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oneer Simon RAW novel - Chapter 118
포교사제 (2)
알 리시온 추기경은 북부 교구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보다가 한 부분에서 시선이 고정되었다. 제법 사제로 신망이 높은 롤랑이라는 사제가 개척영지에 포교소를 열었다는 내용이었다.
‘사이먼 백작이라고 했던가?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다고 했지.’
알 리시온 추기경은 사이먼에 대해서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한동안 생각을 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악연이 있었다.
‘그로 인해 내 입지가 상당히 좋아졌지만 그로 인해 한편으로 교황이 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알 리시온 추기경은 로크 왕국의 로시튼 추기경이 낙마할 때만 해도 자신에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크로이엘 교단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에카테리나 왕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교단에서 알 리시온 추기경의 입지가 커진 반면 한편으로 고립이 되기도 했다.
이번 전쟁은 에카테리나 왕국과 로크 왕국의 전쟁이지만 사실 제국과 에카테리나 왕국의 전쟁이라는 것을 대부분 다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에카테리나 왕국에 기반을 둔 알 리시온 추기경은 친제국파 교직자들의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지지가 없이 교황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까지의 교황 중에 그들의 지지를 받지 않고 된 교황은 없었다.
‘교황이 되는 것은 포기하자.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도 크로이엘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하자.’
알 리시온 추기경은 마침내 마음속에서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사실 그는 로시튼 추기경이 실각하기 전만 해도 추기경에서 쫓겨날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것을 전쟁이 나서 피할 수 있었다.
‘한데 이 사이먼 백작이 내내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이런 경우 뭔가 일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런 능력 있는 자가 궁벽한 오지에 내려가서 영지를 개척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그 부분에 시선을 두자 알 리시온 추기경의 눈에 지도가 들어왔다.
‘설마? 트라칸 반도를?’
알 리시온 추기경은 사이먼이 자리 잡은 곳을 보았다. 그러자 그곳이 가진 지리적인 특징이 한 눈에 보였다.
‘바다는 해양 몬스터 때문에 건널 수가 없다. 그렇다면 갈 수 있는 방도는 바닷가를 따라 가는 것인데 그에게는 엄청난 시간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언젠가 트라칸 반도에 도달할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두 마탑도 몰려간 것인가?’
일종의 정세보고서를 뒤적거리자 그런 내용이 보였다. 왕립마탑과 태양의 마탑에서 현재 사이먼의 개척영지에 갈 마법사를 추가로 선정 중에 있었다. 몬스터 사냥터가 확장이 되면서 추가적으로 마법사를 파견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트라칸 반도는 우리 에카테리나 왕국에 버금갈 정도로 땅이 넓다. 거기에 제국이나 로크왕국처럼 넓은 평원과 뜨거운 지역도 있다. 어쩌면 그곳에 새로운 제국이 들어설 수도 있다.’
알 리시온 추기경은 그런 사실을 깨닫자 자신이 너무나 사소한 것에 매몰이 되어 큰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나라 하나가 시작되는 대역사가 진행되는데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사실을 왕실에서 알면서도 용인을 한다는 것인가? 이건 뭔가 이상한데?’
크로이엘 교단의 편협성에 못지않게 왕실도 배타적이었다. 그들은 왕권을 위협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했다. 그런 그들이 사이먼의 의도를 알고도 방치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의도를 안다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음, 일단 나도 모른 척 우리가 할 일만 하면 되는 거지. 왕실의 일은 왕실에서 알아서 하겠지.’
사이먼의 의도를 알게 되었지만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확실하다고 해도 굳이 문제될 것도 없으니 교단에서 할 일을 하면 되었다. 왕실의 일은 왕실에서 알아서 할 문제였다.
‘나를 도운 것이 사실이니 뭔가 도움을 주도록 하자. 그간 신전에 대한 감정도 그리 좋지 않을 것이니 미래를 위한다면 그런 인식을 불식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알 리시온 추기경은 사이먼을 위해 뭔가를 해줄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사이먼이 왕실과 힘겨루기를 하더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없는지 고민을 했다. 여전히 뭔가 꾸미기를 좋아하는 자신의 성향을 발휘하는 알 리시온 추기경이었다.
