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199
200. 검은 씨앗(8)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좁은 협곡을 거대한 요새가 틀어막고
있었다.
드높은 성벽에 각종 마법 대포. 심 지어 해자도 갖추고 있다.
단기간에 만든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완성도였다.
‘흐음.,
정상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다면,나는 아시니스의 파견대와 함께 저 요새를 공략하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꼬여버렸지.
〈흥,튼튼하게도 지어놨군.〉
발밑에서 참새가 부리를 조잘거 렸다.
〈정면 공략은 어렵다.〉
“알아.”
성벽 위에 감시병들이 잔뜩 진을 치고 있다.
나 한 명을 막기 위한 병력들. 이거, 황송할 따름이다.
‘임무 목표는……;
나는 시야 옆을 보았다.
[플로어44
[임무 타입 – 공성]
[목표 – 요새를 돌파하라!]
사라졌었던 임무 목표가 돌아왔다. 참새 말대로 아직 완전히 어긋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게임의 룰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원군이 사라졌다는 게 문제였지만. 1인 침투인가.’
마지막 열쇠는 부유도의 지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우리가 있던 동굴에서 침투할 장소가
있는지 찾아봤지만,끝내 발견하지 못 했다.
뭐,그런 입구가 있었다면 저 요새를 지을 필요도,파견대가 전쟁을 준비할 필요도 없있겠지. 지하 신전으로 통하는 실질적인 출입구는 요새로 틀어막힌 저 협곡 너머뿐이었다.
나는 다시금 현재 상황을 정리해보 았다.
영웅은 나 한 명. 그밖에 도움 안 되는 참새가 한 마리 있고.
프리아는 동굴에 내버려 두고 왔다.
데려올까 생각했지만,그 녀석을 지키 면서 싸우기엔 효율이 너무 낮다. 깽 판을 벌일 생각이니까.
적의 전력은 보스급 개체 한 명과 잡졸들이 수백 명에서 수천 명.
그들은 요새 안쪽에서 시간을 끌며 농성하고 있었다.
“……하아.”
다시 생각해도 스트레스인데.
하다못해 예전 임무들처럼,동료를
불러올 수 있는 오브젝트라도 있다면 좋으련만.
놈들이 임무에 꼼수를 부려놨다면,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마 나는 이번 구간을 끝까지 혼자 진행해야 할 것이다.
‘뭐,엄밀히 따지면 혼자는 아니다만.’
옆에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참새 한 마리가 있었으니.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한 (★★★★/이 ‘비상용 회복 물약_ 을 요청합니다. 구매 즉시 영웅은 ‘회 복 물약_을 습득합니다. 500점이 소모 되며,해당 임무에서는 ‘1 회’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구매하시겠습니까?] [Yes / No]암케나의 조작창에 구매 문구와 함께 붉은 물약이 한 병 떠올랐다. 전투 상 점에서 팔고 있는 응급용 회복약이었다.
물론 패널티는 존재한다.
한 전투에 한 번만 살 수 있었고,효 율도 낮은 주제에 가격이 무척 비쌌다.
무려 500젬. 유료 뽑기를 1회 돌릴 수 있는 금액이었다.
[Yes(선택) / No] [비상용 회복 물약이 ‘한(★★★★乂 에게 지급되었습니다!]번쩍.
머리 위에서 빛이 일더니,붉은 물 약병이 떨어졌다.
나는 물약병을 낚아챈 뒤 벨트 파우 치에 넣었다.
결국,암케나는 샀다.
아무도 사지 않는,이 창렬한 아이 템을.
게임에 접속한 뒤,상황을 파악한 암케나는 본사에 신고하지도,카페에 글을 쓰지도 않았다.
그저 나의 메일 계정에 우편 한 통을 보냈을 뿐이었다.
나는 참새를 통해 이셀에게 연락한 뒤,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면 좋을 것 같
다는 답변을 작성하여 보냈다.
‘내가 죽으면 그때 신고해라. 이번
에는 내가 알아서 해볼 테니까.’ 일주일.
파견대가 전멸하고 나서,내가 이곳 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꽤 오래 머물러 있었지. 훈련한다고 바빴으니.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그동안 프리아나 참새와 상의도 해
보고,여러 차례 시뮬레이션도 돌려봤 지만.
병사로 변장해서 잠입하거나,보급 수레에 숨어 들어가는 방법 등 그 어떤
방법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갈 셈이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이면 시간을 끌 만큼 끌었다. 더 이상은 위험하다.
‘오래 걸리진 않아.’
내가 죽든가.
임무가 끝나든가.
둘 중 하나일 뿐.
“가자.”
나는 풀숲에서 뛰쳐나왔다.
뒤이어 강철이 덧대진 커다란 성문
앞으로 걸어나갔다.
잠입이 어렵다면,굳이 몸을 숨길
필요가 없다.
“멈춰라!”
