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299
301. 라그나로크 (6)
덜컹.
별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밤바다. 조명을 뿌리며 나아가던 암케나
호가 멈춰섰다.
[1000차원 一 ????]덜컹. 덜컹덜컹.
암케나 호의 후미에서 연료가 분 사됐으나,비공정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필드의 경계선에 다다른 것이다.
’아니,정확히는.’
서버와 서버의 경계선.
엘 시드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장소가 이 필드 너머에 있었다.
나는 암케나 호를 정지시킨 뒤 뱃 머리로 나아갔다.
[이상하다……?]프레이는 내 어깨에서 뛰어내리더니, 앞으로 날아가 투명한 벽을 더듬거
렸다.
[분명 여기에 문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다 이거냐?” [응. GM들이 자주 쓰는 통로라절대 닫지 않는다고 했었어. 여기를 닫아버리면,게임 전체가 안 돌아가 는걸.]
나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아까 전의 레이드는 마스터들에게
직접 생중계되었다.
자신이 애지중지 키워온 영웅과
함대가 보스의 손짓 한 번에 소멸했다. 어떤 고인물이라도 참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지금쯤 픽 미 업의 모든 커
뮤니티가 마비되있겠지. 간간이 운 영을 이어가던 픽 미 업은 방금 사 건으로 회생불능의 데미지를 입었을 것이다.
[게임 운영을 …했다는 거야?] “신작 개발을 한댔으니까.”
[그럼,1서버로 가는 길은…….] 나는 픽 웃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 속셈인가.’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좌르르륵! 검붉은 비늘이 오른팔
전체에 돋아났다. 팔뚝에 뻗은 수백 개의 용비늘이 꿈틀거리며 뭉치더니, 한 자루 검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용린검 (龍齡食 ).
비프로스트 급의 효율성은 없겠지만, 임시 무기로는 쓸 만하겠지.
“비켜봐.”
프레이가 날개를 펄럭거리면서 물 러났다.
나는 검자루를 힘껏 쥔 다음,빈 공간에 찔러넣었다.
검끝이 투명한 벽 속으로 파고 들 어가 이내 사라졌다.
‘도망 못 친다고 했었지.’
파지지지직!
격렬한 번개가 검날을 타고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단단히도 틀어막은 것 같다.
1서버와 이어진 통로는 수십 겹의
방화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카창!
검날을 옆으로 돌렸다.
유리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벽에
균열이 새겨졌다.
[불법적인 침입이 감지되었습니다!] [Unknown Error!] [Unknown Error!] [Unknown..]쾅!
나는 검날을 벽의 끝까지 박아넣 었다.
[Warning!] [Error – 0032 : 치명적인 오류입 니다. 즉각적인 대처를……] [Error – 0032 : 치명적인 오류입 니다. 즉각적인 대처를…….]그리고,용린검을 단숨에 뽑았다. 균열이 퍼져나가더니,부서진 유
리창 모양의 차원문이 생겨났다.
1서버로 향하는 간이 통로였다.
[……으으.]프레이가 질린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뭐,나도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자각하고 있어.
쓰면 쓸수록 느낄 수 있었다. 우 주의 데이터를 조작하고 시스템을 수정하는 이 능력은,평범한 존재에게 허용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게 텔의 의도일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내가 인간성을 잃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라면,착각은 집어치우 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 정신이 어떻게 망가지든 단 한 가지는 절대 잊지 않을 테니까.
‘너는 내가 죽인다.’
나는 용린검을 되돌렸다.
이 차원문에 들어서면 1서버였다. 느긋하게 있을 여유는 없으니 곧장
움직이기로 했다.
“먼저 말해두마. 안에 들어가면……
[……잠깐]나는 옆을 보았다.
프레이가 멍한 눈으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하늘은 어두운 그대로.
“왜? 시간 없어.”
[잠깐,이주 잠깐이면 돼.]프레이가 눈꺼풀을 두어 번 깜빡 였다.
그 순간.
[Warning!] [Unknown Error!] [Error – 3912 : 치명적인 에러입니다. 즉각적인 대처를…….]
번쩍.
하늘 전체에서 하얀빛이 퍼져나갔다. [마스터 암케나,픽 미 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흩어지는 별빛 사이로,홀로그램
메시지가 떠올랐다.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저 녀석은…… 정지당했을 텐데.’
이제 와서 뫼비우스가 제재를 풀 어줬을 리 없다.
원인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방금, 내가 서버의 규칙을 망가뜨렸 으니. 서버 전체에 오류가 퍼져나가 면서 암케나의 정지도 덩달아 풀린 것 같았다.
“……거참.”
