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260
262. 벌레를 죽이는 것처럼(2)
방 안에 피 냄새가 자욱하게 퍼졌다. 나는 눈살을 찌푸린 채 아래를 내려
보았다. 침대와 이불,시트가 온통 빨 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됐는지 말할 필요도 없겠지.
“몇 명째지?”
“8 명이야.”
카티오가 눈을 찡그린 채 머리를 긁 었다.
사흘 만에 8명이라. 최초의 습격에서 희생된 것까지 포함하면 15명 가까운 영응들이 죽은 셈이었다.
게다가 눈앞의 시체는 전투직이 아 니었다.
식당에서 주방 보조 및 재료 손질을 담당하는 신입이었을 뿐.
이 녀석뿐만이 아니라 사망자 전원이 싸움과는 연관이 없는 영웅들이었다.
나와 별 관계가 없었던 이들은 나와 같은 대기실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암살을 당했다.
‘알아서 토해내라는 뜻인가.’
놈들의 의도는 명백하다.
더 이상 죽는 사람을 늘리고 싶지
않다면 역천의 서를 가져오라는 것. 암케나가 암살자 침입을 감지한 이후,
바로 경계를 강화했으나 소용없는 짓 이었다. 감시 인원을 세 배로 늘리고, 순찰 병력을 배치하고,카티오가 감지 마법을 펼쳐놓아도,희생자는 계속 생 겨났다.
만약 대놓고 쳐들어왔다면 한바탕 전투를 벌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놈들은 처음 이후에는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대기실의 인원을 한두 명씩 암살하고 있었다.
’악명이 높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암케나는 환장할 노릇일 것이다. 침입자가 누군지도 밝힐 수 없다.
경계를 강화해도 효과가 없다. 언제 끝날지도,어디까지 갈지도 알 수 없다.
“누구야? 감시도 감지 마법도, 함정도 안 걸리고!”
카티오가 분통을 터뜨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랭커 급의 암살자
라면 자신의 기척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으니까. 이들에게는 타오니어의 경계와 함정,마법이 모두 통하지 않
는다.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단 한 번,죽 이기 위해 칼을 들 때뿐.
대기실 레벨이 더 높았다면 모르겠 지만,현재 타오니어의 시설로 이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체 뭘 노리고……
“날 노리는 거지.”
나는 칼집을 매만졌다.
나한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한테 자기 전에 문 잠그라 하고,수상한 사람 있으면 바로 보고 하라고 해. 새벽에 함부로 나다니지 말고. 보조직 숙소에도 애들 풀어서
순찰시켜.”
나는 방을 빠져나왔다.
이런 대책이 효율적이지는 않을 것
이다.
‘단순히 버티면 되나?
유르넷이 상황을 눈치챌 때까지? 아니. 놈들이 반지를 빼갔다는 건,
지원이 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 다는 의미였다. 아마 다른 세력이 끼 어든다 싶으면 대기실 자체에 대형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수십,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살을 당할 수도 있었다.
‘안 좋은데._
바깥에 놈들이 비공정을 대기시키고 있는 건 분명했다. 그러나 어디에 있 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사냥꾼의 방식. 마치 거미처럼, 사냥감을 옮아맨 채 말려 죽이는 것 이다.
내가 실제로 당할 줄은 몰랐지만.
차라리 나를 집중적으로 노렸다면 반격의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철저히 주변인만을 노리고 있다, 다만 그럼에도 내가 역천의 서를 내놓지 않고 있으니,슬슬 전투직으로 타겟을 옮기겠지. 처음 목표는 벨키스 트나 제나,키샤샤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1파티에서 한 명이라도 암살을 당하게 되면 공략에 막대한 차질이 생긴다.
시간을 끌 수도 없다.
놈들을 잡을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직접 끌어내는 수밖에 없군.’
나는 위를 올려보았다.
하늘에서 회색빛 안개가 어물거리고
있다. 암케나는 접속하고 있지 않은 상태.
들어와봤자 발을 동동 구르기만 하 겠지.
이건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역천의 서를 넘겨서 끝이라면 그 방 법도 고려해보겠지만,뒤통수를 맞을 가능성이 100%.
물건을 습득한 이후에는 나를 살려둘 이유가 없다. 철저한 짓밟기는 PVP의 기본이니까.
나는 한낮의 광장을 지나쳤다.
행인들로 북적거리던 광경은 온데 간데없다.
무장한 영응들만이 험악한 표정으로 오갈 뿐.
‘어디 보자.’
내가 가진 무기는,… 놈들이 역천의 서를 원한다는 것.
이거 하나면 충분한가.
나는 비공정 격납고와 이어진 문을
열었다.
한창 작업으로 바쁘던 격납고도 텅 비어 있다.
