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201
202. 검은 씨앗(10)
[액정을 좌우로 슬라이드!] [영웅에게 마스터의 응원을 보여주세요!]
번쩍!
눈앞에서 빛나는 막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에게만 보이는 마스터의 응원이라, 나는 웃은 채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보아하니 꽤다친 것 같은데, 제대로 검이나 휘두를 수 있겠어?”
페르세네가 입가에 냉소를 띄웠다. 마법구들이 로브 근처에서 휘몰아
치고 있었다.
“넌 잘 모르나 본데,나는 타오니어에 있는 모든 마법사들의 정점이야.”
파아아앙!
마법구들이 세차게 회전했다.
저 마법구에 살짝 스치기라도 하는
날엔 살점이 믹서기에 갈린 것처럼 찢겨나가겠지.
‘정점이라.’
나는 숨을 가라앉혔다.
〈한! 내 말을 기억해라.〉
참새가 머릿속에서 속삭였다.
알아. 이 녀석의 스펙은 지겹도록 들었다.
마(魔)의 슈텐베르크라고 불리는, 태초부터 이어져 내려온 마법사 가문의 가주.
〈저 여자는 생전보다 몇 배는 더 강해 졌다. 마력을 끊임없이 퍼다 쓰고 있어.〉
수백 발의 마법을 쏟아도 지치지 않 는다.
페르세네는 무한에 가까운 마력의
소유자였다.
그에 비해 나는…….
욱신.
심장의 두근거림이 강해졌다. 몸이 경고하고 있었다. 더 이상
움직이는 건 위험하다고.
‘웃기는 소리.’
눈앞의 여자만 죽이면 끝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헛소리 마라.
“죽어.”
페르세네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와 동시에,마법구들이 잔상을
남기며 흩어졌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과아아앙!
방금까지 발을 디디고 있던 땅이 움푹 파였다.
“후후후.”
페르세네의 몸이 공중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불과 얼음,바람과 번개. 네 가지의 속성을 담은 마법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내게 쏘아졌다.
나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파고들며 마법구를 피했다.
“똑똑한데? 하지만 기둥 따위는,
다 박살 내면 그만이야!”
콰릉!
번개 줄기들이 강렬한 빛을 뿜어내 더니,기둥을 부수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다.’
장기전으로 가면 나의 패배였다.
저 녀석의 마력은 무한인 반면,
내 체력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이곳에 오기 전부터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앞으로 5분도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패검혼은 쓰지 마라. 무조건 죽는다.〉 그것도 알아.
패검혼을 쓰면 눈앞의 여자는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체력이 상당히 약해진 나도 그 반동을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된다.
나는 같이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기기 위해서 온 거야.
〈기회는 한 번이다!〉
화아악!
불지옥을 떠올리게 하는 화염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망가진 기둥을 타고 올라 천장을 밟은 뒤,먼 곳으로 피했다. 내려오자 마자 번개가 쫓아왔고,고개를 숙이자 얼음창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완전 대량 살상 병기로군.’
전장에서 혼자 수천 명은 가뜬히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언제까지 도망쳐다니기만 할 거야? 그래선 날 죽일 수 없어.”
“넌 입으로 싸우냐?”
나는 벨트에서 단검을 꺼내 던졌다. 팅. 단검날은 초라한 소리와 함께,
페르세네의 방어벽에 부딪혀 튕겨 나 갔다.
역시 있군.
섣불리 붙었다가는 피를 볼 뻔했다. 나는 쪼개진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광! 콰아앙! 콰광!
저 여자는 아예 동굴 전체를 무너뜨
리려는 것 같다.
사방팔방으로 마법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동굴이 무너져도 넌 죽느니라.〉 “이래도 죽어,저래도 죽어. 어쩌란
거야?”
〈죽이기 전에 죽여야지!〉
불리하지만은 않아.
나에게도 분명 승산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저 여자는 모른다.’
내 왼팔에 무슨 힘이 깃들어 있는지. 내가 어떤 기술을 사용하며,어느
정도의 폭발력을 낼 수 있는지.
그 부분을 파고드는 것.
유일한 승리의 길이었다.
나는 바닥에서 몸을 굴렀다.
바위 칼날이 내가 있던 곳에 송곳니
처럼 박혀 들었다.
