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217
218. 어울리지 않는(3)
벨키스트가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는 양손을 움켜쥐듯이 오므
렸다.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팔뚝 전체가 부르르 떨렸다.
[Danger!] [I벨키스트(★★★★)’가 오염되기 시 작합니다!]“카…… 학……!”
벨키스트의 크게 벌어진 입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눈가 옆으로 검은 핏줄이 돋아났다.
명백한 오염 상태.
,아직 아니야:
상위 각인을 새기는 도중에 한 번쯤은 오염 상태를 거쳐 가기 마련이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극복한다면 각인의 주인이 될 것이고,극복하지 못한다면…….
스릉.
나는 벨키스트가 준 칼집에서 검날을 반쯤 뽑았다.
‘이성은 있다.’
얼굴은 고통으로 찡그려져 있었지만, 아직 눈에 빛이 머물고 있었다.
쿵! 쿵쿵!
벨키스트가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 쳤다.
그렇게 몇 번이나 내리치자,움켜쥔 주먹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Danger!] [‘벨키스트(★★★★/의 오염 상태가심해집니다!] [마스터,주의하세요! 오염에 빠진 영웅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우직.
살갗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전신 에서 검은 혈관이 돋아났다.
벨키스트는 입에서 새까맣고 걸쭉한 피를 토해냈다.
〈그러게 내가 뭐랬느냐! 지금이라도 취소해라! 아직 완전히 넘어가진 않 았어!〉
구구콘이 허둥지둥 벨키스트에게 다가갔다.
비둘기는 벨키스트의 근처에서 하 얀빛을 내뿜고 있는 구슬을 밀어내려 했다.
“……멈춰,라.”
벨키스트가 구구콘의 날개를 움켜 쥐었다.
“아직…… 안 끝났어.”
벨키스트는 구슬을 품듯이 배 밑으로 가져갔다.
그러더니 쇳소리가 섞인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나…… 나는…… 강해져야……
〈이 미친놈이! 아예 정신을 놓았군. 뭐하느냐,한!〉
비둘기가 사나운 눈으로 나를 돌아 보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검을 반쯤 뽑은 채, 계속 벨키스트를 응시했다.
“그만두지,마시오.”
벨키스트가 붉어진 눈으로 나를 을
려다봤다.
“내가…… 선택한 길이오. 책임도 내가 지겠소.”
“멋대로 죽는 게 책임은 아니야.” “당연…… 하지.”
쿨럭!
벨키스트가 검은 피를 한 번 더 토 해냈다.
“나는 싸움터에서 죽기로 했으니까.”
“…….”
“그러니 이렇게…… 추한 꼴로 뒈지 지는 않아.”
벨키스트의 이 악무는 소리가 방 전 체에 울렸다.
‘처음부터 하는 게 아니었나.’
나는 이올카의 전례를 떠올렸다. 효율만 따지자면,원래 그녀는 수룡
토벌전에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몇 번이나 내게
보챘다. 같이 싸우게 해 달라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확률상 2%의 도박.
나는 이번에도 동료의 어리광을 들 어주었다.
물론,이제 와서 되돌릴 생각은 없다. 여기서 멈춘다면 벨키스트는 나를
평생토록 원망할 테니.
“……고맙군.”
벨키스트가 나를 보고는 힘겹게 웃 었다.
나는 깊이 한숨을 쉬었다.
이제 저 녀석이 어떻게 될지는,
가만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우드득!
뼈가 어긋나는 소리.
살갗이 찢어지고,그 틈새로 순백색의
비늘이 돋아났다.
벨키스트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우드득. 벨키스트의 관자놀이 사이 에서 하얀 각질을 지닌 뿔이 솟아나고 있었다.
아시니스의 정식 계승자,델핀의 것과 같았다.
나는 검자루에 힘을 주었다.
여전히 오염이 진행되고 있었다.
눈가에서부터 온몸으로 검은 피가 휘돌았다.
