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179
180. 단 한 번을 위한(4)
다음날 오전.
레이드 페스타의 개회식이 시작됐다. 뫼비우스 대표자가 취지 연설을 하고,
간단히 규칙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여기서 나는 이벤트의 일정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레이드 페스타는 사흘에 걸쳐 치러
진다.
첫째날에는 개회식 및 3대 이벤트의 예선전이 진행되고,둘째날에는 본선이, 마지막 셋째날에는 상위 라운드 및 결승전이 벌어진다.
그리고 일정 사이사이마다 소소한 미니 이벤트들이 끼어 있었다.
원래 뫼비우스와 지구는 시간의 흐 름이 다르지만, 이번 페스타를 위해 본사 측에서 시간축을 맞춰놓았다고 한다.
특수 이벤트는 펼쳐지는 장소가 모 두 달라,우리는 개회식 이후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물론 카티오를 구워삶아 휴대용 통 신 장치를 갖춰놓았기에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할 수는 있었다. 나는 바로 운송용 버스를 타고 이벤트 장소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도중,개회식에서 들었던 사항들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하나는 차원도시에서 사망하더라도 능력 저하 없이 부활할 수 있다는 것. 다만 한번 살아난 영웅은 이벤트 참가 자격을 잃는다. 둘은 대기실의 회복 능력은 여기서 듣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면 돌아온다고
했었나.
아론의 목소리가 귀에 아른거렸다. 장난으로 내뱉은 말 같지는 않다. 아 론은 나와 짧게 대화를 나눈 뒤,대회를 준비한다며 바로 돌아갔다.
’궁금한데.’
개인전에는 벨키스트가 나갔다.
가능하면 가까이서 상황을 보고 싶 었다. 이를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끝내는 수밖에 없나.’
일정표를 보면 개인전이 가장 늦게 개최된다.
이번 예선전을 고속으로 끝마치면, 개인전 현장에 구경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내 몫부터 해야겠지.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4차선 도
로에 수송용 버스가 가득했다. 모두 랜덤 이벤트에 참가하는 영웅들이었다. 이 종목은 유독 참가자 수가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개인전과 단체전에 니플헤임이 출
전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벤트 포 기자가 속출했다. 반면 니플헤임이 참 가하지 않는다는 랜덤 이벤트에는 지 원자가 잔뜩 몰리고 말았다.
‘전체 우승이 목적은 아닌가 보네._ 종목 하나를 포기한 것을 보면,우수
교육생에게 실전 경험을 주려 한 것 같다.
5성 확정권에는 별 욕심이 없는 듯 했다.
‘이거,뭐라 할 수도 없고.’
이 페스타는 비랭커를 위한 이벤트 였다.
지금 랭커들은 이런 사소한 장난에 시간을 쓸 여유가 없었다. 한창 월드 레이드의 밑작업으로 바쁠 시기였으 니까. 즉 니플헤임은 이번 레이드를 포기했다는 뜻이 된다.
어차피 희귀 재료는 썩어 넘쳐나니, 한 번쯤 걸러도 상관없긴 했다.
얼마 뒤 버스가 정차했다.
나를 포함한 참가자 일동은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의 안내를 받아 거대한 돔형 운동장에 들어갔다.
“여기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곧 담 당자님이 오실 테니까요.”
우리를 넓은 강당에 세워놓은 여사 원이 종종걸음으로 퇴장했다.
“여기서 뭘 하겠단 거지?”
“그러게 말이오. 괴상하게 생긴 시
설이긴 하지만,특별한 건 없어 보이 는군.”
“왜 이리 늦어! 책임자 빨리 불러와!” 웅성 웅성.
수천 명의 인파가 내는 소음으로 돔 전체가 울렸다.
나는 실내 운동장의 구석에서 벽을 기대고 있었다.
‘드립게 많네.’
이 중에서 단 한 명만이 우승과 함께 경품을 차지할 수 있다.
어지간히 창렬한 이벤트였다.
몇 분간 기다리고 있자니,저 앞의
강연대에 쪼끄마한 점이 나타났다. 그 녀석은 두 쌍의 날개를 파닥거리다
날개를 접고는 강연대 위에 앉았다. [이번 이벤트에 참가하신 영웅 여러
분!]
담당자가 말했다.
검은 머리를 길게 땋아 내렸고,몸에 딱 맞는 여성용 정장을 입고 있다.
붉은빛이 감도는 뺨이 호빵처럼 부 풀어 있었다.
[모두들 반가워용! 다들 영웅의 품 격이 넘치시네용. 제가 맡은 이번 배뜰 뤄얄에 참가해주셔서 감사해용. 과연 안목이 있으시다니까. 열화와도 같은 성원에 감격했어용.]요정이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그 뒤에는 뫼비우스의 사원단이 뒷 짐을 진 채 도열해 있다.
꽤나 독특한 풍경이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이셀?”
맨 앞에 있던 누군가 말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요정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쾅!
요정이 날갯짓을 하는가 싶더니,엄 청난 폭음과 함께 그 남자의 눈앞으 로 이동했다.
초음속의 증거. 소닉 붐이었다.
