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319
321. 임무 유형,초월 (6)
아론은 철제 기둥에 매달려 있었다. 창백해진 안색. 기둥을 꽉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주,죽을 것 같다……;
캐피탈리즘 호는 종횡무진하며 도
시를 나아갔다.
승객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운전
이었다. 고강도의 훈련을 거치지 않 았다면 아론은 진즉 균형을 잃고 튕 겨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싸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캐피탈리즘 호에는 방어 시설이 없었지만,그 어떤 몬스터도 덤벼들지 못했다.
접근조차 불가능. 달라붙나 싶으면 거친 운전에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덕분에 캐피탈리즘 호는 2구역을 무사 돌파,최종 목표점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위이이잉!
어찌나 속도가 빠른지,바람 소리로 인해 아론의 귀가 먹먹해졌다.
“야호!”
뱃머리에 버티고 선 제나는 요령 있게 균형을 잡으면서 괴성을 질렀다.
“오빠 달려!”
“제정신이 아니군.”
리디기온과 니하쿠가 질렸다는 표
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편,선내 통제실.
“다들 괜찮나?”
시리스는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전투원들은 혼절한 채로 곳곳에 널려 있었다. 배의 방향이 꺾일 때 마다 그들의 몸도 이리저리 튕겨 나 갔다.
‘무슨 이런 운전이……
듣도 보도 못했다.
처음에는 비공정을 부시려는 줄 알았다.
다행히 시리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캐피탈리즘 호는 목표점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는 중이었다.
‘유르넷은……
무사하다.
그녀는 중력 마법으로 균형을 잡은 채,비프로스트에 마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Downloading…… 501329/547637] [예상 작업 시간 – 5분]전송 작업은 늦춰지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수많은 사고에도 불구하고,유르 넷은 집중력을 유지했다.
“거의 다 왔네. 준비해둬.”
통제실 구석,기둥에 묶여 있던
카티오가 입을 열었다.
말하는 와중에도 선실이 덜컹덜컹
혼들렸다.
“상황판 봤으니 알겠지? 3구역 중 심부부터는 비공정이 못 가.”
시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덴과 경계 사이를 가로막은 차원
장벽의 근처에는 고농도 방해 전파가 전개되어 있었다. 비공정을 비롯한 어떤 기계도 작동 불가 상태. 거기 서부터는 도보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데려다주는 건 입구가 끝이야. 그 때부턴 알아서 뚫으라고.”
“고맙구나.”
어디에서 왔든 중요하지 않다.
‘이 자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보다 먼 길을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지금쯤 악전고투를 벌이며 도시
구석을 방황하고 있겠지.
“이렇게까지 했는데 실패하지 마.” 카티오가 쑥스러운 듯이 뺨을 긁
었다.
쾅!
몇 분이나 달렸을까.
갑판 전체를 뒤흔드는 충격에 아
론은 잠시 정신을 잃었다.
비공정이 바닥에 처박힌 것이다. 카가가가각!
캐피탈리즘 호의 밑면이 콘크리트 바닥을 긁으면서 나아갔다.
붉은 불꽃과 함께 이곳저곳에 비 공정의 부서진 파편이 튀어 나갔다.
“젠장,멈출 때까지도 이따위로 나 오는 거냐!”
리디기온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 제나가 방싯방싯 웃었다.
“진정해요,진정. 이렇게 하면 더
나갈 수 있거든요.”
“폭발하기라도 하면……
“걱정 마시라구요. 엔진은 멈췄으
니까.”
피식. 피시시시시.
비공정의 후미에서 김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헬 오브 헬 엔진이 정지했다. 운행 불가 구역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암케나는 운전대를 놓았다. “끝내줌다……. 엄청 빨리 왔슴다…… 니하쿠가 감탄의 한숨을 홀렸다. 몬스터 무리를 피해 빙빙 돌아왔
지만,캐피탈리즘 호는 수천 미터의 거리를 10여 분 내로 뚫어버렸다.
“자자,놀이 끝!”
제나가 발끝으로 갑판을 두드렸다. 널브러져 있던 아론이 몸을 일으
켰다.
“이런 경험은…… 다신 하고 싶지 않아……
“왜요,재밌는데.”
화르르륵!
갑판에 일어난 불이 퍼져나갔다.
“일회용이라 곧 폭발할 거예요. 나 와야 해요.”
제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옆면 이 열리더니 계단이 생겨났다.
리디기온이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니하쿠와 제나,아론도 비공정을 빠져 나갔다.
그 뒤로 통제실의 인원과 쓰러져 있던 비전투직들도 비공정에서 나오
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시리스가 도로에 발을 내딛자,
펑! 퍼퍼퍼펑!
소규모 폭발과 함께 캐피탈리즘 호가 작동을 정지했다.
