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250
252. 성도 공략전 (3)
나는 눈을 떴다.
섬광이 걷히며 주위의 풍경이 점차 드러났다.
먼저 느껴지는 것은, 기도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매캐한 공기. 흡사 유황을 들이키는 듯한 강렬한 악취가 머리를 뒤흔들었다.
’……여기는?
이리느가 만든 환상 세계라 했었지. 나는 근처를 둘러보았다. 서늘한 날씨.
짙푸른 새벽 하늘 위에 붉은 만월이 피어 있었다. 그 아래로,달빛을 받으며 열을 맞춰 늘어선 석조 건물들이 보 였다.
“죽여라.”
“죽여. 이단을 죽여라.”
“매달아. 매달아라.”
곳곳에서 끊임없이 웅성거리고 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가 불려온
곳은 드넓은 원형 광장이었다. 광장 가운데의 분수 주위로 남녀노소의 시
민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바로 앞의 신전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신전 최 상층의 테라스에 서 있는 한 여자에게.
“죽여! 배신자를 죽여! 우리를 팔아 넘긴 배신자를 죽여어어어!”
스물도 안 되어 보이는 소녀가 악다 구니를 쓰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나는 입술을 물었다. 그녀의 눈이 있어야 할 곳엔 안구 대신 시꺼먼 구 멍이 뚫려 있을 뿐이었다.
[분노한 시민들 Lv.54] X 658사람들은 욕지기를 내뱉고 손에 든 물건을 집어 던지며 신전 최상층에 있는 누군가를 저주하고 성토했다.
“절대 살려두지 마! 사지를 갈가리 찢어 처형해라!”
“옳소! 옳소!”
“감히 황자님을…” 배신하다니……!”
나는 혀를 찼다.
이곳이 어디인지 눈치챘다.
“이게 네 꼼수냐?”
나는 상공에 떠올라 있는 한 쌍의 눈동자를 노려보았다.
〈이곳은 환상이지만 진실이기도 합 니다.〉
“환상이지만 진실? 개소리로밖에 안 들리는데.”
〈그렇다면 직접 느껴보시지요.〉
가벼운 웃음소리와 함께 눈동자가 사라졌다.
그 순간,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했 다. 나는 관자놀이를 짚으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효과음과 함께 시스템 메시 지가 떠올랐다.
[띠링!] [영웅 ‘한(★★★★★)’이 ‘환상 세계에 진입하였습니다.][특수 임무가 부여되었습니다. 해당 임무를 실패할 시, 특수 NPC ‘프리아 시스 알 라그나’는 사망합니다. 마스터,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보세요!]
치직. 치지직.
노이즈가 일더니 눈앞의 임무 목표가 갱신됐다.
[플로어 15(?)]
[임무 유형 – 호위]
[목표 – 지정 인물을 보호하라.]
바둑판처럼 늘어선 건물과 도로들.
광장에 모여 있는 무수한 시민과 안 쪽에 세워진 신전.
잊을 리 없었다. 이곳은 15층의 무 대였던 ‘아딜트’라는 도시였다.
15층.
프리아가 처음 등장한 임무였으며, 보스 스테이지인 만큼 상당한 고생을 겪었었다.
_달라진 것이 있다면……: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이곳의 영웅은 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건……!”
테라스 난간에 서 있던 프리아가 눈을
치켜 떴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사방을 살 폈다. 그럴 만도 하지.
갑자기 장소가 바뀌더니,사람들이 자기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다.
[10 : 00]시야 왼쪽에 시간이 표시됐다.
10분이라.
‘생각할 여유는…… 없겠지.’
나는 걸어나갔다.
“너,뭐야. 방해하지 말고 꺼…… 우직.
나는 앞을 가로막는 남자의 손목을 비틀었다.
“아아악!”
퍽!
가슴을 걷어차자 놈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분수대에 틀어박혔다.
“여…… 여기는 어디인가!”
프리아의 외침에 답해주는 이는 없다. 각자 분노의 함성을 토해낼 뿐. 테라스 너머의 커튼에서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09 : 43]나는 분수대의 꼭대기를 오른 뒤 뛰 어올랐다.