얼마나 게임 앱을 들락거렸으면, 정지가 풀리자마자 바로 들어오냐.
그토록 데였으면 포기할 만도 한데. 하늘 위,빛은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를 보고 있는 건가.’
암케나의 조작창에는 대기실이 떠
올라 있지 않다.
저 녀석은 게임에 들어온 즉시, 내가 있는 필드를 호출했다.
[로키.]“알아.”
마스터의 역할은 이미 끝났다.
게임 자체가 망가진 지금,암케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버가 복구되면 암케나는 재차 튕겨 나가고,다시는 접속하지 못할 것이다.
‘쓸데없는 짓이지.’
나는 망토를 어깨에 고정시킨 뒤, 차원문을 향해 나아갔다.
“……”
몇 발자국 걷다가 멈추었다.
암케나는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멍청한 놈.’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숨을 쉬듯 천천히 간섭력을 끌어
올려,시스템의 깊은 곳에 정신을 접속했다.
‘보인다.’
별 장식 없는 조그마한 방.
책상에 앉은 ‘그 녀석’은 스탠드의 흐릿한 불에 의지해 스마트폰을 쥐고 있었다.
힘을 얼마나 줬는지,스마트폰을 움켜쥔 녀석의 손이 하얗게 질려 있 었다.
이렇게 생겼었나.
내 예상과 크게 다르진 않다.
「야.」
나는 입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쿠당탕! 무언가 무너 지는 소리가 났다.
의자에 앉아 있던 암케나가 벌러덩 뒤로 자빠진 것이다.
나는 미소지었다.
게임 속의 캐릭터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
뒤이어 암케나는 귀신이라도 찾는 건지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여기다,여기. 네가 보고 있는 스마트폰. 여기서 말하는 거야.」
r…….」
「왜? 구라 같냐?」
「……!」
「믿든 말든 네 맘이고. 아무튼,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
흠흠.
나는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이따위 쓰레기 게임은 당장 접
어라. 뒤통수를 그렇게 맞았는데도 왜 안 접어? 프로 개돼지가 따로 없네. 너 자신이 한심하지도 않냐? 가족 보기 안 부끄럽든?」
「……」
「오늘 일은 꿈이라고 생각해. 네 게임 중독이도 심해서 하는 말이야.」
반성하도록.
네가 게임에 이입을 심하게 해서, 환각이 들릴 정도로 머리가 이상해진 것뿐이다.
「수고 많았고,앞으로는 네 인생 살아.」
r“….:그.」
「질문 안 받아. 그럼 이만.」
삑.
나는 암케나와의 연결을 끊었다.
더 이상 그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당황에 물든 얼굴도,떨리던 목소 리도 모두 사라졌다.
.그?,
무슨 말을 하려 한 것 같은데,관심 없어.
나는 프레이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안 가고 뭐해? 곧 닫힌다.” 갈라진 차원의 틈이 메꿔지고 있다. 머뭇거리다간 기껏 열었던 통로가
도로 닫히고 말겠지.
암케나의 접속도 끊길 것이다. ‘이걸로 끝.’
나는 반짝이는 빛의 무리를 먼눈 으로 보았다.
이제 저 녀석과의 인연도 끝이다. 암케나는 지구의 인간이었고,나는
이곳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이 게임의 서버는 곧 닫힌다. 서로
간의 교차점은 사라질 것이다. “가자.”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의 빛이 바쁘게 움직였지만,
다시 녀석과 연결할 생각은 없었다. 할 말은 다 했어. 인사는 한 번으로
족했다.
“뭐하냐. 가자니까. 늦으면 두고 간……
암케나의 조작창이 반짝였다.
[선물 상점!] [5,000골드로 ‘군마 조각상’을 구 매합니다.] [‘군마 조각상’을 ‘한(★★★★★★ ★)_에게 선물합니다!]툭.
내 오른손에 하얀 조각상 하나가 쥐어졌다.
저급한 목재로 만들어진,평범하 기 그지없는 군마 조각상.
“…..”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장난감 수집은 졸업한 지 한참인데. 그나마 있던 것도 옛적에 전부 버
렸다.
‘이거 원.’
나는 벨트 뒤의 가죽 파우치를 열어 군마 조각상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입구의 끈을 단단히 묶었다. ‘뭐,갈 때 가더라도……
조각상 한 개쯤은 괜찮겠지.
[한(★★★★★★)’이’군마 조각상’ 을 받고 기뻐합니다.] [호감도 상승!]파지직.
하늘에 떠을라 있던 홀로그램 메
시지가 갈라졌다.
