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76
76. 미궁(1)
최초의 길들이기는 끝났다.
목적은 협력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것.
나는 봐주지 않고 벨키스트와 네 리사를 상대했다. 1 대 1이든 2 대 1이든 상관없었다. 상시 광폭화를 발동시켰고 약간의 틈이 보이면 바
로 때려눕혔다. 두 명 중 하나가 죽 기 직전까지 간 적도 비일비재했다.
“조금 심한 거 아니에요?”
“재네들이 원하는 일을 해주는 거 야.”
이올카의 걱정스런 물음에 나는 웃었다.
아직 정식 등반까지는 여유가 남 았다. 암케나도 1파티를 곧장 출전 시키지 않고 있었다. 신규 멤버가 적응할 시간을 주려는 것 같았다. 나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두 명의 협력은 날이 갈수록 정교 해졌다.
근거리의 벨키스트와 중원거리의 네리사. 서로의 강점을 활용하고 약 점을 메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둘은 상대에게 욕 을 퍼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검을 늘어뜨렸다.
두 명은 대련장 구석에 쓰러져 있 었다. 이번 대련에 두 명이 버틴 시 간은 3분.
처음에는 30초도 못 버틴 것을 보 면 괄목한 만한 성장이다.
“다음 대련부터는 제나도 합류한 다.”
“무슨 뜻이오.”
“너희도 팀을 이루듯이,우리도 팀 을 이룬다는 거지.”
두 명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표정 풀어라. 딱히 멤버를 고정한 다는 게 아니다. 나와 제나, 그리고 너희 두 명. 서로 섞어가면서 싸운 다. 멤버의 특성과 성격을 파악해서 협력점을 찾아.”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군. 난 1파 티에 오면 개인의 능력 위주로 싸울 줄 알았소.”
벨키스트가 낮게 말했다.
“5층,10층,15층. 모두 선배의 능 력이 돋보였소. 솔직히 다른 사람은 눈에 안 차더군. 이런 훈련을 하는 이유가 뭐요?”
“네 눈은 옹이구멍이냐? 나 혼자 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
클리어 당시의 영상을 봤다고 해 도,직접 체험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혹은 나만 집중 해서 봤거나.
나는 체감하면서 말을 이었다.
“개인의 능력은 중요하다. 아무리 팀워크가 잘 맞아도 개인이 약하면 부족하지. 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
지야. 팀워크가 안 되면 개인이 강 해도 임무는 실패한다.”
“그것만이 전부인가?”
“물론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다면,
혼자서 임무를 끝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나도 포함해서 여기에 없는 것 같 군. 하소연 끝났으면 일어나. 우린 시간이 별로 없어.”
“오빠 말대로 저도 갑니다.”
제나가 대련장에 난입했다.
벨키스트와 네리사는 주춤거리며
일어섰다.
“너무 투덜거리지 마. 어느 정도
기틀이 잡히면 지겹도록 개인 훈련 을 하게 될 테니까.”
“기다리겠소.”
벨키스트가 검을 굳게 쥐었다. ‘나쁘지 않군.’
두 명의 성장 속도.
그리고 2 대 2로 대련을 할 수 있
게 된 지금의 상황.
꽤나 마음에 든다. 그 전까지는 이
올카를 제외하면 항상 홀수였기 때 문에 이런 방식의 훈련은 하지 못했 다. 2파티의 멤버를 넣어봤자 파티 단위로 싸우기에 효율도 없었다.
“간다.”
나는 검을 겨누고는 그대로 뛰었 다.
뒤에서 제나의 화살이 옆을 스쳐 갔다.
훈련은 저녁을 지나 깊은 밤까지 이어졌다.
오전의 기초 훈련과 오후 약간의 무기술 훈련을 제외하고 우리는 모 든 시간을 대련으로 보냈다. 한번 결판이 날 때마다 멤버를 바꾼다. 내가 들어간 쪽이 거의 이긴다는 부 작용이 있었지만 두 명은 차츰 1파 티에 어울려 갔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이번에는 이올카를 끼워 넣어 진 형 훈련을 시작했다.
이올카와 제나의 취약점. 이를 방 어하는 법. 강점을 이용하는 법. 나 는 진형 훈련을 하는 동시에 내가 분석한 두 명의 활용법을 벨키스트 와 네리사에게 적극적으로 지도했 다.
“알면 알수록 놀랍습니다. 전술 하 나하나가 정교하면서 효율적이군 요.”
훈련이 끝난 어느 저녁.
네리사가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 다.
“무얼 하다 오셨는지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농부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거짓말은 바꾸시는 편이 좋겠
죠
“그런가.”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튿날 저녁.
선발전이 끝난 지도 적지 않은 시 간이 흐른 때였다.