한 번에 수 미터를 뛰어오른 뒤,다시 한번 창문의 홈과 난간을 박찼다.
순식간에 테라스 안으로 착지. “꺅!”
갑작스런 난입에 놀란 프리아가 주 저앉았다.
“한?! 여긴 대체……
“답해줄 시간은 없다. 10분 안에 여
기서 탈출해야 돼.”
“무슨 소리를……
휘이 익!
날카로운 파공성.
나는 오른손을 휘둘렀다. 손바닥을 펼치자 석궁의 볼트가 바닥에 떨어졌다.
조금만 늦었다면 프리아의 미간에 구멍이 뚫렸겠지.
“익숙한 상황 아니냐?”
“그,그렇구나.”
“여길 빠져나간다. 꽉 붙잡아.”
프리아는 입술을 질끈 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만났을 때의 철모르던 꼬맹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동안 온갖 산전수 전을 겪으면서 성장해왔다. 프리아는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끌어안았다. 그 즉시.
“크아아아악!”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분노한 교단군 병사 Lv.61] X 316 [분노한 교단군 기사 Lv.67] X 17 [분노한 암살자 Lv.66] X 21테라스 너머에서,건너편 건물에서, 신전 대문에서,밑의 광장에서,도시의 대로에서,
셀 수 없을 정도의 병사가 튀어나와 이곳을 향해 질주했다.
잔뜩 충혈된 눈.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흘
리고 있었다.
이미 인간이라기보다는 몬스터에 가까운 생김새였다.
‘이게 비장의 방법이란 건가.’
이미 깼었던 보스 스테이지를 하드
모드로 다시 클리어하라니.
꽤나 깜찍한 수였다. 나는 픽 웃고는
프리아를 안은 채 테라스에서 도약했다. 그리고는 5m의 거리를 가볍게 뛰어
넘어 지붕 위에 착지했다.
“죽여! 죽여어어어어!”
시민과 병사,기사와 암살자,너나 할
것 없이 프리아에게 달려들고 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짓눌려 압사당
했으나,신경 쓰는 기색은 없다. 그들에게선 약간의 이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핑! 피피핑!
암살자가 석궁을 발사했다.
나는 사선을 벗어나며 지붕과 지붕
사이를 달려나갔다.
“정녕 저들이 인간이 맞는 것이냐?” 프리아가 질린 듯한 표정으로 뒤를
보았다.
병사들이 수 미터의 높이를 뛰어넘어 지붕에 오르고 있었다.
놈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안구를 희번덕거리더니 네 발로 뛰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네.”
도시의 지도는 외우고 있다.
나는 골목길로 진입한 뒤 무수히 뻗은
갈림길을 지나치며 발걸음을 옮겼다. 프리아가 옆에 있는 탓에 큰 동작은
할 수 없었지만,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비프로스트의 칼집을 휘둘러 길을 막는 놈들의 머리를 박살 냈다.
놈들을 따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나갈 때였다.
출구는 한정되어 있었고,놈들은 분명
그곳을 지키고 있을 테니까.
‘뭐,어찌 됐건 뚫긴 해야겠지만.’ 나는 골목길에서 뛰쳐나왔다.
내 기억으로 출구는 저 바로 앞. 아니나 다를까.
대로 끝에 성문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스무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진을 치고 서 있었다.
“크라락! 끼아아악!”
나는 뒤를 흘껏 보았다.
시민과 병사들이 뒤섞인 인파가 이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기세. 휩쓸리게
된다면 나는 몰라도,프리아는 죽음을 면치 못하겠지.
‘최대한 빨리._
“쫄지 말고 있어.”
나는 프리아를 허공으로 휙 집어 던
졌다.
“..?!”
프리아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위로 날아갔다.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파지직! 손 끝에서 일어난 번개가 프리아를 집어 삼키더니,그녀의 몸이 허공에서 멈춰 섰다. 간단한 중력 고정술이었다.
“이건 무슨……!”
“게라아아아악!”
