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283
285. 집 (2)
이로써,난관이었던 80층도 무사히 넘어갔다.
암케나와 타오니어는 최종 클리어 까지 단 10개의 임무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원래 이쯤에서 태클이 들어와야 하 지만……;
니플헤임 때도 그랬다.
내가 80층을 깼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랭커들이 압박을 해왔으니까. 그러나 한없이 조용했다. 암케나에
게는 80층 클리어를 축하한다는 쪽지 한 장조차 오지 않았다. 이유는 둘 중 하나겠지. 해가 될 만한 놈들을 시리 스가 전부 처리했거나,심각한 서버 상태 때문에 대다수의 랭커들이 접었 거나.
이제는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내가 플레이할 때만 해도 잔렉하나
없이 클린했던 픽 미 업의 서버 상태는 막장을 달리고 있었다.
최소 하루에 한 번 이상 접속이 끊길 정도였다. 암케나는 아무렇지 않게 재 접속했다지만 다른 유저들은 어떨까.
공식 카페에 들어가면 엉망이 된 게 시판을 살펴볼 수 있었다.
서버가 끊길 뿐이라면 재접속될 때 까지만 참으면 되지만,문제는 동반되는 각종 심각한 버그들에 있었다. 보유 중이었던 영웅이 갑자기 사라지고,아 이템과 스킬이 생겨났다 소멸했다. 심 지어 10층 임무에서 파편 시리즈가 나와 영웅들을 떼몰살시켰다는 제보 까지 나왔다. 스크린샷까지 찍혀 있어 뫼비우스는 빼도 박도 할 수 없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으려나.’
유르넷의 설명에 의하면,서버가 무 너지면 한순간에 모든 대기실이 혼란 에 휩싸인다고 했다.
서버 역할을 하고 있는 여신이 경계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수억,수조 마 리의 파편들을 억제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억제 능력이 완벽하지 않아,수 용량을 초과하는 파편들은 조금씩 새 어나가는 것 같았다. 그 파편들을 대 량으로 처리하는 작업이 픽 미 업의 대형 이벤트, 월드 레이드였던 모양이고.
‘……’
진실을 알아도,바뀌는 것은 없다.
어느 정도의 정비를 마친 암케나는 다음 층을 공략하기 위한 준비를 이 어갔다.
뭐,니플헤임이 몰래 외부 방어를 해주고 있으니,임무에만 집중할 수 있어 편하기는 할 것이다.
81층부터는 그리 많은 병력이 필요 하지 않다.
암케나는 정보를 얻은 다음,정예 1 파티를 임무에 출전시켰다.
81층.
[플로어81
[임무 유형 – 탐색]
[목표 – 지정된 위치를 탐사하라!]나는 눈을 떴다.
먼저 들어오는 것은 잿빛 하늘이었다. 그 아래,폐허가 된 도시의 풍경이
펼쳐졌다.
제국의 수도,바르디아.
80층 임무에서 곳곳이 박살 났었지. 여전히 임무는 이곳을 주축으로 진
행되는 것 같았다.
“아직도 엉망이네요.”
제나가 머리를 내저었다.
질린 듯한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떠
올랐다.
“80층 깨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더니 그대로야. 타오니어 되살려준다는 거, 거짓말 아니에요? 사람도 엄청 많이 죽었잖아요.”
“일단 가자.”
나는 옷깃을 여민 뒤 부서진 대로를 거닐었다.
용병으로 보이는 듯한 NPC 몇몇이 건물의 잔해를 수습하고 있었다.
저 멀리,피난민으로 추정되는 사람 들이 거리를 스쳐 갔다.
“오빠..”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
나는 옆을 보았다.
“나,배가 고파. 머,먹을 거……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꼬마였다.
먼지와 재로 더럽혀진 넝마를 입은 소녀는 내 옷깃을 붙잡은 채 꾹꾹 잡 아당겼다.
“죽기 싫으면……
“가만히.”
나는 벨키스트를 밀친 뒤 품을 뒤적 거렸다.
작은 육포 조각이 딸려 나왔다. 때가 탄 손아귀에 쥐여주고 나서,조용히 속삭였다.
“최대한 빨리 도망쳐라.”
소녀는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골목으로 사라졌다.
곧이어,십수 명의 거지들이 소녀가
향한 곳을 따라갔다.
벨키스트가 코웃음을 쳤다. “무의미한 짓이오.”
“굶어 죽는 것보단 낫겠지.”
나는 다시 한번 황도를 둘러보았다. 망가진 도시,곳곳에 거지와 피난민
들이 넘쳐나고 있다.
때때로 용병들의 거친 외침과 비명,
흐느끼는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네요.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는데.”
제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용병들과 거지,피난민들을 지나쳐 도시의 중앙으로 향했다.
