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Gaiden 39
38. 안 놓치지
* * *
기이잉.
비공정은 기묘한 소음을 내며 차원의 틈을 미끄러져 들어갔다.
구석진 곳에서 자동으로 멈췄다. 도착이었다.
“흐아암. 지금 몇 시야.”
갑판으로 나온 이올카가 하품을 하더니, 하늘을 보았다.
변함없이 거뭇거뭇하지만 밝은 회색이 섞여 있다.
“거의 아침인 거 같은데요.”
“오늘은 수고했다.”
“설마 이래놓고 낮에 나오란 건 아니죠?”
“한두 번 속냐. 오늘은 휴무야.”
“후후. 저 먼저 갈게요.”
철컥. 기리릭.
이올카는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제나와 네리사가 뒤를 이었다. 나는 수고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물심양면으로 피곤했을 것이다. 거의 약탈에 가까운 짓을 했으니.
“애송이는 어떻게 할 거요?”
“그 녀석은 당분간 내가 관리할게. 신경 쓰지 마.”
마지막으로 벨키스트가 비공정을 나갔다.
나는 선내의 창고로 들어갔다. 밧줄로 몸이 묶인 소년이 모로 잠들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잠을 자다니. 좋은 깡이다. 이쪽이 편하지만. 나는 소년을 둘러업고는 갑판으로 나왔다.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군.’
암케나가 접속하기까지는 여유가 남아 있다.
어떤 태도로 나올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비공정과 마학자, 그리고 각종 아이템들. 약탈 한 번의 수확이라기에는 너무 크다. 지시받은 적도 없었고.
‘두고 보면 알겠지.’
나와 시느느의 채팅 내용은 삭제했지만, 그 밖의 침입 및 역습, 약탈에 관한 로그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적이 대기실에 침입했고, 우리가 이를 격퇴한 뒤 역으로 털어왔다는 사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소년을 업은 채 차원의 틈을 빠져나왔다.
아래층으로 각종 연장을 든 채집직이 출근하고 있었다. 요일 던전에 나가는 것이다. 시선을 돌리고 숙소로 들어간다. 방문을 열고 녀석을 침대에 던져넣었다. 쿵.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느긋하게 잘 수는 없다. 비록 꽁꽁 묶어놨지만, 마법사란 직업은 종종 내 예상을 초월하는 기행을 벌이고는 했다. 길어야 세 시간. 나는 가볍게 눈을 감았다.
수마가 찾아왔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눈 감았다 뜨니 낮이군.’
눈꺼풀이 무겁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5분쯤 잠든 것 같은데, 벌써 낮이 되었다.
“으으읍!”
나는 시선을 돌렸다.
소년이 나를 적의 어린 눈으로 보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일어나 있었던 건가. 다가가서 입의 밧줄을 풀었다.
“여, 여긴 어디야!”
“어디긴 어디야. 내 방이지.”
“왜 이런 곳에 나를 끌고 왔어? 돌려보내 줘!”
“안 된다니까.”
나는 의자를 회전시키고는 발을 꼬았다.
“이제부터 너는 비공정 담당이다.”
“뭐? 무슨 억지를…….”
“억지고 뭐고, 마학자가 없으면 비공정을 어떻게 굴려? 그 밖에 연구도 좀 해주고. 인챈트나 시약 제조도 부탁한다. 보조 마법도 가능하지? 임무에도 참가해라. 마법사가 두 명 있으면 편하지.”
소년은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금 녀석을 살폈다.
품이 넓은 로브를 입었다. 로브에는 푸른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단발에 머리빛은 진청색. 얼핏 보면 소녀로 착각할 만한 중성적인 외모였다.
“야, 이! 이 뻔뻔한……!”
[‘카티오(★★★★)’가 분개합니다!]카티오라는 이름인가.
얼굴이 붉어진 소년은 묶인 채, 애벌레처럼 꿈틀거렸다.
“다짜고짜 사람을 납치한 다음 일을 하라고? 할 것 같아! 이 자식아! 지옥에나 떨어져!”
나는 뺨을 긁었다.
순순히는 따라주지 않는 것 같다.
예상대로였지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오빠, 저예요. 식사를 안 하신 거 같길래.”
“들어와.”
제나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쟁반 위에는 빵과 우유가 올라가 있다. 책상에 쟁반을 올려놓은 제나의 시선이 카티오에게 향했다.
“이 아이는…… 어제 그 마법사네요.”