[1 파티,1층 광장으로 집합!] 이셀의 높은 목소리가 훈련소에울려 퍼졌다.
나는 나뭇조각이 묻은 검날을 천
으로 닦은 다음, 개인 훈련장을 나 왔다. 1파티의 네 명이 기다렸다는 듯 훈련소 입구에 모여 있었다.
’의도는 명백하군.’
이제 와서 저층에 갈 이유는 없다. 벨키스트와 네리사는 1파티에 오
기 전 14층을 졸업했다.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감각도 끌
어올린 상태.
남은 것은 등반이었다.
“오래 기다렸소.”
벨키스트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
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나가서 싸우는 게 좋으냐?” “시시한 투덕거림이나 목각인형을
패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오.” “어쨌든 1층으로 집합이다. 놀러
가는 게 아니라는 점은 당연히 알겠 지. 준비하도록.”
2층의 훈련소를 떠나기 전,아론 이 다가왔다.
“무사하십시오, 형님.”
“말 안 해도 그럴 거다.”
나는 손을 팔랑 흔들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광장에는 사람이 잔뜩 모여 있었 다. 대부분은 얼굴을 본 적도 없는
낯선 놈들이었다.
“이것들은 뭐냐?”
“상하층이 나뉜 이후 소환된 자들 입니다.”
네리사가 짧게 답했다.
‘3 세대로군.’
최초의 영웅들인 나와 제나, 에디 스가 1세대.
공략 문서를 건넨 다음 뽑힌 영웅 인 벨키스트와 네리사가 2세대라고 하면,상하층이 나뉜 이후 소환된 저들은 3세대였다. 그들은 경계심과 두려움이 반쯤 섞인 눈길로 우리를, 그중에서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모르시겠지만, 이상한 소문이 퍼 져 있는지라……
“그 정도는 알아.”
탐험 던전에서 복귀한 이후, 나는
1층에 거의 내려가지 않았다. 내려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암
케나는 상하층이 나뉜 다음에는 2 층의 전투직에게 요일 던전을 보내 지 않았다. 일종의 구별이었다.
“……건방진 놈.”
무리에 섞인 누군가 중얼거렸다. 악의에 찬 눈빛들이 벨키스트를
향하고 있다.
벨키스트는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흘려넘기더니 히죽 웃었다.
“어디서 개가 짖는군. 덤빌 거면 나와라.”
“나대지 마.”
나는 검을 뽑으려는 벨키스트를 물린 다음, 시공의 틈을 바라보았 다.
문은 열려 있었지만,중간 통로를 사람들이 가로막고 있다. 갑자기 나 타난 늙은 남자가 내 앞에 나섰다.
“저기, 한 이스라트 님 맞으십니 까! 전 나흘 전에 이곳에 온 멜커드 라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게 부 탁이 있습니다! 저는 심한 지병을
앓고 있사온데, 생활이 많이 힘듭니 다. 부디 2층에……
“비켜.”
“아구구구!”
나는 남자를 밀쳤다.
남자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엉덩
방아를 찧었다.
쓰러진 남자를 몇몇 사내가 끌고 나갔다.
‘지병.’
되도 않는 구라를 치고 있다. 대기실의 회복력은 상상을 불허한
다. 죽지만 않으면 어떤 상처나 병 이라도 몇 초 만에 완치시킬 수 있
다. 암이든 요통이든 일거에 되돌아 올 것이다.
’10일 정도인가.’
나는 1층에 내려가지 않은 시간을 계산했다.
두 명을 교육하느라 바빠 딱히 살 펴볼 사이도 없었다. 그럴 필요도 못 느꼈고.
그러나 10일 사이에 1층의 분위기 가 많이 바뀐 듯한 느낌이 든다. 탐 험 던전에 갈 때도 비슷한 무리가 몇 있었지만 저렇게 나서지는 않았 다.
[이것들이 모여서 뭐해? 1파티 막
지 마! 마스터가 기다리잖아!]
이셀이 손을 휘이휘이 젓자 분수
대 옆의 남자들이 물러났다.
그들은 흩어지면서 벨키스트와 네
리사에게 기묘한 시선을 던졌다. 어쨌든 갈 길이 멀다.
나는 네 명과 함께 시공의 틈으로
들어갔다.
문이 덜컹 닫혔다. 나는 단검집을 살펴보고 있던 네리사에게 말했다.
“언제부터 저했지?”
“정확한 시기는 상하층이 나뉜 다
음입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전조가 보였습니다.”
“전조라뇨?”
이올카가 눈을 깜빡였다.
나는 가볍게 웃고는 답했다. “상하층을 나눈 부작용이라는 거
지.”
“이상한 사람들이긴 했네요.”
“뭐,신경 쓰지 마라. 지금은 임무
가 더 급해.”
