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22
22. 요일 던전(1)
눈을 떴다.
방 위로 펼쳐진 하늘은 희멀건 잿 빛이었다. 밝기로 보건대 이른 아 침.
나는 침대를 털고 일어나 그릇에 받아놓은 물로 얼굴을 씻었다. 클로 에가 갖다 놓은 것으로,그녀는 새
벽마다 물을 받아 모든 사람들의 객 실에 놓아주고는 했다.
로비로 나오자 향이 코를 자극했 다. 시계는 오전 5시 45분을 가리켰 다. 나는 식당으로 들어가 식탁 위 의 구운 감자 한 알을 집었다.
“일어나셨어요? 좋은 아침이네 요.”
주방에서 스튜를 데우던 클로에가 말했다.
나는 하늘을 보았다.
저게 어딜 봐서 좋은 아침인지.
“오늘도 일찍 나가시나요?”
“그래.”
훈련을 하루도 빼먹을 수는 없다.
어제의 전투로 얻은 스킬을 시험 할 필요도 있었다.
“하루쯤은 다른 분들하고 식사를 같이 해보시는 게 어때요? 그렇게 혼자만 드시면 그렇지 않나요?”
“마음이 내키면.”
나는 감자를 베어 물으며 주방을 나섰다.
대기실에 사람이 늘어나고,질서 가 생기면서 몇 가지 룰이 만들어졌 다.
그 첫째는 식사 시간에 다 같이 모 이는 것. 이제 잠시 뒤에는 잠에서
깨어난 이곳 주민들이 로비에 나올 것이다.
물론 나는 예외였다.
짐짓 밝게 말하던 클로에의 눈가 를 떠올린다. 붉게 부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드와 한슨이 잘 따 랐던가. 매일 삼시 세끼 20인분의 식사를 차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 다. 거의 쉬지 않는 그녀를 삼인방 은 자주 도와줬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훈련소로 향했 다.
훈련소에는 제나가 땀을 흘리며
단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잠이 많다면서 항상 나보다 늦게
나오던 녀석이.
“뭔 바람이 불었어?”
나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죽기 싫으니까요!”
제나는 공중제비를 돌면서 단검을
연속으로 내리그었다.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다. 제나는
다른 영웅들보다 훨씬 균형감각이 좋고 몸이 날랬다. 나도 한 수 접어 줄 정도로. 재빠른 몸놀림 스킬까지 얻었으니 각종 지형지물을 타고 달 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아론은…
간밤의 전투에서 살아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스킬도 얻지 못했다.
여전히 녀석이 가진 스킬은 하급 창술 하나였다.
나는 모래주머니를 각각 양 발목 과 손목에 찼다.
네 개 합쳐 10kg 정도 된다. 천천 히 훈련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제나 가 옆에 따라붙었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뛰었는데도 숨이 차지 않는다.
달리는 도중 모래주머니를 집어 던졌다. 운동 효과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팔굽혀펴기도 마찬가지였 다.
나는 아예 거꾸로 서서 팔을 굽혔 다.
이것도 되는군.
조금씩 무게가 느껴진다.
레벨이 올라가면서 신체가 슬슬
일반인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다. 근 력,체력,지구력, 반사신경을 비롯 한 모든 부분이 크게 강화되었다. 이대로 지구에 돌아가면 운동선수 도 노려볼 수 있을지 모른다.
평범한 성인의 몸이었던 신체에는 단단한 잔근육이 붙었다. 옷을 벗으
면 선명한 식스팩을 볼 수 있었다. 보디빌더의 우락부락한 근육이 아 닌,격투기 선수에게나 보이는 실전 적인 근육이다.
“어 머 머
이번에는 왼손을 떼고 팔굽혀펴기 를 해 보았다.
이제야 운동하는 느낌이 난다. 동 시에 불안정한 신체가 균형을 요구 했다. 근력과 균형감각을 함께 향상 시킬 수 있는 좋은 자세다.
‘상태창.’
[한 이스라트(★) Lv. 9
(Exp 54/70)] [클래스 : 초보자(Novice)] [힘 : 23/23] [지능 : 11/11] [체력 : 21/21] [민첩 : 21/21] [보유 스킬 : 하급 검방술(Lv.5), 고통 내성(Lv.2),침착성(Lv.3), 광 폭성 (Lv.l)]
힘 3, 체력 1,민첩 1이 올랐고 지
능이 1 깎였다.