성벽 위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나는 그곳을 올려보았다. 갑옷을 차
려입은 장교 하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놈이 그 한이냐. 페르세네님으로 부터 전언이 있다.”
나는 발등으로 발밑의 돌을 툭 차올 렸다.
그리고는,오른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분께서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
다고 하셨다. 우리와 함께 영광된 해 방을 이룩……!”
퍽!
내가 던진 돌이 장교의 투구를 뚫고 들어가 두개골을 박살 냈다.
인간의 한계를 옛적에 뛰어넘은 만큼, 내 돌팔매질은 탄환이나 다름없지.
“이,이 자식이…… 공격을 준비해라!” 장교의 부관으로 보이는 듯한 남자가
칼을 빼들었다.
뒤에 있던 궁사 수십 명이 나란히 활을 뽑았다. 마법 대포의 포구들이
내 쪽으로 향했다.
〈온다.〉
“보면 알잖냐.”
따지고 보면,한없이 어리석다. 작전이라고 하기에도 쪽팔린 수였다. 하지만…… 딱히 방법이 없는데
어떡하냐.
“쏴라!”
파파파파파팍!
수백 발의 화살이 일제히 날아왔다. 그 다음으로는,
퍼펑!
포구가 불을 뿜었다.
“시작해.”
〈흐하하,이런 기분은 황제와 함께한 뒤로 처음이군!〉
그와 동시에 참새가 날개를 펼쳤다. 파지직. 검붉은 번개가 참새의 부리
에서 뛰쳐나오더니,나의 왼팔에 깃들 었다.
〈걱정 마라. 이번에는 안 뺏는다.〉 “알아.”
나는 왼손을 내밀었다.
[고유 스킬,’흑룡린’ 발동!]좌르륵.
왼팔에 비늘이 돋아났다.
그 직후,화살과 대포알이 빗발쳤다.
[해당 영웅은 물리 면역입니다!] [해당 영웅은 물리 면역입니다!] [해당 영응은 물리 면역…….]“저,저건 뭐냐?! 일단 쏴! 가루로 만들어라!”
‘발동.’
[‘한(★★★★)’이 익시드 상태에 돌입했습니다!]과직.
전신의 뼈가 어긋나는 느낌도,이젠 익숙해졌다.
나는 가볍게 발을 박찼다. 수십 미터 앞에 있던 성문의 풍경이 빠르게 확 대됐다.
‘몬스터의 규격을 벗어났다고 했지.’
이쪽도 다르진 않다.
〈후후,어떤가? 나와 합일한 느낌은, 전능감이 느껴지지 않느냐?〉
“…….”
콰콰과콰콰광!
빗발치는 마법 포격을 모조리 상쇄 했다.
1초가 지나서도 비늘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주일간 목숨을 걸고 수련한 결과, 나는 혹룡혈의 2단계를 터득할 수 있 었다.
〈무리하게 쓰진 마라! 너한텐 과분한 힘이야!〉
“조잘조잘 시끄럽네.”
용비늘이 왼팔 어깨너머, 가슴의 일부에까지 돋아났다.
[주의!] [상급 각인에는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영웅이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암케나의 화면에 경고 메시지가 출 력됐다.
암케나는 단번에 창을 닫고는 플레이 화면을 확대했다.
스릉.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수 미터 높이의 강철 성문이 눈앞에
보였다.
여기까지,흑룡린의 발동 시간 5초. ‘최대 10초까지.’
나는 왼손으로 검을 고쳐 쥔 다음, 전력으로 진각을 밟았다.
[합체 스킬,’용패섬’이 시전됩니다!]쾅!
폭격이라도 받은 것처럼,성문 정면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뭐하는 짓거리냐!”
[합체 스킬,’용패섬’이 시전됩니다!] [합체 스킬,’용패섬’이 시전됩니다!]콰과과쾅!
세 번째 용패섬까지 들어가자,버티다 못한 검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나는 성벽 위의 부관에게 왼손을 내 밀었다.
[고유 스킬,’흡인’ 발동!]왼손에서 검붉은 번개가 튀어 오르 더니,놈이 쥐고 있던 검이 빨려들듯이 내게 날아왔다.
흡인.
흑룡혈 레벨이 2로 오르면서 얻은 두 번째 능력이었다.
흑룡린 상태에서만 사용 가능한 스 킬로,아직 사람에게는 사용할 수 없
었지만 물건을 빨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합체 스킬,’용패섬’이 시전됩니다!] [합체 스킬,_용패섬’이 시전됩니다!]과아앙!
다섯 번째 용패섬.
강철 성문의 정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나는 걸레짝이 된 검을 내던졌다. 여기까지 10초.
그 순간, 왼쪽 가슴까지 돋아나 있던 비늘이 사라졌다.