오염자 특유의 새까만 혈관은 피부 바깥에까지 드러날 정도로 도드라졌다. 저 혈관이 심장을 잠식하는 순간, 몬
스터와 같은 상태로 바뀌게 되겠지. ‘아직 아니야.’
계속 백룡의 비늘과 뿔이 돋아나고 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새하얀 비늘은 벨키스트의 살갗을 뒤덮어갔다.
백룡의 기운에 밀려나는 듯,검은 핏줄이 조금씩 걷혀갔다.
〈하,이거 참…….〉
구구콘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숨을
내뱉었다.
‘성공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이상한데.
나 때와는 달랐다. 내가 흑룡혈을
각인할 때는 검은 기운이 스며들 듯이, 자연스럽게 들어왔었다.
하지만 백룡의 피는 벨키스트 안에서 마구 날뛰고 있는 것 같았다.
벨키스트는 때때로 몸을 꿈틀거릴 뿐, 이미 기절한 상태인지,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찢어진 그의 옷 사이로 속살과 뼈가 드러나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누구인지 알아 볼 수도 없는 모습이었다.
꿈틀.
쓰러져 있던 벨키스트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느릿한 동작으로 몸을 일으 키기 시작했다.
〈왔군.〉
구구콘이 벨키스트에게서 두어 걸음 물러섰다.
일어선 채 멈춰 있던 벨키스트의 눈 꺼풀이 올라갔다.
상대를 꿰뚫어 보는 듯한 은색의 눈 동자.
그 입이 위아래로 벌어졌다.
〈이 몸은 형편없구나.〉
벨키스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진심 어린 불평이었다.
〈기능도, 내구성도,잠재성도 모자라. 내 힘을 끌어내기엔 한참 부족하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구구콘이 앞발로 날개를 긁었다. 나는 쓰게 웃었다.
〈네가 한 이스라트인가.〉
벨키스트에게 강신한 4대 가문의
시조,아시니스가 나를 보며 말했다. 나를 훑어보던 아시니스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예상 이상으로 훌륭한 소질이군.
저 사기꾼이 또 거짓말을 치는 줄 알 았더니.〉
〈누가 사기꾼이라는 게냐.〉
〈그런데 왜…… 내가 이런 하자 있는 자에게 깃들어야 하지? 적합한 신체가 앞에 있거늘.〉
“재하고 내가 무슨 차이가 있다고. 다 거기서 거기야.”
백룡 아시니스는 한없이 나른한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초면에 미안하지만,그놈을 좀 도 와줘라. 노력은 열심히 하는 놈이니까. 민폐는 안 끼칠 거야.”
〈다시 말하지만,형편없는 몸이다. 잘못 산 것 같군.〉
“그게 어쨌다고.”
〈주인을 바꾸고 싶다. 환불해줘.〉
“그건 안 돼.”
〈내가 전력을 내면 이놈은 단숨에 몸이 터져 죽어버릴 거다.〉
“지금은 그렇겠지만,나중엔 혹시 모르지.”
〈나는 말장난을 하려고 강림한 것이 아니다. 타오니어를 구하기 위해선, 보다 효율 높은 육체가 필요해.〉
“나중 가면 모른다니까. 개가 무지 무지 세질 수도 있잖냐.”
아시니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 네게 도움이 되는 일인데,왜 거절하지? 이 녀석은 나를 담아내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 이것도 추 후엔 모른다고 할 셈인가?〉
“그렇다면.”
〈후후…….〉
아시니스가 비릿하게 웃었다.
〈호구 같으니라고 줘도 못 먹는구나.〉
〈그래,좋다. 그리도 이 녀석을 강 해지게 만들고 싶다면 어디 한번 네 맘대로 해보거라.〉
아시니스는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이제부터 백룡왕,델타리 아시니 스의 힘은 이놈의 것이다.〉
우드득.
