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66
66. 가치와 무가치 (4)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 다.
그들은 한쪽에서 우리와 파업을 선언한 이들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 었다. 눈길에서 의문과 호기심이 느 껴졌다.
궁금할 것이다.
과연 이들의 방법이 통하는지.
만약 통한다면,그들도 같은 선택 을 할 것이다.
“흐흐,혼자만 압삽하게 꿍쳐두려 했지? 우리도 다 안다 이거야. 우리 는 마스터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 다!”
“저 요망한 계집이 우리한테 함부 로 손을 못 댄다는 것도 알고 있지 ! 어때,깜짝 놀랐냐?”
뚱뚱한 남자가 음흉하게 웃었다. 옆의 동료도 키득거렸다.
놈들의 얼굴에서는 유열(備稅)이
엿보였다.
확실히 틀리지는 않다.
영웅에게는 마스터의 명령을 거부
할 권리가 있다.
이셀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영 웅을 건드릴 수 없었다.
에디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만둬. 우리는 목숨을 걸고 했었
어. 너희가 지금 하는 짓과는 달라.” “뭐가 다르단 거냐. 우리도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다!”
“그 말의 의미를 알지도 못하면
서……
나는 앞으로 나서는 에디스를 제
지 했다.
에디스는 미간을 찡그린 채 이마 를 붙잡다가,혀를 차고는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들은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소리 높여 웃었다. 나는 말했다.
“좋은 태도야. 그렇다면 목숨을 직 접 걸어봐라.”
“안 그래도……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지! 벨키 스트,앨런,레슬리!]이셀이 한 바퀴 빙글 돌더니 광장 의 왼쪽 문을 가리켰다.
합성소 안에서는 보라색 마법진이
기괴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렇게 세 명. 저 문으로 들어간
다,실시!]
“합성이 오?”
[맞아.]벨키스트는 말없이 웃더니 합성소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이셀은 영문 모를 눈빛으로 자신 을 바라보는 두 명에게 물었다.
[너희는 빨리 안 들어가고 뭐 해? 시간 없는데.]“아니,이 무슨……
웃기지 않을 수 없었다.
파업을 알면서 합성은 모른다니.
이야기는 들었지만, 한쪽 귀로 흘 렸음이 틀림없었다.
[안 들어가면 내가 넣는다?]이셀은 두 명의 옷자락을 붙잡더 니 던졌다.
동작은 가벼웠지만 담긴 힘은 그 렇지 않았다. 남자 두 명이 포탄처 럼 합성소를 향해 쏘아져 나가 안쪽 의 벽에 부딪혔다. 그중 한 명은 벽 에 머리를 박아 이마에서 피를 줄줄 흘렸다.
“잠깐! 기다리……
쾅!
합성소의 문이 거센소리와 함께
닫혔다.
[정말로 합성하시겠습니까?] [Yes(선택) / No]닫힌 문 틈새로 합성으로 인한 섬 광이 새어 나왔다.
[합성 완료!] [‘앨런(★)’이 빛이 되어 사라집니 다.] [’레슬리(★)’가 빛이 되어 사라집 니다.] [‘벨키스트(★★)■,레벨업! ‘야성스킬 습득!]
뚱뚱한 남자,시탄은 멍한 눈으로 합성소의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뒤,문이 열리더니 벨키스트 가 튀어나왔다.
“기분 죽이는군!”
벨키스트는 귀에 닿을 듯이 입가
를 비틀어 올렸다.
입 사이로 송곳니가 드러났다. 벨
키스트는 8명이 되어버린 파업 무 리를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자라. 더 없나? 아직 제물은 많 아 보이는데.”
“그 정도 처먹었으면 됐지. 네 순 서는 이제 끝났어.”
“그거 아쉽구려.”
벨키스트는 히죽 웃더니 합성소의
문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아무튼 좋은 경험이었소. 부디 자
주 해줬으면 좋겠군.”
표정에서는 꺼림칙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뻐하는 듯했다. 자신이 합성의 대상이 될 거라는 걱 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네리사,올리버,월터!]이셀이 다음 타자를 불렀다. 이번에도 세 명. 한 명의 대상에
두 명의 제물이다.
네리사는 차분한 걸음으로 합성소
에 들어갔다. 호명된 남자가 옆에 있던 시탄의 멱살을 붙잡았다.
“이런 망할,말이 다르잖냐! 아무 일도 없을 거라며!”
“그,그럴 리 없소. 내가 듣기론 괜 찮다고 했단 말이오!”
“그럼 아까 들어간 두 놈이 왜 안 나오는데!”
이셀이 다가가자,남자는 바닥에 주저앉더니 손사래를 쳤다.
“기다려. 나는 이놈한테 속았어. 속은 거라고!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정말이야!”
[뭔 상관이야?]이셀은 귀찮은 듯이 말하고는 남 자를 집어던졌다.
