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224
225. 임무 유형,복합(5)
‘공평한 싸움.’
스탯과 스킬은 영웅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몬스터도 마찬가지.
수왕의 말대로,이번 싸움은 육체의
힘과 기술로만 승패가 결정 날 것이다.
[몬스터 웨이브!] [Round3 [오염된 인간 병사 Lv.53] X 29 [오염된 인간 기사 Lv.61] X 6나는 흘껏 뒤를 보았다.
단검을 든 제나가 병사들을 빠르게
베어 넘기고 있었다.
그 옆에 서 있는 벨키스트가 제나가
놓친 적을 처리했다. 반대편에선 카티 오가 소환한 모래 골렘이 병사들을 박살 내고 있었다. 삼각 편대를 이룬 세 명은 유기적으로 자리를 바꾸며 공세를 빈틈없이 막아냈다.
나와 키샤샤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능력을 잃은 수왕은,그저 힘이 조금
센,권사에 불과했다.
분명 놀라울만큼 강하고, 매서운 주
먹이었다.
제대로 맞는다면 머리통이 통째로 사라질 정도로.
하지만,이런 주먹을 상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쾅!
수왕의 주먹을 키샤샤가 손바닥으로 받아냈다.
그녀가 디딘 땅이 움푹 파였으나, 키샤샤는 물러서지 않았다.
뒤이어 나의 검날이 놈의 목젖을 노 렸다.
스각.
마침내 솟구치는 피.
수왕이 입은 첫 번째 상처였다.
“크하하핫!”
대소를 터뜨린 수왕이 다시 주먹을 날렸다.
“어림없어!”
키샤샤가 팔꿈치를 내밀었다.
쾅!
키샤샤의 몸이 주르르 밀려났지만, 이번에도 튕겨 나가지 않았다.
나는 밀려 나가는 키샤샤 아래에서
하체를 낮춰 달려나갔다.
‘키샤샤가 공격을 받아내면.’
키샤샤의 체술은 이미 경지에 이르러 있다.
따라서 힘과 민첩 같은 육체 능력은 나보다 훨씬 우월했다.
박투전으로만 따지면 키샤샤는 4성을 넘어 최상급의 5성 수준에 도달해 있 었다.
콰직!
수왕이 내지르는 발을 키샤샤가 한 번 더 막아냈다.
나는 그 사이에 검을 찔러넣었다.
‘내가 반격한다.’
간단한 전술이지만,두 명의 합이 완벽히 맞아떨어져야 했다.
“훌륭하다!”
수왕의 몸에 상처가 하나둘 늘어갔다. 수비조도 여신상에 들이닥치는 몬
스터들을 빈틈없이 물리치고 있었다.
[여신상의 신성력 수치가 62%로 상승합니다!]
[광휘의 축복이 부여됩니다!] [혼돈의 심층 전 구역에 버프가
적용됩니다!]
[적용 버프 – 영웅의 모든 능력치 10% 증가]
여신상이 내뿜는 빛이 한층 강렬해 졌다.
〈한,4구역을 돌파했어!〉
“계속 가.”
시야 오른쪽 상단에 떠오른 필드 지 도에는 숲의 깊은 곳으로 진입하고 있는 타오니어 함대의 위치가 나타나 있었다.
[현재 진화도 : 039 / 100]
알까지는 멀지 않았다.
무리해서 수왕을 처리할 필요도 없다.
신성력 수치를 높이면서 버티기만 해도 본대가 목표를 처리해줄 것이다.
“과연! 오랫동안 단련을 반복해왔군. 우수한 연격이다!”
수왕이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봤다. 손등 위쪽,내가 새겨놓은 칼자국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 정도로는 무리인 것 같군요.〉 “조금만 더 즐기고 싶은데. 안 되겠나?” 〈전하가 지루해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키아드니가 비릿하게 웃었다.
‘또 뭘 하려는 속셈이군.’
보스전의 첫 번째 페이즈를 돌파한
것 같다.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체력은 여유롭다.
‘뭐가 나오든,침착하게?
나는 니플헤임과 타오니어의 임무
들을 각각 마스터와 영웅으로서 돌파 해왔다.
이쯤은 위기 축에도 들지 않는다.
[‘지상을 탐식하는 오른눈’]투기장 상공에 떠 있는 보랏빛 눈동 자의 반대편.
새로이 주황빛 눈동자가 떠올랐다. 한 번 더,불타는 듯한 시선이 투기
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흐하하하! 너희들의 투지를 보여주 거라!”
키아드니가 주먹을 움켜주었다. 그리고 다시 땅을 박찼다.
키아드니가 달려들고 있다.
전술은 변하지 않았다.
키샤샤가 방어,내가 공격.
하지만 키샤샤는 그 자리에서 움직
이지 않고 우뚝 서 있었다.
‘..?’
대처하는 움직임이 전혀 아니다.
키샤샤는 당황한 듯 허공을 더듬거
리고 있었다.