황성의 폐허 위에 황녀군의 지휘 천 막이 위치하고 있었다. 캠프 입구,우 리 얼굴을 알고 있던 경비병이 길을 비켜주었다.
“남은 식량은?”
“매일 세 번씩 보급한다면,한 달도 못 버팁니다.”
“하루에 한 번으로 줄여. 보급량도 반절로 줄이고.”
“그럼 시민들의 반발이……
“일주일 내에 식량을 구할 테니,조 금만 기다리라고 해라.”
“……예.”
요슈의 명을 받은 용병이 우리를 종 종걸음으로 스쳐 지나갔다.
지휘 천막 앞에 짙은 수염을 기른 사내,요슈가 서 있었다. 가죽 갑옷을 입은 그는 인상을 한껏 찌푸린 채 뒤 를 돌아보았다. 굵은 목소리가 그 입 에서 새어 나왔다.
“형님.”
“그…… 많이 아저씨 같은데……
제나가 어색하게 웃었다.
요슈의 북실한 수염은 목까지 내려와 있다.
요슈는 제나를 보며 너털웃음을 터
뜨렸다.
“이거 창피하군. 하지만,수염을 깎 을 여유도 없었소. 어쨌든, 들어오시 지요.”
요슈가 지휘 천막의 입구를 젖혔다.
천막 내부는 넓이에 비해 극히 간소 했다.
대형 테이블 위에 놓인 지도 한 장과 작은 의자가 전부였다.
“왔구나.”
상석에 앉아 있던 여성이 일어섰다.
황녀군의 수장,프리아. 그녀는 신 분에 어울리지 않는 소탈한 가죽옷을 입고 있었다.
“일단 앉거라.”
나는 테이블 근처의 의자에 아무렇 게나 앉았다.
내 옆의 의자에는 제나와 벨키스트가 나란히 자리했다.
“밖이 소란스럽던데.”
“황도에 피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프리아는 타오니어의 전도를 보며
짙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제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최초의 침입 때,얼마나 죽었는지
알고 있느냐?”
“어,우리가 막지 않았나요? 황도에는
시민도 없었구요.”
“놈들의 일부는 황도를 빠져나갔다.
그래서 내가 요슈를 보낸 것이야.”
“……송구합니다. 제가 능력이 부족
한 탓으로.”
“아니,그대가 사과할 필요는 없다.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것도 당연해.”
프리아가 쓰게 웃었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제국민의 3할이 죽었다.”
“……..”
“고작 백여 마리를 놓친 것만으로, 수천만 백성이 죽은 것이다.”
하긴.
파편들에게는 일반적인 병장기와 마법은 잘 듣지 않는다.
또한,일반 몬스터와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갖고 있으니,처음 마주한다면 상대하기 힘들 것이다.
불타는 도시와 몰살당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절로 그려졌다.
“그래서,어떻게 할 생각이지?”
프리아는 눈을 감았다.
“오라버니께서 남기신 차원검이 있 다면,놈들과 대적할 수 있다.”
“그거야 그렇지. 구멍을 닫을 수 있 으니까.”
“전국의 피난민을 한곳에 모으는 수
밖에 없느니라. 내 손이 닿지 않는다 면 구할 수도 없지 않느냐. 그리고 용 사들과 함께 황도를 지켜내야겠지.”
쓴웃음을 삼켰다.
일방적인 수비전. 구멍 하나를 닫는 다고 끝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점점 더 많은 숫 자의 구멍이 생겨날 것이다.
“한,그대는 저것들의 대처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더구나. 우리 용사들 에게도 싸우는 방식을 알려다오.”
“몇 명인데.”
“만 명 정도 됩니다.”
“일만 명.”
고작 만 명으로 파편들의 침입을 물 리치겠다는 건가.
더욱이 그들은 영웅도 아닌 일반인. 스킬이나 각인도 쓸 수 없고,신체 능 력도 월등하게 낮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유가 된다면.”
“고맙구나.”
프리아는 깍지를 낀 손을 테이블에 을려놓았다.
그리고 머뭇거리며 나와 벨키스트, 제나를 바라보았다.
“또 할 말이 있냐?”
“다음 일은…… 그대들을 위험에 빠
트릴지도 모른다.”
“말이나 해보시오. 답답하게 굴지 말고.”
요슈가 적의 어린 눈으로 벨키스트를 노려봤지만,그는 흥 하고 웃어넘길 뿐이었다.
프리아는 잠깐 망설이다, 이내 투명한 돌 하나를 올려놓았다.
“이건 뭐요,”
프리아가 손가락으로 돌을 두드렸다.
화악! 푸른 빛이 돌에서 뿜어져 나 오더니 테이블 위를 물들였다.
