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93
93화 특이한 콜라보 (2)
“이 그림 그릴 때 무슨 생각을 했어요?”
“··.”
“제가 보기에는 꽃잎이 날아다니는 곳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데. 이런 곳에 있고 싶어요?”
“··.”
이곳에는 티 없는 해맑음이 만든 침묵만이 가득하다. 난 그래도 사진을 찍기 전에 무슨 생각을 하고 그림을 그렸는지 알면 더 그림을 잘 표현할 수 있을 줄 알았지.
“저기, 그림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거 없어요?”
“없어요. 근데 아저씨는 누구세요?”
“전 사진 찍는 사람이에요. 왜요? 궁금해요?”
“아니요.”
아, 뭔가 아이가 대답할만한 질문을 던져야겠다.
“저기, 인영이라고 했죠? 엄마 이름은 뭐예요?”
“인영이 엄마요.”
자 아무래도 내 인터뷰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부모님의 허락을 어렵게 받고 애써 유치원에 왔을 때부터 선생님들의 반응이 수상하긴 했다. 뭔가 이럴 줄 알고 계신 거겠지. 어린아이와의 인터뷰는 이쯤에서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선생님은 이럴 줄 알고 계셨죠?”
난 옆에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계신 유지원 선생님에게 말했다.
“아이 키워 본 적 없죠? 조카 없어요?”
“네, 조카 생기려면 한참 있어야 해요. 우리 형이 아직도 여자 친구가 없어서··.”
난 머나먼 타지에서 고생하고 있을 인기 없는 남자를 생각했다.
“제가 한 번 물어보긴 할 텐데. 기대는 하지 마세요.”
하지만 유치원 선생님의 질문에도 그리 올바른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따라 선생님의 안경이 바뀌었는지 인영이는 안경에 대한 흥미를 보였을 뿐이었다. 선생님도 지칠 무렵 아이가 입을 열었다.
“곧 제 그림처럼 될 거예요.”
주어가 빠져 있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는 그림을 그린 장소가 곧 자신의 그림대로 변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아이의 눈으로 보기엔 자기의 그림도 충분히 현실 같다는 거지.
***
“한 아이만 인터뷰했지만, 이 광고는 어린이를 위한 건 아니에요. 이 그림을 그린 애들 눈에는 충분히 현실에 가까워 보이니까요. 결국, 우리는 시선을 어른들에게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난 현호 형과 만나 촬영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진을 이용해서 어떻게 광고를 만들지 토의하기 위해서였다.
“쩝,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는데.”
“자기가 되고 싶은 걸 그린 그림이 아니면 반응은 그저 그럴 것 같아요. 그림 대회 보니까 그런 주제는 없던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승우 덕택에 좋은 사실 하나는 알았네. 아이들은 별로 기뻐하지 않을 거라는 거 말이지.”
“정 넣고 싶으면 편집해서 올리면 되겠죠.”
“에이, 또 뭐 거짓된 장면을 붙이냐. 그냥 다른 장면 넣는 게 백번 나아.”
그렇게 몇 번의 만남이 지나 촬영 날이 됐다.
내가 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며 이곳저곳에서 나를 원하는 곳이 많아진 이유는 내 사진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내 입으로 이런 결론을 내려서 부끄럽지만, 수요보다는 공급이 많은 이 사진 시장에 내가 살아남은 건 아무나 흉내 내지 못하는 사진을 찍는다는 입소문 때문일 것이다.
“부담되지.”
난 카메라를 꺼내며 중얼거렸다. 언젠가 카메라의 능력이 사라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고민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결론은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분위기 장난 아니다.”
며칠 동안 세트를 만들기 위해 애썼던 스탭 일부가 촬영 현장에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제법 잘 나가는 영화 미술팀을 불러 세트를 제작했다고 들었다. 프로라고는 하지만 아이들의 시선을 어른의 눈으로 재창조해내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야, 현성이! 여기 소품 하나 비잖아.”
마무리 작업인 한창인 세트장 구석에서 난 심호흡을 했다. 얼마 뒤에 이 모든 노력을 단 몇 장의 사진으로 압축해서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 나 혼자라는 사실에 몸이 무거워져 왔기 때문이다.
