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56
56. 신고식(2)
[1 파티,광장으로 집하압!]이셀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의 책
상 위에는 픽 미 업에 대한 자료들 이 널브러져 있었다. 자료를 모아 책상 아래의 서랍에 넣은 뒤 자물쇠 를 잠갔다.
광장으로 나오자 네 명이 모여 있 었다.
제나,아론,이올카,임시 멤버인 에디 스까지.
시공의 틈에서는 금방 전투를 끝 마친 3파티가 나오고 있었다. 1성 유망주들로 꾸며놓은 예비 파티였 다. 그러나 나온 사람은 세 명,두 명 이 보이지 않았다. 세 명은 석고상 처럼 감정 없는 얼굴로 우리 곁을 스쳐 갔다.
“오늘도 11층일까요?”
등에 단궁을 걸쳐 멘 제나가 물었 다.
”12층이겠지.”
11층은 질릴 만큼 갔다.
경험치 효율도 떨어졌고,이제는
단계를 높일 때였다. 암케나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열려라, 시공의 틈!]덜컹.
광장 정면의 문이 열렸다.
세 명이 들어갔고, 뒤이어 들어가
려는데 에디스가 옷깃을 붙잡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말 안 해도 괜찮겠어?”
“뭘 말이냐?”
“사람과 싸운다는 거.”
“애도 아니고. 일일이 말해줄 필요 없어.”
나는 답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에디스가 한숨을 쉬고
나서 입장했다. 잠시 뒤 문이 닫혔 다.
왼쪽의 거울이 빛남과 동시에 메 시지가 떠올랐다.
[메인 던전, 현 도전 층수는 12층 입니다.] [10초 뒤 문이 열립니다. 준비하 세요!]에디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할 일만 해.” “말 안 해도 알고 있다구요.” “알고 있다면 더욱더.”
제나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렸다.
아론이 에디스를 돌아봤다.
“12층의 몬스터가 그렇게 강합니
까?”
”강하진 않아. 보면 알 거야.” 에디스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
다.
스릉.
검을 뽑았다.
검날이 칼집을 긁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장검은 빛을 받아 섬뜩한 광채를 뿌리고 있었다.
몇 번째인지 모를 텔레포트. 눈앞을 가득 감싼 빛이 사라졌을
때,나는 낯선 곳에 서 있었다.
[플로어12
[임무 유형 – 토벌]
[목표 — 적을 전멸시켜라!]
필드는 시가지.
벽돌이 깔린 대로 옆으로 돌담과
건물이 늘어서 있다.
다만, 거리는 텅 비어 있다. 이름
모를 낙엽이 바람에 쓸려 저 멀리 날아갔다.
“토벌이군요. 적은 어딘가요!’’ 제나가 시위에 화살을 메겼다. 자신감 어린 눈빛. 영웅 반응성 연
구의 효과다. 이제 다른 영웅들도 시스템 메시지로 출력되는 임무 목 표를 볼 수 있었다.
[인간 병사 Lv.ll X 13]“그러니까… 인간 병사?”
제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들은 누구요!”
맞은편에서 남자의 음성이 들렸
다.
나는 그곳에 시선을 향했다.
거리 맞은편,무장한 병사 일곱 명
이 이쪽을 보고 있다. 사슬 갑옷을 걸치고 투구를 눌러쓴 그들은 우리 에게 창을 겨누고 있었다.
‘놈들에게는 우리가 보인다.’
NPC와는 다르다.
그렇다면 적. 나는 방패를 꺼냈다. 아론이 끼어들었다.
“형님. 저들은 몬스터가 아닙니다.
사람이 잖습니까.”
“안 싸우겠다는 거냐?”
“이, 일단 얘기는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세 명의 얼굴에는 난색이 떠올라 있었다.
굳어 있던 이올카가 정신을 차리 고는 말했다.
“동의해요. 이곳에 대한 정보를 얻 을 수도 있잖아요. 싸우지 않고 넘 어갈 수도 있고요.”
“싸우지 않는다?”
“저도 필요 없는 살생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너는?”
“아핫,저는 뭐……
제나가 머리를 긁었다.
에디스는 우리에게서 멀찍이 떨어
져 있다. 상관 않겠다는 뜻 눈을 감 고 있었다.
“형님……
아론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싸울 생각이 없군.’
억지로라도 말을 듣게 할 수는 있
겠지만,앞으로의 일을 생각한다면 좋은 방식이 아니다.
아무래도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제가 한번 대화해보 겠습니다.”
아론이 대로로 나아갔다.
길의 중간 지점에 갔을 때 아론이
외쳤다.
“나는 아론이라 하오. 당신들과 얘 기를 하고 싶소!”
아론이 대로에 멈춰섰다. 대장으로 보이는 듯한 자가 앞으
로 나왔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요! 난데없이 이상한 곳에 끌려왔지 뭐요.”
