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266
268. 황금의 유산⑵
늦은 오후.
나는 이셀의 방을 빠져나와 저택으로 돌아왔다.
엘 시드의 각인이라.
이것이 알파 제로가 말한 황금의 유
산이겠지.
1서버 마스터키 따위의 허무맹랑한
것보다는 훨씬 도움 되는 물건이었다. 랭킹 1위가 사용하던 각인. 그 강력
함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지금 쓸 수는 없다.
책의 해석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다만 언젠가는 분명,내 손 안에 들
어오게 될 것이다.
‘7성이 되어야 한다 이건가.’
이미 조건은 갖춰져 있다.
6성에서 성장을 끝내기엔 부족하다는
것을 나도 층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평범한 계정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난이도와 7성급 몬스터인 황자의 존재, 시리스의 개입까지. 주변 환경이 격변
하고 있다.
‘힘이 없는 자에게는……
선택할 권리가 없다.
부표처럼 휩쓸리게 될 뿐이었다. 얼마 전, 내가 시리스에게 당했듯이.
이것은 단지 유예일뿐이다.
남에게 끌려다니는 일은 이젠 지긋 지긋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도망치듯이 끝내고 싶진 않다.
욕심이라고 해도 좋다. 이곳에서 나는 수많은 일들을 겪었다. 머리부터 발끝 까지 모든 게 바뀌었을 정도로. 아마 지구로 돌아가도 예전과 같은 생활을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후회가 남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다.
남는 것도,돌아가는 것도.
그걸 위한 힘이 필요하다.
‘최소한 응징은 해야 할 거 아니냐.’ 텔한테 엿을 얼마나 먹었는데.
받은 은혜는 꼭 되돌려줘야지.
[마스터 암케나,픽 미 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암케나의 접속 메시지였다.
초창기에는 접속 시간이 늦은 저녁 이었지만,이제는 오후로 고정됐다.
단순히 플레이 시간만 계산해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폐인의 영역으로 접어든 것이다.
[서브 마스터,_한(★★★★★)’으로 부터 업무 보고가 들어와 있습니다. 확인하시 겠습니 까?] [Yes(선택) / No]암케나의 조작창에 보고서 화면이 떠올랐다.
매일 저녁마다 나와 네리사가 머리를 맞대며 작성하는 것이다.
식량과 목재,광석을 비롯한 자원 수치와 정책 제안,운영 방향,영웅들의 성장 추이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암케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화면을 드래그하며 보고서를 읽어나갔다.
이어서 게임 개시.
시뮬레이션 게임을 플레이 하는 방 식과 비슷하다.
시설을 업그레이드하고,영웅들을 각 층수에 배치하고,알맞은 역할을 부여한다.
그동안 부지런히 공부한 덕분인지, 암케나는 이제 완전히 숙달되어 있었다. 되는대로 운영하던 예전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전술 부분에선 아직도 무신경하긴 하지.’
임무 공략은 방임주의에 가깝다.
나를 포함한 핵심 전투직들에게 일 임하는 형태.
전황에 따라 전술 도구를 쓰기도 하 지만,기본적으로는 영웅의 의향을 존
중해준다.
그 이유는 아마,나를 믿기 때문일 것이다.
[‘군마 조각상’을 ‘한 (★★★★★)’에게 선물합니다!] [‘군마 조각상’을 ‘한(★★★★★)’에게 선물합니다!] [‘군마 조각상’을…….]뿅!
유치한 효과음과 함께,진열장에 조 각상이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무신경한 눈으로 쌓여가는 콜
렉션을 바라보았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처럼 만들어서 주면 좋아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한(★★★★★)’이 ‘군마 조각상’을 받고 기뻐합니다.] [호감도 상승!]이 녀석은 알고나 있을까.
자신이 플레이하는 게임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게임 속의 영웅들이 사실 살아있는
존재고, 이 세계에 얼마나 큰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뭐,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일기를 읽어보면 암케나가 의심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단순한 의심 정 도로만 그치겠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일 테니까.
[추억의 앨범]
일일 업무를 마친 암케나는 화면 우 측의 책 아이콘을 눌렀다.
추억의 앨범. 신규 패치로 업데이트된 컨텐츠였다. 꾸미기를 좋아하는 라이트 유저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게임 내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실펴보실 수 있습니다. 영웅들과 쌓아온 값진 추억을 되살려보세요!]