[너 방금,시방 뭐라 했냐?]“아,아니……
[그딴 집요정하고 이 몸을 비교한기 라?]요정이 목에 걸린 사원증을 윽박지 르둣 남자의 면전에 내밀었다.
[이거 안 보이나? 대표이사님이 직접 선물해주신 황금 사원증이라 이거야! 너거들 집에 빌붙어 있는 비정규직 노예들하고는 비교하지도 마! 뚝배기 깨지기 싫으면! 알겠어? 앙? 알겠냐고!]
남자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요정은 코웃음을 치더니 단상으로 올라섰다.
[오흥흥! 영웅 여러분,이번 이벤트는 유명한 회사와 유의미한 컬라보〜 퀘 이션〜 을 하게 됐어용. 매우 영광이 지용. 여러분도 재밌게 즐겨 주셨으면
좋겠네용. 마스터들도 지켜보고 있을 거예용. 여러분의 용기와 능력을 증명 할 기회예용. 파이티이잉!]
요정은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외치 고는 공중에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트윙클! 요정 파워!]번쩍!
운동장 전체에 파란 섬광이 일더니, 눈앞에 홀로그램 메시지가 떠올랐다.
[레이드 페스타!] [‘PlayerKnown’s BattleRoyale’] [※주의!] [짝퉁이 아닙니다.] [콜라보〜 레이선〜 입니다.] [대회의 룰을 설명합니다.] [이벤트를 위한 특수 초차원 필드가 구성됩니다.] [1. 참가자들은 모든 장비를 반납한 채 맨몸으로 시작하며, 필드 곳곳에 숨겨진 아이템과 장비 등을 획득하여 최후의 1인이 될 때까지 싸워나갑니다.] [2. 일정 시간마다 필드가 좁아지며, 마법 아이템을 비롯한 보급품들이 떨 어집니다.] [3. 참가자들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일시적인 파티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요주의!] [짝퉁이 아닙니다.] [믿어 주십시오.]
메시지 아래에는 이번 대회에 사용 할 필드의 간략한 지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빠르게 규칙과 지도를 훑어나 갔다.
[여러분의 눈앞에 떠오른 이것이야 말로! 제가 정규직의 우수한 능력을 발휘한 결과! 쁠레이언노운스 붸틀뤄알!] [어헛! 혹시 이상한 말을 하시는 분 이 있을지 모르는데,타 게임사에 정 식으로 허락을 맡은 컬라보〜 퀘이 션〜 이에용. 오흥홍홍!]
‘이거…… 저작권에 안 걸리나.’
뭐,상관없다.
쟤네들이 괜찮다고 하는데.
무슨 소송에 휘말리든 내 알 바 아 니지.
한참을 호탕하게 웃어젖히던 요정 은 기억났다는 듯 손뻑을 치더니,품 에서 보석 상자를 꺼냈다.
[주목하세용! 이건 이번 이벤트의 우승자에게 드리는 특별한 경품이에용.]요정이 상자를 열었다.
보드라운 쿠션 위에 무지개빛으로
반짝이는 돌이 놓여 있었다.
[무려 최상급 강림석! 여러분 같은 저능아…… 아니,영웅분들이 한참을 고 생해도 얻기 힘들 그런 아이템이지용.]
철컥.
상자가 닫혔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제대로 왔구나.’
사실,티켓 같은 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나는 저 강림석을 얻기 위해 이번 페스타에 온 것이다. 혹시 우승 경품 으로 안 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정답 이었던 것 같다.
“휘유,다행이네.”
가벼운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옆을 돌아보자 어딘가 낯이 익은 여 자가 서 있다.
한참을 고심해서야 떠올릴 수 있었다.
어제 떨거지네 뭐네 난리를 피우던 4성 여자였다.
그 옆에는 다른 파티원들도 모여 있 었다. 단체전과 개인전에서는 모두 발을 뺀 모양이었다.
“저 강림석만 얻으면 그깟 놈들은 콧대를 꺾어줄 수 있어. 니플헤임이고 뭐고,어차피 퇴물이야. 다음 이벤트 에서 두고 보라지. 내 발을 할게 해줄 테니까.”
금발의 여기사가 흥,코웃음을 쳤 다.
저놈들과는 곧 만날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까 말했듯이,여기서 죽는다고
아웃이 아니에용. 우리 뫼비우스의 그 뤠잇한 기술력으로 되살아난다는 사실! 지켜보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팍팍 죽
이고 죽으세용!]
“………”
[그럼 여러분,이제부터 예선전을 시작할게용. 다들 재밌게 즐겨주세용!]요정이 싱긋 웃더니 단상에서 내려 갔다.
그러고는 뒤에 줄을 맞추고 있던 사 원들에게 가죽 채찍을 휘둘렀다.
[뭐해,이 비정규직 노예 새끼들아! 일 안해?!]짝!
채찍 세례를 맞은 사원들이 허둥지둥 흩어졌다.
곧장 이벤트 준비가 시작되었다. 영
웅들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여러 무 리로 나뉘었다. 모여 있는 인원만 수천 명인 만큼,조를 짜는 것이다. 원형의 운동장 곳곳에 차원문이 생겨났다.
