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60
60. 임무 유형, 호위(4)
“물약을 마셔도 고통이 낫지 않습 니다.”
아론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 했다.
그 발밑에는 속이 빈 물약의 유리 병이 떨어져 있다.
제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회복 방법은 없어요?”
아론은 멀쩡한 듯 보이지만, 안색 이 점차 창백해지고 있다.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길 어야 10분.
나는 주저앉은 채 다리를 두드리 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능력 같은 건 없나?”
“무슨 능력 말인가.”
“회복 말이다.”
소녀는 아론을 살피더니 머리를 돌렸다.
“미안하구나.”
“그렇군.”
간혹 NPC 중에 특수 능력이 있는 녀석이 있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광인 모 양이었다.
회복 물약은 통하지 않는다. 해독제는 가지고 오지 않았다. NPC의 회복도 불가능하다. 그렇
다면.
아론은 고개를 숙였다.
어투는 담담했지만, 목소리가 조
금씩 떨리고 있었다.
“따라오지 못하면 버리겠다고 형
님이 말씀하셨죠. 지금이 그때인 거
같습니다.”
아론은 벽에 놓인 창을 움켜쥐었 다.
”제가 시간을 끌겠습니다. 놔두고 가십시오.”
나는 세 명을 살폈다.
에디스는 시선을 돌린 채였고,제
나는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이올카 는 굳은 표정으로 아론을 보고 있었 다.
“전 같이 갔으면 좋겠어요.”
제나가 말했다.
“제나 양,방법이 없소.”
“그렇지만……
“당한 내가 약했을 뿐.”
“너는?”
“당신이 결정해요.”
이올카는 답했다.
결국,나한테 맡기겠다는 뜻인가. 나는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했다. 효율을 생각하면 버리는 게 맞다.
호위 대상에게는 자신을 지킬 만한 능력이 없다. 여기에 아론까지 더해 지면 부담이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한 명을 지키는 것과 두 명을 지키 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거기에다 아론은 곧 활동 불가 상
태가 된다.
시간을 끈다고는 하지만,시간을 끌기는커녕 바로 개죽음을 당할 것 이다.
’하아.’
나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 나서 눈 을 떴다.
아론은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물약을 한 모금 들이 킨 뒤 반쯤 남은 병을 아론에게 던 졌다. 얼떨결에 받은 아론이 말했 다.
“무슨….”
”마셔라.”
“물약은 소용이 없습니다.”
“치료는 못하지. 그래도 악화를 막 을 수는 있어.”
파우치에는 다른 물약병이 들어 있다. 나는 그것도 꺼내 아론에게 건네주었다.
“다들 가진 물약 모조리 다 꺼내.”
제나가 먼저 물약을 꺼냈다. 세 병,이올카도 주섬주섬 꺼냈다. 한 병,이올카는 마력 물약 때문에 체 력 물약을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 다. 에디스도 꺼냈다. 그렇게 약 10 개의 물약이 한 곳에 모였다.
“10분 간격으로 한 모금씩 마셔.”
“……낭비 입니다.”
“그건 내가 결정해.”
나는 이어서 말했다.
“지금부터 파티를 나눈다. 첫 번째
가 나, 에디스, 꼬맹이. 두 번째가 아 론, 제나, 이올카. 1파티의 역할은 꼬맹이를 출구로 유도하는 것. 그리 고 너희가 할 일은 우리가 꼬맹이를 탈출시킬 때까지 아론을 살리는 거 다.”
“아론 오빠를 도우면 되는 건가 요?”
“놈들은 꼬맹이를 노릴 테니, 우리 와 반대쪽으로 가면 안전한 장소를
찾을 수 있겠지.”
“혀,형님,저는……
“입 다물어.”
아론은 침묵했다.
벽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던 에 디스가 말했다.
“한,그렇게 하면 출구는 돌파하기 힘들 거야. 병사가 잔뜩 몰려 있을 텐데. 그리고 호위망에도 틈이 생 겨.”
“그렇겠지.”
이대로 파티를 나누면 호위 대상 을 두 명이서 지켜야 한다.
가용 전투력이 급감할 것이다.
“방법을 바꿀 뿐이다.’’
“방법을 바꾼다고?”
“돌파에서 잠입으로.”
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쾌청했던 하늘이 선홍빛으로 물들 고 있었다.
“밤이 되길 기다렸다가 도시를 탈 출한다.”
전투력이 반절 이하로 떨어진다 면,무력 돌파는 시도할 수 없다.
그러나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활동 인원이 줄어들면 은밀함이 생 긴다. 행동에 따라 전투를 거치지 않고 탈출할 수도 있었다.
전투를 거치지 않는다면 화력 병 기인 마법사를 데리고 다닐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화염 마법은 필연적 으로 주위의 소란을 일으킨다. 따라 서 이올카는 배제한다. 거기에 다재 다능한 제나를 끼워 넣어 변수의 대 응폭을 넓힌다.
