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80
80. 이어지는(2)
화르륵!
사방으로 불길이 퍼진다.
불길은 철책을 붉은색으로 달구면
서 내게 접근했다. 살갗에 뜨거움이 와 닿는다. 화염 저항을 가진 내게 도 심상치 않은 열기였다. 하지만.
나는 오른쪽으로 가볍게 스텝을
밟은 다음 뛰어들었다.
불길이 나를 쫓아왔으나 이미 늦
었다. 검날이 이올카의 목덜미에 닿 아 있었다. 이올카가 언짢은 표정으 로 손을 내젓자 화염이 사라졌다.
“속도가 느려. 좀 더 빠르게 할 수 없나?”
“화력부터 세게 하라고 하지 않았 어요? 뒤를 봐준다면서.”
“그렇게도 말했지만,익혀둬서 나 쁠 건 없지.”
나는 빙긋 웃으며 검을 거두었다. 방금으로 10승째. 몇 번의 대련으
로 느낀 점은 이올카는 혼자 싸우면
젬병이라는 것이었다. 꾸준한 스탯 상승으로 마법의 위력은 최초보다 두 배가량 늘었지만 컨트롤은 여전 하다. 변변찮은 방어 마법이 없기에 속도전으로 나가면서 틈을 노리면 그만이었다.
‘영창류 스킬을 익힐 때가 됐는 데.’
현재의 이올카에게는 다중영창이 나 고속영창 같은 스킬이 필요하다.
고속영창을 쓰면 캐스팅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고,다중영창 을 배우면 화염류 마법에 염동력을 섞어 유연성을 꾀할 수 있다. 내가
조언한 목표이자 이올카도 동의한 사항이었다.
“다음은 나요.”
대련장 밖에 서 있던 벨키스트가 안으로 난입했다.
그는 이미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쉬는 시간을 안 줘, 너희들은.” “보고 있느라 좀이 쑤시는 줄 알았
소.”
“알았다,알았어. 둘 다 와라. 시간 낭비하기 싫으니까.”
벨키스트는 이올카를 보더니 눈썹 을 올렸다.
“마법사와는 같이 싸우기 싫은
데.”
“네리사 양도 싫고, 저도 싫으면, 누구와 같이 싸우면 좋아요?”
“대답하기 싫군.”
“까칠하긴!”
두 명은 투덜거리면서도 태세를 갖췄다.
벨키스트도 며칠 전 화염 저항을 터득한 상태였다. 최소한 이올카의 마법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자세를 잡았다.
“가겠소.”
벨키스트의 눈이 가라앉았다.
순간 그 몸이 흩어지더니 왼쪽으
로 쇄도했다. 오른쪽으로는 소리도 없이 생겨난 이올카의 화염이 파고 들고 있었다. 얼핏 어설픈 합격으로 보이지만 타이밍이 정확하다. 나는 방패를 꺼내 들고는 다가올 공격을 기다렸다.
그렇게 오전의 일정이 끝난 뒤.
[스킬 각성!] [’벨키스트(★*)’의 “하급 검술’ 이 Lv.5가 되었습니다!]벨키스트는 무기술 레벨을 5로 끌 어을렸다.
상당한 성장 속도였다. 재능도 우 수하지만,그에 따른 노력도 뒤처지 지 않는다. 의지와 인내심도 강하 다. 빠르지 않을 수 없었다.
’슬슬 나도.’
나의 무기술 스킬도 레벨 7에 다 다른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오를 때가 되었다는 것은 느낌상 으로 자각하고 있다. 약간의 계기만 주어진다면 8을 돌파하고,중급 무 기술에 한 발을 걸치게 될 것이다.
무기술은 하급과 중급 사이에 막 대한 차이가 있다.
또한,단련된 신체와 더불어 무기
술은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었다. 아 무리 잡스러운 스킬이 많아도 무기 술이 낮으면 속 빈 강정일 뿐이다.
퉁!
사격장에서는 제나가 활을 당기고 있다.
여태껏 사용한 작은 활이 아닌,상 체 전부를 가리는 커다란 활을 쓰고 있다. 시위를 당길 때마다 육중한 소리가 울렸다. 화살은 100m 밖의 표적에 날카롭게 꽂혀 들었다.
단궁을 쓸 때와는 다루는 방식이 다르다.
제나의 중지는 피로 젖어 있었다.
두껍고 굵은 활시위를 당기다가 상 처가 난 것이다.
퉁!