“앞으로 우리와 같이 싸우게 될 거야. 친하게 지내.”
나는 쟁반을 침대맡에 놓았다.
“배고프겠군. 먹어라.”
찌릿.
나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먹지 않으면 탈출도 불가능할 텐데.”
“파, 팔을 풀어줘야 할 거 아냐.”
나는 카티오의 팔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혼자서는 별로 할 게 없을 테니까.”
마학자의 단독 전투력은 높지 않다.
기본적으로는.
“그게 아니라요. 오빠 먹으라고 만든 건데.”
“…….”
우물.
카티오는 날카로운 눈빛을 거두지 않으면서 빵을 씹었다.
“켁!”
먹다 사레가 들렀는지, 기침을 하며 우유를 마셨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빵과 우유를 빠르게 해치운 카티오가 말했다.
“이런 식으로 회유해도, 나는 안 넘어가. 남의 집을 불태우고 멋대로 살인하고 약탈하는 악당한테 협력하진 않을 거라고.”
“악당이라니. 네 마스터가 어떤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진 알아?”
“그, 그건…….”
모를 리 없다.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가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흔적은 남는다.
처음에는 간단한 약탈.
그 요정의 말대로 인사 수준의 도둑질일 뿐이다. 하지만 녀석이 만만하다고 생각되면 점점 강도를 높일 것이다. 아이템 약탈에서 영웅 납치 및 살인에 이르기까지.
보통 30층대의 마스터들은 침입에 대한 대비가 잘 되어 있지 않다.
방어 인력 및 시설도 부족할뿐더러, 30층대에서는 비공정을 소유한 마스터 자체가 거의 없으니까. 대비를 못했던 것이다.
무너뜨리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가 했던 것처럼, 방비가 소홀한 새벽 시간에 기습한다. 혹은 임무를 나가 인원이 대거 비었을 때 뒤통수를 친다.
이렇게 야금야금 갉아먹은 뒤, 충분히 약해졌을 때 한꺼번에 침입해서 무너뜨린다.
그리고 대량의 영웅을 포로로 잡아온 뒤 자신의 영웅에게 합성시킨다. 이런 패턴의 반복이었다. 이 섹터의 마스터들이 접은 원인은 대강 이러했을 것이다.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양심이 있다면.”
“나는…….”
카티오는 고개를 숙였다.
“너는 그 협력자였고.”
“명령을 받았을 뿐이야!”
“돌아가면 똑같은 지시를 받을 텐데.”
놈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나는 유달리 넋이 빠져 있던 몇몇 영웅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대기실 소속의 포로일 것이다. 노예로 굴리다 쓸모없어지면 합성행이겠지. 사냥꾼의 대기실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된다.
“마스터는…… 나의 마스터는 그렇지 않아.”
카티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원래는 안 그랬어. 지금은 단지…… 헤매고 있을 뿐이야.”
“흐음, 그래?”
“나는, 나는 마스터를 믿는…….”
카티오는 말을 흐렸다.
‘마스터를 믿어?’
유저는 보유한 영웅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일절의 관심도 없다.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할 뿐이다. 그저 게임이니까.
나 역시 그랬다.
그 시느느라는 마스터는 처음에는 공략파였을지 몰라도, 약탈에 맛을 들였고, 그게 더 재밌어졌다. 단지 그렇게 됐을 뿐이다.
‘허황된 꿈을 꾸고 있군.’
나는 말했다.
“그놈이 변할 거 같냐?”
“…….”
“잘 생각해. 여기서 네 능력을 펼칠 건지, 거기서 혹사만 당하다가 뒈질 건지.”
“건의할 예정이었다고!”
“뭘 건의해? 약탈은 그만하라?”
영웅이 그딴 의견을 펼치면 바로 합성 당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지. 이 녀석은 마학자라서 바로 죽이지는 않겠지만.
“……불쌍하네요.”
제나가 중얼거렸다.
“적어도 저희 마스터는 그러진 않는데. 우리 의견은 잘 들어줬잖아요. 여러 가지 신경도 써주고요.”
“거긴 아니겠지. 100%야.”
얼마나 통조림을 시켰는지, 비상 상황에서도 움직이지 못했다.
이 녀석이 제 컨디션이었다면 우리가 거기서 뼈를 묻었을 수도 있었다.
‘슬슬 넘어오고 있군.’
카티오는 축 늘어져 있었다.
눈에 띄게 풀이 죽었다. 조금만 더 구슬리면 넘어올 것도 같았다.
