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77
77. 미궁(2)
“미궁이요?”
제나가 눈을 깜빡거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
었다.
“평범한 저택이 아니란 뜻이지. 통 로가 미로처럼 꼬아져 있을 거다.”
일반적인 탐색 임무라면 필드를
몇 번 순회하는 것으로 끝이지만, 미궁 필드에서 탐색이 등장하면 꽤 골치가 아프다.
‘지정된 장소에 가지 못하면 나갈 수 없다.’
그곳은 아마 출구일 가능성이 높 았다.
혹은 미궁의 다음 층이거나. 후자 라면 이 미궁 자체가 연계 스테이지 라는 의미였다. 20층까지 한 장소에 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이올카가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죠?”
“일단 대기해. 네리사가 돌아을 때
까지.”
네리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갈림길 중 하나로 먼저 들어간 듯했 다.
멀지 않은 시기에 곧 돌아올 것이 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세 명의 멤버도 각각 자세 를 풀었다.
“이런 곳은 또 처음이네요. 사람도 없고 길도 이상하고. 다른 임무는 앞에 나타나는 적만 처리하면 돼서 편했는데.”
제나가 입을 비죽 내밀었다.
“동감이오. 재미없군.”
“임무를 재미로 하냐?”
“어찌 지루하지 않겠소. 16층부터
는 보다 강한 적과 싸울 줄 알았소 만.”
임무 형태가 조금 변하기는 했다. 그 전의 서브 스테이지가 길어도
10분 내외로 끝나는 단기형이었다 면,16층부터는 구성이 바뀌었다. 탐색을 하다 며칠이 지나도록 미궁 에서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아예 거기에 갇혀 파티가 전멸하기도 했고.
“자세는 플되 긴장은 놓지 마라. 적이 아예 없지는 않아. 분명 이곳
에 있다.”
“그거라면 다행이오만.”
벨키스트의 검이 서늘하게 빛났 다.
그리고 5분 뒤,네리사가 중앙의 길로부터 복귀했다.
네리사는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나 는 바로 말을 꺼냈다.
“앞은 어떻지?”
“가운데 복도로 가본 결과, 갈림길 은 한 장소로 이어져 있는 거 같습 니다. 그렇게 복잡한 구조는 아닙니 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적이나 함정은 없는 거 같습니다 만,약간 이상한 것이……
네리사는 표정을 흐렸다.
나는 눈썹을 좁혔다.
“이상한 것?”
“제가 판단하기는 어렵더군요. 일 단 가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그럼 직접 봐야겠군. 모두 기상.’’ 세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리사가 맨 앞에 섰고,그 뒤에
우리는 기존과 같은 대형을 이루어 가운데의 통로를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로가 끝났다. 통로 끝에는 원형의 작은 홀이 위
치하고 있다.
네리사의 보고대로 우리가 나온 입구 양옆에는 각각 왼쪽과 오른쪽 통로가 있었다. 세 갈림길은 이 장 소로 합쳐지는 구조였던 것이다.
‘복잡한 미로는 아니었군.’
만약 각기 다른 장소였다면 한 번 의 선택 미스로 수 시간을 날릴 수 도 있다.
장기 임무를 하기에는 우리가 보 유한 물자가 적합하지 않았다.
나는 홀을 둘러봤다.
곳곳에 고급스러운 장식품이 놓여 있고 바닥에는 붉은 카펫이 깔려있
다. 창문으로 비치는 풍경은 여전히 칠흑색이었다. 우리가 나온 입구 정 면에 또다른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홀의 구석에 누군가 엎드 려 있었다. 네리사가 내게 속삭였 다.
“저 자입니다. 의식은 있는 거 같 지만,이쪽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상태도 이상하더군요.”
“내가 가보지.”
나는 검을 늘어뜨린 채 놈에게 다 가갔다.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여자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점차 거리가 가까워졌 다.
” 으……흐……흐….”
하녀복을 입은 그 여자는 이상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도 미동조차 하지 않 는다. 입에서 내는 소리는 웃음 같 기도 울음 같기도 했다.
“으웩!”
여자가 입에서 무언가를 토해냈 다.
검은 피. 걸쭉하고 탁한 그 액체는 카펫을 검게 물들였다. 여자는 엎드 린 채 신음과 토혈을 반복했다. 잠
깐 지켜보던 나는 여자에게 등을 돌 렸다.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이상 없 어.”
일단 적을 알리는 표시창이 나타 나지 않는다.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지만,아직 은 우리에 게 무해한 NPC인 것 같았 다.
벨키스트가 검을 여자에게 겨누었 다.
“수상하군. 죽이는 편이 낫지 않겠 소? 여자를 죽이는 게 싫다면 내가 하겠소.”
“냅둬. 수상한 건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다?’
