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92
92화 특이한 콜라보 (1)
“자, 승우야! 어린이의 꿈을 이뤄주고 싶지 않니?”
느닷없이 전화를 걸고는 산타클로스 흉내를 내는 사람은 장현호 형님이었다. 한동안 일이 없다 했더니 이건 또 갑자기 무슨 의뢰인지 궁금하다.
– 저기 현호 형? 무슨 얘기죠?
“우리가 JR 자동차 그룹 광고 먹은 거 알지? 또 의뢰가 들어왔는데 좀 특이하게 진행을 하려고.”
– 그래요? 어떤 거죠?
특이한 일이라면 대환영이다. 저번에도 전자제품을 의인화하는 작업은 꽤 재미있기도 했고 결과도 좋았다.
“JR 자동차의 이미지 광고인데, 어린아이의 그림을 재현한다는 프로젝트야.”
– 음··. 자세한 건 봐야 할 것 같지만 일단은 그림을 실체화시켜서 그것을 찍거나 영상으로 보여주는 건가요?
“일단은 영상으로 만들 계획은 없어. 아, 물론 광고는 영상으로 진행되기도 하겠지만 어린이의 그림을 영상으로 만들 계획은 없단 얘기야. 사진으로만 진행하기로 했어.”
결국엔 그림을 실체화시킨다는 얘기다. 사실 그림을 실체화한다는 건 내 소관은 아니다.
– 그럼, 세트나 의상 같은 건 형이 알아서 하시는 거죠?
“우리 팀으로 해보고 안 될 것 같으면, 외부 팀 고용할 생각이긴 한데.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아. 지금 그림 몇 점 보내줄 테니까 한 번 검토하고 모레 만나서 얘기하자.”
이번 광고의 목적은 자신의 꿈이 현실로 나타난다는 의미란다. 아이들이 그린 명확한 현실적 소망을 사진가에 의해 사실성을 띠고 재현한다는 행위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말을 하셨다. 무의식 속에 있는 꿈 중에서 본능적인 욕구를 들추는 경험이 광고를 보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 거라는 얘기도 했다.
“이게 원본이 될 그림들인가? 여기서 몇 가지를 고른다는 얘기겠지?”
난 메일에 첨부된 아이들의 그림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JR 자동차에서 주최하는 그림대회에서 상을 받은 그림이라고 설명이 적혀 있었다.
대충 상을 받은 작품을 살펴보니 주제를 얼마나 잘 표현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림의 독특한 구도라던 지 색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푸핫, 이건 엄청난 특수효과가 들어가야 가능하겠는걸.”
거대한 두더지를 타고 땅속을 여행하는 그림이 눈앞에 보였다. 난 사진을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누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찍을 방법이 뭐가 있을지 생각했다.
***
회의실에 들어가니 낯익은 인물이 몇 명 보인다. 현호 형과 현지 씨 그리고 전에 같이 일을 했던 스탭분들도 계신다. 거의 모두 있는 분위기이기에, 내가 늦었나 싶어 시계를 보았더니 아직 10분 전이다.
“자! 이때를 기다렸어요. 저번에 승우 씨한테 당했던 치욕을 만회하기 위해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안다면 정말 놀랄 거예요.”
현지 씨가 웃고 있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대체 내가 저번에 이 여자분한테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러는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
“저번 LK전자 광고 관련해서 본 게 마지막일 텐데·· 제가 뭐 잘못한 거 있나요?”
“크흑, 이 남자 착한척 하는 거봐. 우리 합작할 때마다 광고 관련 사진은 승우 씨 주도로 진행했던 거 기억 안나요?”
현지 씨가 무척이나 분해하고 있다.
“아니 뭐 기억은 나는데··.”
“승우 씨랑 작업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깨졌는지 모르죠? 아아,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네, 이 남자. 그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가. 역시 마성의 재능을 가진 남자, 그러니까 현호 감독님도 홀리고··.”
현호 형이 말을 듣고 있다가 탁자를 두드리고는 입을 열었다.
“야, 현지. 그쯤 하자. 에휴 얼마나 말이 많은지.”
“뭐 사실이잖아요. 감독님이 이번엔 우리가 주도하에 해보자고 얼마나 들볶으셨어요.”
“하아··, 말씀이나 드려.”
현호 형은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얼른 일이 진행되기를 바랐다. 현지 씨는 스크린에 비친 발표 자료를 손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자, 현지의 꿈과 환상의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호 형이 내 옆에 앉아 ‘쟤 좀 또라이야’라고 귓속말을 한다.
“이번 JR 브랜드 광고는 저번의 영광을 이어가기 위해 중요한 징검돌이 될 예정입니다. 이번 광고를 통해 우리가 단발성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죠. 저번 광고와는 다른 임팩트를 위해 우린 노력하고 또 노력했습니다.”
“야, 그냥 좀 발표하자.”
현호 형이 투덜대며 입을 열자 현지 씨는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현호 형 말이 맞다고 생각이 든다. 저 사람 좀 이상하다.
“JR 자동차는 가격대비 합리적인 차라는 글로벌적인 이미지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글로벌 위상에 걸맞은 브랜드의 깊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그런 깊이 있는 브랜드를 위한 대표적인 전략이 문화에 대한 후원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잘 몰라서 그렇지 JR 자동차는 국내나 해외나 가리지 않고 문화에 대해 7년 전부터 후원하고 있어요. 제 아이디어는 거기서 출발했습니다.”
“··서론 너무 길다.”
“감독님, 지금은 제시간입니다. 자, 그럼 이런 후원을 괜히 할 리가 없어요. JR 자동차의 목표는 차를 사용하는 이들이 회사의 문화적 활동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러려면? 티를 내고 합니다. 이것저것 후원했다는 걸 티를 내야 해요. 그래서 처음에는 후원하고 있는 미술관의 작품을 위주로 광고를 만들까 했습니다.”