“……키샤샤?”
키샤샤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키샤샤의 눈동자에는 빛이 사라져
있었다.
,이건……!’
나는 급하게 키샤샤를 향해 뛰었다. 키샤샤의 면전에 키아드니의 주먹이
쇄도하고 있었다.
“큽!”
반쯤 억지로 끼어들어 검면으로 주 먹을 튕겨냈다.
무리한 자세.
우직. 불길한 소리와 함께 오른팔의 관절이 반대로 꺾였다.
“뭐 하는 거냐!”
“앞이…… 앞이 안 보인다!”
안 보인다고?
나는 키샤샤를 허리에 낀 채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오른팔에서 밀려왔다.
‘오른팔이……
부러졌다.
망할.
나는 검을 왼손으로 고쳐 쥐었다.
[여신상의 신성력 수치가 43%로 떨 어집니다!]
[광휘의 축복,정화의 기도가 해제
되었습니다!] [혼돈의 심층 전 구역에 디버프가 적용됩니다!]
수비조에서도 난리가 났다.
카티오의 마법 방벽이 해제된 틈을
타,세 명의 병사가 여신상으로 침투 했다.
‘왜 이렇게 됐지?’
나는 멤버를 빠르게 살폈다.
다들 움직임이 평소와 다르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제대로 보인다. 시각은 정상.
소리도 들린다.
‘안 되는 건……:
나는 혀를 살짝 깨물었다.
씁쓸한 감촉이 뇌리에 전해졌지만,
피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비릿한 피의 향도 코끝에 을라오지
않았다.
‘알아챘다.’
나는 키샤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키샤샤는 모래 위에 엎드린 채 엉금
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뒤편에 있던 키아드니는
눈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너희 중에서,눈이 보이는 놈은 나
한테 와라!”
나는 파티원들을 향해 외쳤다. “뜬금없이 뭔 소리예요?”
활시위를 당기던 제나가 이쪽을 보
았다.
“일단 이쪽으로 와!”
제나는 활을 접더니 내게 뛰어왔다. “넌 나와 이놈을 상대한다.”
“키샤샤 언니는……
“얘는 안 돼.”
나는 벨키스트 쪽을 보았다. 기계적인 동작으로 몬스터를 베어
넘기고 있었지만,내가 외쳤을 때 이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들리는군.”
벨키스트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상을 탐식하는 오른눈.’
영웅의 ‘감각’을 강탈하는 스킬인가. 키샤샤는 시각과 청각을 뺏겼다.
그 때문에 키아드니의 공격에 대처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감각을 빼앗
기는가 보군.’
나는 후각과 미각을 잃었다.
‘카티오도 눈이 안 보이는 건가.’ 대신 소리는 들리는 것 같다. 이쪽을 돌아보긴 했으니.
‘뺏기는 건 오감 중에서 두 개.’
나는 머리를 굴렸다.
느긋하게 고민할 여유는 없다.
“카티오,성녀의 두 번째 능력은 감
각을 빼앗는 거야.”
“……그런 거였어?”
“키샤샤와 벨키스트의 피부에 마력
으로 글씨를 써줘. 두 명은 귀가 안 들린다. 이제부터 수비조와 공격조를 바꾼다. 눈이 안 보이는 놈은 수비조 로 빠져. 눈이 보이는 애들은 공격조로 가서 수왕과 싸운다.”
“아니,눈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그건……
나는 입을 다물고는 뛰었다.
쾅! 내가 있던 곳에 수왕의 주먹이 처박혔다.
“아주 여유로우시군.”
말을 할 틈이 없다.
키아드니는 내게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나는 피할 수 있는 건 피하고,받아 칠 수 있는 건 받아치면서 뒤로 물러 났다.
핑!
틈을 노린 제나의 화살이 키아드니의 인중을 노리고 날아갔다.
콰직!
키아드니는 입을 벌려 날아오는 화
살을 짓씹었다.
“어이가 없네요.”
제나가 혀를 찼다.
키아드니는 부러진 화살을 퉤 뱉더니
웃었다.
“그 꼬마와 네 조합은 인상적이었다.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겠구나!”
키아드니가 제나에게 닥쳐들었다. 제나는 빠르게 단검을 꺼내 들더니
키아드니와 맞부딪혔다.
‘상성이 좋지 않아.’
수왕의 살가죽은 돌을 떠올리게 할
만큼,무척 단단했다.
제대로 자세를 잡아 베지 않으면 칼
날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캉! 카캉!
제나의 단검날을 연이어 튕겨낸 키 아드니가 주먹을 내뻗었다.
제나가 높이 뛰었지만,키아드니도 제나를 추격하기 위해 발디딤을 했다.
‘안 되지.’
나는 날 듯이 뛰어가 놈에게 검을 연달아 찔렀다.
[여신상의 신성력 수치가 34%로 떨어집니다!] [혼돈의 심층 전 구역에 적용된 디버프가 강화됩니다!]벨키스트 혼자서는 사방을 막을 수 없다.