안 좋은 이벤트가 발생하는 함정 패턴일 확률도 있다.
이득으로 작용할 때도 없지 않지 만,통계상 이런 경우는 좋은 일보 다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렇다면 알겠소.”
벨키스트는 담담하게 말하고는 검 을 돌렸다.
반면 제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여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엄청 괴로워 보이네요. 심한 병이
라도 걸린 것 같아요.”
“도와주기라도 하게?”
“뭐,그럴 수는 없지만요. 저도 코
가 석 자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진을 지시했다.
이번에는 통로가 하나뿐이었다. 네리사가 저만치 앞서갔다.
홀을 나가기 전,나는 뒤를 돌아보 았다.
여자는 여전히 엎드려 있다. 어깨 가 희미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데.’
여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검은 피를 토하는 저 증상을 나는
마스터 시절,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저 상태는 오염이라고 불린다. 수
많은 상태이상 중에서도 최악에 속 하는 저주였다. 마스터였을 때는 대 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이제는 사 정이 다르다. 기회가 되면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복도를 계속 나아간다.
그렇게 10분쯤 걷자 재차 홀이 나
왔다. 최초의 홀과 동일한 구조였지 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정 면에 통로가 보였다. 이을카가 눈살
을 찌푸렸다.
“슬슬 지루해지는군요.”
“어디 길이 있지 않을까요?”
제나가 홀에 있는 문고리를 붙잡
고 당겼지만,열리지 않는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제나는
작게 혀를 찼다.
“쳇.”
“너무 불평하지 마라. 곧 나올 테 니까.”
이번 미궁은 어려운 구성이 아니 다.
뻔한 일직선 루트였다. 오래 걸리 지 않아 다음 층으로 향하는 출구가
드러날 것이다. 다만 그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다. 아무것도 일어 나지 않을 리는 없다.
이변은 세 번째 홀을 거쳐 네 번째 홀으로 가려고 했을 때 일어났다.
선행 정찰을 맡고 있던 네리사가 평소와는 다른 표정으로 내게 다가 온 것이다. 눈빛에 경계심이 어려 있었다. 네리사는 짧게 말했다.
“적입니다.”
벨키스트가 검을 매만졌다.
제나는 활에 화살을 메겼고 이올 카는 호흡을 가라앉혔다.
“다음 홀에 있겠군.”
“예. 숫자는 일곱. 갑옷을 입었고, 검과 창,석궁으로 무장하고 있습니 다.”
“너도 합류해라.”
네리사는 세검을 뽑아 들고는 제 나 옆에 섰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홀에 들어가는 즉시 적을 기습한 다. 궁수는 제나와 네리사가,검사 와 창수는 나머지 셋이 맡는다. 지 금부터 전투가 시작될 때까지 아무 소리도 내지 마.”
네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에는 미약한 긴장이 떠올라
있다. 나는 발걸음을 최대한 죽인 채 통로를 나아갔다. 통로가 끝나는 부분이 바로 앞에 있었다. 그곳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방패가 걸쳐진 왼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돌격 타이밍을 알리는 신호였다. ‘셋. 둘.’
마지막 손가락을 접었다.
‘하나.’
함성은 지르지 않는다.
나는 속도를 올려 홀으로 빠져나
왔다. 벽에 기대어 수통을 들이키고 있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놈
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쳤다.
[인간 병사 Lv.14] X 7적을 알리는 메시지가 표시됐다.
’빙고.’
나는 왼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집 어던졌다.
푹.
단검이 병사의 목에 파고들었다. 병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고
꾸라졌다.
그 옆에서 창을 겨누려던 병사의 목이 피를 뿜었다.
빠르게 나아간 벨키스트가 검을 휘두른 것이다. 벨키스트는 한 놈의 목을 자른 그대로 몸을 한 바퀴 돌 려 다른 놈의 가슴을 꿰뚫었다. 검 의 궤적을 따라 핏물이 흩날렸다.
핑!
석궁을 장전하고 있던 병사의 오 른눈에 화살이 박혔다.
화살깃까지 박혔으니 뇌에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병사가 선 자세로 엎어졌다. 거의 동시에 날아간 두 번째 화살이 다른 석궁수의 심장을 꿰뚫었다.
일곱 명을 정리하는 일에는 나까
지 필요하지 않았다.
병사의 대열에 파고든 벨키스트와
네리사가 검을 내지를 때마다 여지 없이 한 명씩 쓰러졌다. 그 뒤로 제 나의 화살이 빈틈을 노렸다.
나는 홀을 빠르게 둘러봤다. 이곳은 지금까지 거쳐온 작은 홀
이 아닌,처음 이곳에 소환됐을 때 와 비슷한 규모의 대형 홀이었다. 정면에 위층으로 통하는 계단이 보 였다.
’후방에는 대문이 있고.’