“그건 너무 흔한 발상이지.”
현호 형이 말을 하자, 현지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현호 형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그런 아이디어를 내면 우리 감독님이 절 경멸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니 30년 넘게 주최한 그림대회가 있더라고요. 유치원부터 초등학생까지 참여하는 그림대회인데 잘 알려지지 않았죠. 문화에 후원한 거로 치면 거의 최초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뭐 최초는 아니겠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후원한 건 그거 정도겠지.”
“생각해보니까 기가 막힙니다. 이 대회를 광고로 나타내보자는 결심에서 아이디어는 출발했습니다.”
“드디어 서론 끝났네.”
“아이들의 그림을 어떤 식으로 써먹을까··. 준비한 아이들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꽤 많은 판타지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요. 색감이나 오브제 같은 거 말이에요. 그걸 리얼리티로 표현을 하면 꽤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다음 현지 씨는 자기가 얼마나 그 컨셉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과는 그림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고 한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아이들의 그림을 꾸미거나 지어내서 그린 것으로 보는 것은 어른들의 선입관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그림에 자신들의 구체적인 느낌과 현실을 담고 있단다.
“그래서 사진이란 리얼리티를 표현하는데 가장 중요한 도구로 이런 아이들의 표현을 어른들에게 일부나마 전해줘서 동심으로 돌아가 어릴 때의 꿈에 자신의 꿈을 겹쳐보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겨우 현지 씨의 연설 같은 발표가 끝나고 우리는 그림 선별 작업을 먼저 했다. 내 시선으로 봤을 때 실현 가능한 그림과 스탭 쪽에서 봤을 때 실현 가능한 그림을 대조하여 교차된 그림을 우선 남게 했다.
“일단 유치원 애들 걸 쓰도록 하자. 솔직히 고학년 정도 되는 애들 그림은 실체화시켜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장현호 감독은 고학년이 그림을 옆으로 치웠다. 난 유치원 아이가 그린 그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람이 다 정면을 향해 있네요.”
“그 나잇대 애들은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가 아니면 옆면을 그리는 경우가 드물어요. 뒷모습을 그리는 애들은 진짜 없다고 보면 되고요. 승우 씨 아쉬워서 어떻게 해요?”
“뭐가요?”
“뒷모습 성애자신데. 이번에는 힘들겠네요, 호호.”
그래, 저 여자는 좀 이상해. 난 그림 하나를 들고 물었다.
“이것처럼 위쪽으로 뻗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걸 표현하는 걸 보면 누워있는 것 같잖아요. 이거 실체화시키면 원작에서 많이 훼손되겠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현지 씨가 그림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좀··. 어른이 아이의 그림을 보고, 이건 걷는 모습이 아니라 누워있는 모습 같다고 판별을 하는 순간 아이의 세계와는 멀어지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죠.”
“그대로 표현하면 길에 누워있는 거로 보이는 데·· 아.”
맙소사 이거 말 그대로 그냥 실체화를 하자는 말이구나. 사진 이상하면 좀 웃기게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차라리 서 있는 걸로 표현할 수 있는 배경이 부실한 그림이 나을 것 같다.
“이건 좋은데요.”
난 자연을 보호하자는 주제를 담은 그림을 보며 말했다. 아이의 부모로 보이는 두 남녀가 한 명은 쓰레기를 주워 담고 한 명은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그리고 가운데는 삼색 빛이 나는 나무가 높게 뻗어 있었다.
“전 이거요!”
“이건 뭐냐? 마법사냐?”
현지 씨가 그림을 고르자 현호 형이 빈정댔다.
“역시 동심 잃은 남자. 꽃잎이 흩날리는 풍경 속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거잖아요.”
한 아이가 손을 벌리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오색 빛의 꽃잎을 보고 있는 그림이었다.
“난·· 이 정도?”
현호 형이 고른 것은 풍선을 들고 건물 위를 날고 있는 그림이었다. 나머지 스탭들도 하나씩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고르고 우리는 2차 회의에 돌입했다.
“근데 모델은 누가 하지? 나잇대를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어?”
“청소년기 애들이 하면 좋지 않을까요?”
“왜?”
“뭐 그 정도 나이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가 쉽게 무너지니까요.”
내 말에 현지 씨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요, 청소년기의 상상력이 엄청 풍부하죠. 그런데 그 나이 정도 애들을 쉽게 구할 수 있나요?”
“현지 씨 요즘 모델 한다고 몇 살부터 수업받는 줄 아시면 깜짝 놀라겠네요.”
“아·· 한 16살 정도 나이가 되는 아이들부터 들어오죠. 그쪽에서 구하면 되겠다.”
의외로 쉽게 모델 쪽은 구해질 것 같다. 현호 형은 그림을 보며 탁자에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이거 세트로 만들면 시간 많이 걸릴까?”
“··감독님 이거 세트로 만들면 우리 죽어요. 내가 노가다 하러 온 건지 광고 만들러 온 건지 고뇌하게 되는 경험을 또 주실 건가요. 그냥 그래픽으로 가요.”
“허용 범위 안에서 서너 장면 뽑아서 세트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그리고 이 세트 만드는데 내가 뭘 믿고 너희들을 쓰겠어. 이건 무대제작 쪽 일하는 사람들 불러서 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 생각해볼 만 하죠.”
“승우야 넌 어때?”
난 어깨를 으쓱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야 세트가 좋죠. 아무래도 컴퓨터 그래픽 쪽은 제가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이거 사진이 중요하니까 승우 의견대로 가자.”
현지 씨도 그 의견에 격하게 동의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합의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현호 형은 세트가 완성되면 내게 연락을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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