[스킬 각성!] [‘한(★★★★)’이 특수 스킬 ‘연환용 패섬’을 습득했습니다!]성벽을 오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놈들도 내가 성벽을 오를 거라 예상
했는지,수백 명이 우글거리고 있거든. 나는 박살 난 성문 파편을 걷어찬 뒤,
요새 안으로 들어섰다.
〈얼마 못 버틴다.〉
“안다니까.”
심장의 두근거림이 격렬해졌다. 아무리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지만,
익시드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최대한 빨리.’
나는 잽을 휘둘렀다.
폭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나를 멍하니 보고 있던 병사 한 명의 몸이 분쇄되어 사라졌다.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웠다.
“이런 미친 새끼가!”
“죽을 자리라도 찾아보러 온 거냐!”
[교단군 병사 Lv.25] X 153 [교단군 기사 Lv.31] X 15요새 내에서 병력들이 개미떼처럼 모여들었다.
이것도 예상한 범위 안이었다. ‘어디지?’
이곳 어딘가에 지하로 향하는 입구가 있다.
[띠 링!] [전술 도구를 불러오시겠습니까?] [전투 상황에서는 사용 시간이 제한되며,전술소의 레벨에 따라 증가합니다.] [Yes(선택) / No]
하늘에 붉은 화살표가 그려졌다.
화살표는 요새의 왼쪽 구석을 가리 키고 있었다.
‘좋아.’
목표는 정해졌다.
나는 파우치에서 물약 하나를 꺼내 통째로 들이킨 다음,병을 내던졌다.
[교단군 병사 Lv.25] X 313 [교단군 기사 Lv.31] X 21놈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상태창에 표시되어 있는 인원보다
두세 배. 아니,그 이상으로.
요새의 곳곳에서 교단군의 병력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었다.
‘자살 행위인가.’
그렇다.
이건 특공이었다.
평상시라면 절대 택하지 않았다. 생존율이 극히 낮으니까.
‘하지만……
별수가 없단 말이지.
몸으로 날뛰는 수밖에는.
“죽여라!”
함성과 함께 놈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한 놈을 썰어버린 뒤, 땅을 박
차고 뛰었다. 날아오르듯 수 미터를
뛰어 성벽에 착지. 통로가 좁은 성벽 위에서 병사들이 일렬로 다가오고 있 었다.
나는 검을 한 바퀴 돌렸다.
그리고 끓어오르는 듯한 힘을,온몸에
실었다.
과직!
일검에 두세 명씩.
갑옷이고 검이고 토막 나 박살 났다. 무기는 십 초에 하나씩 날이 빠졌다. 검이 망가지면 다른 놈의 검을 뺏는다. 그것도 부서지면 창이나 도끼를 쓴다. “무슨…… 저런 괴물이! 궁사는 준
비해라! 일제 사격!”
“하지만 아군이……!” “명령이다!”
팍!
나는 움찔 몸을 떨었다.
등에 화살 한 발이 박혀있었다.
하긴,수십의 궁사가 계속 쏴대는데.
나는 화살대를 꺾어 부러뜨린 뒤, 시체를 방패 삼아 좁은 성벽 길을 나 아갔다.
파파파팍! 병사의 시체에 순식간에 수십 발의 화살이 꽂혀 고슴도치가 되었다.
‘저곳이 입구인가.’
요새 안쪽에 동굴로 이어지는 듯한
통로가 나 있었다.
각종 바리케이드와 장애물이 설치
됐고,창병들과 기사단이 진을 쳤다. 나는 혀를 찼다.
더 이상 시간이 끌리면 안 돼.
이미 익시드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Danger!] [상급 이단집행관] [고귀한 라스칸다 Lv.53]바리케이드 앞으로 한 기사가 걸어 나왔다.
“네 강함은 인정한다. 하지만 더 이 상은 안 되는 것 같군. 항복해라.”
나는 수백 발의 화살이 꽂힌 시체를 내동댕이쳤다.
시체 더미에 꽂혀 있던 커다란 강철 할버드를 뽑았다.
“허세를 부리는군. 죽고 싶다면 말 리지 않겠다.”
나는 피식 웃고는,양손으로 할버드를 굳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허리와 무릎을 굽혔다.
쾅!
나는 발돋움을 한 다음 뛰쳐나갔다. “어리석은 놈!”
크게 일갈한 기사가 검을 뽑아 들었다. “나는 라스칸다 이제랄! 평생을 정
의에 헌신한 상급 성기사로써,네놈을 토벌하겠다! 정정당당하게 붙어보자!”
기사는 멋들어진 동작으로 기수식 을 취하더니,내게 달려 나왔다.
펄럭!
갑자기 참새가 기사의 눈앞에서 뛰쳐나왔다.
〈이것이 부리 어택이니라!〉
“…….?”
콱.
부리에 코를 쪼인 놈이 얼굴을 움켜 쥐었다.
뒤이어 내 할버드가 기사를 갑옷째 양단했다.
“까고 있네.”
후두둑 쏟아지는 핏더미 속에서 나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