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154
155. 어둠 속에서
나는 팔짱을 꼈다.
1파티가 나서지 않았어도 오늘의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시간이 적게 걸리냐,오래 걸리냐
의 차이였겠지.
[이렇게 강했어?]화면을 들여다보던 이셀이 중얼거
렸다.
“뭐가?’’
[아,아니… 강하다는 얘기는 들
었는데,이상하잖아. 다른 서버에서 공격했을 땐 고전했다면서! 질 뻔한 적도 많았다며!]
그런 이야기도 없진 않았다.
이셀은 넋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마스터, 130번째 승리를 축하드 립니다.”
“한 것도 없는데 무슨.”
“또 어울리지 않는 겸손을.”
[저,저기! 저번에 4위가 공격해 들어왔을 때,있잖아! 레벨 350짜
리! 그때는 전멸까지 갔던!] “그런 적 없어.”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7성이라던 그 녀석은 제법 강하긴
했다.
저 고깃덩이와는 수준이 다른, 제 대로 된 7성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녀석도 시리스에게 패 배한 뒤 목숨만 건져 달아났다.
‘내가 7성에 연연하는 것도 그래 서지.’
지금도 이 정도인데.
한 등급 더 올라간다면…….
못내 아쉬웠다.
그 일은 접어두고.
나는 아론이 싸우는 장면을 확대 했다. 두 명의 공격에 맞서서 분전 하고 있다. 창을 휘두르는 품이 제 법 매서웠다.
“많이 강해졌네.”
“뮤덴이 그러더군요. 이렇게 재능 이 없는 놈은 처음 보겠다고.”
“그래?”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겁니다. 이 제 기초를 배웠을 뿐이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론이 강해지기는 했다. 화면 너
머로도 느껴질 만큼. 당장 데려온다 면 1인분 이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전력이 반파된 타오니어에 큰 보템 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짓.
넌 하산하기엔 택도 없어.’
뮤덴이 두 번은 안 받아주거든. 최대한 뽕을 뽑아야지. 나는 아론
의 화면을 지웠다.
“마스터,이번 전투는 곧 끝날 것
같습니다만,어떻게 하실 것인지요. 곧장 돌아가십니까?”
“그럴 생각……
유르넷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
다.
“……이었는데,마음이 바뀌었다.”
“그렇군요.”
다시 밝아진 유르넷이 머리를 끄 덕였다.
나는 노르드의 조각난 시체를 가 리키며 말했다.
“저 녀석에 대한 분석이 끝날 때까 진 있으려고.”
이런 곳에서 7성에 대한 힌트를 얻을 줄은 몰랐다.
천우신조의 기회. 놓칠 수 없다. 타오니어의 애들과 약속한 일주일 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기도 했고.
“사흘이면 되겠지? 동료들에게 그 안에는 돌아간다고 했어.”
“충분합니다.”
유르넷이 손을 내젓자,살점이 부 들부들 떨리더니 차원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뒤에 서 있는 리디기온과 니 하쿠를 돌아보았다.
“너희들도 수고했다.”
“헷,감사함다!”
“마스터의 덕분입니다.”
두 명은 나란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웃음을 지었다. 내가 키운 캐 릭터와 마주 볼 날이 있을 줄은.
사소한 전후 처리를 끝낸 뒤,나는 기함 브륜힐트로 돌아왔다.
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이곳 에 머물 예정이었다.
나는 연구에 바쁜 유르넷 대신 니 플헤임의 업무를 처리했다.
유르넷의 도움으로 마스터 조작창 을 띄운 뒤,지구에서 하듯이 운영 하는 것이다. 부관들의 보고를 받고 진행 방향을 결정한다. 늘상 하던 짓이었다.
그리고 비는 시간에 리디기온과 대련을 이어갔다.
“상당하군요.”
“네가 할 말은 아닌데.”
쿨럭.
나는 입가의 피를 닦았다. 눈앞에는 리디기온이 경직된 표정
으로 서 있었다. 내가 한 것은 간단 했다. 녀석에게 익시드에 이어 패검 혼을 때려 박은 것이다. 딱 한 번,쥐 어 짜내듯이.
“……그래도,후우.”
나는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은 채
말을 이어갔다.
“그 자리에선 밀어냈어.”
리디기온은 다섯 발자국을 물러나
있었다.
나와 얼맞은 수준으로 스랫 조정 을 하긴 했지만,괄목할 만한 성과 였다.
전력을 담은 필살기로 고작 다섯 발자국 움직이게 한 게 약간 서글폈 지만.
‘뒈질 것 같다.’
나는 상급 회복 물약을 들이켰다.
통증이 점차 가라앉았다. 힘을 최 소로 줄였으나 반동을 버틸 수가 없 다.