곳곳에서 병사들이 여신상을 향해 돌진했다.
[비공정 ’프랑 호’가 중파 되었습니다!]
5호기인 프랑 호의 중파 메시지가 떴다.
뒤이어 떠오르는 영웅들의 사망 알림. 벌써 사망자는 백여 명을 돌파했다.
[현재 진화도 : 042 / 100]
아무리 단련을 겹쳐 쌓았어도 감각에 의지하지 않으면 제대로 싸울 수 없다.
덧붙여 시각의 의존도는 절대적. ‘빌어먹을 패턴이군.’
영웅의 스킬과 각인을 봉인한 데에
이어,감각까지 빼앗는다.
게다가 이 상태에서 보스와 맞서 싸
우며 몰려드는 몬스터들에게 여신상을 지켜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공략은 존재한다.
“알았다!”
엎드려 있던 키샤샤가 벌떡 일어났다.
카티오가 마법으로 나의 말을 피부에 새겨 전해준 것이다.
벨키스트도 마찬가지.
“크아아아아앙!”
키샤샤는 포효하더니 병사의 무리를 향해 네 발로 뛰어들었다.
손톱을 크게 휘두르자,병사들의 살 점과 피가 사정없이 흩날렸다.
‘안 보여도 돼.,
키샤샤는 후각이 발달했다.
그녀는 적들이 있는 위치를 정확히
짚어내 손톱으로 도륙하고 있었다. 눈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수왕과 싸
우는 건 무리였지만,쫄 정도는 손쉽게
상대할 수 있다.
나는 제나와 어깨를 맞댔다. “우리는 조가 바뀔 때까지 버틴다.” 수왕과 효율적으로 싸우기 위해선
키샤샤가 필요하다.
키샤샤의 눈이 회복될 때까지 버틸
필요가 있었다.
“알았어요. 그 정도는 쉽죠!”
제나가 단검을 휘릭 돌렸다. 그리고,재차 수왕이 달려들었다. “놈의 주먹과 부딪치지 마! 회피 위
주로 싸워라!”
제나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공중제 비를 돌았다.
그 아래로 수왕의 주먹이 연달아 스 치고 지나갔다. 나는 아래로 몸을 낮춘 뒤,틈새를 노렸다.
왼팔의 힘을 빼고,어디까지나 견제 위주로.
“적응이 빠르구나.”
키아드니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
[‘지상을 탐식하는 오른눈’]주황빛 눈동자가 투기장을 한 번 더 쓸고 지나갔다.
그 순간,눈앞이 암전됐다.
‘이번에는 나인가.’
어둠 속.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뒤쪽으로 뛰면서 빠르게 감각을
체크했다.
‘뺏긴 건 시각과 미각.’
양호하군.
뒤를 더듬자,여신상의 매끈한 촉감이 달라붙었다.
“이번에는 나다!”
“나로군.”
공수 전환.
눈이 보이는 벨키스트와 키샤샤가 앞으로 나섰다.
벨키스트가 내 역할을 대체할 수 있 으니,괜찮은 조합이었다.
“저도 안 보이네요.”
“안 보인다고 못 쏘는 건 아니잖냐.”
놈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덧붙여,
‘냄새가 난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독특하고도 강렬한 향이었다.
물론 그 정체는 곧 알 수 있었다. 카 티오가 마법으로 만들어 낸 향이었다.
카티오는 자신이 만든 향을 적이 있는 곳에 뿌렸다. 이 정도 향이라면,키샤샤 만큼의 후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손쉽게 적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오른쪽은 내가 막아줄 수 있어.” 카티오가 속삭이듯 말했다.
말하지 않았는데도,알아서 적당한
대처법을 찾아내다니.
“알았다.”
나는 웃으며 검을 늘어뜨렸다.
향의 진원지는 바로 앞. 쇠로 된 부
츠가 모래를 밟는 소리가 났다.
핑! 핑핑!
화살이 바람을 꿰뚫는 소리.
“컥!”
비명이 연이어 들린다.
나는 검날을 앞으로 겨누었다.
후웅!
무거운 소리가 났다.
나는 옆으로 한 발짝 움직였다. 창 날이 스쳐 갔다.
몸을 돌리면서 크게 베자,손끝에 살갗을 자른 듯한 둔중한 감촉이 전 해졌다.
‘냄새와 소리.’
나는 눈을 떴다.
아직도 눈앞은 어둠이었다.
“덤벼라.”
“크아아아악!”
병사와 기사들이 괴성을 질렀다.
‘다 알아.’
나는 귀에 신경을 집중했다.
이건 창을 찌르는 소리.
이건 도끼를 내리찍는 소리군.
[여신상의 신성력 수치가 42%로 상승합니다!]
[현재 진화도 : 045 / 100]
천천히,
어둠 속에서 무기의 궤적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