“우리 아래로 들어온다면, 몇 가지는 확실하게 보장해주마.”
듣지 않는 척하지만 카티오의 귀가 쫑긋거렸다.
“첫째, 야근 없는 생활.”
“……?!”
“그거 거짓말…….”
“끌고 나가.”
“읍!”
제나가 이올카의 입을 막은 채 끌고 나갔다.
언제 들어왔냐.
“우리는 일과 외의 휴식을 보장해준다. 남는 시간에는 뭘 해도 돼. 휴게실도 있고 목욕탕도 있다. 먹을 것도 많아.”
“그렇지만…….”
“그놈이 너희 복지에 대해 신경이나 써주디?”
술은 주는 거 같지만, 그 정도는 이 녀석에게 아무 메리트도 되지 못할 것이다.
“둘째, 우리는 시답잖은 약탈 따위는 하지 않는다.”
“오늘 했잖아!”
“먼저 건드리지 않는다면 말이야. 너도 알잖냐. 그놈이 먼저 털으려고 왔거든. 비공정 기록 조사하면 알 거야. 내기라도 할까?”
카티오는 다시 머리를 숙였다.
“우리는 명실상부 공략파거든. 임무에 집중하지. 쓸데없는 곳엔 눈 안 돌려. 특별한 필요가 없다면.”
“여기 임무를 해도 의미가 없어. 이곳은 내 고향이 아니잖아.”
“특별한 애착이라도 있나? 남겨둔 가족이라도.”
“그런 건 없지만…… 아무튼!”
‘없으면 잘됐네.’
가장 귀찮은 조건이 해결됐다.
나는 말을 이었다.
“셋째 조건, 네가 다른 지역 출신이라고 차별하는 일은 절대 없어.”
“흥, 네가 뭐 대장이라도 돼?”
“대장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위상은 가지고 있지.”
차별에 대한 것은 다른 마스터의 영웅을 영입할 때 생각 외로 심각한 문제다.
니플헤임에서도 출신과 종족이 다르다며 갈등하는 놈들 때문에 꽤나 골머리를 앓았다.
“휴식 보장, 임무 중시, 차별 없음. 내가 보장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세 가지다.”
“야근이 없다는 거, 정말이야?”
“그거…….”
“조용히 시켜.”
문밖에서 이올카의 비명이 들렸다.
나는 싱긋 웃고는 말했다.
“정말이야.”
“……수상해.”
나는 카티오에게 다가가 밧줄을 풀어주었다.
팔뿐만이 아니라 몸통과 다리에 묶은 것도.
“지금까지의 무례는 사과하지.”
“이렇게 대한다고…….”
“바로 결정하라고 하진 않아. 여길 둘러보면서 천천히 생각해봐.”
카티오는 나를 찌릿 노려보더니, 로프 자국이 남은 팔을 매만졌다.
그러고는 흥, 고개를 돌리더니 밖으로 척척 걸어나갔다. 문이 다시 열리고 제나가 들어왔다.
“내버려 둬도 돼요?”
“이셀.”
[귀염둥이 요정, 이셀 등장!]“차원의 틈은 잠가놔. 혹여 수상한 낌새라도 있으면 바로 알려주고.”
[오케이!]뾰로롱.
곧장 사라졌다.
“……쟤는 참.”
“이러면 괜찮아.”
이번에는 이올카가 방에 들어왔다.
“완전 굽신굽신이군요. 나도 쟤처럼 대해주면 좀 좋아. 같은 마법사인데 대우가 왜 달라요?”
“안 낚인 고기잖아.”
“저는 낚인 고기라서 잘 대해줄 필요 없다는 거예요?”
“이상하게 안절부절하네.”
“안절부절은 무슨. 정상이라고요.”
나는 말없이 웃었다.
이해는 한다. 고고한 귀족 취급을 받다가 경쟁자가 등장했다. 자기보다 등급이 높은 4성. 실질적으로도…….
“어쨌든, 절대 안 놓는다.”
“싫다고 해도요?”
“당연하지. 억지든 뭐든.”
마학자의 가치는 남다르다.
비공정 운용을 빼고도 그렇다.
전투에서는 고효율의 보조 마법으로 파티를 지원하고, 비전투 상태에서는 각종 인챈트를 넣어주는 부여사를 겸한다. 그 외에도 상급 물약 제조나 뛰어난 연구력 등, 마학자는 준 5성 취급을 받는 최고급 인재였다.