[접속이 종료되었습니다!] [Error – 7909] [위 계정은 비허가 프로그램을 사 용하여 제재된 계정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고객 센터의 1 대 1 문의에서 안내받으십시오. 제재된 계정은…….]나는 파우치를 벨트에 고정한 뒤, 앞을 보았다.
찢어진 차원문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프레이.”
[응……?]“너한테 부탁할 일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다.”
프레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말을 이었다.
“내 데이터를 뒤져보면, 지구의 재산
목록이 있을 거야. 아마 꽤 많을걸. 원화로 30억이었나. 그리고 강남 어 딘가에 땅 몇 평이랑 고층 오피스 건물,외제차도 한 대 있을 거야. 모두 암게나 명의로 옮겨.”
[그거,지구에서 쓰려던 재산 아냐?]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는데 묵혀둬서 뭐하냐.”
나는 뺨을 긁었다.
지구로 돌아가려던 내게 유르넷이 선물해준 것들이었지만, 이제는 쓸 모가 없어졌다.
“만약 지구로 돌아가면,내놓으라고 하면 돼. 얼굴이랑 주소도 다 알아 냈거든. 그놈이 모른다고 버텨봤자 소용없어.”
[정말 괜찮아?]“당연.”
프레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별가루를 뿌리며 사라졌다.
명의 이전에 필요한 정보를 찾으 려 서버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한 듯 했다. 그 작업은 길어봤자 한 시간
이면 끝난다. 내가 텔과 싸움에 돌 입할 즈음에는 돌아을 것이다.
’암케나와는……:
훗날,일이 있다면 만나겠지.
나는 닫히기 직전인 차원문 너머로
뛰어들었다.
무수한 빛의 파도 속,몸이 산산이 분해되어 재구성되는 감각.
‘잊지 않아.’
나는 흐릿해지려 하는 기억을 몇 번이나 되새겼다.
설사 모든 추억을 잊더라도,해야 할 일 만큼은 놓치면 안 돼.
달그락. 나는 파우치에 담긴 군마를
매만졌다.
그 단단한 감촉은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게 해 주었다.
그리고.
[0000차원 – E.D.E.N]소리 없이 착지했다.
소매에 묻은 먼지를 털고서,근처를
살폈다.
깊은 밤이었다.
파직! 파지직!
망가진 네온사인 간판이 전류를 튀겼다.
나는 어느 낡아빠진 고층 건물의 옥상에 내려서 있었다.
‘1 서버.’
옥상 밖을 바라보았다.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는,거대한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
수백의 고층 빌딩이 세워져 있었고,
거미줄처럼 이어진 고가도로가 도시를 휘감고 있다. 도로 위에서는 유선형의 자동차가 미끄러지듯 길을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이곳은…… SF 영화에서나 볼 법한 미래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눈에 알 수 있군.’
저 멀리 도시의 가운데,구름 너 머로 뻗어 나간 초고층 빌딩이 눈에 띄었다.
어림잡아 높이를 재어봐도 1000m 이상. 저 건물이 뫼비우스의 본사일 것이다. 빌딩 주위에서는 무수한 숫 자의 부양정들이 라이트를 켠 채 순 찰하고 있었다.
’잘 봐둬야겠지.’
눈을 크게 떴다.
수십만이 기대어 살아가는 거대 도시.
내가 있는 건물 아래,거리를 왁 자지껄하게 떠들며 오가는 수많은
인파들이 보였다.
‘내가 부숴야 할 곳.’
나는 난간 밑으로 발을 내디뎠다.
중력의 영향에 의해 몸이 하강하기 시작했다.
떨어지기 직전,나는 몸을 한 바퀴 뒤집었다.
쾅! 끼이이익!
아스팔트로 덮힌 도로가 뒤집히며, 내 옆에서 주행하던 자동차들이 튕겨 나갔다.
“헉!”
“뭐,뭐야!”
나는 상체를 누르고 있던 아스팔트
파편을 밀어냈다.
부서진 도로의 틈새에서 나와,망토 위의 먼지를 두어 번 털었다.
“사람!?”
“누구……!”
몇 발짝 물러선 시민들이 나를 보 면서 웅성거렸다.
‘뫼비우스의 직원들인가.’
타의로,혹은 자의로 각 차원에서
끌려 들어와 업무를 보고 있겠지. 일억 개에 가까운 차원을 조정하는
이상,그에 알맞은 규모를 갖추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보면 영락없는 현대 시민이
기는 했다.
“이봐요,괜찮습니…… 으아악!” 파지직.
내게 손을 내밀던 정장 차림의 남 자가 저 멀리 날아갔다.
함부로 건들면 곤란해.
나는,천천히 대로를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