[http://go.onewinch.tv/ – 원인치 TV] [Pick Me Up! – 엥? 니플헤임이 4성급 차원도시에?] [BJ – 앗쌀라히쿰] [시청자 3,053명]
시야 우측에 방송 배너가 떠올라 있다. 암케나의 화면이었다. 레이드 페스
타는 BJ들에게도 수많은 방송 거리를
주는 이벤트였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레이드를 벌이는 랭커들을 주목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다름 아닌 니플헤임이 여기에 있으니까.
‘여긴 아니군.’
방송에서는 개인전 현장이 중계되고 있었다.
나는 잠깐 훑어보다가 방송을 시야 바깥으로 드래그했다.
게임 화면으로는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없다.
예선전은 소수 인원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나는 나와 같은 조에 편성된 인원을
세어보았다.
약 스무 명. 상위 라운드로 넘어갈 수록 참가자가 많아진다고 한다.
예선전부터 계산하면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셈이었다.
일단 변수가 너무 많다.
뒤치기나 합공을 당할 수도,때아닌
사고에 휘말려 죽을 수도 있다.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는 놈들은 개
인전이나 단체전으로 가겠지. 출구를 보니 운동장을 나가는 영웅들이 나름 눈에 띄었다. 아직 다른 이벤트의 신 청은 늦지 않았다.
당연히,나는 가지 않는다.
전체 우승을 위해 왔으니까.
”예선 18조 영웅분들! 갖고 계신 장 비를 반납해주세요!”
운동장의 구석에 있는 차원문 앞.
사원이 벽에 설치되어 있는 진열장의 문을 열었다.
“소유하고 계신 아이템은 가져가시면 안 됩니다! 들킬 시 바로 탈락 처리됩 니다. 보관은 확실히 해 드릴 테니,갑 옷과 장비를 벗으셔서 넣어주세요.”
영웅들이 갑옷과 장비를 벗어 차례 대로 라커룸에 넣기 시작했다.
“차원문에 들어가시면 바로 예선전이 시작됩니다. 아까 말했듯이,죽어도
되살아나니 부담 갖지 마시구요. 최선을 다해주시면 됩니다.”
나는 가죽 갑옷과 비프로스득 단검을 풀어 진열장에 넣었다.
어차피 꼼수를 부려도 비프로스트는 못 가져간다. 각종 보안 마법이 붙어 있으니까. 예선전을 통과한 다음 회수 하면 된다.
“자자,들어가세요!”
위이이잉.
내 키만한 차원문이 회전하고 있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이미 들어갔다. 내가 마지막이었다.
나는 내 뒤에 다소곳이 서 있는 여 직원에게 말했다.
“이번 예선전을 빨리 끝내면,나가도 되나?”
“일정을 끝내신 분은 나가셔도 괜찮긴 한데요. 이번 이벤트가 아무래도 장기전 컨셉이 라……
나는 차원문 안으로 들어갔다.
특유의 부유감과 함께 빛이 전신을 휘감았다.
[플로어 ?.]
[이벤트용 특수 필드입니다.]
[목표 – 한 명이 될 때까지 살아남
아라!]
나는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소환된 곳은 고층 건물의 한쪽인 것 같다. 망가진 콘크리트와 앙상한 철골이 민낯을 드 러내고 있었다.
‘이번 필드도 현대식이네.’
폐허 도시를 모티브로 삼은 것 같다.
시간은 늦은 새벽. 부서진 창문 유리 너머로 조각달이 빛났다.
‘생존자는 스무 명.’
확률은 20분의 1이다.
야 좌측에는 이번 필드의 미니맵이
그려져 있었다.
바깥쪽의 붉은색은 출입 불가 구역일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좁아진다고 했었다.
‘일단 무기부터.’
맨손으로는 심심하니 말이지.
곳곳에 쓸 만한 아이템이 널려있다고 한다.
약 10분간 근처를 뒤적거린 결과, 나는 녹슨 쇠파이프를 발견할 수 있 었다. 성능은 형편없으나 검 대용은 될 것이다.
나는 쇠파이프를 든 채 계단을 내려 왔다.
“이보시오!”
폐허 건물의 3층.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소리가 들린 쪽을 보자,석궁을 든
청년 한 명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거 반갑군! 당신도 우승을 노리고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초반이오. 바로 싸울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힘을 합치는 게 어떻 겠소? 생존 확률을 높이려면 괜찮은 전술이 아니오? 지켜보니 당신은 전 사 같더군. 나는 도적 출신이오. 합을 맞추면 좋은 팀이……
‘파티를 만들자는 건가.’
과연.
나쁘지 않다.
“후후,마음이 통한 것 같군. 나는 라한이라고……
퍽!
나는 쇠파이프로 청년의 머리를 내 리 쳤다.
“억!”
퍽! 퍽! 퍽!
쇠파이프를 내리칠 때마다 놈의 머 리에서 피가 몇 번이나 튀었다.
[IKill!]주섬주섬.
나는 청년의 품에서 석궁과 볼트, 응급약을 챙긴 뒤 계단을 마저 내려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