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54
54. 다시 전진(3)
“……이상. 설명은 끝이다.”
나는 물을 들이켰다. 말을 많이 해
서 그런지 목이 칼칼했다.
세 명은 의문이 남은 표정으로 나
를 쳐다보고 있었다. 완벽히 알아듣 지는 못한 모양이다. 제나가 손을 들고 말했다.
“레벨과 스랫,스킬이란 게 있고, 이거 덕분에 우리가 빨리 강해질 수 있다는 거죠?”
“그래. 스탯창이라고 말할 때,떠 오르는 글자는 너희 스펙이지. 그걸 보고 자신의 강함을 짐작할 수 있는 거야.”
“싸우고 나서 갑자기 강해진 기분 이 들 때가 있었는데,레벨업을 해 서 그런 거였네요.”
“믿기지 않는군요. 어떤 대마도사 라도 그런 일은 불가능할 텐데.”
이올카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 렸다.
레벨과 스탯, 스킬 그리고 상태창.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을 것이다.
몬스터 사냥으로 경험치를 얻고,훈 련으로 스킬을 터득해서 성장한다. 게임 속의 세계라는 사실을 알고 있 는 나조차도 현실성이 없는 일이었 다.
그래도 후련한 마음은 있었다.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을 설명하기
에는 어려워 미뤄두고 있었지만,이 제 이 녀석들에게도 스펙이 보인다 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언젠가는 알아야 했고,받아들여야 했다. 이 세계의 법칙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
아남을 수 없으니.
“그게 앞으로 너희의 지침이 될 거 다.”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생각 이상으로 성장에 도움 이 된다. 만약,내게 상태창이 보이 지 않았다면 훨씬 먼 길을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나는 물을 끝까지 마 시고는 말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너희가 설명 해줘.”
“당신은 이런 걸 어디서 안 거죠? 저희는 들어본 적도 없는 얘기인
데.”
“어쩌다 보니 알게 됐지.”
“어쩌다 보니라구요? 그 무슨 수 상한……
“아하하,언니! 오빠는 여기에 가 장 처음부터 있었거든요.”
“그렇게 된 거야. 경력이 길거든.”
“수상하군요……
이올카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 했다.
“뭐, 말하기 싫으면 됐어요. 누구 라도 비밀이 하나쯤은 있는 법이니 까. 당신이 해준 조언이 도움되는 건 사실이고.”
“그렇죠,그렇죠. 엄청 도움되죠. 뼈와 살이 되죠.”
“당신은 아부 솜씨가 대단하네 요.”
“아부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라구 요.”
제나는 나와 어떻게 만났고, 내가 어떤 식으로 난관을 돌파해왔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화제가 넘어간 것이다. 이윽고 아 론이 거기에 어울렸다. 이올카는 내 게 시선을 돌리면서도 대화에 경청 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저들이 끝까지 살아남는다면, 모 든 것을 말해줄 생각이다.
물론,그때는 헤어질 때가 되겠지 만 말이다.
다음 날 아침.
제나가 모두를 끌어모은 다음 상 태창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빠르 게 납득한 부류는 주로 전투직이었 다. 무언가의 힘에 의해 자신들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졌다는 것을 체 감하고 있으니,그럴 수밖에 없다.
다만 아직은 자기 자신의 상태창 밖에 볼 수 없는 모양이었다.
다른 영웅의 상태창이나 시스템
메시지는 볼 수 없었고,내가 보는 것들의 아주 일부분만을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연구 레벨이 낮아서 그 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특별한 것 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시간이 지 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그날의 저녁 훈련.
“지금껏 저희가 했던 훈련들이,체
질을 개선하고 스킬을 얻기 위한 거 라 이거죠?”
“그렇지.”
쏘아진 세 발의 화살을 떨어뜨린 다.
저 멀리서 제나가 시위를 당겼다.
한 동작에 한 발씩. 속사를 익힌 이 후 사격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 졌다. 나는 화살을 막고 쳐내며 제 나에게 달려갔다.
캉!
쇠의 마찰음이 날카롭게 울렸다. 순식간에 단검을 뽑아든 제나가
검날을 막은 것이다.
“역시 그런 거였네요. 뭔가 이상하
더라니.”
검날과 검날이 맞부딪힌다.
제나는 유연하게 움직이며 단검을
휘둘렀지만 틈이 보인다. 제나의 동 작이 이어지는 찰나에 검을 찔렀다.
“어 맛!”
제나가 황급히 단검을 회수하고는 공중제비를 뛰며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사격.
무기의 전환이 물샐 틈 없이 매끄 럽다. 스위칭의 효과였다.
“가벼워.”
검의 궤적에 걸린 화살이 부나방 처럼 떨어졌다.
방패를 쓸 필요도 없었다. 쏘는 순 간 어디로 날아올지 알 수 있다. 한 발짝의 스텝으로 세 발의 화살을 피 한다. 한 번의 휘두름으로 두 개의 화살을 꺾었다.
“이런……
어느새 제나의 화살통이 텅 비었 다.