“어떻게 말이오?”
“너무 복잡해서 정리하기 힘들군.
좀 더 가까이 오시는 게 어떻겠소. 해칠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마시오. 우리도 돌아가고 싶을 뿐이오. 이상 한 벽 때문에 나갈 수가 없소.”
,,그럼 가겠소.”
“무기는 내려두고 오시오. 동료가 경계심이 많거든.”
아론은 망설이더니 창을 내려놓았 다.
나는 말했다.
“멈춰라.”
,,예?,,
“호구야? 하란 대로 다 해주고.” 나는 픽 웃고는 나섰다.
“너희들이 와라. 무기는 내려두고.
우리도 경계심이 많거든.”
“그건 곤란하다!”
“우리가 무기를 버리는 건 괜찮고,
너희가 버리는 건 안 괜찮나?”
내가 이죽거리자 대장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대장은 옆의 병사들과 얼굴을 맞
대고 얘기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대신 세 명이 가겠소.” “얼마든지.”
대장과 부하 두 명은 무기를 바닥
에 내려놓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형님, 이야기를 해보시려는 겁니 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물어보고 싶은 점은 있다.
얻어야 할 정보는 많이 남아 있었 다. 저들이 어떤 식으로 스테이지에 왔으며, 어떻게 해서 몬스터 판정을 받은 것인지. 그 밖에 아는 것들은 무엇인지.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지.’
철컥. 철컥. 철컥.
병사가 걸을 때마다 갑옷 이음부 가 마찰음을 냈다.
대장이 3m 거리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양손을 펼쳐 들며 말했다.
“보다시피 우린 비무장이오. 당신 들도 같은 식으로 해줬으면 싶네 만.”
땡강!
내 방패가 대로의 바닥에 나뒹굴 었다.
그 뒤로 검을 발아래에 내던졌다.
“됐나?”
“좋소. 이제 얘기를 제대로 할 수 있겠군. 그런데 그거 아시오? 머릿 속에서 끊임없이 목소리가 들리고 있소. 아무리 귀를 막아도 멈출 수
가 없더군.”
대장이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목소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소. 지
금도 계속 말이오.”
“오호,어떤 목소리지?”
“그건……
남자의 안구가 핏빛으로 물들었 다.
눈가 옆으로 검은 핏줄이 돋아났 다.
“너희를 죽이라는 거다!”
대장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옆에 있던 두 놈이 품속에서 장전
된 소형 석궁을 꺼냈다.
나는 발등에 올리고 있던 검을 튕
겨 올렸다. 회전하며 상승한 검을 움켜쥔다. 단검을 흐르듯 피한 다음 놈의 목 뒤에 검날을 박았다. 왼손 으로는 벨트의 단검을 뽑아 던졌다. 단검은 막 내게 석궁을 겨누던 병사 의 눈깔에 틀어박혔다. 목에 박힌 검을 옆으로 빼내며 눈을 움켜쥔 병 사의 상체를 갈랐다. 동시에 에디스 가 던진 단검이 세 명째의 이마에 다트처럼 꽂혔다.
인간 세 명의 시체가 선혈을 뿜으 며 고꾸라졌다. 시체의 한중간에 있
던 나는 뜨거운 피를 뒤집어썼다. 짙은 혈향이 머리 안쪽까지 올라왔 다.
나는 피에 젖은 검날을 늘어뜨린 채 말했다.
“이래도 대화할 생각이냐?”
이와 비슷한 사건을 마스터 시절
에 본 적 있다.
적들은 인간이었고,공격을 망설 이던 영웅들은 전멸했다.
협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나오든,어떻게 나오든. 죽거나 죽이거나.
아론은 고개를 수그리더니,묵묵
히 바닥에 놓인 창을 집었다. 무감정한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
왔다.
“저들은 다 죽여야 할 적인 겁니 까.”
“그래. 대화는 안 통한다.” “알겠습니다.”
창을 굳게 쥔 아론이 적에게 겨누 었다.
다섯 명의 병사들은 이미 전투태 세를 갖춘 채였다.
“제나, 봐줄 생각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 거네요.” “그걸 말이라고.”
“후우,괜찮아요. 각오했으니까요. 각오했어요!”
쐐애액!
시위를 떠난 화살이 병사의 가슴 에 적중했다. 놈은 눈을 크게 뜬 채 로 엎어졌다. 바닥의 압력에 의해 화살이 가슴을 뚫고 등으로 나왔다.
“별 느낌 없네요.”
이올카는 볼 것도 없다.
이미 화염 마법의 캐스팅을 시작 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에디스가 씁 쓸하게 중얼거렸다.
“괜한 걱정을 했던 것 같네.”
“당연한 소리를.”