영지를 개척하는 작업을 하다보면 위험한 작업을 하기 마련이었다. 사이먼은 최대한 그런 일은 피하라고 했지만 현장에서는 당장의 일이 급해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농경지를 만들 곳에 바위가 있는 것을 보자 프랭클린은 기사를 불러서 부탁을 해야 하지만 그냥 세 명의 동료와 같이 경계도로로 옮기기로 했다. 기사를 부르러 가고 그들을 기다리려면 시간이 걸리기에 힘이 들더라도 일단 강행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든 옮길 것만 생각했지 경사가 있어 바위가 구를 것은 고려하지 못했다. 억지로 바위를 세 사람이 들고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간에 몇 번 쉬면서 이동을 했는데 급한 경사구간에 도달하자 힘이 들어 바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경사가 급하다보니 바위가 바닥에 고정이 되지 않고 그대로 구르기 시작했다. 경사 아래쪽에는 막 바위를 놓고 허리를 펴던 프랭클린이 있었는데 그대로 바위가 덮치고 말았다. 그나마 머리는 피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머리가 깨져 즉사할 수도 있었다.
머리를 피했지만 몸통 전체가 바위에 짓눌러 목숨이 경각에 달했고 누구를 불러오기에는 기다릴 수가 없어 다른 두 동료가 그를 떠메고 새로 문을 연 치료소를 향해 달려갔다.
다행히 롤랑 사제가 있었다. 사이먼도 피투성이가 된 프랭클린을 떠메고 달려가는 것을 보자 뭔가 도울 일이 없는지 뒤를 따라갔다. 치료소에 가자 롤랑 사제는 그런 환자를 치료한 것은 처음은 아닌지 능숙하게 처치를 한 후에 신성력을 발휘하여 치료하기 시작했다.
사이먼도 우연하게 옆에서 신성력을 이용하여 치료하는 것을 살피게 되었다.
‘신성력은 생명의 마나와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다. 아울러 빛의 마나와도 공통점이 많다. 여기에 정화를 할 때 발현되는 마법과도 유사하다. 어떻게 신성력이 효과를 발휘하는지 알 것 같다. 한데 이런 신성력이 어디서 오는지 의문이다.’
사이먼은 신성력을 발휘하는 사제를 유심히 살폈다. 마나를 움직이지 않고 초감각을 이용하여 살폈다. 마나를 쓸 경우 감지하는 것을 상대가 알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살피던 사이먼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마치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제의 몸이 하나의 마법진처럼 작용을 하고 있었고 그 마법진의 모양이 어떤 것과 유사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굴에 있는 소환마법진과 유사하다.’
순간 사이먼은 그 마법진의 형상이 애쉬톤 산의 동굴에 있는 마법진과 상당히 유사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사람의 몸에 있는 것이기에 완전한 형태의 소환마법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원리 자체가 비슷했다.
‘작지만 보다 정밀한 형태라고 할까? 아니면 마법진이 고정되지 않은 성장형이라고 해야 하나?’
사이먼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원리를 이해하면서 신성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마침내 알 수가 있었다. 마계에서 음의 마나가 오는 것과 유사했다. 아울러 그 마법진은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니라 사제의 몸에 저절로 형성이 되는 것 같았다. 그것이 어떤 원리인지 대략 알 것도 같았다.
‘저것이다.’
사제의 심장에 자리한 신의 사도라는 증표가 바로 그 원인이었다. 사제가 되면서 일종의 세례 비슷한 의식을 하는데 그 의식을 거치면 심장부위에 신성력의 코어가 형성되었다. 마법사의 마나홀과 같은 것인데 그 코어가 마나 고리처럼 성장을 했다.
마법사의 마나 고리처럼 신성력이 커지면 역시 성장을 하는 것 같았다. 서클이 올라가는 것처럼 일종의 등급이 있었다. 성장의 흔적이 남아 있기에 저절로 알 수 있었다.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시간이 흐르면 저 코어가 성장을 한다고 하던데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자들도 마찬가지라는데 신자들의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신자들 중에도 믿음이 강한 자들은 빛의 코어가 형성이 되기도 했는데 사제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신자들의 코어는 사제들이 가진 여러 가지 기능이 거의 없이 신성력만 모으는 정도였다.
‘신성력을 신계, 또는 천계에서 소환하는 것인가? 물론 그 소환된 신성력은 동굴에 음의 마나, 마력이 머물듯이 사제의 몸에 머물고 있다. 그 양이 상당히 많아 한 사람을 치료하는데 사용하고도 남을 정도이다.’
그렇게 사이먼이 사제를 살피는 동안 신성력을 이용하여 치료가 마무리 되었다. 곧 죽을 것처럼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환자가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났다. 중한 내상을 대부분 다 치료했다. 물론 여전히 적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지만 그것은 외상에 불과했다.
“크로이엘님의 은총을.”
사제가 내상 치료를 마친 후에 일어나서 다시 한 번 환자를 향해 두 손을 내뻗으면서 그렇게 말을 했고 사제의 손에서 광채가 나와 환자에게 쏟아졌다. 그러자 외상마저 말끔하게 다 치료가 되었다.