나는 화살이 가득 담긴 새 화살통 을 던져주었다.
제나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 봤다.
훈련장 바닥에는 부러진 화살의 잔해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그것도 스킬이에요? 다 막아버리 는 거요.”
“그래.”
“사기잖아요. 전혀 안 통하는데.” “막는 스킬이 있다면, 뚫는 스킬도
있지 않겠냐?”
제나가 오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순간 나는 제나에게 달려들었 다. 노리는 것은 사슴처럼 가느다란 그녀의 목. 붉은 피가 뿜어지기 직 전,제나의 고개가 숙여졌다. 검날 이 제나의 머리카락을 얕게 자르고 지나갔다.
“지,진짜 저 죽이시려고!”
“그것도 좋겠는데.”
“히 익!”
몇 번의 참격이 제나의 전신을 가 르고 지나갔지만,아직까지 대련을
중단할 만한 치명적인 상처는 없었 다.
목을 그어도 된다.
배가 찢어져도 된다.
어떤 치명상이라도 좋다.
일격에 즉사만 하지 않으면 괜찮 다.
예전에는 멀리서 제나가 화살을 쏘고,내가 가만히 서서 막는 것으 로 끝났지만,그 정도 훈련으로는 성이 안 차는 단계까지 왔다. 스킬 레벨업을 위해서는 더욱 가혹한 조 건이 필요했다.
실전용 무기,규칙 없음.
상대가 죽기 직전까지.
파업 이후,실전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좀 더 효율적인 훈련 을 위해 고안한 대련 방식이다. 제 대로 된 전투를 거치지 못한 놈들은 이런 우리를 보며 미쳤다고 쑥덕거 렸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누가 더 오래 살아남을지는 결과가 알려줄 것이 다.
훈련장에는 구경꾼들이 둥글게 서 서 우리를 관람하고 있었다.
‘내가 너희 구경거리인가.’
순간 짜증이 났지만,신경 쓸 가치
도 없다.
무시하고 대련을 이어갔다.
핑! 피핑!
피하고 쳐낸다.
화살이든 단검이든. 자연스레 취 해야 할 행동이 그려졌다. 의도하지 않아도 검이 자연스레 움직였다. 이 미 내 무기술은 의식적인 수준을 넘 어 무의식의 경계에 접근하고 있었 다.
제나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검격을 하나하나 피했지만, 상처가 늘어나 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틈을 봐서 화 살을 쏘면 막힌다. 단검으로는 장검 의 리치를 이길 수 없다.
뒤로 길게 뛰어 물러난 제나가 혀 를 찼다.
“아니,뭐 이래요!”
19전 18승.
나와 제나의 대련 성적이다.
물론 18승은 나였다. 내가 진 1번
도 우연에 우연이 겹쳐 벌어진 사고 에 가까웠다. 상성이 너무 불리했 다.
“항복할 거냐? 아론이 기다리는 데.”
“아,아니,전 괜찮습니다…
아론이 손사래를 쳤다.
덧붙여 저 녀석의 성적은 32전 32
패다.
10분을 넘긴 적이 없었다.
‘두 명을 한꺼번에 끼워 넣어야 하 나.’
내 느낌상 6레벨인 하급 검방술과 2레벨인 투척 방어 스킬의 레벨이 올라갈 때가 되었다. 계기만 생긴다 면 곧 벽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스킬에 대해 고민할 즈음, 제 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조금만 더 해볼게요.”
“그럼 간다.”
나는 검을 곧추세운 다음 뛰었다.
그 순간.
[띠링!] [‘제나(★)’가 ‘약점 포착’을 습득 했습니다!]제나의 눈에 붉은 십자 형태의 빛 이 번뜩였다.
핑! 핑핑!
시간차를 두고 세 발의 화살이 날 아왔다.
투척 방어의 효과로 궤적과 속도, 도달점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세 발의 화살은 정교하게 이어지
며 틈을 노리고 있다.
내가 화살을 대처하는 방식은 피
하거나 막는 것. 그걸로 두 번째 화 살까지는 무력화시 킬 수 있다. 하지 만 마지막 세 번째 화살이 대처할 수 없는 부분을 정확히 조준하고 있 었다.
캉!
나는 세 번째 화살을 방패로 튕겼 다.
제나와의 대련에서 처음으로 쓰는 방패였다.
“아이!”
제나가 아쉬운 듯이 탄성을 질렀
다.
나는 검을 늘어뜨린 채 중얼거렸 다.
“이건 어디서 배웠지?”
“방금 생각했어요. 막는 스킬이 있 으면 뚫는 스킬도 있다고 하길래, 뚫어보려고……
본래는 대련이 끝난 다음 힌트를 주려 했었다.
제나가 지금의 난관을 돌파하는 방법은 두 가지. 막을 수 없을 정도 로 강하게 쏘거나,막기 힘든 곳으 로 쏘면 된다. 첫 번째는 강궁이란 스킬,두 번째는 제나가 방금 얻은
약점 포착이다.