“벌써 와 있네.”
“아, 현호 형.”
“이번에도 작품 하나 만들어보자고. 준비는 잘 됐지?”
“잘 찍어봐야지요.”
이번 촬영은 어디에 속할까? 인물보다는 패션화보 쪽에 가깝겠지. 아무래도 그쪽이 좀 약하니 보완책은 필요하다.
화이트밸런스, 컬러밸런스, 채도, 컨트라스트 등 사진가에게 색을 요리할 도구가 많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나중이 되면 두 개 이상의 아이템도 써보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미친 사진이 나올지도 기대가 되고.
“사진을 어떻게 찍을 거야?”
“아이들 그림을 보면서 몇 가지가 생각났는데 색을 부각시킬 거예요. 색을 다루는 방법이 색다르다고 해야 하나?”
“그렇지·· 거의 원색을 사용한 그림이 많았지.”
현호 형과 촬영에 대한 얘기를 마무리 한 후 난 다음 촬영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모델분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지연 씨. 준비는 잘됐어요?”
“이런 작업 처음이라 좀 어색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요. 최선을 다해 찍을게요.”
난 어제, 광고에 선택된 모델들과 두 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사진을 잘 찍으려면 모델과의 교감은 필수기 때문이다. 최소한 찍는 사람이 이런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미술팀이 만든 꽃밭에 지연 씨가 서서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다.
“자, 꽃잎 올라갑니다. 모델분 놀라지 마세요.”
스탭 한 명이 기기 작동 전에 모델에게 한마디 했다. 곧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꽃잎이 떨어지고 있다.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모델이 소리에 약간 당황한 게 보인다. 난 급하게 입을 열었다.
“지연 씨, 카메라 봐요. 포즈 유지한 채. 긴장 풀고.”
화장을 짙게 해서 잊었던 그녀의 실제 나이가 생각이 났다. 내 소리에 그녀는 애써 나를 바라보지만, 아직 표정이 나오지 않았다. 꽃잎폭탄은 하나밖에 준비되지 않아서 이 꽃잎이 떨어지기 전에 한 장을 건지지 못하면 내일이나 재촬영에 들어갈 수 있다.
“자, 지연 씨. 심호흡하세요. 눈 감고 다섯을 세고 다시 포즈 취해봅시다. 아직 시간 있어요.”
내가 긴장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난 초조한 마음을 감추고 그녀에게 마음을 가다듬을 최대한의 시간을 내줬다. 다섯을 세고 다시 포즈를 잡으면 잘해야 두 컷 건질 수 있을 것 같다. 어째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 같다.
내가 속으로 셋을 세자, 모델의 눈이 떠졌다.
“좋아요, 이제 돌아왔네. 그 포즈 잡고··.”
포즈와 눈빛이 잡혔다고 생각됐고, 난 셔터를 빠르게 눌렀다. 그리고 카메라를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스탭 몇이 급하게 내게 다가왔다.
“어떻게 됐어요? 재촬영인가요? 아씨, 너는 겨우 그런 거에 놀라서!”
“아니에요. 모델은 잘해줬습니다. 건진 것 같아요.”
촬영장에 남은 모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어린 나이, 특이한 작업, 거대 클라이언트까지 합쳐졌으니 부담이 간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나마 촬영 전에 말이라도 몇 마디 나눠서 다행이었다.
“우와, 뭐야? 언제 색을 조정했어요? 야 이건 누가 보면 보정 작업 무지하게 들어간 줄 알겠다.”
“괜찮죠?”
“아·· 네.”
“지연 씨, 잘했어요. 사진 잘 나왔어. 이리 와 봐요.”
그녀는 긴장감이 풀어졌는지 세트장을 빠져나오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내 내 옆으로 와 사진을 확인하더니 배시시 웃었다.
“나도 얼마나 큰 소리가 나는 줄 몰랐어요. 생각보다 소리가 조금 컸어요, 그렇게 생각하죠?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잘해줘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작가님 정말 감사해요, 저 때문에 촬영 망칠 뻔했는데.”