내가 파티원 선정에 가장 중요하
게 여긴 것은 재능도 강함도 아닌 멘탈이었다. 그것은 곧 열망이자 일 념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뭐 든지 하겠다는.
“전투 준비.”
진형이 갖추어진다.
나와 아론이 전위. 제나와 에디스
가 중위. 이을카가 후위다. 적은 4명 이 죽어서 9명. 병사들은 쇳소리 비 슷한 고함을 지르며 우리에게 달려 들었다.
“이놈들은 정상이 아냐.”
에디스가 양손의 단검을 회전시켰 다.
비정상. 말 그대로다. 놈들의 얼굴 과 피부 곳곳에는 흉한 문신처럼 검 은 핏줄이 돋아나 있다. 눈동자에는 광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불타올라라!】
화르특.
전방에 불길의 벽이 솟구쳤다.
“끄아아아!”
화염에 휩싸인 병사 두 명이 몸부 림치며 죽어갔다.
열을 받은 갑옷의 철판이 붉게 물 들었다.
화염 사이로 제나의 화살이 허공 을 꿰뚫었다.
턱수염을 기른 중년 병사가 내게 창을 찔러왔다.
방패로 막는 동시에 왼손을 움직 였다. 창날이 방패를 타고 미끄러지 며 병사가 휘청거렸다. 그 앞에는 검날이 놓여 있었다. 피륙음과 함께 목이 반쯤 잘렸고, 놈은 목을 부여 잡은 채 컥컥대면서 죽었다.
‘약하군.’
무장은 제대로 갖추고 있지만,진
형도 규율도 없다.
마구잡이로 달려들어 무기를 휘두
르는 것에 불과했다. 정리하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12 구의 시체가 시가지에 널브러졌다.
남은 녀석은 하나.
놈은 주저앉은 채 벌벌 떨고 있었 다.
나는 검날에 피를 벽에 닦은 뒤 병 사에게 다가갔다. 병사가 침을 튀기 며 언성을 높였다.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절 기 다리는 아내와 딸이 있소. 돌아가야 한단 말이오! 지,집으로. 집으로 가
야 하오!”
“어떻게 갈 생각이지?”
“그건…… 끄아악!”
병사가 머리를 부여잡고는 비명을 질렀다.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던 병사는 검은 피를 왈칵 토해내더니 그대로 엎어졌다. 그리고 움직임을 멈췄다. 죽은 것이다.
이올카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 다.
“이 사람들,이상하군요.”
에디스가 단검을 벨트에 집어넣었 다.
”세뇌된 거야. 몇 번 본 적 있어. 그래도 이 정도 인원을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세뇌시킨 건 처음 봐. 아 니,그렇게 따지면 저번에도…”
“똑같은 놈들이었다 이거냐?”
“맞아. 분명 죽였는데, 똑같은 놈 들이 나왔어.”
나는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고 있 는 피를 살폈다.
타르와 같이 걸쭉하고 새까만 피 였다.
‘그 자식 것과 똑같군.’
아직은 알 수 없다. 단서가 너무 적었다.
하지만 이놈들은 12층에 갇혀 있 고,우리에게 강한 적의를 가지고 있으며,다음에 다시 온다면 같은 수작을 부릴 거 란 사실은 알게 되 었 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몸을 감쌌 다.
귀환 신호였다.
[스테이지 클리어!] [‘제나(★★乂 ‘에디스 (★★★)’, 레벨업!] [보상 – 3500G, 가죽(C) X 1] [MVP – ‘한(★★)’]시공의 틈으로 돌아왔다.
에디스가 앞서 떠나갔다. 전투는
쉬웠지만,세 명의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했다. 나는 검을 칼집에 집어넣 고는 말했다.
“익숙해져. 나도 그럴 테니까.” “살인 말입니까.”
“그래. 몬스터나 인간이나 별다를
거 없다.”
온몸을 물들인 피는 어느새 사라 졌다.
다만, 비릿한 냄새가 오래도록 코 끝을 감돌고 있었다.
사람을 죽인 것.
생각대로 아무런 망설임도,감흥 도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몬스터를 그렇게 죽여댔는데 인간 을 못 죽인다는 게 웃기는 소리였 다. 필요하다면 한다. 상대가 누구 든.
방으로 돌아간 나는 자료를 다시 정리했다.
12층에서 인간형이 나왔다. 13층 과 14층에서도 비슷한 놈들이 나온 다면,15층에서 나올 몬스터의 견적 을 잡을 수 있었다. 3파티가 전멸한 방식과 시간을 토대로 임무를 추측
해볼 수도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달라진 건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지구에서의 나와 대기실의 나는
많은 부분이 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조금의 후회도 없다. 바뀔
수밖에 없었다. 바뀌지 않았다면 죽 었을 테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돌아가면 또 적응하는데 고생하 겠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작업을 계 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