훈련소 전체에 회복 마법이 걸려 있어 살았다. 실전에서는 곧장 넉아
웃됐을 것이다.
“성 장 가능성 이 대단히 높은 스킬 입니다. 예전의 시리스를 보는 것 같군요.”
리디기온이 부드럽게 웃었다.
“예전의 시리스?”
“저보다 모자란 면이 많았습니다 만,불가사의한 힘으로 이를 극복하 곤 했었죠.”
“별로 불가사의한 힘은 아니야.”
“제게는 그랬습니다.”
뭐,어쨌든 흔치 않은 기회였다.
돌아가면 언제 또 검을 마주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자세를 잡고
검을 들었다.
다시 며칠 후의 저녁.
복귀 기한까지는 하루가 남았다. 내일이면 돌아갈 생각이었다. 보
고는 타오니어에서도 받을 수 있으 니.
그렇게 브륜힐트의 임시 집무실에 서 업무를 보는 도중,문이 벌컥 열 렸다.
“유르넷인가.”
“예. 실례합니다.”
유르넷이 내게 천천히 걸어왔다.
옆구리에 서류 가방을 낀 채였다.
“마스터,분석이 끝났습니다.”
“수고했다. 거기 놔.”
나는 유르넷이 놓은 가방을 열었 다.
빽빽한 종이 위에 푸른 글자가 새 겨져 있다. 마법적인 처리가 된 서 류. 이를 책상 아래의 세절기에 넣 으면 홀로그램으로 받아볼 수 있었 다.
나는 단결회와의 전투 당시를 되 돌렸다.
카이저의 서브 마스터, 노르드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레벨은185.
유르넷의 말에 의하면 7성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앞서 나댔기에
망정이지,아마 녀석이 힘을 착실히 길렀다면 우리도 조금 귀찮아졌을 것이다.
‘대체 어디서 났지?’
7성 승급에는 ‘역천의 서’라는 재 료가 필요하다.
역천의 서는 ’초절 강림 던전’에서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다.
픽 미 업의 정식 가이드에 소개된 설명이었다. 신빙성을 의심할 여지 가 없다. 어떤 아이템인지는 건너뛰 고 말이다.
단결회의 맹주였던 ‘카이저32’는 전투 직후 모습을 감추었다.
몇 번이고 채팅과 우편을 날려보 았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알 거 없 다는 말이 녀석이 보낸 마지막 메시 지였다.
‘알 거 없다고…
옆에는 유르넷이 서 있다.
이 녀석은 내 상상 이상의 정보력 을 갖고 있었다.
뫼비우스뿐만이 아니다. 지구에서 도 우수한 해커로 명성을 날리고 있 다고 한다. 마학 술식과 해킹 코드 가 비슷하다나 뭐라나.
[‘카이저32’와 ‘노르드 시칼’에 대해세
보고서의 서문이 떠올랐다.
나는 화면을 아래로 긁어 내리기
시작했다.
먼저 카이저32.
[이름 一 서태준]
[나이 一 32]
[태생 – 지구, 대한민국,서울]
사진과 함께 녀석의 신상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나이가 서른둘이라서 32였군.
센스 참. 나는 피식 웃고는 읽어갔 다.
수억 원의 과금 내역을 증명하듯 금수저 아니,다이아수저를 물고 태 어 났다.
창신 그룹의 삼남. 창신 그룹이라 면 한국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재벌 이었다. 원래는 계열사 하나를 물려 받아 떵떵거리며 살 예정이었으 나••••••.
‘후계자 싸움에서 밀려났다.’
권력 암투가 반복되며 자리에서 밀려났고, 돈만 잔뜩 받은 채 지방 으로 유폐 당했다.
그리하여 시작했던 게 게임. 게임 마다 수억씩 질러가며 도장을 깨듯 랭킹 1위를 씹어먹었다.
‘흐음.’
주변 인물에게 돈을 퍼주며 왕 노 릇을 했다.
권력이 남달랐다는 측근의 증언이 첨부되어 있었다.
현실에서 그럴 수 없었으니,게임 에서만큼은 왕이 되고 싶었던 것 같 다.
‘다섯 번째 게임이 L이었고.’
엄청난 과금 정책으로 유명하긴 하지.
‘L을 정복한 이후에는, 혈맹원과 함께 픽 미 업으로 넘어왔다……;
그게 현실 시간으로 석 달 전. 뒷일은 내가 아는 것과 같다. 돈을
떡칠하면서 영웅을 대량으로 뽑고, 약탈과 파괴를 일삼으며 등반했다. 그리고 니플헤임과 맞붙다가 박살 났고.
그나저나,마스터의 출신마저 파 헤칠 수 있다니.