합해서 총 성장값은5저번 레벨 업부터 성장값이 5로 고정되었다. 3
성에서나 보일 법한 고무적인 수치 였다.
스킬도 대폭 올랐다.
한 전투에서 무려 스킬 레벨업을
다섯 번이나 한 것이다. 이를 스킬 각성이라고 부르는데,전투 도중 영 응에게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이었 다.
‘나쁘지 않아.’
현 성장 추세는 나쁘지 않다. 광폭성이란 의외의 스킬을 얻었다
는 점 말고는 계획대로 흘러가는 중 이다. 침착성과 광폭성이 어떻게 조 화될지에 대해선 차차 알아갈 예정
이다.
물구나무를 선 채, 오른팔을 굽히 고 폈다.
70kg를 한 손으로 들었다 내리는 것과 같은 효과다. 그럼에도 오른팔 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 스랫이 20밖에 안 되었는데 도 이 정도면 나중에 100을 넘겼을 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무협 고수들처럼 벽을 잡아 뜯거나 손가 락으로 철판을 뚫을 수 있을지도 모 튼다.
때마침 레벨이 10에 가까워졌다. 타이밍도 완벽하다. 어제 개방된 요
일 던전에서 승급에 필요한 재료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너,뭐하는 거냐?”
나는 물구나무를 선 채 말했다. 자세 때문에 셔츠가 내려가 있었
는데, 제나는 드러난 내 복근을 살 살 쓰다듬고 있었다.
“저,탐스러워 보이길래.”
“손 안 치워?”
“만지게 해주면 어디 덧나요? 닳 는 것도 아닌데.”
“닳으니까 손 치워.”
나는 팔을 굽힌 다음,펴는 반동을
이용해 몸을 한 바퀴 뒤집었다.
이 정도 곡예는 지금의 나도 할 수
있다.
‘그나저나 이 녀석은……;
보면 볼수록 기가 찬다.
어제 그런 일을 겪고서도 다음 날 이렇게 뻔뻔하다니.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다.
어쩌면 제나의 방식이 정답일 수 있다.
이미 지나간 일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해야만 하 고,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 간 단한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이런 곳
에서도 냉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제나의 가장
큰 재능은 사격 솜씨도 몸놀림도 아 닌 저런 정신적인 부분일 것이다.
오늘의 기초체력 훈련은 비교적 빨리 끝났다.
아직 점심이 되기엔 시간이 꽤 남 아 있었지만,곧바로 무기술 훈련에 들어갔다. 이제는 효율상 체력 단련 보다 무기술 훈련에 시간을 투자할 때였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자세를 잡았다.
“준비는 끝나신 거 같은데,오늘도 평소처럼 가면 되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나는 나와 10m 정도 거리를 벌 렸다.
그녀의 손에는 단궁이 쥐어져 있 다. 연습용이 아닌 실전용 무기다. 화살 역시 날카로운 촉이 달려 있었 다.
방패로 날아오는 화살을 막는 연 습은 지겹도록 했다.
방패로 화살을 막으면서 검을 쓰 는 연습도 완성 단계에 이르렸다. 방패라는 도구는 화살을 막는 데에 그토록 효과적일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자 연습이 안 될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방패를 내던졌다.
들고 있는 것은 한 자루 검.
화살이 잘못 꽂히면 죽는다.
나도 알고 제나도 안다.
”갈게요.”
“와.”
핑!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화 살.
순간 시간이 느려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화살은 빙글빙글 돌면서 내 오른쪽 가슴으로 빨려 들어왔다. 오 른손의 검이 자연스레 움직인다. 의
도하지 않아도 효율적인 자세를 취 한다.
화살은 날아오던 그대로 쪼개졌 다.
“한 발 더.”
”갑니다!”
두 번째 화살이 날아왔다. 눈을 떼 지 않는다. 사선으로 휘둘러진 검이 화살을 반으로 꺾었다.
다음 화살은 예고가 없었다.
제나도 나도 쓸데없는 말은 주고 받지 않는다. 정적 속에서 화살이 쏘아지고 베어지는 소리만이 훈련 장을 채웠다.
열다섯 번째 화살을 반으로 쪼겠 을 때,몇 명의 사람들이 훈련소에 들어왔다. 우리는 동작을 잠깐 멈췄 다.
“아,안녕하세요.”