아직 확답은 할 수 없다.
저들이 한 것은 나를 구경나온 것
에 불과했으니.
구경보다는 염탐에 가까웠지만 말 이다.
[메인 던전, 현 도전 층수는 16층 입니다.] [10초 뒤 문이 열립니다. 준비하 세요!]왼쪽의 거울로부터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나는 칼집에 오른손을 얹었다. “필드에 진입하면 내 지시를 따른
다. 이의는?”
“없소.”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울에서 흘러나온 빛이 시공의 틈 전체를 감쌌다.
내가 감긴 눈을 떴을 때, 낯선 공 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임무 목표를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플로어16
[임무 유형 – 탐색]
[목표 – 지정된 장소를 수색하
라!]
모두의 시선이 한 곳에 향하고 있 다.
그들도 나와 같이 임무 목표를 보 고 있는 것이다.
벨키스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탐색이라니. 이런 임무는 처음이 군.”
“딱 한 번 해본 적 있긴 해요. 6층 에서요. 별로 어려운 임무는 아니었 죠. 안 그래요,오빠?”
“6층과는 달라. 일단 봐야겠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필드는 고성. 아니,저택인가?’
우리는 고급스러운 무늬의 카펫을 밟고 서 있었다.
등 뒤에는 출입구로 보이는 듯한
대문이 설치되어 있다. 벽에는 각종 초상화와 장식들이 있었고,높은 천 장에는 샹들리에가 보였다. 그 앞으 로는 좌우로 갈라진 계단이 눈에 띄 었다. 계단의 끝은 양측의 복도와 이어져 있다.
대충 살펴보자면 거대 저택의 입 구인 듯했다.
“이곳은……
네리사의 눈썹이 팔자를 그렸다. “아는 곳이냐?”
“저도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확실 해지면 말씀드리죠.”
“그래라.”
두 번째의 탐색 임무.
연계 퀘스트가 발동했다는 의미였 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파티 원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이 장소를 수색한다. 어 딘가에 다음 층으로 가는 출구가 있 을 거다. 물론 저 문은 아니겠지.”
나는 등 뒤의 대문에 손을 뻗었다.
투명한 벽이 손가락의 전진을 막 았다.
“네리사가 먼저 가라. 은신 상태로 정찰하다가 특이점을 발견하면 와 서 보고해.”
“예.”
“나머지는 진형을 갖춰 전진한 다.”
스릉.
나는 검과 방패를 뽑아 들었다. 각자 무기를 꺼내는 소리가 저택
의 텅 빈 홀에 나직이 울렸다. ‘아무도 없군.’
버려진 저택은 아니다.
청소는 제대로 되어 있었다. “가겠습니다.”
네리사가 내게 목례한 다음 자세 를 낮췄다.
네리사의 윤곽이 흐릿해졌다. 기
초 은신 스킬인 은밀한 몸놀림의 효 과였다. 네리사는 소리 없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 왼쪽 복도로 사라졌다.
“우리도 왼쪽으로 간다. 수색 대형 으로.”
손짓하자 멤버가 앞뒤로 흩어졌 다.
내가 선두,제나와 이올카가 중간, 벨키스트가 후방이다. 우리는 대형 을 갖춘 채 계단을 타고 왼쪽 복도 로 들어 갔다. 창문 밖은 깜깜했지만 군데군데 촛불이 켜져 있어 시야는 어둡지 않았다.
“좀 음침하네요. 귀신 저택 같은
데. 왜 사람이 아무도 없죠?”
제나가 불안한 듯이 말했다. “가보면 알겠지.”
나는 복도를 지나치면서 보이는
문을 건드렸다.
어김없이 투명한 벽이 가로막고 있다. 열리는 문은 없었다.
‘6층과 같은 탐색 임무지만 사정 이 다르다.’
일단 필드의 규모부터 차이가 났 다.
복도에 들어온 지 15분. 우리는 여전히 같은 복도를 걷고 있다.
이올카가 혀를 내둘렀다.
“여기, 엄청 넓지 않아요? 걸어도 끝이 안 나는데요.”
“구조가 독특하군. 홀과 복도의 규 모가 들어맞지 않소. 바깥에서 보자 면 이상한 형태겠지.”
“의외로 당신,똑똑하네요.”
벨키스트가 얼굴을 찌푸렸다.
“마법사,뭐라고 했나?”
“아,아무것도!”
“조용. 함부로 떠들지 마라.”
세 명이 입을 다물었다.
5분을 더 걷자 복도의 끝이 드러 났다.
복도는 세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일반 저택이 이런 구조를 취할 리 없다. 사람은 없었고,창문 밖은 어 둡기는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다. 이곳은 정상적인 공간이 아니었 다.
‘……미궁인가.’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귀찮은 임무가 걸려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