“너희는 도시 외 곽으로 빠져. 아마 밤새 수색조가 활동할 거다. 우리가 탈출을 끝낼 때까지 아론을 데리고 적당히 도망치면 돼.”
“이런 굴욕을……
“죽으면 그따위 것도 없지.”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병사들이 골목으로 진입하고 있었 다.
아론은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 뜨렸다.
“죄송합니다.”
“착각하지 마라. 너 좋으라고 살리 는 건 아니니까.”
“예……
“너희 두 명, 만약 아론을 지킬 수 없을 때가 오면 망설이지 말고 버 려. 부상자보다는 너희 목숨이 먼저 야. 알겠냐?”
제나와 이올카는 머리를 끄덕인 뒤 물약들을 품에 넣기 시작했다.
“그럼 이동. 휴식은 끝이야.” 우리가 쉬고 있던 공터는 길이 세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들어온 아래쪽의 길. 그리고 왼쪽
과 오른쪽 길. 길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상세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이는 추격을 따돌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너희는 오른쪽으로 가라. 우리는 왼쪽으로 가지.”
“알았어요.”
제나와 이올카는 아론을 부죽한 다음 오른쪽 길로 사라졌다.
추격의 무리가 없지는 않겠지만,
우리보다는 덜할 것이다. 그들의 목 표는 꼬마를 죽이는 것일 테니.
“가자.”
소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디스가 팔짱을 풀었다.
에디스가 선두,소녀가 중간,그리
고 내가 후위를 맡은 채 우리는 골 목을 나아갔다. 길은 좁았고,담벼 락은 높았다.
“숨을 만한 곳은?”
“꽤 많아. 골목도 복잡하고 건물
안에도 들어갈 수 있어.”
“들어갈 수 있다고?”
“아까 시험해봤는데,투명한 벽은
없었어.”
’다행이군.’
건물 안에 들어갈 수 있으면 운신 의 폭이 넓어진다.
제대로 된 은신처만 찾는다면 새 벽까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 다.
골목을 얼마쯤 지나자 길이 넓어 지기 시작했다.
곳곳에 쓰레기가 널려 있었고,허 름하고 망가진 건물들이 눈에 띄었 다. 그리고 길 안쪽에서 누군가의 높은 비명과 웃음소리가 들렸다.
빈민가였다.
이런 정돈된 도시에도 역시 존재 했던 것이다.
입구 옆에 주저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났다.
시커먼 얼굴이 기름으로 번들거렸 다. 남자는 헤픈 웃음을 지으며 우 리에게 다가왔다.
정확히 말하면,우리의 중간에 있 는 소녀에게로.
“흐흐,이게 웬 떡이냐.”
소녀가 화들짝 놀라며 물러섰다.
“아가씨,길을 잃으셨나? 아니면 가출이라도 하셨나? 내가 길을 안
내•••••
남자는 앞의 에디스를 못본 듯 지 나쳤다.
에디스는 자신을 지나서 걸어가던 남자를 끌어당기더니 발을 세게 밀 어 찼다.
남자는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하 며 쓰러졌다.
퍽!
에디스가 남자의 뒤통수에 뒤꿈치 를 박았다. 코뼈가 아작나는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
남자가 사지를 부르르 떨면서 꿈 틀거렸다.
쓰러진 남자를 무시한 채,우리는 입구를 넘어 빈민가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쓰레기 조각이 바람 에 휩쓸려 날아왔다. 그와 더불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소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코 를 쥐었다.
높은 벽 사이에 빨랫줄이 걸려 있 다.
빨랫줄에는 더러운 옷가지가 널려 있었다.
그러나 거주민은 보이지 않았다.
“숨는다면 여기가 좋을 거야. 길도 미로처럼 얽혀 있고,건물도 많아.”
에디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 였다.
일단 주변이 어두워지는 밤까지 지낼 곳이 필요했다. 행동은 그 다 음이었다.
그때 메시지가 떠올랐다.
[Tips/장기 임무에 대하여] [때때로 임무 시간이 길어지는 경 우가 있습니다. 접속을 종료해도 영 웅은 계속 활동합니다.]장기 임무의 안내 메시지다.
임무가 길어지는 조짐이 보인 만
큼,시스템이 판단을 내린 것 같았 다.
“먼저 가서 살펴볼게.”
에디스는 벽의 그림자에 스며들듯 이 몸을 숙였다.
그 형체가 흐릿해졌다. 도적의 전 용 스킬인 은밀한 몸놀림의 효과였 다. 은밀한 몸놀림을 발동시킨 에디 스는 거리 안쪽으로 사라졌다.
“내 뒤에 서라.”
나는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걸었 다.