남자는 몸을 비틀며 저항했지만, 소용 있을 리 없었다. 계단으로 도 망치던 다른 사내도 곧 이셀에게 붙 잡혀 합성소 안에 처박혔다.
[합성 완료!] [’올리버(★)’가 빛이 되어 사라집 니다.] [‘윌터((★)’가 빛이 되어…….]희생자는 네 명. 남은 생존자가 여 섯 명이었다.
시탄이 허겁지겁 말했다.
“출전 거부를 풀겠다!”
[’4파티’가 조작 가능 상태가 되었 습니 다.]5파티는 해제를 알리는 메시지가 표시되지 않았다.
전멸했기 때문이었다.
[제나,로렌스!]“결국, 이렇게 되네요.”
제나가 언짢은 표정으로 합성소에
들어갔다.
출전 거부는 풀렸지만,합성은 그 치지 않았다. 로렌스가 무릎을 꿇더 니 싹싹 빌었다.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저놈이 잘못했어! 저놈만 죽이시오!”
[안녕.]이셀은 로렌스의 손을 붙잡아 합 성소에 던져넣었다.
“추, 출전 거부는 풀었잖아. 왜 안 멈추는 거야!”
시탄이 땀을 뻘뻘 흘리며 외쳤다.
‘당연하지.’
이들은 본보기였다.
지금의 방식이 합성 위주의 운영 보다 온건하다고는 하지만,공포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희생자를 두려움에 깃든 눈으로 쳐다보고 있 다.
그들은 자신이 저기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불편한 거주나 식생활에 대한 불만은 쏙 들 어가 있었다.
[에디스,리델!]제물의 숫자가 차례차례 줄어갔 다.
성장이 덜 된 벨키스트와 네리사
에게 두 명씩.
어느 정도 기틀이 잡힌 기존의 멤 버에게는 한 명씩.
몇몇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하고, 도망치거나 날뛰기도 했지만 통하 지 않았다. 애초에 제대로 된 능력 도 키우지 않은 것들이다. 반항도 형편없었다.
“이,이보쇼. 무슨 말이라도 해보 시오!”
한 남자가 내 발밑에 달라붙었다.
“무슨 말?”
“당신은 마스터와 대화를 할 수 있 다고 들었소. 이 미친 짓을 당장 멈
춰달라고 해주시오!”
합성소의 문 너머로 빛이 흘러나
왔다.
나는 시탄의 발 옆에 있는 나의 검 을 가리켰다. 내가 밀어 찬 그것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 검으로 팔 하나를 잘라. 그럼 마스터에게 말해주마.”
“뭣!”
“아까 말하지 않았나? 값싼 교육 비라고.”
그 말대로,나는 암케나에게 중지 를 요청할 수도 있다.
다만,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이
다. 남자의 입이 경악으로 벌어졌 다.
“미,미쳤나! 자기 팔을 자르라 고?”
“그렇다만.”
이미 놈들은 일을 벌렸다. 추후를 위해서라도 공짜로 넘어갈 수는 없 었다.
그러나 자신의 팔을 자를 정도로 독한 놈이 있다면,합성보다는 살려 서 키우는 편이 나을 것이다.
물론, 스스로 자신의 신체 부위를 절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남자가 결심한 듯이 팔을 자르
려다가 비명을 지르며 검을 내던졌 다. 그 팔뚝에는 한 줄기 혈선이 그 려져 있었다. 남자는 울먹거렸다.
“너무하잖은가……. 손가락도 아니 고 팔이라니!”
“목숨을 건다고 안 했냐?”
“차,차라리 당신이 내 팔을 베어
주시오. 혼자는 도저히 못하겠소.” “그건 안 돼.”
“우리더러 모두 죽으라는 거요?”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 외에도 몇몇 사람이 팔 자르기
를 시도했지만 성공하는 자는 없었 다.
단번에 자르기 위해서는 검술 스 킬이 있거나 힘 수치가 높아야 한 다. 안 되면 톱 자르듯 써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 정도 로 독한 이는 없다. 그들은 시도와 포기를 반복하면서 합성의 제물이 되어갔다.
마지막으로 한 명이 남았다.
이번 사태의 주모자였다.
[한,시탄!]“알아 ‘,
나는 합성소 안으로 들어갔다.
대기실이 2층이 되면서 합성소의 구조도 바뀌었다. 1층에는 승급소,
2층에는 합성소가 위치하는 식이었 다. 얼마 뒤 합성소에 시탄이 속이 빈 눈으로 끌려 들어왔다. 문이 닫 히자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나,나는 어떻게 되는 거요.”
“걱정 마라. 아프진 않을 거야.”
“우리는 단지……
말을 이으려던 시탄은 몸이 사방 으로 흩어지더니 빛의 입자가 되었 다.
빛의 입자가 나의 몸으로 스며들 었다. 그와 함께 합성 완료를 알리 는 메시지가 표시됐다.
