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46
46. 실패를 알게 해주마(1)
이튿날.
하루의 일정이 끝난 새벽.
훈련소 의자에 앉아 땀을 닦고 있
으려니,하늘에 불이 켜졌다.
[픽 미 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로딩이 끝났습니다.] [TOUCH !(선택)]익숙한 접속 메시지다.
다만 신규 공지사항을 나타내는 알람이 떠 있었다.
<서버 오류에 대한 사과 공지〉
[며칠 전 일어난 불미스러운 끊김 현상에 대해…….]그 아래에는 탑 저층에 머물던 마 스터들에게 동시다발적인 접속 끊 김이 벌어졌으며,이는 갑작스러운 서버 쇼트에 의한 것임을 해명하는
사과글이 게시되어 있었다.
10층의 클리어를 목전에 뒀을 때 나타난 그놈.
전후 상황은 파악할 수 없지만,녀 석과 관계돼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오류 보상!〉
[1. 모든 마스터에게 특별 보상! 500젬을 지급합니다.] [2. 보상받고 하나 더! 50,000골 드를 지급합니다.] [3. 또 있습니다. 영웅의 호감도를 올려보세요! 선물권을 지급합니다.] [4. 여기서 끝이 아니겠죠? 요일 에 관,계, 없,이 ! 모든 요일 던전을 3일간 개방합니다.]공지사항을 닫은 암케나는 우편함 으로 들어가 보상을 받았다.
그리고 조작창을 터치하기 시작했 다.
뾰로롱.
이셀이 별가루를 뿌리며 다가왔 다.
[로키, 승급 축하해!]빠방!
이셀은 어디선가 가져온 폭죽을
터뜨렸다.
훈련소에는 아무도 없다.
얼마 전까지 아론과 디카가 있었
지만, 그 녀석들도 돌아갔다.
가만히 앉아 있자니 이셀이 고개
를 갸웃거렸다.
[기분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 이라도 있었어?]“네 원본을 만났지.”
[원본? 무슨 말을…….]골똘히 생각하던 이셀이 입을 뜨
억 벌렸다.
“뫼비우스의 공동 대표이사였나?”
[서, 설마!]나는 아래로 벌려진 이셀의 입을 들어 올려 다물게 했다.
이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까지 들었어?]
나는 녀석에게 들은 이 게임에 대
한 정보를 요약해서 들려주었다. 이셀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옷으며 말했다. “별로 따질 생각은 없어. 바뀔 것
도 없고. 난 탑을 오른다. 넌 그걸 위 해 나를 도우면 돼.”
[아,알았어…….]“그래서 무슨 일이냐?”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하자고 나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셀은 굳은 얼굴을 지우더니 득 의에 찬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품 속에서 자기 몸 크기만 한 황금 티 켓을 꺼내 들었다.
[이게 뭔지 알아? 이름하여 선물 티켓!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파바 박!]이셀은 황금 티켓을 손에 쥐고서 춤을 추듯 몸을 흔들었다.
‘선물인가.’
픽 미 업에는 선물이라는 기능이 있다.
특별한 공을 세우거나 마음에 드 는 영웅에게 보상을 주는 것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선물의 가치에 따라 골드를 내야
하고,등급이 높은 희귀 선물의 경 우엔 젬 혹은 고급 재료가 필요하 다. 시설의 대규모 확장 때 내가 요 구했던 시계도 선물과 비슷한 개념 이었다.
“이걸 나한테 주겠다는 거냐?” [정확히 말하자면 마스터가! 흠
흠! 바보 같은 그 녀석도 로키의 우 수함을 알았단 거지.]
이셀이 황금 티켓을 내밀었다.
나는 티켓을 받아들어 살폈다. 티 켓의 양옆에는 요정의 모습이 양각 되어 있었고,가운데에는 ‘10,000’ 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1만 골드 이하.’
기본적으로 선물은 유료지만,이 벤트로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선물 권을 이용한다면 무료로 기능을 이 용할 수 있다.
’나를 높이 사고 있다는 뜻이군.’
한 장밖에 주어지지 않은 선물권 을 내게 줬다는 것은, 이곳의 모든 영웅 중에서 나를 가장 높이 평가한 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의미로 당연했다.
자만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들을 2연속 으로 돌파한 주역이니까. 공략 화면 을 지켜봤다면,에디스나 이올카의 활약도 뛰어났지만 내가 그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 다.
신기 했겠지.
자기는 특별하게 한 일이 없는데 도 알아서 영웅들이 꾸역꾸역 생존 한다.
일반적인 난이도를 벗어난 10층 에서도 고생을 하긴 했으나 클리어
했다. 결과는 더욱 고무적. 쓸모없 는 1성들 두 명만 잃은 채 주역 멤버 는 그대로 살아남았다.