나는 맨 좌측에 세워져 있는 루세트 호로 향했다.
격납고 계기판에서 비공정 상태를 점검해보았다.
수리는 진즉 끝났고,연료도 만충. 자동 주행 시스템도 완비되었다.
좌표만 입력하면 언제든 원하는 곳 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나는 수 미터를 도약해서 철제 난간을
붙잡은 뒤,갑판으로 다시 뛰어올랐 다.
조종실로 가서 주행 시스템을 세팅 했다.
[마스터,파견을 시작합니다!]
[파견 영웅 – _한(★★★★★)’,’제나
(★★★★★)’,’벨키스트(★★★★★)’] [지역 – 차원도시 베타 (144.***.***.***)]
[유형 – 불명]
[기간 – 미정]
[※주의!]
[이번 파견은 영웅이 자의적으로 시 행하는 ‘자동 파견’입니다! 이를 원하 지 않는다면 설정 탭에서 자율 행동 기능을 ‘OFF’하세요!]미안한데,외도 한 번만 하자.
쿵! 나는 비공정의 액셀 버튼을 눌 렸다.
우우우웅!
루세트 호가 공중에 떠오르더니,차 원의 소용돌이로 쏘아져 나아갔다.
변화는 한순간.
[1535차원 – 타오니에바로 뒤,끝모를 높이의 탑이 펼쳐져 있다.
폐에 파고드는 매캐한 공기.
나는 갑판으로 나온 뒤 입을 열었다. “헛짓거리 말고 나와.”
부스럭.
갑판 기둥 너머, 나무통이 들썩거렸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 갑판으로 굴러
나왔다.
그녀는 날렵한 동작으로 몸을 일으 켰다.
“역시 들켰나요?”
제나가 헤헷 웃었다.
들키고 자시고,파견창에 표시되잖냐.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여긴 왜 탔냐? 시킨 적 없는데.” “혼자 재미 보려고 했잖아요. 오빠
오른팔이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죠.” “재미를 본다?”
제나가 헛기침을 했다.
“오빠의 대위기인데,제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뭐라도 해야지! 안 그 래요,벨 오빠?”
나는 옆을 보았다.
계단에서 천천히 벨키스트가 걸어
올라왔다.
“뭐,그렇게 되었소.”
벨키스트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 했다.
“뭘 하려는지 모르겠소만, 적어도 혼자 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소? 심심 하던 차에 잘 됐군.”
“도움이 될 거요.”
벨키스트가 선실 벽에 그대로 등을 기댔다.
나는 혀를 찼다. 초대받지 않는 손 님들이 나타났다. 아무래도 어제 내가 비공정에 밑작업을 하던 것을 몰래 지켜본 모양이었다.
“에이,뭐 그리 싫어해요. 오빠 생각
해서 도와주러 왔다는데.”
“이건 내 일이야.”
“내 일하고 남 일이 어딨나. 다 같은
동포인 것을.”
“벨 오빠가 그 말 하니까 좀 소름이 네요.”
“……죽고 싶나?”
제나는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어쨌든,우리 집에 도둑이 나타났
다는데,같이 퇴치해야죠. 파이팅!” 제나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변함없이 능글거리는 어투.
역천의 서가 원인이라면,이 녀석들
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는데.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고.’
이미 녀석들은 눈치를 했을 것이다. 나는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대기실을 벗어나는 건 맞소?” “박혀있어봤자 손해만 볼 테니까.” “아,연속 암살 때문이죠? 저도 순찰
많이 돌았는데,코빼기도 안 보이더라 구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실에서 싸우는 건 상책이 아니다. 1000명에 가까운 인질을 끌어안고
싸우는 셈이 되니까.
설사 전면전을 하게 되더라도,필연
적으로 대규모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싸움터를 바꿀 수밖에.’ 나는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품 안에서 두꺼운 양장본을
꺼내 들었다.
“그 책은 뭐예요?”
“놈들이 원하는 물건. 엄청 비싼 거야.” 뭐, 망가져서 쓸 수도 없지만.
나는 보란 듯이 책의 페이지를 펄럭
거렸다.
“가져가라.”
나는 책을 난간 너머로 집어 던졌다. 희끄무레한 안개가 밑에서 생겨났다. ‘역시 있었군.’
투명한 손길이 책을 낚아채기 전, 나는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파직! 검붉은 번개가 역천의 서를 옭아매더니,책이 거꾸로 솟구쳐 내 손에 딸려 들어왔다.
나는 피식 웃었다.
“가져갈 수 있다면 말이지.”
우우웅!
루세트 호가 후미에서 파란 불꽃을 토했다.
급가속 시작. 굉음과 함께 비공정이 필드 가장자리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거요?”