관자놀이에 솟아 있던 뿔이 사라졌다. 새하얀 비늘과 오염의 표식이었던
검은 혈관도 마찬가지.
〈후후흐흐…… 하지만,과연 어디
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아시니스의 눈이 감겼다.
순간 벨키스트가 휘청거리더니 벽
뒤에 기댄 채로 쓰러졌다.
[빠라밤!] [각인이 완료되었습니다.] [‘벨키스트(★★★★)’의 몸에 특별한능력이 새겨집니다!]
마침내 뜨는 각인 메세지.
실패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떠오르는 설명에 나는
한숨을 삼켰다.
[진 백룡혈(s,Lv.l)]
[고대 백룡의 순수한 혈통을 증명하는
피. 미증유의 힘이 머물고 있다.] [고유 스킬 :1백룡각(白龍角)] [※그 밖에 알려지지 않은 스킬이
다수 존재합니다.]
[비고 1 – ‘진 백룡혈’은 현재 모종의
이유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각인 실패로 오염에 빠진다는,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다만 성공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웠다.
‘잠겨버렸나.’
영웅의 수준에 맞지 않는 각인을 부 여할 경우,각인에 성공한다고 해도 능력이 잠길 수 있다.
이번 각인은 반은 성공,반은 실패 라고 볼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확률은 2%였지만,나는 벨키스트가 죽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 었다.
아시니스가 벨키스트를 완전히 거 부했다면,강림 던전에서 전조가 있었
을 테니까.
그러나 백룡은 순순히 그에게 각인 석을 맡겼다. 어느 정도 그의 몸에 들 어올 의향이 있다는 증거였다.
도박은 도박이었지만,근거 없는 도 박은 아니었다.
“…….”
잠시 뒤,벨키스트가 눈을 떴다.
벨키스트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됐소.”
“보면 알잖냐. 넌 살아있다.”
나는 벨키스트에게 그의 칼집을 던 져주었다.
벨키스트는 그것을 오른손으로 받
아들었다.
“별 느낌은 없소만.”
〈아시니스는 분명히 네 안에 있다.
희미해서 느끼지 못할 뿐이니라. 네겐 이놈과 같은 적성이 없어. 그 능력을 네가 온전히 쓸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구구콘이 벨키스트에게 다가갔다.
“쓰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지?” 〈지금은 그렇다는 것이다.〉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소?”
〈그런 걸로는 안 돼. 인간이 아무리
훈련한들 목을 180도로 꺾을 수 있겠 느냐? 네가 백룡혈을 다룰 수 없는 것도 비슷한 이치니라.〉
벨키스트는 눈썹을 찡그렸다.
“그렇다면……
〈아시니스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비술이 있다. 강룡술이라 불리는. 인 간의 몸을 용에 가깝게 만들어주는 의식이지. 아시니스 계승자들은 대대로 강룡술을 받아왔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하지만 허무맹랑한 소리도 아니었다. 아시니스의 계승자인 델핀도 평범한 인간의 외양은 아니었으니까.
〈다음은 네가 알아서 말해라. 난 모 른다!〉
구구콘이 등을 돌렸다.
그리고 살찐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살짝 열려 있는 문의 틈새로 빠져나 갔다.
‘나한테 말하라니.’
뭐,앞뒤를 따져보면 지금 당장 벨 키스트에게 필요한 게 뭔지는 알지.
“보다시피,네 지금 상태로는 각인을 못 쓰는 것 같은데.”
“그런 듯하군. 아무 반응이 없소.”
“벨 키스트.”
나는 입을 열었다.
“당분간 1파티에서 빠져 있어. 임무에 참가하지 마라. 훈련도 하지 말고,신 입들도 안 도와줘도 돼. 비싼 걸 먹었
으면 먹은 값을 해야지. 백룡혈을 제 대로 쓰기 전까진 돌아올 생각하지 마.”