마침내 이곳까지 마법이 닿은 모양
이다.
“그러고 보니,넌 내 제자와 각별했던 거 같은데.”
도발을 하려고 해도 소용없어. 머릿속은 한없이 냉정해진 상태였다. 무수한 가능성과 경우의 수가 번개
처럼 뇌리를 스쳐 갔다.
‘곧 끝이군.’
오래 끌진 않아.
더 이상은 못 움직이겠거든. 아까부터 왼쪽 다리가 말을 듣질 않
는다.
페르세네가 있는 너머,빛의 막대가 격렬하게 물결치고 있었다.
암케나가 사력을 다해 응원봉을 흔 들고 있는 것이다.
,잘 봐.’
단 한 번이야.
나는 검자루를 돌렸다.
검날 곳곳에 금이 죽죽 가 있었고, 머리 위에서는 마법 폭격이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작별 인사야. 시시한 영웅님.”
페르세네가 나를 향해 마법구를
겨누었다.
동시에 십수 개의 마법구들이 좌우 에서,위아래에서 짓쳐 들었다.
〈가라.〉
나는 머릿속의 스위치를 올렸다.
[’한(★★★★)’이 익시드 상태에 돌입했습니다!]울컥.
그 순간,입에서 핏덩이가 튀어나오며
눈앞이 새하얘졌다.
나는 피가 나도록 혀를 세차게 깨물
었다. 그제야 가까스로 시야가 돌아왔다. 바로 앞에서 화염구가 쏘아지고 있다. 나는 오른쪽으로 몸을 틀면서 바닥을
디뎠다.
쾅! 내 몸이 화살처럼 튀어나갔다.
“..?”
페르세네의 눈이 좁혀졌다.
과연. 이 정도로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는 건가.
“흥.”
코웃을음 친 페르세네가 손을 휘둘 렀다.
콰지직! 뇌전의 벽이 바로 앞에서 솟아났다.
나는 왼손을 내밀었다.
[고유 스킬,’흑룡린’ 발동!] [해당 영응은 마법 면역입니다!]왼손에 번개가 닿자,번개의 벽이 씻은 둣 사라졌다.
나는 속도를 한층 더 올렸다.
페르세네는 낭패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다시 손을 휘둘렀다.
‘상황 판단이 빠르군?
옆과 뒤에서 빛줄기가 쏘아졌다. 왼팔이 닿지 않는 곳. 저 여자는 순
간적으로 흑룡린의 약점을 파악한 것 이다.
‘이 정도는……;
나는 몸을 비틀었다.
빛의 화살이 팔뚝과 허벅지를 꿰뚫고
지나갔다.
피할 수 없다면,죽지 않을 만한 곳에.
[‘한(★★★★)’이 빈사 상태에 빠졌 습니다. 목숨이 위험합니다!]괜찮아.
나에게는 전투 속행이 있다.
나는 검을 쥔 오른팔을 끝까지 당겼다.
한 번에 죽일 수 있도록.
“그래도 안 돼.”
페르세네가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뒤이어 여자의 입술이 달싹였다.
“내가 명한다.”
페르세네가 오른손으로 나를 가리 켰다.
‘왔군.’
제국 최강이라던 델핀을,조인족의 리더인 하얀 깃털을 단 한 번에 압살 시킨 미지의 기술.
참새는 그것이 먼 옛적에 소실된 고
대의 권능이라고 했다.
‘사안 (死眼).’
시전자가 보는 것만으로도, 가리켜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지목한 한 명을 즉사시키는 기술. 처음에 들을 땐 뭔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술이 다 있나 생각했지만……. 아니,사실 사기가 맞긴 하지. 〈죽어라.〉
페르세네의 동공이 좌우로 갈라지며, 용의 눈이 드러났다.
흑룡린은 통하지 않는다. 저건 마법이 아니니까.
그러니.
〈은혜는 갚거라!〉
“째애애애액!”
내가 내민 왼팔에서 검붉은 번개가 터지더니,참새가 튀어나왔다.
“……?!”
‘이쪽은 한 명이 아니거든.’
콰직.
날아오른 참새는 핏덩이가 되어 흩어졌다.
여기서의 몸은 죽었지만,대기실의 비둘기는 죽지 않았겠지.
나는 히죽 웃었다.