“그, 저는…… 쟤가 싫다고 하면…….”
“돌려보내자고? 그놈한테?”
“그건 아니지만요! 시간을 두고 보자는 거죠.”
‘혼자 일하기 싫다며 투덜거릴 땐 언제고.’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잘 거야. 무슨 일 있으면 깨워라. 아, 그리고 그 녀석은 네가 안내해줘. 대기실 여기저기.”
“제가요?”
“그럼 제나한테 시킬까?”
“아, 알았어요.”
이올카는 복잡한 표정으로 방을 나갔다.
제나도 잘 자라며 말하고는 이올카를 따라갔다.
‘졸리군.’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생각했다.
아직 할 일은 많다. 그놈의 대기실에 한 번 더 들러야 했다.
비공정이 있다면 정비사도 분명 있을 터. 녀석들도 데려와야지. 한번 빨대를 꼽았으면 골수까지 뽑아먹어야 한다. 그 밖에도 파티의 컨디션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이후의 상황을…….
‘이거 완전.’
일 중독인가.
지구에 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 * *
그날 저녁.
[픽 미 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암케나가 접속했다.
[로딩이 끝났습니다.] [T O U C H !(선택)] [편의성 업데이트, 그 첫 번째!] [영웅의 스킬이 궁금하시다구요? 이제 공략을 뒤적거리는 것은 그만! 스킬에 대한 능력 안내를 제공합니다. 새로 보는 스킬이라고 더 이상 고민하지…….]공지사항을 스킵한 암케나는 픽 미 업의 메인 화면에 들어섰다.
[마스터, 미확인 활동이 다수 보고되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Yes(선택) / No]암케나가 ‘Yes’를 누르자마자 뜬금없이 팡파레가 터졌다.
[비공정 등장!] [마스터, 비공정을 얻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획득 비공정 – 캐피탈리즘 호] [Tips/비공정이란?] [비공정은 차원의 틈을 이용하기 위한 핵심 탑승물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도움말 탭에서 비공정을 검색해보세요!] [신규 영웅이 합류했습니다.] [카티오 루사니(★★★★) – 클래스 : 마학자(Mage)] [위 영웅은 현재 ‘억류’ 상태입니다.] [마스터, 미확인 전리품이 있습니다!] [획득 아이템 – 14종] [획득 골드…….]보고가 화면을 꽉 채울 정도로 도배되었다.
비공정과 마학자에 대한 것. 얻은 아이템과 골드에 관한 보고. 다른 마스터와의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과 전투 경과에 대한 간단한 내용. 마지막으로 시느느의 패드립까지.
나는 컵을 들이켰다.
시원한 물이 목을 타고 흘러갔다. 앞에는 카티오가 침대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이곳의 안내도 대강 끝난 것이다.
암케나는 몇 분간 액정을 건드리지 않았다.
‘하루 만에 일어났다고 하기엔 좀 그렇지.’
비공정을 만드는 데만 현실로 일주일 이상이 걸린다.
시간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젬과 각종 재료가 들어가고, 핵심 부품인 차원핵은 마학자가 없으면 손을 댈 수조차 없다. 따라서 픽 미 업의 마스터들은 비공정으로 서로의 전력을 재곤 했다. 차를 비교하듯 말이다.
‘어젯밤의 성과를 단순 돈으로 계산하면.’
약 칠백팔십만 골드.
나는 말없이 물을 비웠다.
어젯밤 전투와 약탈의 로그에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기록되어 있다. 내가 주동자였다는 점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찰칵!] [스크린샷을 찍었습니다. 해당 이미지는 갤러리에 저장됩니다.]스샷을 찍은 암케나는 다음 행동에 돌입했다.
운영 탭에서 선물 아이콘을 누른 것이다. 수전증이라도 있는지 몇 번이나 아이콘 근처를 더듬으면서. 뭘 주고 싶은지는 안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옆을 보았다.
침대 우측의 5층 진열장 위, 군마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다. 원래 광장에 있던 것을 이셀이 옮겨두었다. 도합 세 마리였다.
‘내 신경을 쓸 때가 아니지.’
나는 고개를 젓고는 메시지를 떠올렸다.
[마스터, 영웅 ‘한(★★★)’이 제안합니다.] [요청 – ‘카티오(★★★★)’의 영입] [Tips/영웅 영입에 대하여] [다른 대기실 소속의 영웅을 데려올 수도 있습니다.] [단, 계약의 성립을 위해서는 영웅의 동의가 필요합니다.]4성 마학자, 카티오는 현재 억류 상태였다.