빈민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없는 편이 좋다. 이곳에도 곧 병사
들이 들이닥칠 테고, 탐문을 시작할 것이다.
뒤를 슬쩍 살폈다.
소녀는 긴장한 표정이었지만,나
름대로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 나이 대에 보일 법한 앙탈이나 아우 성은 없었다.
‘평범한 꼬마는 아니라 이건가.’ 그랬다면 따라오라는 제안을 거절
했겠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자신이 살아 날 길을 재빨리 파악한 것이다.
얼마 뒤 에디스가 돌아왔고,우리 는 안내에 따라 어느 허름한 건물에
들어섰다.
다 무너져가는 2층의 석조 건물. 창문은 못을 박은 널빤지로 가려져 있다. 내부는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어두웠다. 앞문 외에도 뒷문이 있었고,그 외에 빠져나갈 만한 샛 길도 눈에 띄었다.
’적절하군.’
설사 병사가 들이닥친다고 해도 도망칠 길이 있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에디스는 즉각 얇은 실과 돌멩이로 함정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팽팽한 실을 입구에 걸친 다음 실과 묶인
돌으로 탑을 쌓는다. 누군가 실을 건드리면 돌탑이 무너지며 소리를 내는 식이었다.
에디스의 스킬인 함정 설치의 효 과다.
도적은 이런 형태의 임무에서 가 장 빛을 발하는 클래스였다. 에디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스킬을 익혀두었다.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거로구 나.”
소녀가 반쯤 무너진 벽에 기대 주 저 앉았다.
새하얗던 드레스가 흙과 먼지로
더러워져 있었다.
나는 거실에 있던 먼지투성이 의
자를 끌어내 그 위에 앉았다. 그리 고 칼집을 무릎 위에 얹은 채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널빤지 틈새로 비 치는 하늘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나는 나갔다 올게.”
“또 나가는 건가?”
“사람 따라 역할이 있는 거지. 지
키는 건 너 혼자서 충분하잖아. 난 도망칠 길을 찾는 거고.”
에디스는 희미하게 웃은 뒤 소리 없이 사라졌다.
‘이거 원. 나 대신 제나를 넣어야
했나.’
이런 구도에서는 내가 할 일이 별 로 없다.
나는 턱을 핀 채 조용히 시간을 보 냈다. 창문 너머로 벌레 우는 소리 가 들렸다. 그렇게 10분쯤 지났을 까.
“프리아시스 알 라그나.”
나는 소녀에게 눈길을 돌렸다.
긴 은발과 황금빛 눈을 가진 소녀, 프리아시스는 나를 마주보고 있었 다.
“내 이름이다. 나는 제국의 제2 황 위 계승권자니라.”
“그래서.”
“역시 통하지 않는구나.”
프리아시스는 쓰디쓴 웃음을 지었 다.
그러나 곧 다시 결연한 표정을 짓 더니 말을 이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이상한 질문을 하는군.’
어차피 곧 헤어질 관계였다.
나는 짤막하게 답했다.
“알 거 없어.”
“나는 나의 신분과 이름을 밝혔다. 그 정도는 말해줘도 괜찮지 않느 냐.”
“말해줘 봤자,이해 못 할 거다.” “그 정도인가? 내가 모르는 다른
곳에서 왔느냐?”
“그렇다고 해두지.”
“혹시…… 넬사를 구한 용사가 그
대들인가?”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넬사.
10층의 무대였던 도시 이름이었 다.
“정답인 거 같구나.”
“어떻게 알았지?”
“꿈에서 봤다.”
“……꿈.”
“그 꿈에선 용사들이 도시를 지키 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대들인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드는구나.”
프리아시스는 머리에서 관을 벗기 더니 그것을 매만졌다.
“넬사의 생존자는 누군가 도시를 지켜줬다고 증언했다. 그들이 없었 다면 도시는 함락당했을 거 했지. 그 러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했 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프리아시스는 낮은 목소리로 혼잣 말을 시작했다.
”1년 전부터 나는 이상한 꿈을 꾸 었다. 아주 불길한 꿈이었지. 꿈에 선 모든 것이 끝나고 있었다. 천년 의 제국 황도도, 4대 가문의 대도시 도,그 밖에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 들도. 대륙의 모든 것이 불타고 있 었느니라.’’
“……”
“그 꿈의 가운데 나는 확신했다. 이대로 가면 대륙은 멸망하고 말 거 라고.”
프리아시스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대는 아는가? 현재 대륙 곳곳 에서 기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체불명의 돌림병이 창궐하고 벌 테가 들끓으며, 괴물들이 미쳐 날뛰 고 있다. 넬사의 침략도 그 일환이 겠지. 원래 그들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다.”
프리아시스는 조곤조곤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대꾸했다. “그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 이유
는?”
“……내게는 힘이 필요하다.”
“힘?”
“이 세계를 구할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