두 번째 화살이 시위 정중앙에 꽂 혀 들었다.
저격에 가까운 정확하고 정교한 솜씨. 따로 누가 가르치지 않았는데 도 방식을 깨우쳤다. 위력은 단궁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머지않아 강궁 스킬을 익힐 것이다.
훈련장 한쪽의 쉼터에서는 아론과 어셔가 창과 칼을 부딪치며 싸우고 있었다.
두 명 다 무기술 레벨은4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벨키스트와 같았 지만, 지금은 추월당한 상태였다.
“확실히 체감되는군.”
의자에 앉고 있던 벨키스트가 비
릿하게 웃었다.
벨키스트는 무기술 외에 통찰력의 레벨도 끌어올렸다.
“다 보이는구려. 나라면 5분 안에 이길 수 있겠소.”
“한 번 올랐다고 자랑하긴. 아직 멀었다.”
“뭐,그렇겠소만.”
2층의 훈련소에 있는 대련장은 하
나.
2파티도 같이 사용하는 것이기에 언제까지고 우리만 독점할 수도 없 다. 시간에 따라 나눠쓰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은 우리가 사 용한다.
1파티의 레벨업이 이미 끝났기 때 문이다. 나는 작게 속삭였다.
‘상태창._
현재 내 레벨은19.
힘은 40을 익히 넘겼고,체력과 민첩은 그에 가까워졌다.
화염 저항과 침착성,광폭성이 1 레벨씩 업.
3성 승급과 전직의 분기점인 20까
지는 채 1레벨도 남지 않았다.
나는 손에 든 물컵에 힘을 주었다.
우그적.
철로 만들어진 컵이 종이처럼 꾸 깃하게 접혔다. 나는 철 쪼가리가 된 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기다리면 복구될 것이다.
’조금 이상하군.’
2성으로 승급했을 때부터 성장치 가 5와 6을 오가고 있다. 5는 3성의 평균 수치. 그리고 6은 4성의 평균 수치였다. 이미 나의 종합 스랫 합 산은 2성의 것이 아니었다. 다른 마
스터가 나의 스랫을 본다면 조작이 라며 비웃을 정도로.
30kg에 가까운 모래주머니를 달 지 않으면 운동이 되지 않는다.
100m 달리기 기록은 8초에 근접 했다. 물구나무서서 팔굽혀펴기를 쉼 없이 할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는 인간의 한계에 가까운 신체였다 면,이제는 명백하게 인간을 벗어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무언가 다른 것이 느껴진다.
그걸 깨달은 시기는 2성으로 전직
한 직후. 예전에는 검과 방패를 같 이 쓰는 게 자연스러웠다면, 이제는 조금씩 부자연스러워지고 있다.
’방패를 버릴 때가 됐나.’
나는 방패와 적성이 맞지 않는다. 방어에 관련된 스킬을 배우지 못
한 것만 봐도 확실했다. 20층을 뚫 고 여유가 생기면,스킬을 분리해야 할 것 같았다.
[2파티, 광장에 모여!]2파티를 부르는 이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제에 이은 지명. 우리처럼 18층 뺑뺑이를 돌리려는 듯했다.
“출전까지 얼마 안 남았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구겨졌던 컵은 멀쩡해져 있다. 벨
키스트가 따라 일어났다.
”2파티가 적당한 레벨이 되면 바
로 가겠지. 후회하지 않게 준비해 둬.”
“선배도 조심하시오. 내게 따라잡 히면 곤란하니.”
“자신감 하나는 마음에 드는군.” 나는 씨익 웃고는 칼집에서 검을
빼냈다.
이올카는 마법 전당에 들어가 있 다. 도서관에서 캐스팅과 관계된 책
을 찾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밤.
나는 무기술 레벨 8을 돌파했다. 내가 훈련하는 도중에도 등반 준
비는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이번에 만들어진 장비는 D+ 랭크
의 가죽 갑옷. 재료의 수준을 따지 면 꽤 양호한 등급이었다. 가죽 갑 옷은 여러 벌이 만들어져 1파티와 2
파티에 분배되었다. 그 외에 암케나 는 투척용 단검이나 해독제, 회복 물약 같은 소모품도 꾸준하게 제작 했다.
2층에는 속속들이 쓸모있는 인재 가 올라왔다.
먼저 회복 물약을 만들 수 있다는 약제사. 그녀는 마법 전당으로 배속 됐다.