지금은 타오니어 소속이 아닌 것이다. 히어로 박스에서는 조작 불가능을 알리는 회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돌려놓아야 했다.
“갖고 싶은 건 있냐?”
“없어.”
칼 같은 대답이다.
카티오는 머리를 돌렸다.
“네가 아무리 달콤한 말로 유혹해도 안 통해.”
“그래?”
“이곳이 하르라보단 쬐금 낫다는 건 인정해. 그래도 넘어가진 않을 거라고.”
“이거 원. 합성하는 수밖에 없겠군. 4성이라 능력도 많이 오를 테니.”
“뭐, 뭣…….”
“밥벌레를 키울 수는 없잖아.”
카티오의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이, 자식…….”
“내가 보장하는 건 세 가지. 그 밖의 요구가 있다면 말해라. 웬만한 건 다 들어줄게.”
“루마기니 3월호 내놔! 절대 못 가져올걸? 하르라에서만 출간되는 잡지…….”
[‘한(★★★)’이 ‘루마기니(3월호)’를 원합니다. 선물하시겠습니까?] [7,000골드가 소모됩니다.] [Yes(선택) / No]나는 야시시한 여자가 수영복을 입고 있는 잡지를 내밀었다.
“다른 거.”
“그럼 담비털 목도리를…….”
[‘한(★★★)’이 ‘담비털 목도리’를 원합니다. 선물하시겠습니까?] [고급 선물입니다!] [100젬과 5,000골드가 소모됩니다.] [Yes(선택) / No]“또 없냐?”
“대, 대체 어디서 가져오는 거야?”
목도리를 어설프게 두른 카티오가 말했다.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는 듯했다. 그 밖에도 각종 선물을 요구했으나 나는 요구하는 그대로 건네주었다. 선물 상점에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종류만 수천 가지 이상. 나조차도 다 외우지 못할 지경이다.
“마지막으로…….”
카티오가 요구사항을 말했다.
나는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오마.”
마침 잘 됐다.
[마스터, ‘한(★★★)’이 원정을 요청합니다.] [원정지 – 하르라] [목적 – 약탈 및 포획] [수락하시겠습니까?] [Yes(선택) / No]“어디 가?”
“데려오라면서.”
나는 짧게 답하고는 방을 나섰다.
그리고 즉각 차원의 틈으로 향했다.
‘혼자서도 충분하다.’
사망 보호 상태의 놈들이 되살아나려면 일주일은 걸린다.
나는 비공정에 올라탔다.
[야, 이 개자식! 왜 또 왔어! 꺼져! 가라구! 오지 마아아!]잠시 후.
“데려왔다.”
작업복을 입은 여자를 카티오 앞에 데려놓았다.
이름은 라디. 비공정 정비사였다.
“계약도 끝냈지. 앞으로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될 거야.”
“미안, 카티.”
정비사를 멍하니 바라보던 카티오가 물었다.
“너, 어떻게 회유한 거야?”
“내가 한다고 했어.”
정비사는 머리를 숙였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건 이제 지쳤어. 마스터는 우리가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쓰잖아.”
“하지만…….”
카티오의 눈이 흔들렸다.
두 명에게는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조용히 방을 나왔다.
“어떻게 됐어요? 될 거 같아요?”
벽에 기대고 있던 이올카가 다가왔다.
“거의 넘어왔지. 늦어도 오늘 안에는 결판이 날 거야.”
저 여자 정비사는 카티오와 똑같은 시기와 소환됐다.
비공정에 대한 건으로 얽혀 남매 비스무리한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 설득에 애를 먹을 줄 알았는데, 정비사는 내 제안에 고민하지 않고 수락했다. 그 마스터에게는 신물이 난다면서.
“그 마법사가 들어오면 어디로 가죠?”
“글쎄다. 생각을 해봐야겠군.”
현재, 타오니어의 주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1, 2, 3파티에는 빈자리가 없다.
저 녀석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주 파티에서 한 명을 빼거나 혹은 예비 파티에 끼워 넣어야 했다. 그러나 두 번째 안은 효율이 높지 않다. 마학자는 다른 멤버의 전력이 우수할 때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쓰려면 한 명을 빼야 한다는 건데.’
3파티는 종족 자체가 다르니 예외였고, 따라서 10명이 남는다.
이거 원. 꽤나 민감한 문제다.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보다는.’