용의 비늘이 돋은 왼손이 마법 장벽에
닿았다.
[해당 영웅은 마법 면역입니다!]그리고.
“잘 가라.”
콰직.
검날이 그 여자의 심장에 박혀 들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사방팔방에서 날뛰던 마법이 한순 간에 가라앉았다.
왼쪽 가슴에 칼이 꽂힌 페르세네가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부릅뜬 여자의 두 눈에는 피에 젖은 내가 비치고 있었다.
“어…… 떻게.”
“이렇게.”
나는 검자루를 놓았다.
풀썩.
페르세네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아……
숨을 몰아쉬었다.
두 번째 익시드 발동.
몸을 한계에 가깝게 단련해온 나도,
익시드를 연속해서 사용하는 것은 상상 할 수도 없을 만큼의 리스크를 감수 해야 하는 일이었다. 싸우는 도중 갑 자기 숨통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버려준 것 같다.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나도,저 여자도.
만약 수왕 같은 놈이 붙어 있었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나는 이곳에 뼈를 묻있겠지. 이 여자가 혼자 있을 거라는 생각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몬스터들이 아직 규격을 완전히 벗
어나진 못했기에,층을 이탈한 보스들도 자리를 오래 비울 수는 없을 거라고 참새가 말했었으니까.
그 예상이 제대로 먹혔던 것 같다.
나는 쓰러질 것만 같은 몸을 겨우 지탱한 채,제단으로 걸어갔다.
이곳은 제단이라 부르기도 민망했다. 좌우에 세워져 있던 대리석 기둥들은 남김없이 쪼개져 박살 났고,벽과 천장 곳곳이 파이거나 무너졌다. 금방이라도 동굴 전체가 무너져내릴 듯한 상황이 었다.
’마지막 열쇠.’
나는 제단 위의 구슬을 낚아챈 다음 주머니에 넣었다.
[플로어45
[임무 유형 – 전달]
[목표 – _열쇠’를 특수 NPC에게 전달해라!]임무의 목표창이 갱신됐다.
전달. 이걸 프리아에게 건네주기만
하면 힘들었던 45층 구간도 끝이었다. 이제 대기실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역시.’
탁탁탁.
희미한 발소리가 통로 너머에서 울 렸다.
벌써 추격자들이 동굴 안으로 들어온 것 같다.
아마,10분 정도면 이곳에 도착하겠지.
프리아는 요새 바깥쪽의 동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해 동굴 입구를 꼼꼼히 은폐해 놓았고,내가 이곳에서 깽판을 친 탓에 죽었을 염려는 없지만, 그곳까지 가는 게 문제였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는 내가 들어왔던 곳, 단 한 곳밖에 없었다.
순간 시야가 어두컴컴해졌다.
쓰러질 뻔했지만,겨우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통증. 나는 어금니를 세게 악물고는 걸음을
옮겼다.
죽지만 않으면 돼.
온몸이 걸레가 되고,사지가 토막
나도 프리아에게 열쇠를 전달할 수만 있다면,곧 몸 상태는 정상으로 돌아 온다.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추격자들을 따돌리고,요새를 빠져
나와 은신처로 돌아가는 것.
‘그게 된다고.’
나는 왼쪽 복부를 움켜쥐었다.
피가 끊임없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도망칠 힘까지 모두 소진해버렸는지,
이제는 두 다리 모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의 나라면 병사 한 명과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다.
“…….”
밖에는 수백 명의 병사들이 나를 기 다리고 있다.
내가 대장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눈이 벌게져서 달려들겠지.
‘빌어먹을.’
일단은 움직이기로 했다.
확률은 천 분의 일,만 분의 일도 되지
않지만,해보지 않고선 모르니까. 그렇게 비틀거리며 빠져나가려는데. 툭.
누군가 내 발을 건드렸다.
아래를 내려다보자,머리와 상체 일
부만 남은 조인족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피 익……
그녀의 입에서 피와 함께,바람 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얀 깃털인가 뭔가 하던 그 조인족 이었다.
살아있었나.
나는 조인의 팔을 뿌리친 다음,걸 음을 옮기려 했다.
그러나 조인은 다시 내 발을 움켜쥐 었다.
“놔.”
“구…… 구해……
툭.
조인의 머리가 떨어졌다.
죽은 것이다.