요즘 들어 암케나는 일일 업무를 마친 뒤,이런 앨범을 꾸미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앨범의 주인공은 대부분 나였다.
[앨범 No.032 – 낮잠 자는 한]
[앨범 No.033 – 군마 조각상과의 한때]
[앨범 No.034 – 일도양단]
앨범의 사진은 게임 그래픽으로 처 리되어 있다.
조금 심하지 않냐. 보는 나도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는데.
“…….”
문득,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암케나는 어떤 놈일까. 지구로 돌아 가면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내 정체를 밝혀봤자 믿지도 않을 테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얼굴 정도는 보고 싶으니.
〈뭘 그리도 궁상을 떠는 것이냐?〉
나는 옆을 보았다.
살찐 비둘기가 뒤뚱뒤뚱 걸어들어 오고 있었다.
〈그럴 시간에 연습이라도 한 번 더 하거라. 쯧쯔,황자 놈과의 대결도 머 지않았건만. 무적의 힘을 얻었다고 자 만해선 한낱…….〉
“구웃!”
텁.
나는 비둘기의 목살을 붙잡고 끌어 올렸다.
〈무슨 짓이냐! 당장 내려놓거라!〉
“진짜로 무적 맞아? 사기당한 기분 인데.”
〈네 수행이 부족한 탓이니라! 흑룡의
혈통은 타오니어 어디에서도 적수를 찾을 수 없는 절대의…….〉
“그건 타오니어 안이고. 밖으로 나 가면 모르는 거잖아.”
이 녀석은 일부러 부르지 않았다. 만약,이 녀석이 시리스의 힘을 보게
된다면,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한데. “뭐,슬슬 움직이려 했었지.”
나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향하는 곳은 5층 내의 특수 훈련장. 암케나가 1파티를 위해 마련해준
그곳은 어떤 난리를 피워도 망가지지 않는다.
“구아앗!”
나는 한 손으로 비둘기를 든 채 훈 련장으로 향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비원에게 눈 인사를 한 뒤,강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캉! 카카캉!
대형 강당을 방불케 하는 훈련소에 서는 이미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제나와 벨키스트.’
두 명은 내가 들어온 걸 모르는지, 계속 훈련에 열중했다.
바닥과 천장,벽을 넘나들며 불꽃을 튀겼고, 뭉치는가 싶더니 다시 흩어졌다.
능력을 쓰지 않은 순수 전투를 연습 하는 모양이었다.
〈이곳엔 왜 왔지? 네 훈련장은 여 기가 아니잖느냐!〉
그랬었지.
마룡혼을 얻은 이후, 나는 할기온과 심상세계 내에서 따로 훈련을 하곤 했었다.
효율 차이가 날뿐더러,어울릴 만한 수준이 아니네 뭐네,비둘기가 하도 난리를 피워대서 말이지. 애초에 현실 공간도 아니었고.
‘다른 멤버들은…… 안 보이는군.’
카티오는 여러 업무로 바쁠 테고,
키샤샤는 새로 소환된 수인 영웅들과 어울리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곳에 있는 두 명은 나와 시리스의 충돌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목격자들 이었다.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것도 당 연했다.
“어라? 잠깐만. 멈춰봐요,멈춰봐요!”
벨키스트의 장검이 제나의 목 바로 앞에서 정지했다.
“항복인가?”
“항복이 아니라! 오빠가 왔다구요.”
“웃기는 소라 그런 거짓말도 이젠……
“내가 그렇게 오래 너희랑 떨어져 지냈었냐?”
나는 천천히 대련장으로 걸어 갔다. 벨키스트가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로군.”
“그럼 가짜겠어요?”
제나가 이마 위의 땀을 닦고는 활을
접었다.
“오빠,진짜로 와줄 줄은 몰랐는데.” “무슨 심경의 변화요. 우리와 어울
리지 않는 줄 알았더니.”
“딱히 그런 건 아냐.”
나는 집고 있던 비둘기를 내던졌다. 〈이 자식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짓을……!>
시리스가 이 장면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러났다고는 하지만,숨어서 감시 하고 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으니까.
그래도 상관없다.
“며칠 전,나한테 칼을 들이댔던 여 자는 기억하냐?”