[합성 완료!] [‘시탄(★)’이 빛이 되어 사라집니 다.] [‘한(★★)’,경험치 업!]미약한 기운이 전신을 타고 돌았 다.
‘간에 기별도 안 가는군.’
대상과 제물의 레벨 차이가 심했
다.
일정량의 경험치만 얻었을 뿐 레 벨은 오르지 않았다.
합성소를 나오자 서른 명이 넘던 인원이 반 가까이 줄어 있었다. 합
성으로 열 명이 죽었으니 당연한 일 이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벨트에 걸쳤다.
광장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합
성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다 시는 못 돌아온다는 점은 알았을 것 이다.
‘조금만 더 알고 시도할 것이지.’ 출전 거부는 나조차도 목숨이 위
험했던 방법이었다.
무료 뽑기의 흔한 1성일 뿐인 그
들이 이렇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 였다. 전후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들이 듣기 좋은 정보만 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어찌 됐든 그들은 좋은 교보재가 되어주었다.
생존자들은 깨닫게 되었을 것이 다. 마스터와 영웅 사이에는 절대적 인 갑을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만 거부권이지 실상은 자살에 가 까웠다.
“이걸로 25명이 됐군.”
나는 광장의 중앙을 지나쳤다.
행사는 끝났다. 시설을 살펴보러 갈 생각이었다. 숙소와 훈련소가 3 레벨이 되었고,목욕탕과 휴게실이
생겼다. 내가 걸을 때마다 사람들이 길을 비켰다.
“너,너희는 미쳤어! 괴물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외친 누군가는 군중 속에 숨어 얼 굴이 보이지 않았다.
“누가 그 말을 했나?’
벨키스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칼집에서 검이 반쯤 빠져나 와 있었다.
“그만둬라.”
“본보기는 끝나지 않은 거 아니었 소? 입만 살아서 나불대는 새끼가 남은 거 같소만.”
“내가 괜찮다는데 왜 네가 난리 야.”
“선배는 속도 편하시군. 나 같으면 아주 작살을 내버릴 텐데.”
벨키스트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먼저 가지. 다음에는 2층에서 보
겠소.”
벨키스트는 1층으로 내려갔다.
그 발걸음은 곧장 훈련소로 향했
다. 합성으로 얻은 스탯과 스킬을 시험해보려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 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대기실의 영웅들은 위와 아래로 나뉘었다.
가치 있는 자들과,
무가치 한 자들로.
[마스터, 10연 소환을 시작합니 다. 어떤 영웅이 나올지 기대되네 요!]그리고 소환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탈칵, 두루루루.] [따라란!] [Common!] [마스터 ‘암케나’님이…….]나는 투명한 바닥을 통해 1층을
내려다보았다.
1층 광장의 소환소가 열렸다. 문 안에서 하얀빛이 스며 나오고 있었 다. 대량 합성으로 영웅을 소모했으 니 인원을 보충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등급에 따라 소환되는 위치도 달라진다.
무료 뽑기의 영웅들은 1층에서. 유료 뽑기는 2층부터.
갓 소환된 남자 한 명 이 광장으로 발을 디뎠다.
1성 특유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얼 굴에 떠올라 있었다. 한 소녀가 남 자의 뒤를 이었다. 뭐라고 외치는
것 같았지만,소리가 들리지 않았 다.
덜컹.
시공의 틈이 열렸다.
솎아내기. 여기서 최소 2명이 죽 는다.
보직 배정은 솎아내기 이후에 하 려는 것 같았다. 이셀이 나타나 우 왕좌왕하는 그들을 시공의 틈에 쑤 셔 넣었다. 저들 중에서 소수만이 2 층에 올라올 수 있을 것이다.
’미쳤다고 했나.1
나는 픽 웃었다.
이곳에서 현실의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합성을 통해 서로를 잡아먹으며, 자신을 죽이려 하는 괴물과 생명을 걸고 싸운다. 그런 법칙에 적응하는 게 미쳤다는 뜻이라면 우리들은 그 렇게 된 셈이겠지.
“2층 소속이라고 안심하진 마라. 언제든 내려갈 수 있으니까.”
”그렇겠죠?”
제나가 뺨을 긁으며 웃었다.
아론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2층이 생겼다는 것은, 3층도 생 긴다는 거로군요.”
“층수는 점점 높아질 거다.”
“거기서도 등급이 갈릴 테고.” 에디스가 말을 받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대
기실은 상하층으로 나뉘어 있을 뿐 이지만,결국 피라미드 구조가 될 것이다. 니플헤임처럼. 그곳은 여기 보다 훨씬 진보된 방식이지만 핵심 은 비슷했다.
2층 광장의 정면에 있는 대문을 바라보았다.
굳게 닫힌 문 위에는 ‘차원의 틈’ 이라 써진 명패가 붙어 있었다.
나는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