다음으로는 교관이 된 디카 녀석 도 2층에 다시 복귀했다. 디카는 내 게 찾아와 교관으로 추천해줘서 고 맙다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그 밖에도 보조직의 조수 몇몇이 섞
여 있었다.
3파티 또한 본격 적 인 활동을 개시 했다.
3파티는 2파티를 뛰어넘는 가파 른 페이스로 등반을 진행하고 있었 다.
당연한 조치였다. 20층 공략에는 3파티까지 필요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 공략이 끝나고 나면 단순한 유망주 모임이 아닌,2 파티에 이은 정식 공략 파티로서 2 층에 합류할 듯했다.
’20층을 열심히 대비하는군.’
20층은 어렵다.
내가 보낸 공략을 봤다면 모를 리 없다.
나도 20층에서 꽤나 고생했으니. 정확히 세 번의 전멸을 겪었다. 그 러나 여기선 단 한 번의 실패도 겪 어서는 안 된다. 20층은 물론이고 앞으로 이어질 모든 임무에서도.
이 조건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 인지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용한 다.
그리고 살아남아서 지구로 돌아간 다.
이곳에 온 뒤, 한 번도 변하지 않 은 나의 목적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나는 파일을 덮었다.
파일 안에는 보스전의 유형과 각
종 패턴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놈 이 등장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 만, 대부분의 공략은 암기가 끝났 다.
나는 하늘을 을려다보았다. 하늘은 희끄무레한 어둠에 뒤덮여
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간. 이 미 밤 을 지난 깊은 새벽이었다.
출전은 아마 내일.
어제부로 2파티의 레벨링이 끝났
다.
한층 보강된 장비도 지급을 마친 상황. 모두가 눈치채고 있었다.
‘타이밍이 뻔해서 좋은데.’
나는 가볍게 웃었다.
나도 저렇게 했다. 공략 전 무언의
신호를 주는 것이다.
그러면 이튿날,
영웅들이 알아서 준비를 해 온다. 아침, 나는 식당에 모인 사람들에
게 말했다.
“오늘 훈련은 없어. 저녁까지 대기
한다. 함부로 힘 빼지 마.” 식당에는 1파티와 2파티의 모든
멤버가 모여 있었다.
“이상이 있으면 보고해라. 도저히
무서워서 못 나가겠다든가. 그럼 내 가 적극적으로 말해보겠다.”
“합성을 해달라고 말이오?”
벨키스트가 웃었다.
“들켰냐?”
“농담이 아닐 것 같아서 무서운 데.”
에디스가 말을 받았다.
“2파티,준비는?”
나는 에디스를 바라보고는 말했
다. 그 뒤에는 로데리크와 아론을 포함한 2파티의 멤버가 차례대로 앉아 있었다.
“어느 정도는 됐어. 출전할 수 있 을 것 같아.”
“이번에는 너희도 나갈 거야. 15 층과는 달라.”
“그건 알아.”
‘그리고 이 자리에는 없지만,3파 티까지도.’
나는 영웅들의 면면을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마스터가 접속하려면 조금 시간 이 있을 거다. 못다 한 일이 있으면
해둬. 유서를 쓰든 무얼 하든. 유서 를 쓰는 놈은 죽으면 내가 찾아서 손수 찢어주지.”
“이번 임무에서도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겠지?”
에디스가 나를 보며 말했다. 눈빛에 불안이 담겨 있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할 일만 제대로 한다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를 신호로 사람들이 하나씩 일
어나 각자 흩어지기 시작했다. 주방 으로 가 맛있는 것을 주문하는 놈도 있었고 숙소 방향으로 가는 녀석도
보였다. 휴게실으로 가는 무리도 몇 몇 보였다. 이 와중에 유서를 쓰는 놈도 있었다.
“진짜로 쓰냐?”
“남이사! 신경 쓰지 마요.”
이올카가 혀를 배 내밀었다.
이올카는 종이를 휘릭 접고는 방
으로 향했다. 자기 방에서 마저 쓰 려는 것 같았다. 식당은 1분도 안 지 나 텅 비어 버렸다. 나는 가만히 있 던 아론에게 말했다.
“내가 약속을 어기지 않게 해.1’
아론은 빙긋 웃고는 창을 손에 쥐
었다.
“죽을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형님은 어디 가십니까?”
“나는 낮잠이나 자련다.”
당연히 그런 여유로운 짓을 할 생
각은 없다.
방에서 한 번 더 자료를 훑어볼 예 정이었다. 암케나가 접속할 때까지.
20층은 바로 코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