나는 입을 열었다.
제나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고,
벨키스트는 불쾌한 듯이 인상을 찡그 렸다.
“건방진 기사 말이군.”
“그 여자는 시리스 아젠트하임이라고
한다. 내가 마스터였을 때,제일가는 부하였어. 내가 보장하는데,지랄 맞게
강해. 지금의 내가 수십 명 있어도 찢 겨나갈 정도로. 거기에,비스무리한 애들이 네 명 더 있어. 합쳐서 다섯 명. 하나같이 괴물들이지.”
“그런 설명을 우리한테 해주는 이유는?” 벨키스트가 입을 열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5 대 1은
불공평하지 않냐?”
구태여 싸울 필요는 없다.
그들의 목적은 나를 지구로 돌려보
내는 것. 예전의 내 목표와 일치한다. 그렇다면,임무를 클리어할 정도의
힘만 키우면 된다. 그 정도에서 억지
로 더 강해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다만…….
‘적어도.’
끝은 스스로 내고 싶다.
억지로 끌려와서,다시 억지로 돌아
가고 싶진 않다.
지금까지 내가 무엇 때문에 개고생을 했는데.
“엣헴,역시 그렇죠. 5 대 3은 되어야 할 만하지.”
제나가 벨키스트의 옆구리를 쿡 찔 렸다.
“선택은 너희가 해. 강요는 안 한다.” 벨키스트가 눈을 감은 채 팔짱을 꼈다.
그러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얼마나 강하오?”
“너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렇다면.”
“강해져야 되겠지.”
“얼마나 더 강해질 수 있지?” “가능성은 충분해.”
벨키스트가 눈을 떴다.
“그럼 거절할 이유가 없군. 받은 것도
있으니.”
“미리 말하지만,이건 임무와 관계 없는 싸움이다. 내 개인적인 일이야.”
“상관없소. 계획이 정해지면 알려주 시오. 몸이나 풀고 있을 테니.”
벨키스트는 검을 칼집에 집어넣고는, 거침없이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그냥 넘어가나 했는데,잘됐네요. 그래야 우리 오빠죠.”
“쉽진 않을 거야.”
“쉬우면 재미없잖아요.”
제나가 내게 한쪽 눈을 감아 보였다. 비둘기는 나와 제나를 멍한 눈으로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헛소리들을 지껄이는 것이냐?
황자와의 싸움을 앞둔 이때에…….〉 “야. 일주일 준다. 저 두 명도 심상
세계로 들여보내.”
비둘기가 자리에서 펄펄 뛰기 시작
했다.
어지간히 기쁜 모양이었다.
“재밌는 대화를 나누는 거 같네요.” “네 각인도 뻘 준비해놔. 새 걸로 갈
아줄 테니까.”
“갈아준다고요?”
제나는 눈을 깜빡였다.
제나가 가진 각인,바람 화살의 가
호는 범용성이 뛰어나고 다루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성장에 한계가 있다. 언젠가는 바꿔야 할 각인이었다.
‘때마침 알맞은 걸 찾았지.’
역천의 서에 있는 것은 엘 시드의
각인뿐만이 아니다.
도라도의 쌍두마차로 불렸던 렐테
아와 키르자크의 각인 또한 기록되어 있었다. 그 밖에도 무수히 많은 각인 들이 새겨져 있었다. 심지어 엘 시드가 흡수했었던 랭킹 2위,단자흠의 각인 까지.
단순한 책쪼가리인 줄 알았더니,말도 안 되는 보물을 얻어버렸다.
이 정도라면 충분해.
조건은 갖춰졌다.
‘어디 한번 해보자.’
네가 이기는지,내가 이기는지.
나는 쉽게 포기하지 않아. 예전부터 성깔 하나는 더러웠거든.
억누르면 억누를수록,청개구리처럼 튀어나가지.
〈세 명이나 동시에 들어가면,자아가 뒤섞여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알고 하는 말이냐!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 에…….〉
일단,이 녀석부터 회유하는 게 먼 저인 것 같다.
설득하는 데 아주 괜찮은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얘는 물을 좋아하지.’
물웅덩이에 머리부터 차례로 집어
넣으면,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늦어도 사홀 내에는 대답이 들어올
것이다.
“구,구구구……!”
나는 방방 뛰는 할기온을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