나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이런 것까지 알 수 있나?” “뫼비우스의 서버에 기록되어 있
ㅇㅁㄹ
유르넷은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마스터, 다음 내용은 충격적일 수 도 있습니다. 대비를 해주시길.”
“무슨 뜻이냐?”
“카이저32의 근황입니다.”
알 것 같다.
그놈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스크롤을 긁었다.
보고서의 다음 장은 공백이었다. 그러나 화면에서 조금씩 노이즈가
떠오르더니, 흑백 영상이 재생되었 다.
[Cam. 32]어두운 방.
창문에 커튼이 쳐져 있고,문은 굳 게 닫혀 있다.
조명 하나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 다.
방에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침대 위에는…….
“이 영상은 뭐지?”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느 병원의 영상입니다. 보안이
꽤 심해서 뚫는 데에 고생했지요.’’ “CCTV 로군.”
“예. 창신종합병원,지하 3층.”
“저 남자는……
“서태준,32세. 약 한 달 전에 뇌 사 판정을 받았습니다.”
‘역시 그런가.’
의심만 품고 있던,여러 가지가 명 확해졌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 몸은 어딨나?”
“죄송합니다. 그건 저희도…… “그렇겠지. 알아.”
“잠깐만,혼자 있고 싶은데.”
“실례하겠습니다.”
유르넷이 내게 고개를 숙인 뒤,방 을 나섰다.
나는 탁자 위에 손을 올렸다. 영상 의 남자는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뇌사 판정 을 받았다면 살아있는 시체일 뿐이 니까.
‘얼마 전의 카이저32와 노르드는 동일 인물이었나.’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반 영웅 반 마스터. 언젠가 유르넷 이 설명했던 7성의 조건이었다.
그 밖의 정보를 차차 정리해갔다. ‘게임에 빠져들수록,마스터는 점
점 뫼비우스와 가까워진다.’ 그렇기에,층이 높아지면 간섭력
의 농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지금 암케나가 그러고 있는 것처
럼. 영웅은 더욱 강해지며,임무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된다.
역천의 서.
이름부터가 넌센스였다.
‘하늘(天)을 거스른다(逆).’ 그랬군.
7성이 되는 조건은 간단했다. ‘영웅과 마스터의 합성.’
그 과정에서 마스터는 사망한다.
서태준이 침대에 누운 시체가 된 것처럼.
‘랭킹 1위부터 4위.’
그들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다.
90층에 올라갔다는 소식만 전해 질 뿐. 그러나 예전에는 아니었다. 한때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인기 인 취급을 받았던 녀석들이 몇 있었 다. 나도 초보였을 때 한번 도움을 받았으니까.
’갑자기 잠수를 탄다 했더니.’
죽어 버 렸나.
그 녀석들 중에는 나도 감탄할 만 한 천재가 있었는데.
카이저32가 죽었다고 한다면,노 르드가 실질적인 단결회의 맹주였 다는 뜻이 된다.
놈은 7성의 힘을 얻은 뒤 마스터 인 척을 하며 니플헤임을 침공했던 것이다.
‘명분은 있군.’
서태준의 처지를 아는 놈이 나타 나도 자율 행동이라고 둘러대면 그 만이다.
내 위의 랭커 계정도 마찬가지였 다.
나는 눈을 감았다.
놈의 음성이 천천히 되감겼다. 나를 이곳에 불러온 그놈. 귀에 거
슬리는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했다.
•그럴 리 없잖느냐. 너는 특별한 존재다. 이 장소는 너를 위한 선물 이야. 픽 미 업의 영광스런 랭커였 던 너를 위해 준비한 나의 무대 다」
「너무 미워하진 마라. 네가 뫼비 우스에 소환된 것은 나로서도 의외 였어. 예상 밖의 일이었다. 일종의
사고였지 d
1이 문장의 의미를 진정으로 구 현한 사람은 너밖에 없었다. 1억 명 의 마스터 중 오직 너뿐이었어.
「하지만 너만은 달랐다. 진정 대 기실을 지배했던 마스터는 오직 너 밖에 없었다.」
전부.
입에 발린 말이었다.
나는 그 녀석에 의해 불려온 게 아
니다.
단지 사고였던 것이다. 놈의 목적 은 처음부터 단 하나였다.
‘나를.’
죽이려고 했군.
합성 대상은 시리스였겠지. 목적은 물어볼 것도 없다.
7성.
놈은 내 계정에 초절 강림 던전을 열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합 성에 실패했고, 나는 살아남았다.
그래서 그 녀석은 대가리를 굴렸 다.
나를 재활용하기 위해.
‘아주 알뜰살뜰한데.’
주부하면 잘할 것 같아.
그렇지 않나?
,텔.,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녀석의 이름 을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