나와 눈이 마주치자,어색하게 인 사를 했다.
나는 대충 대꾸했다. 그들은 구석 에 자리 잡더니 어설픈 동작으로 훈 련을 시작했다. 아론은 거기에 섞여 있지 않았다.
”아론 오빠가 안 오네요.”
“내버려 둬. 방에서 끙끙 앓고 있 나 보지.”
평소라면 나보다 일찍 나와서 훈 련을 하고 있어야 정상이다. 디카도 마찬가지였다. 그 둘은 훈련에 특히 열성을 보였다.
재네들처 럼 하는 둥 마는 둥이 아 니라.
저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훈련을 하는지는 알고 있다.
강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합성 을 모면하기 위해서였다. 하늘이 어 두울 때는 이처럼 설렁설렁하다가 하늘이 밝아지면 그제서야 부랴부 랴 무기를 휘둘렀다.
‘어제 두 명 대신 저놈들이 죽었어
야 됐는데.’
두 명은 나름 가능성이 보였다. 조 금만 키웠다면 쓸만했을 것이다.
내 표정이 일그러지자 제나가 분 위기를 알아했는지 어색하게 웃었 다.
“우리 훈련하죠,훈련!”
“쏴라.”
핑!
열여섯 번째 화살이 날아왔다. 이 번에는 하체다. 내려 벤다.
“히,히 익……
“신경쓰지 마요. 원래 저런 사람들 이니까.”
사람들이 구시렁대고 있다.
나도 저들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 다.
‘확실히 반응이 빨라졌군.’
검방술이란 기술은 검과 방패를 동시에 아우르는 스킬이다. 방패와 검을 동시에 사용할 때 가장 높은 효율을 보이지만 한 무기만 쓴다고 해서 패널티는 크게 없었다.
이제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 였다. 호흡을 하듯,반사적으로 검 이 궤적을 그렸다.
아직 하급 기술일 뿐이다.
나는 이곳에 온 첫날,고블린의 목
을 자로 잰 듯 정확하게 꿰뚫던 셰 이의 검술을 떠올렸다. 거기에 비하 면 한참 모자란다.
아마 셰이는 날아오는 화살을 반 으로 쪼갤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세계에선 적은 훈련량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다.
지구라면 지금의 수준에 도달하기 까지 최소 1년 이상이 걸릴 터였다.
발 아래에 부서진 화살의 잔해가 쌓이기 시작했다.
몇몇 화살이 팔뚝이나 다리를 스 치고 지나가며 피를 흩날리 게 했다. 상처를 입어도 제나는 멈추지 않았
다. 곧바로 제2의,제3의 화살이 날 아온다.
나를 죽일 생각으로 쏘라고 했다. 그 말을 충실히 따를 뿐이다.
어차피 이런 훈련에서 어이없게 죽는다면 나는 거기까지일 뿐이다.
몇 명은 아예 멀찍이 서서 나와 제 나를 구경하고 있다.
미친 짓처럼 보일 것이다.
세 번째 화살이 날아온다. 위치는 미간.
이걸 맞으면 회복이고 뭐고 무조 건 죽는다. 손목에 스냅을 주며 검 을 왼쪽으로 꺾었다. 검날에 맞은
화살이 날아갔다.
그 화살은 구경꾼들의 발아래에
꽂혔다.
“오메!”
“구경 났어?”
내가 으르렁거리자 사람들은 제자 리로 돌아갔다.
허수아비에 무기를 휘두르면서도 시선은 이쪽에 고정되어 있다. 저놈 들은 가장 기초가 되는 체력 훈련조 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생각 같아선 마스터에게 메시지를 띄워 모조리 먹어치워 버리고 싶지 만,9레벨이 된 나는 저런 쪼렙들을
먹어봤자 간에 기별도 안 간다. 제 나나 아론도 마찬가지다. 디카 정도 나 돼야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2연사다.
가슴과 목에 짧은 간격을 두고 화 살 두 발이 날아왔다. 재빠르게 두 번 휘둘러 쳐낸다.
오늘 훈련이 끝나면 마스터가 접 속할 것이다.
그 시간은 추정하건대 저녁 10시. 이미 암케나의 생활 패턴은 파악했 다. 내가 시계를 요구한 이유였다.
‘요일 던전을 가겠군.’
나는 필요한 재료를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그 와중에도 검을 휘두르는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