이윽고 서로 다른 두 개의 영상이 떠올랐다.
[띠 링!] [선택지가 제시되었습니다!] [두 개의 목표 중 하나를 우선적으로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선택형 임무인가.
나는 희미하게 떠오르는 영상에 집 중했다.
〈크아아아악!〉
첫 번째 영상.
작은 언덕 위,풍차가 세워진 마을. 본래 평화로웠을 그 장소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죽여버리겠다! 죽! 여! 버! 리! 겠! 다아! 프라이오스!〉
뼈와 살점을 드러내고 있는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난동을 피우는 중이었 다.
놈이 날갯짓을 할 때마다 검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감히 나를…… 버러지 같은 인간 따위가…… 감히,나,만마의 지배자 인……!>
“소리 좀 없애줘.”
띡.
소리가 사라졌다.
“슈텐베르크.”
안 뒤졌나.
뭐,초월종이라니까.
그럼 다음 영상은 볼 것도 없다. 〈한.〉
할기온의 목소리였다.
〈놈들은 오염된 것 같다. 이성을 찾
아볼 수 없구나.〉
딱 봐도 제정신이 아니다.
슈텐베르크는 커다란 마력 폭풍을
무차별적으로 뿌려대고 있었다. 주민들은 옛적에 시체 하나 못 남기고
사라졌고, 마을은 지형 자체가 바뀌었다. 〈흐하핫! 그래도 기회는 기회다. 제
발로 나타나 주다니,찾아갈 필요를 덜었어.〉
“찾아갈 필요?”
〈한,네 잠재력에 대해 내가 말한 적 있느냐? 너는 황제와도 비견될 우 수한 그릇이다. 잘 커 주었어. 그렇다면 다음 초월종을 먹어치워야 하지 않겠 는가? 네가 청익왕을 흡수한다면,너는 무한의 마력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적미왕을 흡수한다면,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눈을 얻을 수 있겠지. 어느 쪽이라도 결코 손해는 아니야.〉
“……”
〈혹은,저 두 놈을 처리함으로써
7성 승급에 필요한 힘을 얻을 수도 있지.〉
과연.
지구로 돌아가려면 좋든 싫든 7성이 되어야 한다.
저놈들을 그 제물로 삼아야 한다는 건가.
‘거부할 권리도 없는 것 같고._ 어차피 마스터가 결정하는 임무였다. 이번 토벌전이 90층까지 가는 여정
의 일부라면,받아들이는 것 외에 선 택지는 없다.
나는 손가락을 돌렸다.
[마스터,’한 (★★★★★★)’이 ‘슈텐 베르크 토벌전’을 제안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es(선택) / No] [띠 링!] [‘슈텐베르크 토벌전’을 선택하셨습 니다.] [다음 임무의 필드가 자동으로 변경 됩니다.]이걸로 절차는 끝났다.
나는 입을 열었다.
“얘네들이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
닌다 이거지.”
“그렇다. 두명이각각 황도로 가는 주요 지점을 틀어막고 있어. 저들 때 문에,피난민들은 오도 가도 못한 채 고립된 실정이다. 우리 군도 정예를 모아……
“안 그래도 돼. 금방 처리하고 오지.”
테이블 위의 영상이 사라졌다.
요슈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매번 죄송합니다. 저희도 사정이 좋지 않아서……,
“설마 모르겠냐. 뻔히 보이는데. 제나, 벨키스트. 먼저 나가 있어라. 마무리 하고 따라갈 테니.”
제나와 벨키스트가 밖으로 나갔다.
요슈는 나와 프리아를 번갈아 바라 보다,고개를 숙이고는 퇴장했다.
“……”
침묵.
프리아에게서 바뀐 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상 자기 손으로 오빠를 죽였고, 승리 따위는 없다는 미래를 알게 되 었는데도.
“나를 걱정 해주는 것이냐.”
프리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라면 괜찮아. 이미 결심했느니라.”
“…….”
“이제 내게는 뒤가 없어.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 끝이 무엇이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없이 프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그대가 타오니어와 다른 장소
에서 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지구라는 곳이지.”
“종신 계약은 맺을 수 없겠구나. 내
무슨 염치로 타향 사람을 붙잡아두겠 느냐.”
프리아가 싱긋 웃었다.
“예전,우리가 한 약속은 잊어도 좋다.
그대는 임무가 허락하는 일을 하고,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거기서 그
대만의 행복을 찾거라.”
“…….”
“타오니어는 그대의 집이 될 수 없 었어. 나의 착각이었다.”
프리아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등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미안…… 하다……”
아주 작게,떨리는 목소리. 속삭이는 듯이 중얼거린 프리아가
나를 지나쳐갔다.
‘집인가.’
나는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