벨키스트의 검이 마지막 한 놈의
가슴을 후벼팠다.
나는 놈의 숨통이 끊긴 것을 확인 하자마자 진열장 위에 놓여 있던 유 리구슬을 계단으로 집어 던졌다.
쨍강!
투명한 벽에 부딪힌 유리구슬이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졌다.
“이올카. 대문 방향으로 1단계 화 염 마법 준비.”
“네?”
“하라면 해.”
“아,알았어요.”
이올카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 고는 시동어를 읊었다.
불길이 이올카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영창을 중얼거릴 때마다 몸을 감싼 불길이 더욱 짙어졌다. 벨키스트와 네리사가 한 발짝 물러 섰다.
덜컹!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홀의 대문 이 열렸다.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십의 병사가 일제히 들이닥쳤다.
[인간 병사 Lv.14] X 18 [인간 기사 Lv.17] X 5이올카의 눈에서 붉은빛이 번뜩였
다.
【발화하라!】
영창 종료.
병사의 무리를 화염이 일직선으로 덮쳤다. 불길을 직격으로 맞은 병사 가 통구이가 되어 타올랐다. 매캐한 연기와 살 타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벨키스트,네리사. 오른쪽!”
화염이 진형의 중앙을 휩쓸었다.
적은 좌우로 흩어지고 있었다. 나 의 지시에 따라 벨키스트와 네리사 가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왼쪽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나는 다급히 달 려 나오던 기사의 머리통을 방패로 후려쳤다.
퍽!
휘청거리는 기사. 나는 놈이 입은 갑옷의 틈새에 검을 쑤셔 넣었다. 뼈가 뚫리고 내장이 파이는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기사는 말없이 쓰 러 졌다.
기사 옆에서 병사가 내게 창을 찔 러 왔다.
나는 놈을 무시하고서 그 뒤의 병 사의 목에 검끝을 꽂았다. 창을 찌 르려던 병사는 화살에 머리통에 뚫
려 엎어졌다.
진형을 갖춘 채로 우리를 덮쳤다 면 조금 귀찮아졌겠지만,이올카의 불길이 완벽히 적들 사이를 차단시 켰다. 나와 제나는 화염 속에서 허 우적거리는 병사를 한 놈씩 격살했 다.
오른편도 상황은 마찬가지.
벨키스트와 네리사는 아직 화염 내성을 익히지 못했지만,그들도 고 립되어 있는 적을 처리하는 것은 어 렵지 않았다. 병사의 시체가 차곡차 곡 쌓여갔다.
,,크아아아!”
몸에 불이 붙은 기사가 검을 휘둘 렸다.
나는 방패로 이를 막고는 검을 강 하게 휘둘렀다. 열로 휘어진 철판이 잘려나가며 속살에서 피가 뿜어졌 다.
이놈이 마지막.
새로 나타난 23명의 적은 5분도 안 되어 전멸했다. 나는 즉각 단검 을 계단으로 던졌다. 이번에 던진 단검은 계단의 카펫에 틀어박혔다.
“상황 종료. 정비해라.”
나는 검에 묻은 피를 커튼에 닦아 냈다.
이올카가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어떻게 알았어요?”
“뭘 말이냐?”
“두 번째 적이 나타난다는 거요.” ‘그 얘기인가.’
다른 멤버도 심정은 비슷한지 내 게 호기심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나는 검의 피가 사라진 것을 확인 한 다음,칼집에 집어넣었다.
“간단한 확인이다. 벽의 특성을 이 용했을 뿐.”
투명한 벽에는 몸은 물론, 손에 닿 은 물건도 통과할 수 없다.
홀의 계단은 다음 층으로 향하는
명백한 통로였으나 벽이 쳐져 있었 다.
“첫 번째 적을 전멸시켰을 때 벽이 그대로였잖냐.”
네 명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떠올 라 있다.
나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억지로 이해할 필요는 없어.” 게임상의 룰을 이용한 넘겨짚기였
다.
픽 미 업이라는 게임의 존재를 모 르는 저들은 활용하기 힘들 것이다.
정비를 끝낸 후, 나는 계단을 바라 보았다.
위로 이어진 계단의 끝은 어둠으 로 뒤덮여 있었다.
’저기로 가면 클리어겠군.’
다만 출구가 아닌 계단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음 층에서도 비슷한 임무가 반 복된다는 의미였다.
나는 파티원을 보고는 말했다. “17층에 올 때는 준비를 조금하고
와야겠다.”
“동의하오. 시원찮은 임무인 것 같 구려.”
“다 때려 부수는 게 네 취향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피식 웃고는 계단을 올라갔 다.
계단 꼭대기의 어둠에 발끝이 닿 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 )’,레벨업!] [보상 – 50,000G] [MVP – ‘이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