“이 사진 봐요. 누가 촬영 망쳤다고 생각하겠어요. 지연 씨는 아주 완벽히 잘했어요. 나중에 또 같이 일하면 좋겠네요.”
처음부터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가 일어나 땀 좀 뺐다. 현호 형은 긴장된 얼굴로 내게 다가와 아무 말 없이 사진을 확인하더니 내 어깨를 툭 치며 입을 열었다.
“이거 너 아니면 못 찍고 재촬영 했을 거다. 와, 그 짧은 순간에도 A컷을 만들어 버리네.”
“두세 장은 찍을 기회가 올 것 같았어요. 다행이죠, 뭐.”
“다음 것도 잘 좀 부탁하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촬영을 위해 남자 모델이 풍선을 든 채 하늘에 매달려 있다. 와이어를 이용해 매달려 있기 때문에 꽤나 힘들 것이다. 모델의 밑에는 주황색 지붕이 보이고, 지붕에 달린 굴뚝에서 초록색 연기가 나오고 있다.
“이번에는 아무 소리도 안 나니까 걱정하지 않고 찍습니다.”
주위에 웃음이 번졌다.
“철호 씨, 지금 와이어 때문에 당기는 곳 없어요?”
“좀 아픈데 참을만 합니다.”
“연습했던 포즈랑 표정 부탁합니다.”
난 사다리에 올라 카메라로 아이가 그린 그림을 상상하며 셔터를 눌렀다.
***
[올 들어 애드 코인즈가 선보인 어트버타이징이 업계 안팎에서 눈길을 끌었다.광고업계에 따르면 ‘아트버타이징(Artvertising)’이란 예술(Art)과 광고(Advertising)의 합성어로 미술, 음악 등의 예술적 요소가 핵심적인 광고다.
애드 코인즈는 JR 자동차 그룹의 브랜드 광고에 어린아이의 상상을 현실로 바꾼다는 콘셉트의 CF를 공개했다.
이 광고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꿈을 가상공간이 아닌 현실에서 그대로 실현시켜주었다. 이 광고에서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의 상상력을 빌려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고자 했다. 광고에서는 아이들의 그림을 토대로 그들이 그림에 최대한 가깝게 세트를 세우고 그곳에 모델들을 분장시켜 어린이들의 판타지를 현실로 재현했다.
컴퓨터그래픽 도움 없이 완전히 수작업으로 진행됐다. 이를 사진으로 담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판타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광고는 묻는다. 왜 우리들 어릴 적 꿈은 꿈으로 남고 현실은 여전히 어릴 적 이상과 동떨어져 있느냐고 말이다.
해당 광고를 제작한 장현호 애드 코인즈 대표는 “제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도를 내세운 만큼, 우리도 광고를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제작 의도를 설명했다.]
기사가 난 다음날 장현호는 홍영기의 호출을 받았다.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이번 브랜드 마케팅이 괜찮아서 선물이나 주려고. 광고를 분석한 글도 여기저기서 기사로 나오고 화제성이 있어. 이번 광고도 처남 작품이지? 요즘 들어 잘 나가네. 뭐 저번에는 LK전자도 물었고 말이야.”
“이번 광고는 직원이 생각해 낸 겁니다. 사진으로 잘 담기도 했고요. 아, 저번에 말씀드린 그 사진가가 찍었습니다.”
홍영기는 생각이 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 처남이 추천한 사람 말이군. 근데 이건 사진보다는 아이디어가 대부분인 사진 아닌가?”
“그거, 보정도 거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원본하고 차이도 별로 안 나요.”
“흐음·· 대단한 건가?”
“어휴! 대단한 거죠. 정말 대단한 겁니다. 이런 사진 찍을 수 있는 사람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걸요.”
“사진작가인가?”
“지금은 상업 사진 찍고 있죠. 어떻게 커갈지는 모르겠지만요. 이제 25살입니다.”
“그 친구 때문에 꽤나 흡족하나 보네. 그 친구 인물사진도 좀 찍나?”
“그게 주특기라고 하더군요.”
“이번에 인터뷰 있는데 사진가로 그 친구 불러봐야겠군. 가능한가?”
장현호는 홍영기의 말에 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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