왼손으로 내 발을 잡고,오른손은 벽을 가리킨 채로.
“…….?”
무슨 뜻이지.
나는 조인이 가리켰던 벽을 보았다. 페르세네의 마법 포격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저걸 말했던 건가.’
무너진 벽의 틈새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졌다.
나는 달빛이 희미하게 내리쬐는 숲
속을 걷고 있었다.
요새의 동쪽이자,부유도의 구석이
었다.
이곳에는 내가 일주일간 몸을 숨겼던 은신처가 위치해 있었다.
‘용케도 안 죽었네.’
죽기 직전까지 간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어야지.
이 정도는 놀랍지도 않았다.
나는 왼손의 구슬을 움켜쥐었다.
원래 하얗게 반짝거리고 있던 열쇠는 피에 절어서 빛을 잃었다.
빛나는 구슬 때문에 적의 표적이 되 느니,이편이 훨씬 낫지.
그렇게 얼마간 걷자,수풀이 우거져 있는 덤불이 드러났다. 나는 나무의 밑동에 새겨진 세 개의 칼자국을 확 인했다. 내가 이곳을 알아볼 수 있게 미리 새긴 표식이었다.
나는 풀숲 근처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커다란 바위를 세 번,칼집으로 두드 렸다. 덤불이 좌우로 갈라지더니 동굴의 입구가 드러났다.
그리고.
“한……!”
나는 뛰쳐나오려는 프리아를 동굴 안으로 떠민 다음,입구를 가렸다.
아직 바깥에 수색자들이 많아,마지 막까지 조심해야 했다.
‘다행히 들키진 않았네.’
동굴 안에는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 었다.
나갈 때와 변한 게 없는 걸 보니,프 리아는 이곳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던 것 같다.
“대체…… 그 상처는 무엇이냐?”
“앉아. 이거부터 받고.”
나는 어쩔 바를 모르는 프리아를 앉힌 뒤,손에 구슬을 쥐여주었다.
“이건……
“보면 모르냐. 네가 찾던 물건이잖아.”
털썩.
나는 모닥불 옆의 짚더미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눈을 감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눈앞이 가물거리고 있었다. 나는 정신의 끈을 겨우 붙잡은 채,몸에 난 상처를 살펴 보았다.
온몸이 난자당한 수준이었다.
이렇게까지 다친 적은 거의 없었지.
이미 암케나의 화면에는 나의 빈사
상태를 알리는 빨간 불이 들어와 있 었다.
“이,일단 치료부터 해야 하지 않겠 나? 기다려봐라! 내가……
“돌아가면 나아.”
동굴 구석에서 빛나는 거품이 끓어 오르고 있었다.
흐릿하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임무 종료이자,대기실로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였다.
‘어찌어찌 됐군.’
나는 암벽에 등을 맡겼다.
1차 목표는 달성할 수 있었다.
마법사를 조지고,정비를 위해 대기
실로 복귀하는 것. 최소한 다음부터는 대기실의 멤버를 데리고 들어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크나큰 성과였다.
“…….”
나는 프리아를 돌아보았다.
이 꼬마도 나와 지낸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보니,임무에 대한 것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프리아는 약초가 담긴 흙그릇을 내 려놓은 채 눈을 내리깔았다.
“그렇구나. 돌아가는 게냐.”
46층에서 보게 되겠지.
앞으로도 자주 볼 것이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어떻게 되려나.’
내가 대기실로 돌아가면,프리아는 이곳에 혼자 남게 된다.
열쇠를 모았다고 끝이 아니다. 지상 으로 내려가 파편의 알을 없애려면 일단 부유도를 탈출해야 했다.
’46층이 그 임무인가’
어느 정도는 전략을 세우고 와이겠다.
뭐,어떤 임무가 나오든 혼자 삽질 하는 것보다는 훨씬 편하겠지.
그 점은 다행이었다.
“뭘 그리 침울해 있냐. 열쇠도 다 모 았는데.”
“하지만……
프리아가 고개를 푹 떨꿨다.
“나는 말만 황녀였지, 쓸모가 없구나.” 나는 긍정하진 않았지만, 딱히 고개를
젓지도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프리아는 지금까지의 임무에 도움이
된 적이 거의 없었다.