‘소환해둔 몸 안의 신성력을 이용하여 몸 안에 난 상처를 치료했다면 외상은 바로 소환한 신성력으로 치료했다. 그렇기에 두 기운은 같으면서도 달랐다. 직접 몸 안을 치료하는 데는 사전에 소환하여 몸 안에 머문 신성력이 더 효과적인 것 같다 반면에 외상은 바로 소환한 신성력을 이용해도 문제가 없었다.’
사이먼은 자신도 모르게 분석을 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신성력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
‘한데 소환마법진은 신성력이나 마력이나 비슷하다. 아니 그 요소는 동일하다. 이 마법진은 결국 어떻게 보면 신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신과 교통할 수 있는 일종의 통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신성력소환마법진은 그 능력이 커지면 신을 소환하고 종내에는 신의 강림까지 가능할 수 있다. 고위 신관에게 신이 계시가 내리고 지상에 환란이 오면 신이 강림할 수도 있다더니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사이먼은 단지 소환을 하는 좌표와 속성만이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형태나 원리는 거의 유사했다.
‘이러니 마족 소환마법사를 흑마법사라고 하면서도 마신의 사도라고 암묵적으로 인정을 하는 것인가? 마족 소환마법진과 신성력 소환마법진은 대동소이할 것 같군.’
흑마법사인 마족 소환마법사와 신의 사도인 사제가 유사한 마법진을 몸 안에 품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러니 하게 생각이 되었다. 그렇기에 극과 극은 서로 통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교단이나 크로이엘 교단의 교리 같은 것도 살펴볼 필요가 있겠군. 신성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고.’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와 대척점에 있는 마족 소환마법에 대해서도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동굴의 마법진이 가진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마법진의 비밀이 그 두 가지를 알게 되면 조금 더 밝혀질 것 같았다.
사이먼은 크로이엘 교단의 교리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 그렇게 하면서 신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신과 그 대척점에 있는 마신의 존재에 대하여도 고찰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간 사이먼은 흑마법을 익힌 사실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신전이나 크로이엘에 대하여 기피 하여 온 것을 알게 되었다.
‘신전의 입장에서 보면 마법사는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하는 발칙한 존재라는 말이군. 흑마법사는 거기에 더해 마신이 되려는 존재이며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온갖 못된 짓은 다하는 존재, 그렇게 정의를 하고 있군. 그러니 일반 흑마법사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겠지.
하지만 흑마법사 중에서도 소환마법사는 마신을 추종하는 무리로서 역시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에 대하여는 심판받아 마땅하지만 마신의 사도이기에 또 다른 신의 추종자로서의 존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사이먼은 마신의 위치에 대하여 규정한 부분에 주목을 했다. 세상을 지탱하는 두 축 중에 하나로 중심에 존재하고 있었다. 신과 마신의 동체설에 대한 교리까지 있었다. 주신 크로이엘과 마신 트랄리온은 동일한 존재이며 세상을 창조한 창조신 가온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논리였다. 즉, 크로이엘과 트랄리온은 창조신 가온의 분신이라는 설도 있었다.
즉 가온과 크로이엘, 트랄리온은 셋이 하나이며 각기 그 일면을 보고 달리 부르는 명칭이라는 논리였다. 이는 삼위일체설이라고도 하며 크로이엘 교단의 핵심 교리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어느 것도 똑 부러지게 단정을 하지 않고 가능성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항상 신의 일을 감히 인간이 넘볼 수 없는 것이라는 말로 사실 여부에 대한 증명이나 논쟁은 회피하고 있었다. 신의 영역은 탐구의 대상이 아닌 신앙, 즉, 무조건적인 믿음의 대상이었다.
이런 삼위일체설은 주신 크로이엘의 위상과도 연관이 있었다. 창조신 가온의 존재는 크로이엘의 위상이 두 번째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고 엄연히 존재하는 가온을 부정할 수도 없기에 삼위일체설을 통한 크로이엘의 위상제고였다. 여기서 문제는 악신이라는 마신 트랄리온의 존재였다. 트랄리온이 주신의 대척점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역시 삼위일체설이었다.
이를 통하여 주신 크로이엘은 가온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도 전지전능한 신의 위상을 가질 수가 있었다. 가온과 크로이엘의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 동체성을 부여하여 동일한 위상을 얻어 신도들의 이탈을 막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창조신 가온을 추종하는 가온교단은 세상에 나타나지 않게 된 것이다.
사이먼은 종종 사제인 롤랑과 같이 문답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포교를 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기에 크로이엘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이먼의 노력에 성실히 답변을 해주었다. 일반 크로이엘 교도인 사이먼과 사제인 롤랑의 관점은 확연하게 달랐지만 그래도 교리의 논리적인 구성에 대하여 나름대로 알아갈 수 있었다.
(끝)