“함성 한번 특이하네.”
나는 칼집에 손을 올렸다.
검자루에서 검붉은 번개가 튀어 오
르기 시작했다.
〈이딴 허접한 시간 끌기라니. 교단의 성녀도 갈 데까지 갔구나.〉
할기온이 혀를 끌끌 찼다.
허접한 시간 끌기라.
맞는 말이야.
“우와아아악!”
사방에서 병사들이 덮치기 전,
나는 엄지로 칼집을 튕겨 올렸다. 스각.
검붉은 반원이 반경 10m를 휩쓸고 지나갔다.
반원에 쓸린 인간들이 잠깐 주춤거 리더니,일제히 토막 나 쓰러졌다.
총합 20명. 깨끗했던 대로가 피와 살점으로 얼룩졌다.
철컥.
나는 칼집에 검을 되돌렸다. 오른손을 내리자 허공에 떠올라 있던
프리아가 천천히 떨어졌다.
“가자.”
프리아가 엉거주춤 고개를 끄덕였다. 활짝 열린 성문의 통로에서 빛의 소
용돌이가 회전하고 있었다.
저곳이 출구. 나는 빠른 걸음으로
통로를 지나치며 말했다.
“프리아,아직 안 끝났을 거야. 이상
한 곳으로 가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
“아,알았다.”
“좋아.”
나는 옆을 보았다.
[05 : 20]4분 30초 정도 걸렸나.
나쁘지 않은 성적표다.
[화면을 드래그 앤 드롭! 환상에 갇힌 NPC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쳐주세요!]암케나가 액정을 한 번 더 내리그었다.
[Slash!] [환상과 이어진 차원문이 열렸다!]우우웅.
소용돌이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환상은 15층이었다. ‘그렇다면,다음은……’ 어디 일까.
직접 겪어보는 수밖에 없겠지.
나는 소용돌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띠 링!] [영웅 ‘한(★★★★★)’이 ‘두 번째 환상 세계’에 진입하였습니다.] [특수 임무가 부여되었습니다. 해당 임무를 실패할 시, 특수 NPC ‘프리아 시스 알 라그나’는 사망합니다. 마스터,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보세요!]휘 오오오오.
빛이 걷힌 뒤,한차례의 모래폭풍이 몸을 덮쳤다.
폭풍 속에서 성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15층을 통과했군요.〉
“실망스러운데. 고작 이 정도였냐.”
〈그럴 리가요. 더욱 멋진 선물이 준
비되어 있습니다.〉
“그거 기대되네.”
나는 모랫바닥에 발을 붙인 채 옆을 보았다.
프리아는…… 없다.
재소환 과정에서 따로 떨어진 것 같
았다.
‘모래라고 하면,한 군데밖에 없지.’ 예상이 빗나가긴 했지만,딱히 상관
없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플로어. 30(?)]
[임무 유형 – 토벌]
[목표 – 해당 적을 섬멸하라!] [특수 목표 – NPC ‘프리아시스 알
라그나’의 생존]
퉤.
나는 입에 들어온 모래를 내뱉으며 근처를 둘러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곳곳에 부는 모래바람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저 멀리 모래폭풍 너머에서. 고오오오오오.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대의 석상 Lv.???]
“……하아.”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저놈만은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제 선물이 어떠신지요. 이번 무대는 쉽지 않을 겁니다.〉
“…….”
〈연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육체 로,고대 마도학의 정화를 이길 수 있 겠습니까? 후후훗,저의 환상 속에서 배반자와 함께 뼈를 묻으시기를.〉
이리느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나는 어깨를 으쏙였다.
쿵!
땅이 가볍게 흔들렸다.
석상이 발을 디딘 여파였다.
놈은 사막 오른쪽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나를 노리는 게 아니다.’
석상과 멀지 않은 곳.
허둥거리며 뛰고 있는 프리아의 모
습이 보였다.
‘……이런.’
프리아가 열심히 도망치고 있었지 만,석상은 바로 그녀의 뒤에 있었다.
구오오오.
석상이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한,달려라!〉
“알아!”