열심히 훈련했다지만 검술이나 체
력도 보잘것없었고,마법이나 치유술 같은 특기를 가지고 있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뒤를 받쳐주는 특별한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 내가 보기엔 아시 니스 가문은 황녀를 이용했을 뿐,절대 그녀를 존중해서 충성을 맹세한 게
아니었다.
“…….”
내 눈앞에는 주어진 상황에 어쩔 바를 모르는 무력한 인간 한 명이 서 있을 뿐이었다.
‘평범한 꼬맹이인가._
비범했던 그 황자와는 다르다.
만약 황자가 타오니어 스토리의 주 인공이었다면,텔의 말대로 난이도가 몇 단계는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두 남매의 차이는 그 정도로 극심했다.
“……미안하다.”
프리아의 양 뺨이 붉어져 있었다.
부끄러워서 그런 건 아니겠지.
수치심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오라버니처럼 되고 싶었어.
확고한 신념과…” 그 강철 같은 의지, 모두를 이끄는 그 카리스마가 부러웠다.”
“…….”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오 라버니를 따라잡을 수가 없구나.”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문득,지금도 창을 휘두르고
있을 한 녀석이 떠올랐다.
둘이 묘하게 닮은 것 같다.
‘그것도 일종의 재능이겠지.’ 노력한다고 모두가 리더의 자질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대다수는 사회의 평범한 일원으로 끝난다.
‘어디 보자?
빛이 동굴을 채우고 있었다.
저 빛이 내 몸을 감싸면 나는 대기
실로 돌아가게 되겠지.
그러나,빛의 흐름은 무척 느렸다. 임무 상태가 이상해진 여파인가. ‘일단 지상으로 내려가야겠군.’ 열쇠를 구했다고 끝이 아니다.
알이 깨어나기 전,어떻게든 그것들을
처리해야 했다.
나는 요새에 들어가기 전 미리 부유 도를 정찰했고,알 근처에 모여 있는
대규모의 몬스터 부대를 목격할 수 있었다. 알 근처에는 수천 마리의 몬 스터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대충 50층 임무의 목표도 정해진 것 같다.
빛이 몸을 서서히 감싸기 시작했다. ‘있어야 할 것이 사라졌다.’
나는 참새가 한 말을 떠올렸다. 맞아.
아시니스 가문.
원래 지상에서의 전투를 도와줘야 할, NPC의 지원 세력이 사라졌다.
보나 마나 50층의 난이도는 대폭 올랐을 것이다.
어쩌면 일체의 지원 세력 없이,영 웅들만의 힘으로 수천 마리의 몬스터 군단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탑으로 돌아간다고 끝이 아니지.’
시간을 너무 끌면 알이 부화한다.
계정의 상태가 정상이라면 최대한 버티면서 전력을 끌어올리겠지만…… 그렇게 여유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여유를 부리다 알에서 유충이 튀어나 오기라도 하는 날엔,임무의 난이도는 불가능에 가깝게 치솟을 것이다.
‘몬스터와의 전면전인가.’
지금껏 그래왔듯,소수로 돌파하거나 꼼수를 부리는 짓은 통하지 않는다.
상대가 압도적인 물량으로 짓누른 다면,이쪽도 비슷한 방법을 쓰는 수 밖에 없다.
전투직 수십 명으로는 안 된다.
수백 명이 필요했다.
비공정도 마찬가지.
캐피탈리즘 호에 이어 두 번째 비공 정이 건조되고 있지만,이 정도로는 영웅들을 대규모로 굴릴 수 없다. 최 소한 다섯 대는 필요했다.
비공정 다섯 대와 수백 명의 전투직 영웅들.
이를 뒷바라지할 비전투직들과 각종 장비 및 시설들.
모자라.
자원이 턱없이 모자라다.
골드도,점도,그 외의 재료들도. 요일 던전에서 얻는 것만으로는 턱
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스테이지 클리어!] [‘한(★★★★)’ 레벨 업!] [보상 -1000G] [MVP – ‘한(★★★★)’]클리어 메시지와 함께,빛이 전신을 휘감았다.
나는 쭈그려 앉아있는 프리아를 보
았다. 이 녀석 잘못이 아니다.
상황이 안좋게 흘러갔을 뿐.
‘보스 스테이지가 보상은 겁나게 짜네.’ 나는 눈을 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