나는 한숨을 쉰 다음 티켓을 이셀 에게 되돌려줬다.
“필요 없어. 다른 놈들한테나 줘 라.”
[‘한(★★)’이 선물을 거부합니 다.]티켓을 받아든 이셀이 눈을 동그 랗게 떴다.
[정말 괜찮아? 뭐든 얻을 수 있는데? 맛있는 요리! 화려한 옷! 멋진 장식들! 다 가질 수 있는데?]
“다는 아니지.”
선물 상점에는 수천 가지 이상의 아이템이 존재한다.
희귀한 식재료로 만든 진미. 귀족 이나 입을 법한 화려한 복장. 고아 한 정취가 흐르는 미술품. 좀 더 조 건을 올린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물 건도 없진 않다. 물론 그런 건 1만 골드 따위로는 살 수 없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훈련소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숙소로 천천히 걸어왔다.
이셀이 쫄랑쫄랑 따라붙었다.
“왜 따라와? 자러 갈 건데.
[기,기다려봐.]이셀이 그 자리에서 한 바퀴 크게 돌았다. 날개에서 흩어진 별가루가 한곳에 뭉치더니 작은 목재 조각상 이 생겨났다.
의 호감도를 Get!]
“뭐냐,이건.”
[마스터의 선물!]앞발을 치켜든 늠름한 군마가 조 각되어 있다.
나는 그것을 받아서 앞뒤 좌우로 살폈다. 조형은 나쁘지 않다. 마무 리도 잘 되어 있다.
이것을 받는다면 기뻐할 만한 영 웅도 있을 것이다.
나는 조각상을 아무렇게나 휙 던 졌다.
조각상은 분수의 옆면에 부딪혀
나튕굴더니 앞발이 똑 부러지고 상 하체가 분리됐다.
이셀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나는 한 번 더 이셀의 입을 들어 올려 다물게 했다.
그리고 숙소의 문을 닫고 들어갔 다.
‘선물을 줄 거면 다 같이 주든가.’
한 명한테만 주면 다른 영웅에게 불만이 생긴다.
내가 가장 활약했다지만 나 혼자 목숨을 건 게 아니다. 적절한 논공 행상은 마스터의 기본이었다. 그런 데 선물권 받았다고 아무렇게나 툭
던지다니.
제대로 안 쓸 거면 아예 안 쓰느니 만 못하다.
‘군마 조각상?’
영웅마다 취향이 다르고 원하는 것이 다르다.
아무 물건이나 쥐여준다고 좋아하 는 게 아니다.
나만 해도 니플헤임의 상위 영웅 100명의 모든 취미와 취향을 꿰뚫 고 있다.
침대에 들어가고 나서 얼마 뒤,하 늘이 어두워졌다.
당황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나.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탑을 올라야 한다.
이유는 수십 가지도 될 수 있다. 하지만 내게 부여된 낮은 등급보
다,픽 미 업의 더러운 난이도보다, 몇 배나 강력한 장애물이 나를 기다 리고 있다는 점을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내부의 적이다.
내부의 적 정도가 아니지.
영웅이 골치 아프다면 내가 해결
할 수 있다.
얼마 전 일어난 갈기늑대 용병단
사건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치워버 릴 수도 있다.
‘하지만 마스터가 정신을 못 차려 서는.I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추측의 단계였다. 다만 그 추측은
9할 정도로 들어맞은 것 같다.
‘나잘해 병인가.’
나잘해 병.
픽 미 업의 유저 사이에서 떠도는 은어다.
어감은 우습지만,결과는 우습지 않다.
픽 미 업은 운빨X망겜이라 불린
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시설과 컨텐츠 가 오픈되지 않은 상태인 초반 난이 도가,처음의 뽑기 운에 따라 천차 만별로 갈리기 때문이다. 좋은 영웅 을 뽑으면 수월하고 쾌적하게 등반 하고, 나쁜 영웅이 걸리면 온갖 개 고생을 다 거치면서 험하게 구르고 구른다.
암케나는 어떤 케이스인가.
객관적으로 따지면 운이 좋다고는 볼 수 없다. 최초의 4성을 내게 합성 했고, 이후 5연 뽑기에서도 1명 빼 고 다 갈아버 렸다. 그렇다고 한다면
운이 나쁜가?
’아니지.’
게임 초기에는 열심히 했다. 시설을 꾸준히 확충하고 영웅들을
육성했으며 아이템을 만들었다. 내가 쓴 공략대로 제대로 진행하
고 있었다.
변한 것은 5층 이후다.
원래 전멸했어야 할 임무를 나의
힘으로 클리어한 다음.