나는 하르라의 광경을 떠올렸다.
마스터는 접속해 있지 않았고, 하급 영웅들이 요정의 지휘 아래 잿더미가 된 대기실을 복구하는 중이었다.
‘귀찮게 됐네.’
복구에도 상당한 비용이 든다.
창고를 싸그리 털어갔는데. 아마 요정이 말한 단결회인가 뭔가에서 지원을 받은 듯했다.
이올카와 헤어진 뒤, 나는 반지를 돌렸다.
“유르넷.”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돌아왔다.
“빠른데.”
유르넷은 말을 이었다.
“흐음.”
“월 천?”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어떤 형태인지 알 것 같았다.
지잉.
반지에서 홀로그램 글자가 떠올랐다.
[단결 ^^7]픽 미 업의 마스터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유형이 있다.
그러나 이런 놈들은 수많은 케이스 중에서도 상당히 독특하다.
‘몇 번째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밖의 내용은?”
“안 된다 이 말이군.”
픽 미 업이 실력이 중요하다고 해도, 모바일 게임인 것은 분명하다.
과금 효율이 존재하지 않을 리 없다. 어려운 임무라도 파티를 수십 번 갈아 넣으면 결국에는 뚫린다. PVP도 마찬가지였다.
“예상 전력은?”
유르넷은 헛기침을 했다.
“내버려 둬. 먼저 건들지만 않으면.”
“오겠지.”
예전에는 드래곤 나이츠였고,
저번에는 우로보로스였다.
이번에는 단결회.
비슷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서버를 지배하겠다고 몇몇 놈들이 나선 적이 있었다. 목표는 니플헤임. 2서버의 상징이느니 하는 핑계를 대면서 침입해 들어왔다.
‘지겨워.’
한창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울렸던,
드래곤 나이츠와 우로보로스라는 길드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비공정 1,000대를 끌고 왔었나.’
나도 거기까지는 예상 못했다.
물론, 천 대 분량의 쓰레기가 생길 뿐이겠지만.
나는 유르넷에게 다른 일이 있으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남긴 뒤 통신을 끊었다.
마침 방문이 열렸다. 카티오가 침울한 표정을 지은 채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라디가 내게 허리를 숙이고는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정했어.”
카티오의 말에 나는 손을 들었다.
이셀이 뾰롱 나타나더니 펜과 종이를 건네주었다.
푸른 잉크펜과 계약서였다.
“서명해라.”
“속이는 거 아니지! 계약했더니 이상한 곳에 끌려가서…….”
“상상력은 좋지만, 당연히 아냐.”
카티오는 나를 노려보고는 펜을 뺏었다.
그리고 계약서의 아래 칸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서명이 끝나자, 계약서와 펜이 파랗게 불타오르더니 공중으로 사라졌다.
[‘한(★★★)’이 ‘카티오(★★★★)’의 회유에 성공했습니다.] [‘카티오(★★★★)’가 조작 가능 상태가 되었습니다!]‘간단하지.’
나는 카티오에게 숙소를 알려주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내일부터 저 녀석은 타오니어 소속의 마학자로 활동하게 될 것이다.
[선물 상점!] [선물 상점!] [선물……!]암케나는 선물 아이콘을 연속으로 난타했다.
이셀이 뾰로롱 회전하며 나타나더니 다가붙었다.
[로키! 로키이!]“작게 말해. 귀 아프잖냐.”
[마스터가 로키한테 선물을 주고 싶나 봐. 뭐 바라는 거 없어?]나는 조작 화면을 올려보았다.
군마 조각상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저 대기하고 있었다.
[원하는 선물이 있으면 말하라는 거 같아.]암케나도 한 단계 학습한 것 같다.
선물을 골라서 준다고 한다.
나는 진열대를 바라보았다.
세 마리의 군마가 달리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기마대라면 이 정도론 안 되지.’
[‘한(★★★)’이 ‘군마 조각상 X 10’을 원합니다. 선물하시겠습니까?] [50,000골드가 소모됩니다.] [Yes(선택) / No]진열장 한 칸이 군마 조각상으로 채워졌다.
나란히 질주하는 모습. 이제 조금은 폼이 난다.
어차피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그 밖의 일에도 큰 흥미가 없다.
비싸고 화려한 선물을 받아봤자 장식일 뿐. 이곳에서 하는 일은 기껏해야 훈련이나 공부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런 취미를 가져도 좋을 것이다.
‘천 마리는 모아야겠군.’
987마리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