비공정의 화염이 근처 상가로 옮 겨붙고 있었다.
“큰 소란이 있었군요.”
유르넷이 눈을 가늘게 떴다.
도착지 근처에는 번화가가 펼쳐져
있었다.
하늘 모르고 뻗어 나간 빌딩의 숲 너머,거대한 장벽이 보였다.
임무의 최종 목표점이었다. “어쨌든,작업이 끝났습니다.”
유르넷은 비프로스트를 꺼내 들었다. 칠흑의 검면에는 복잡기괴한 수식
과 문양이 새겨져 있다. “받으시지요.”
“수고했다.”
시리스는 검을 받아든 뒤,허리춤에 걸쳤다.
이제는 뚫고 나갈 차례였다.
[미확인 오염체 Lv.???] X 2135 [변종 거대 오염체 Lv.211] X 158 [변종 특수 오염체…….]키이이이익!
사방을 가로막은 오염체의 벽. 건물 사이마다,빌딩 창문마다 적
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놈들은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접
근해왔다.
“수가 예상보다 많습니다.”
“우리가 소란을 벌이긴 했지. 여기
있는 놈들은 다 튀어나왔을걸.”
카티오가 걸어 나왔다.
소년은 주위를 한번 살피고는,니
플헤임의 영웅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끼리 할 수 있겠어?”
“이제부터는……
시리스가 리디기온을 가로막았다.
리디기온은 시리스를 흘껏 보더니 물러났다.
시리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암케나의 계정,타오니어.
마스터가 영웅으로서 지내왔던 대
기실이 었다.
‘단순히 거쳐 가는 관계라고 생각 했었다._
임무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는 그러한 관계.
니플헤임을 운영할 때,마스터 로
키는 항상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해 왔다. 타오니어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마스터와 저들 사이에 동 료애나 우정 같은 감정은 조금도 없 을 거라 생각했었다.
’이들은……
싸울 필요는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도 괜찮았을 것이다. “내가…… 착각을 하고 있었나.” 시리스가 입을 열었다.
뒤에 서 있던 13층의 멤버들이 그
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해하지 못했다.’
왜 마스터가 이곳에 남으려 했는
지를.
어차피 고통뿐인 삶.
지구에서 안락한 생활을 보내는
쪽이 훨씬 나았다.
“후우.”
시리스는 눈을 감았다.
‘마스터도 인간이었던 거야.’ 완전하지 않아.
때로는 실수하고,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치기도 한다. 마스터 로키와 영웅 한 이스라트는
별개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저들은 필사적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
“우리가 오해를 했었구나.”
시리스는 제나와 눈을 마주쳤다. “제나 시라이, 였나.”
“옙! 타오니어에서 오빠의 충실한
부하 1호였습니다!”
제나가 힘차게 경례했다.
시리스는 미소지었다.
“마스터는 어떤 사람이었지?” “글쎄요.”
제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머뭇거리던 제나가 입을
열었다.
“무뚝뚝하고,불친절하고,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
“…….”
“정말 너무하죠. 그렇게 오래 알고 지냈는데,인사도 없이 휙 가버리더 라구요. 제멋대로란 거죠. 서운해 죽 겠다니까요.”
제나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러더니 표정을 바꾸었다.
“그래도 뭐……,나쁜 사람은 아니 에요.”
“나쁜 놈 맞아. 악당이 아니었을 뿐이지.”
카티오가 짧게 답했다.
“그런가.”
시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앞의 대로에서 오염체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숫자만 수백 이상.
“제나,그리고 카티오.”
“……”
“부탁하겠다. 우리를 도와다오.” 시리스는 두 명에게 허리를 90도
로 숙였다.
제나가 양손을 내저었다.
“언니,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아니야. 너희는 우리보다 마스터와
사이가 깊은 것 같구나. 부족했던 우리 대신 마스터와 싸워줘서 고맙다.
너희가 아니었다면,마스터는 여기서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뒤의 멤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 았다.
리디기온은 팔짱을 낀 채 벽에 등을 기댔고,니하쿠는 멍하니 서 있었다.
유르넷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재밌는 장면이로군.”
높은 휘파람 소리.
일행이 뒤를 돌아보았다.
불타는 비공정의 후방,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오래 살고 볼 일 아닌가. 그 명망
높은 니플헤임의 서브 마스터께서 남에게 허리를 숙이다니.”
사내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가 걸을 때마다 허리에 찬 칼집이
철컥거리며 움직였다.
“이 바보는 누굼까! 우리 시리니한
테……”
“멈춰.”
“하지만!”
“부탁할게.”
니하쿠가 울상을 지으며 물러났다. “벨 오빠,늦었네요. 처음부터 저랑
같이 오시지.”
“사양하지. 그 정신 나간 운전을
두 번 겪긴 싫으니.”
