)
– 야! 죽을래! (하연)
– 저도 어릴 때 꽤 통통한 편이었는데 아 왜 사진이 필요하신 거죠? (연서)
– 연서야 나 네 어릴 적 사진 봤는데 통통은 아니지 않아? 누군지도 모르겠더라 (민솔)
– 어릴 때 좀 잘 먹었거든 (연서)
– 언니는 지금도 먹신이잖아요 (예정)
– 애들 준비시키고 모레 뵐게요 (효미)
곧 러버걸스 멤버들에게서 사진이 오기 시작했다. 과거에 존재했던 러버걸스 멤버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보자 기분이 묘하다. 사진을 한 장씩 살펴보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모레 있을 촬영을 마치고 결과물을 나올 순간이 기대가 됐다.
***
난 다음날 모든 멤버들의 컨셉을 정리하고는 소속사에 연락해서 그들이 입을 옷과 소품을 부탁했다. 고맙게도 소속사에서는 차질 없게 준비를 해주신다고 말을 했다.
“오늘 무슨 촬영인 거예요?”
가장 먼저 도착한 예정이가 스튜디오를 두리번거리며 내게 물었다.
“모두 오면 알려줄게, 촬영 자체는 특별한 거 아니야. 결과물이 재미있게 나오는 거지.”
예정이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검은 막으로 덮인 촬영 장소를 서성거렸다. 곧 차례차례 멤버들이 도착했다. 나는 모두와 인사를 나누고 촬영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음, 오늘 촬영은 합성을 위한 촬영이야. 일종의 사진 여행을 떠나기 위한 준비 작업이지.”
“사진 여행이요? 무슨 사진 여행?”
유아가 잘 모르겠다는 듯 내게 물었다.
“너희들이 보내준 사진에는 어릴 적 자신이 혼자서 뭔가를 하고 있어, 의자에 앉아있기도 하고 뭘 먹고 있기도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기도 하지. 독사진이라서 그런지 좀 쓸쓸해 보이지 않아?”
“엄마가 찍어준 건데. 왜 쓸쓸해요?”
어디서 가지고 온 과자를 먹던 연서가 내 말에 반기를 든다.
“아니, 그냥 사진만 보면 그렇다는 뜻이야. 난 어릴 적 사진에 현재의 자신의 곁에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
“그게 가능해요?”
민솔이가 정말 되겠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현대 문명의 산물 중에는 포토샵이라는 훌륭한 도구가 있단다.”
“되게 재미있겠다.”
“자, 내가 사람들한테 부탁해서 의상까지 준비했으니까 냉큼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도록.”
그들은 내 설명을 듣고는 정말 될까 하는 의심 반, 되면 재미있겠다는 기대 반을 가지고 있어 보인다.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선배들에게 사진 보정술을 많이 배워서 이 정도의 합성은 무리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촬영은 그제 선생님의 사진을 봤을 때 생각난 아이디어로 진행하고 있다. 예전에 뮤지컬을 홍보할 때 썼던 과거와 현재를 함께 담는 방법을 사진에 적용한 것이다.
“자, 일단은 효미부터 하자. 효미는 이 때 크리스마스 때였나 봐. 뒤에 트리가 보이네. 언제였어?”
“2학년 때던가? 자세하게 기억은 안 나요. 아버지가 그날 늦게까지 오지 않아서 좀 시무룩해있던 게 생각나요.”
“지금 네가 이 사진 속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하고 싶어?”
“기분이 좀 풀리게 같이 놀아주고 싶어요.”
“좋아, 그렇게 해보자. 저 촬영장으로 올라가서 곁에 있어줘. 바라보면서 뭘 얘기해주는 것도 괜찮고, 곁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효미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어떻게 포즈를 잡아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난 곁에 있는 막내 라인 중 하나인 서애에게 말했다.
“저기 가서 이 포즈대로 앉아줄래? 아무래도 뭐가 없으니까 포즈 잡기가 힘든가봐. 그리고 내가 부르면 이리로 다시 와주고.”
연기도 해본 적 없는데 앞에 뭔가 있는 걸 상상해서 포즈를 취한다는 건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SF영화를 보면 배우들의 아무것도 없는 뭔가를 상상해서 연기를 하던데 그런 건 정말 뭔가를 타고나야 할 수 있는 것 같다.
서애가 사진대로 포즈를 취하자 그제야 효미가 그녀의 곁에 앉아 뭐라고 얘기하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생각지도 못한 효미의 포즈에 난 서애에게 손짓을 하고 그녀가 빠지자마자 셔터를 눌렀다.
“언니, 뭐한 거예요?”