‘재밌군.’
지나가는 말로 특 던졌을 뿐인데, 스킬을 얻었다 이건가. 더욱이 약점 포착은 속사와 시너지가 상당한 스 킬 중 하나였다.
아론을 넣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검을 늘어뜨렸다.
“다시 간다.”
“쉽지는 않을걸요.”
마구잡이로 쏘아지던 화살에 규칙 이 갖춰졌다.
첫 번째 화살로 행동을 강제한 후, 두 번째나 세 번째 화살로 급소를
노린다. 아니면 이와 반대로 페이크 를 섞기도 한다. 대처하기가 몇 배 는 까다로워졌다.
화살에 허실(虛實)을 담을 수 있 게 된 것이다.
[‘제나(★)’의 ‘하급 궁술’이 Lv.6 으로 상승했습니다!]화살이 쉴 새 없이 날아온다.
이전의 나라면 한꺼번에 쳐내고
거리를 좁혔겠지만,제나와 나의 간 격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방패 는 비상시가 아닌 한 사용하지 않는
다. 어디까지나 스킬을 얻기 위한 훈련이었다.
단순히 궤적을 보는 것을 넘어야 한다.
화살에 담긴 뜻까지 파악할 수 있 다면.
시간이 느려졌다.
화살 끄트머리에 달린,하얀 실 같
은 게 보이기 시작했다.
[스킬 각성!] [따란!] [‘한(★★)’의 ‘투척 방어*가 Lv.3 으로 상승했습니다!] [i한(★★)’의 ‘하급 검방술’이 Lv.7으로 상승했습니다!] [‘한(★★)’이 ‘통찰력’을 습득했 습니다!]캉캉캉캉!
나는 화살을 남김없이 쳐내며 다 가갔다.
그리고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보 는 제나의 목에 검날을 들이댔다.
“이걸로 내가 19승인가?”
“괴,괴물……
구경꾼의 무리 속에서 그런 목소 리가 들려왔다.
내가 시선을 돌리자 그들은 개미 떼처럼 흩어졌다.
통찰력.
환영을 구분하게 해주고,시력도 약간은 강화해준다. 또한,무기술에 도 보정을 붙여주는 다재다능한 스 킬이었다. 거기에 내가 알지 못하는 효과도 더러 있는 것 같다.
‘스킬이 몇 개지.’
상태창을 띄웠다.
[한 이스라트(★★) Lv. 11 (Exp 53/110)] [클래스 : 초보자(Novice)][힘 : 27/27]
[지능 : 10/1이
[체력 : 25/25]
[민첩 : 25/25]
[보유 스킬 : 하급 검방술(Lv.7), 투척 방어(Lv.3),통찰력(Lv.l), 화 염 저항(Lv.2) 고통 내성(Lv.3),침 착성(Lv.3), 광폭성(Lv.l), 기마술 (Lv.l)]
‘좀 많군.’
하급 검방술,투척 방어,통찰력, 화염 저항, 고통 내성, 침착성,광폭 성,기마술까지 도합 8개. 2성 11레
벨이 가지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스 킬이 다.
마침 제나와 아론이 스킬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아론 오빠,스킬 몇 개예요?”
“나 말이오? 음. 하급 창술에 고통 내성. 화염 저항. 이렇게 세 가지 있 군. 제나 양은?”
“하급 궁술,하급 단검술,스위칭, 속사,약점 포착,매의 눈, 재빠른 몸 놀림…… 또 뭐가 있더라.”
“그만하면 됐소.”
아론이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 다.
내가 끼어들었다.
“스킬이 많다고 강한 건 아니지.” 스킬의 강함은 가짓수보다는 레벨
과 시너지로 결정된다.
상극의 스킬을 지닌 경우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 내가 가진 광폭성과 침착성. 이건 좀 특이한 케이스가 되어버렸 지만.
‘강한 편은 맞다만.’
재빠른 몸놀림에 숲의 사냥꾼,화
염 저항까지.
제나의 스킬은 도합 9개였다. 어쨌든, 이어지는 훈련 속에서도
암케나는 착실히 대기실을 운영하 고 있었다.
이셀이 던전에 나갈 멤버를 부르 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장비 제작소는 밤낮을 모르고 가동 됐고,틈틈이 1성 소환을 알리는 메 시지가 떠올랐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합성을 하지 않는다는 것 인데,내가 보낸 문서를 제대로 읽 는다면 운영법도 익힐 수 있을 것이 다.
15층이 바로 앞이지만 당분간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파업 이후,몇 번 던전을 다녀왔지
만 모두 10층 이하였다.
어느 정도 성장이 끝나지 않는 한,
15층은 보내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나도 5층과 10층에서의 고생을 반
복하고 싶지는 않다.
최적의 상태가 되었을 때 출전하
고 싶었다. 그렇게 해도 10할 생존 을 장담할 수 없겠지만.
아론은 긴장한 표정으로 창을 그 러쥐고 대련장으로 나왔다.
나는 검을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