사내는 근처를 둘러보았다.
거리를 둘러싼 수백, 수천의 오염
체들.
그의 입에 짙은 미소가 휘감겼다. “손님 마중을 더럽게도 많이들 나
오셨군. 쉽지 않겠소.”
“……너는.”
“벨키스트라 하오. 선배,당신들은 마스터라 부르던가. 하여튼 그 남자 와 타오니어에서 같이 지냈었지. 익 숙한 얼굴도 보이는구려.”
아론을 발견한 벨키스트가 능글맞 게 말했다.
벨키스트는 다시 표정을 정돈하더니 입을 열었다.
“어떻게 왔는진 묻지 말아 주시오. 선내에 타오니어와 통하는 차원문이 열려 있었거든. 당신들이 나간 뒤에 지나쳐왔을 뿐이오.”
“…..”
“이거 신기하군. 내가 알던 높으신 것들은 다 허리가 굳어서 움직이질 않던데. 척추에 철심을 박아넣은 것도 아니고 말이오.”
벨키스트가 흐흐 웃었다.
시리스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도 부탁……
“할 필요는 없소.”
차릉!
순식간에 검을 뽑아든 벨키스트가 뛰어올랐다.
바로 위의 빌딩에서 다가오던 오 염체 거미가 잘려나가며 검은 피를 뿌렸다.
“후우.”
벨키스트는 피를 뒤집어쓴 채 중 얼거렸다.
“미련이 남지 않게 해주시오. 찜찜한 채로 끝내고 싶진 않으니. 일이 해 결되든,아니면 전부 뒈져버리든. 어
설픈 결말은 딱 질색이란 말이지.”
벨키스트가 눈을 크게 떴다.
선명한 살기가 그 눈동자 속에서
일렁거렸다.
“시작하지.”
벨키스트의 이마에 하얀 뿔이 돋 아났다.
[각인,’백룡혈’ 발동!]카르르르릉!
벨키스트의 검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새하얀 파동이 검자루 위의 칼날
에서 웅웅거리고 있었다.
쾅!
벨키스트는 아스팔트 바닥이 파일 정도로 뛰어올랐다.
허공에서 자세를 바꾼 벨키스트가 검을 길게 내리그었다.
무형의 파동이 전방을 휩쓸었다.
앞을 가로막은 오염체가 단숨에 토막 났다.
뒤이어 벨키스트는 수백 마리의 오염체가 모여 있는 한중간에 몸을 던졌다.
오염체의 피와 잔해가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우리도 갈까요!”
제나가 등 뒤에서 활을 꺼냈다.
이미 세 발의 화살이 활대에 걸려 있었다.
핑!
한 오염체의 이마를 꿰뚫은 제나가 시리스를 보며 빙긋 웃었다.
“앞은 우리가 뚫을게요. 언니 오빠 들은 중요한 때를 위해 힘을 아껴주 세요.”
“……”
“우리는 할 일을 할 뿐이에요. 그 렇죠?”
“암암,당연하다!”
뒤에서 누군가 응답했다.
시리스는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얇은 가죽옷을 입은 소녀가 양 주
먹을 세게 부딪혔다.
“우리 질풍 부족은,한번 입은 은
혜는 잊지 않아.”
키샤샤 비크샤비.
타오니어의 수인 영웅이었다. 소녀의 머리 위에 돋아난 호랑이
귀가 쫑긋거렸다.
“한 이스라트 우리의 고귀한 전사를 위해.”
하!
키샤샤의 뒤에 있던 수십 명의 소 녀들이 소리를 내질렀다.
같은 묘족 출신의 영웅들이었다.
우득.
키샤샤가 손목을 꺾었다.
수왕의 혈통. 미증유의 힘이 소녀의 전신에서 날뛰었다.
“전사의 시간이다!”
네 발로 엎드린 수인들이 일제히 달려나갔다.
맨 앞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오 염체가 키샤샤의 돌진에 사정없이 박살 났다.
캐피탈리즘 호의 잔해 옆.
둥그런 차원문이 생겨나 있었다.
차원문으로부터 수많은 영웅들이
무기를 쥔 채 뛰쳐 나왔다.
이곳에 니플헤임의 지원군은 을 수
없었다.
현재 그들은 함대를 정비하고 있을 것이기에.
‘타오니 어.’
영웅 한 명 한 명의 질은 니플헤 임보다 부족할지 모른다.
이 싸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 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마스터를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 그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저들의 진심마저 깎아내릴 수는
없었다.
“시리스 씨.”
아론이 시리스를 보며 말했다. “가자.”
시리스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녀의 시선이 거리 바깥에 있는
장벽에 닿았다.
장벽 너머에서 마스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스터,찾으러 가겠습니다.’
시리스가 레바테인을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