“위로해 준 거야. 아빠가 오지 않아서 슬프구나. 좀 있다가 아빠는 오실 거야, 그동안 나랑 좀 놀고 있지 않겠어? 이런 말을 해주고 싶네.”
효미의 마음 씀씀이가 예뻤다. 난 다음 사진을 집고 사진의 주인공을 향해 외쳤다.
“다정아.”
“네, 나가요.”
“어디 주택의 정원인가 봐. 이때도 웃는 얼굴은 똑같네. 누굴 골탕 먹이고 심술궂게 웃는 모습이 그대로 있어.”
“어머 오빠, 어린아이의 순진한 웃음을 그렇게 매도하시면 안 되죠.”
“이 장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어?”
“음·· 사실 이때 뭐 때문에 웃었는지 기억은 안 나요. 근데 뭔가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 같으니까 저도 들어가서 같이 웃어주고 싶네요.”
다정이의 말에 하연이가 조그마한 소리로 중얼댔다.
“어릴 적부터 그랬구나, 쟤는 어릴 적부터 저랬어.”
다정이는 촬영장으로 올라가 시원한 웃음을 터트려줬다. 정말 어릴 적 웃는 모습과 저 모습을 동시에 놔두면 나이 차 나는 자매 같아 보일 것 같다.
“다음, 유아.”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사진 가지고 오는 건데. 나만 이상하잖아요.”
조용히 있던 유아가 울상을 지으며 촬영장으로 걸어갔다. 유아가 준 사진 중 내가 고른 것은 유치원 때 찍은 사진으로 보이는 코스프레 사진이었다. 아마 유치원에서 할로윈 축제를 한 것 같다. 지팡이를 든 마녀의 옷차림을 한 유아는 스스로 포즈를 잡고 나를 바라봤다.
“유아야, 어릴 때 포즈처럼 지팡이를 내밀어.”
“히잉.”
그렇게 난 러버걸스 멤버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며칠 후 기삿거리를 찾는 연예부 기자들은 모두 내가 던진 떡밥을 물었다.
[그룹 러버걸스의 ‘시간여행’ 사진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SNS에 공개된 각 사진에는 어린아이와 러버걸스 멤버의 모습이 담겨 있다. 놀라운 것이 이 두 사람은 동일인물이라는 것이다.
해당 사진은 어린 시절 찍은 사진과 최근 촬영한 사진을 합성한 것이다.
공개된 사진에는 러버걸스의 어린 시절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시간여행을 간 듯한 느낌을 준다. 같은 장소에서 세월의 차이를 두고 찍은 사진을 합성해서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가 함께 하는 멋진 모습을 한 화면에 담아냈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고 해서 네티즌들은 ‘포토샵 타임머신’으로 부르고 있다.]
– 소속사 열 일 하네요. 정말 이 사진들은 멤버 각자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 듯
– 비수기 때 우리 애들 보고 싶었는데 정말 예상치 못한 선물입니다
– 사진을 보니까 저도 갑자기 어릴 적 저와 만나고 싶어지네요
– 영화 생각나네요. 사진 대박
┖ 그 시간을 달리는 하고 어바웃
– 우리 다정이 웃는 건 어찌 저렇게 똑같을까
– 저거 포토샵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건가요?
┖ 2~3주 정도 공부하면 가능해요
– 어린 하연이 노래 부를 때 큰 하연이가 옆에서 피아노 치는 거 웃긴다
– 이것도 그 사진사가 한 건가? 뮤직비디오 찍은?
┖ 그런 것 같아요. 밑에 포토그래퍼 이름이 그 분 맞아요
┖ 오래오래 우리 애들 찍어주셨으면 좋겠다.
***
김훈철 홍보팀장은 마 실장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김훈철은 러버걸스에 대해 문의 전화가 오는 홍보팀의 풍경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길승우 작가님은 정말 대단하시다는 걸 새삼 깨닫네.”
“비수기 때 화제가 되는 SNS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더니 이런 일을 만들어버리시네요.”
“언루트 버전도 만들 수 없냐고 대표님이 묻던데.”
“그렇지 않아도 물어봤더니 사진만 있으면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오오, 역시 길 작가님. 아·· 대표님이 이 소식을 들으시면 정말 기뻐하셨을 텐데.”
김훈철 홍보팀장은 창밖을 아련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 모습에 마 실장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대표님이 죽은 것처럼 말씀하십니까. 중국 출장 가셨잖아요.”
“오늘 같은 날엔 대표님의 오버 섞인 환호성이 들려야 좋잖아.”
그들은 희희낙락거리며 러버걸스의 홍보 효과에 대해 만족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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