“비둘기 말대로,아시니스의 비술을 받으면 각인을 쓸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아마,그렇게 된다고 해도,완전하게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다음은 벨키스트 본인의 몫이었다. 내가 흑룡혈을 연습할 때 그랬던 것 처럼,시행착오를 반복하며 능력에 익 숙해져야 하겠지. 그 과정에서 생사를 몇 번이나 넘나들어야 할 것이다.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벨키스트가 중얼거렸다.
“탐험 던전에 박혀 있으란 거로군. 시간은 얼마나 있소.”
“많진 않아. 적어도 50층을 가기 전 까지는 와라.”
“빡빡하구려.”
“당연하지.”
현재,파견대가 전멸당한 아시니스가 어떤 상태인지는 알 수 없다.
교단군의 침략에 멸문당한 상태일 수도 있었다. 혹은,탐험 던전의 벽에 막혀,아시니스가 있는 지역으로 가지 못할 수도 있다.
만약 아시니스가 무사하고,벨키스 트가 그곳으로 입성한다고 해도 가문의
특수한 비전을 넘겨달라는 벨키스트의 말을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지는 뻔했다.
그러나 벨키스트는 못한다고 하지 않았다.
“그놈이,네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그랬지. 이게 각인을 사용 하기 위해서 네가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조건이다.”
“내가 없으면 그 자리는 누가 들어 가지?”
“후보는 많아. 신경 쓰지 마라.”
“그렇군.”
벨키스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뱉듯이 말했다.
“겨우…” 같은 선상에 서게 된 건가.” “같은 선상이라고?”
“나도 주사위를 굴릴 수 있게 된 것
아니오. 선배나 그 창술사처럼.”
벨키스트가 위를 향한 채 중얼거렸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나도 그게
정말 궁금했지.”
철컥.
벨트에 칼집을 걸친 벨키스트가 자 리에서 일어났다.
“2주 뒤에 돌아오도록 하겠소.” “당장 갈 거냐? 다른 애들한테 인사는?” “그런 게 필요하오.”
“네리사가 실망할 텐데.”
벨키스트가 피식 웃었다.
“퍽이나.”
벨키스트는 거침없이 방을 빠져나 갔다.
곧이어 훈련소의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자율 행동이 발동합니다!] [마스터,영웅 ‘벨키스트(★★★★)’가탐험을 시작합니다!] [자동으로 영웅에게 지참금을 분배
합니다. 10,000G가 소모되었습니다.] [Tips/ 제멋대로인 영웅을 막고 싶
다면 ‘자율 행동’ 기능을 OFF하세요!]
‘2주 뒤인가.’
50층 등반 날짜를 그쯤으로 정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 전에 49층까지는 미리 깨야겠지. “좀 더 빨리! 빨리 움직여야 돼!” “해,해볼게!”
개인 연습실을 떠나 숙소로 향하는 길. 문득,아래층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
려왔다.
훈련소에도 밑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계단에 발을 살짝 걸친 채 아
래를 내려다보았다.
“좋아,그렇게!”
거기에서는,다섯 명의 남녀가 공터에 한데 모여 땀을 흘리고 있었다.
각자의 손에는 연습용 무기가 들려 있다. 그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커다란 원을 그렸다.
진형 연습이었다.
그들은 몬스터가 앞에 있는 것처럼, 목검을 휘두르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새벽이 깊었는데 아직도 연습이라니.
지금은 단체 훈련을 거의 하지 않는다.
1파티는 각자 자기만의 전투 스타 일을 잡은 데다가,진형에 의존하는
단계를 뛰어넘었다. 아침마다 모여서 했던 체력 단련도 신체 능력이 높아 짐에 따라 지지부진해진 상황이었다. 대련도 역시 뜸해져 훈련 간 마주치는 기회가 얼마 없었다.
‘……옛날 생각나는데.’
만약 벨키스트가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온다면,그때의 훈련소 풍경이 다 시금 그려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땀을 흘리며 공터를 구르는 그 들을 지켜보다,아침이 다 되어서야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