정석에서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
다.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료 뽑기를 5번이나 했고,마지막
멤버를 제대로 육성하지도 않은 채 10층으로 던져버렸다. 그 밖에도 갖 가지 실책을 범했다.
이런 식으로 영웅에만 공략을 의 존한 채,자신의 책임을 돌아보지 않는 마스터를 사람들은 나잘해 병 자라고 불렀다. 영웅의 능력을 자신 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이런 새끼를 데리고 100층까지 올라갈 수 있나.’
당연하게도. 게임 초기,무수히 실 패를 반복한 마스터 쪽이 뒷심이 훨 씬 강하다.
추측이 확신으로 바뀐 것은 다음
날 저녁이었다.
[한,제나,아론,이올카!]1파티의 멤버를 호명하는 이셀의
외침이 훈련장을 울렸다.
목각인형 사이를 단검으로 누비던
제나가 몸을 뒤집더니 말했다. “어라, 출전인가요?”
“그런 것 같은데.”
요일 던전은 아니다.
4명 모두 전투 멤버였다.
제나는 눈썹을 작게 찌푸리고는 채비를 하고 나갔다.
아론이 한숨을 내쉰 다음 제나를
따라나섰다.
훈련소 옆,마법진이 그려진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이올카가 튀어나왔 다.
이올카는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면 서 훈련소를 나갔다.
일그러진 표정.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당연한가.’
반복된 훈련과 전투로 스트레스 수치가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특히 치열했던 10층이 기폭제가 됐다. 내가 어떻게든 손을 보고는 있지만,일시적인 모면에 불과하다.
이를 해결하려면 마스터가 발 벗고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광장에 모인 1파티의 4명. [열려라, 시공의 틈!]
시공의 틈으로 향하는 문이 덜컹
열렸다.
나는 선두에서 걸었다.
“금방 해치우고 나오지.”
세 명이 따라온다.
문이 닫혔다.
‘8층이나 9층인가.’
이 상황에서 11층을 등반하는 건
무리수다.
레벨업을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이올카의 레벨이 낮다. 10층을 깼으 니 입장 제한도 풀렸다. 그 전의 스 테이지에서 가능한 만큼 성장하고 나서는 게 정석이었다.
여기에 조건을 덧붙이자면 1성이 든 3성이든 마지막 멤버를 끼워 넣 는 것이다.
합류는 빠를수록 좋다. 파티에 바 로 합류시킨다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응하고 어울릴 시간이 필요했다.
[탑을 등반, 세상을 구원하라!] [메인 던전 : 현 등반 증수 — 10]‘세상을 구원하라.’
이런 의미였나.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다.
탑 공략. 그 외에 모든 것은 버렸 다.
벽에 기대서 팔짱을 끼고 있자니, 입장 층수를 알리는 메시지가 눈앞 에 떠올랐다.
[메인 던전,현 도전 층수는 11층 입니다.] [10초 뒤 문이 열립니다. 준비하 세요!]‘후.’
확정이 다.
나는 목을 뚜둑 꺾었다.
그리고 검을 뽑아 들고 방패를 멨
다.
“준비해라. 11층이야.”
“네?”
제나가 반문하는 사이 주위가 어 두워 졌다.
밤하늘에는 조각달이 걸려 있다. 조각달은 우리가 딛고 선 장소에
달빛을 뿌리고 있었다.
‘필드는 묘지.’
곳곳에 죽은 자를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음산하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무 언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일어섰 다.
[플로어11
[임무 유형 一 토벌]
[목표 一 적을 전멸시켜라!]
[스켈레톤 Lv.ll X 14]
묘지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서 있 는 해골들.
평범한 사람이라면 오금을 지릴 광경이지만 나를 비롯한 파티원들
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한 지옥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제나가 뺨을 긁으며 말했다. “해골이 네요?”
“특 치면 부러지게 생겼는데.” 나는 피식 웃었다.
스켈레톤이 턱관절을 딱딱거리며
우리를 포위 했다. 제각기 손에 검과 도끼, 철퇴 등 병장기를 들고 있었다.
삐걱!
맨 앞에 있던 스켈레톤이 도끼를 휘둘렀다.
소리 한 번 촌스럽다. 나는 도끼를 피한 다음, 경추를 방패 모서리로
찍었다. 뼛조각이 부서진 스켈레톤 은 두 번 다시 움직이지 못했다.
하늘을 올려본다.
저 위에서 암케나는 우리를 보고
있었다.
’일단 이놈들부터 처리하고 생각 해야겠군.’
“위치로.”
“갑니다!”
“예!”
10층에서처럼 삼각진이다.
내가 앞,아론이 왼쪽,제나가 오
른쪽, 이올카가 중앙.
달빛의 묘지에서 싸움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