파바바박!
나는 모래를 박차며 뛰어나갔다.
’고대의 석상.’
크기는 약 300m.
에펠탑과도 비슷한 높이.
까마득한,그야말로 까마득하게 거
대한 몬스터였다.
거리가 너무 멀다!’
프리아가 주저앉았다.
‘고대 마도술의 정화라고.’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맞상대할 수
없다.
리자드맨들이 내부에 통로를 만들 어주지 않았다면,우리는 거기서 꼼짝
없이 죽있겠지.
놈은 주먹 한 방에 땅을 흔들고 지 각을 뒤집는다. 다이너마이트 수백 개와 비견할 만한 위력이었다. 그 주먹이, 프리아에게 내리꽂히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나에게 이긴 것 같나?’
성녀는 어디선가 회심의 미소를 지은 채 우리를 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허리를 굽혔다.
“원한다면 보여주마.”
나는 혀를 강하게 깨물었다.
비릿한 피 맛이 입속에 어지러이 퍼 졌다.
“할기온.”
파지지지직!
검붉은 뇌전이 온몸을 감싼 채 퍼져 나갔다.
[‘한(★★★★★)’이 마인화 상태에 돌입했습니다!]검은 비늘이 전신의 살갗을 뚫고 튀 어나왔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쾅!
나는 발을 크게 박찼다.
치솟은 모래 기둥이 뒤에서 흩날렸다. 철컥.
나는 비프로스트의 검날을 빼들었다. 묵빛 검날에 내 눈동자가 비쳤다.
완전한 괴물의 모습.
상관없다. 나는 비릿하게 웃은 뒤
검날을 돌렸다.
‘으으으읏!”
프리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바로 위에 거인의 주먹이 하강하고
있었다.
〈검의 무게는?〉
“오천만 배.”
〈흐하하핫! 좋다! 용패왕의 힘을 보 여주거라!〉
우우우우우우우웅 !
묵빛 검날이 잔상과 더불어 진동하기 시작했다.
흐릿한 흑광이 검으로부터 새어 나 왔다.
[스킬,’흑패검’ 발동!]〈그나저나,정말 훌륭한 검이군. 오 천만 배로 무게를 늘렸는데도,어찌 부러지지 않는 것이냐.〉
“제작자가 끝내주게 만들었나 보지.”
〈크흐흐! 재밌구나.〉
나는 프리아 옆에 멈춰섰다.
철컥. 검자루를 양손으로 잡았다. 쿵. 양발을 모래바닥에 깊숙이 박았다. 그리고 나는, 거인의 주먹을 향해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다.
충격파가 원형으로 퍼져나갔다. 뒤이어.
쾅!
박살난 석상의 팔이 허공으로 치솟 았다.
수백,수천 개의 잔해가 공처럼 튕겨 나갔다.
우오오오오오!
석상의 거대한 몸이 휘청거리며 물 러났다.
후두두둑.
공중으로 치솟은 잔해가 비처럼 떨 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비프로스트를 뒤로 내밀었다. “이,이게 뭔……
“일억 배.”
우우우우웅!
비프로스트의 흑광이 선명해졌다. 나는 검의 힐트에 튀어나온 버튼을
눌렀다.
철컥!
기계음이 나더니 검날이 옆으로 벌 어졌다.
대검 형태로.
U 등급 무기인 비프로스트는, 사용자의 특성에 따라 무한히 진화
한다.
’확장.’
철컥. 철컥철컥철컥.
검날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2m. 3m. 5m. 10m. 20m. 30m.
50m.
그리고 100m에서… 200m까지.
‘원래 이런 형태의 검은 무게중심
때문에 사용할 수 없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지.
쿵!
나는 진각을 밟았다.
모래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나는 검자루를 양손으로 잡은 뒤 옆
으로 그었다.
,한 번:
허공에 커다란 선이 새겨졌다. 이윽고 비프로스트의 묵빛 검날이
석상과 부딪혔다.
카가가가각!
100m 길이의 검날이 불꽃을 튀기며, 빵을 자르듯 석상의 상체를 절단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