“차원 도시 베타.”
6성 승급소가 위치한 곳이다. “레벨도 오를 만큼 올랐는데,승급은
해야 하지 않겠냐?”
“뒤에 귀찮은 것들이 따라붙고 있소만.” 나는 뒤를 홀껏 보았다.
온통 까맣게 도색된 비공정 한 대가
루세트 호를 추격하고 있었다. 비공함의 전면에 해골 문양이 덧칠되어 있었다. 드디어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올리셨군.
“겸사겸사 처리하는 거지.”
거리 차이는 100m가량.
놈들이 선체로 진입하기에는 가깝지
않은 거리다.
쉽게 따라오긴 힘들걸. 루세트 호는
기동성을 중요시한 소형함이다. 속도 만큼은 어떤 비공정에도 뒤처지지 않 는다.
<……이 새끼가.〉
노이즈가 잔뜩 섞인 목소리.
그러나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죽고 싶어? 좋은 말로 할 때 가져와.〉 우우응!
루세트 호가 로켓 연료를 더 세차게 뿜어냈다.
〈네 따까리들,돌아가서 다 죽인다?〉 "마음대로 해. 개죽음은 아니겠지.
시간 끌어주고 좋네."
〈장난으로 하는 소리 같아?〉
"네가 그럴 수 있을까?"
나는 피식 웃었다.
"역천의 서는 내 손 안에 있다. 네가
돌아가면 난 그것대로 좋아. 다른 곳 으로 튀면 되니까. 너희들은 어떠냐? 인질이 없어지고 시간이 지체되면…… 걔네들이 올 텐데?"
누굴 말하는지 알겠지.
몰랐다면 반지를 빼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
치직.
말없이 통신이 끊겼다.
그리고 놈들의 비공함이 매서운 기 세로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배짱 싸움은 이겼다.'
내가 니플헤임으로 가버리기라도
하면 역천의 서는 영영 되찾지 못한다. 루세트 호는 멀리 떨어진 니플헤임
까지 갈 만한 지속력이 부족하지만, 그걸 놈들이 알 수는 없다.
"……역천의 서."
제나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소문 정도는 니플헤임에서 교육받을
때 들어봤을 것이다.
"7성 승급의 키 아이템,맞죠?" "그래."
"그걸 오빠가 가지고 있는 거구요." "우연히 그렇게 됐네."
"절대 뺏기면 안 되겠네요!"
제나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역천의 서?"
벨키스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녀석은 처음 듣는 것 같다.
"뭐,좋소. 오랜만에 손 좀 풀겠군." "보인다고 해서 먼저 싸움 걸진 마." 차원도시 베타는 회사 전용 구역. 수많은 마스터와 영웅,NPC가 한
곳에 모여 북적거리는 곳이므로,한 가지 공통적인 룰이 적용된다.
'PVP 금지.'
그런 규칙을 놈들이 준수할 리 없다. 어떻게든 틈을 노려오겠지. 만약 아
니더라도,시간을 끌면 끌수록 좋다. 늦어도 일주일 내로는 니플헤임으
로부터 반응이 있을 테니까.
급한 건 저쪽이지,내가 아니다. ,물론……:
나는 니플헤임의 손을 빌릴 생각이 없었다.
이쪽에서 잡아서 끝낼 생각이었다. 나는 놈들의 기척을 잡거나,뒤를
쫓을 수는 없지만 알아서 오게 할 수는 있다.
놈들이 차원도시 내에서 기습해오면
우리의 반격은 정당방위일 뿐.
또한,무수한 추격자가 놈들에게 따
라붙을 것이다.
아군이 유리한 필드에서 싸우는 것.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II II
흑색의 비공함 옆면.
대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루세트 호를 격추시키 려는
모양인데…….
"그건 안 되죠."
제나가 시위에 철화살을 걸었다. 쾅! 대포가 불을 뿜은 것은 그다음
이었다.
동시에 제나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 이더니 시위가 진동했다.
타타타타타탕!
기관총을 방불케 하는 연속 사격.
루세트 호로 날아오던 대포알들이 화살촉과 맞부딪혔다.
퍼퍼펑!
하늘에 새빨간 폭염이 피어올랐다.
그 불꽃 사이에서 제나가 장궁을 뽑아 들었다.
투쿵! 철시가 한 발 날아갈 때마다 놈들의 대포 하나가 연기와 함께 침 묵했다.
'방어력이 형편없군.'
궁수나 마법사가 있었다면 방어나 반격을 했겠지만,저기에는 유감스럽 게도 암살자밖에 없는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대포가 작동 불능이 되었다.
이걸로 놈들의 원거리 화력은 끝.
"휴."
일을 마친 제나가 이마를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